2화 : 당신의 팀을 선택해주세요!
신영 타이탄스를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시키라니!?
한수는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우승?!”
양민호는 안경테를 잡고 살짝 올리며 말했다.
“아! 정규시즌 1위도 해야 하네요.”
“꼬장도 정도껏 부려야지! 1위는 둘째치고 타이탄스를 어떻게 우승시키냐!? 그냥 유산 물려주기 싫다고 해!”
그러자 양민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 말씀은···. 신영 군수와 신영 패션 주식 상속을 포기하시겠단 말씀입니까?”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들이밀어 놓고···.”
“포기하시면 군수, 패션 지분 모두 재수 도련님께 상속됩니다.”
“뭐야!?”
그러자 이재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야 땡큐지.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흐흐.”
“웃기지 마! 내 몫을 왜 저 인간한테 넘겨!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이건···!?”
“회장님 재산이니 회장님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요.”
“······!”
한수는 오만상을 찡그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때 양민호가 태블릿 PC를 꺼냈다.
“회장님께서 도련님께 남기신 말씀이 있습니다.”
“나한테?”
“들어보시겠습니까?”
“······.”
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양민호는 태블릿 PC로 영상을 재생했다.
환자복을 입은 이태백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인생의 좌우명은 ‘첫 번째 도전에 실패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성공한다.’다. 이 좌우명이 거지촌에 살던 천애 고아 이태백을 신영 그룹···.]
한수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지긋지긋한 레퍼토리···.’
[···내가 대운 디펜스를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의 방위 산업체 신영 군수를···. 신성 종합 병원을 이기고 최고의 병원을···. 전부 포기하지 않고···.]
“TMI 좀 적당히 하시지···. 그래서 본론이 뭔데? 어째서 타이탄스 우승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이런 내가 딱 하나 이루지 못한 게 있다.]
한수는 눈가를 움찔했다.
‘할배가 이루지 못한 거···?’
[바로, 타이탄스의 한국 시리즈 세 번째 우승.]
“···미친···.”
[1992년···. 신영 타이탄스의 두 번째 우승 때 아내랑 함께 만든 산삼주···. 세 번째 우승하면 함께 마시자고 했는데···. 그 사람도···. 나도···. 향조차 맡지 못했구나.]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가 무덤에 그 산삼주 뿌려주면 돼!? 그럼 되냐고?!”
오정숙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수야, 조용히 하고 할아버님 말씀 마저 들어.”
그러자 한수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이태백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수야.]
한수는 마치 이태백과 대화하듯 버럭 소리쳤다.
“왜요!?”
[타이탄스가 한국 시리즈에서 세 번째 우승을 한 뒤에···. 산삼주를 마시고 싶구나.]
“그냥 포기하쇼! 7년째 꼴찌인 팀을 뭔 수로···!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건데!? 어!?”
[한수 너라면 지금쯤 왜 나한테만 이러냐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겠지.]
한수는 뜨끔했다.
그러자 이태백은 껄껄 웃었다.
[한수야, 너는 말이다···. 내 아픈 손가락이었다.]
“네?”
[너는 정말···. 아픈 손가락이었다.]
“······.”
[너는 진짜···. 욕 나올 정도로 아픈 손가락이었어.]
“아니···. 뭔···.”
[그런 너한테 죽어서라도 효도 좀 받고 싶구나.]
한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장난쳐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유산을 가지고 이딴···!”
[그리고···.]
“······?”
[···죽은 네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타이탄스 세 번째 우승을 해줬으면 좋겠구나.]
“······.”
이때 작은아버지 이창호와 어머니 오정숙이 한수를 쳐다봤다.
이창호의 눈빛은 서늘했고, 오정숙은 몹시 복잡한 표정이었다.
한수는 버럭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하기 싫으면 유산 상속을 포기하면 된다.]
“뭐···?”
[그러면···. 네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재수가 네 몫을 다 가지겠지. 선택은 네 자유다. 이상 끝!]
“젠장···.”
그렇게 영상은 끝났다.
양민호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으로 故 이태백 회장님의 유언장 공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한수는 허탈한 표정을 하며 중얼거렸다.
“미쳐버리겠네···.”
= = = = = = =
故 이태백 회장의 유언장 공개가 끝나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창호 부회장은 차가운 눈빛으로 한수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이태백 회장의 초상화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끝까지 저를 방해하시는군요.’
그는 몸을 휙 돌리며 아들 이재수에게 말했다.
“가자.”
“잠시 한수랑 얘기 좀 하고 오겠습니다.”
“···마음대로 해라.”
이창호가 허락하자 이재수는 한수에게 다가갔다.
한수는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미치겠네. 야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데, 뭘 어쩌라는 거야?’
그때 이재수가 다가오며 말했다.
“한수야, 포기해.”
“뭐?”
“타이탄스는 답이 없어. 이번 시즌 할아버님께서 엄청나게 투자했는데도 여지없이 꼴찌잖아.”
“······.”
“할아버지도 너무하시지. 어떻게 이런 조건을···. 아무래도 병세가 깊으셔서 판단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편하게 가자는 거지. 네가 지금 유산 상속을 포기하면 내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게.”
“재수 형.”
“응?”
한수는 중지를 세우며 말했다.
“재수 없게 나대지 말고 꺼져.”
“너···.”
“내 성격 몰라? 내 건 절대 안 뺏겨.”
“···다시 생각하는 게 좋을걸? 타이탄스 우승은···.”
“꺼지라고.”
이재수는 움찔했지만, 곧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선택 후회하게 될 거야. 갈매기가 한국 시리즈 우승? 시즌 1위? 야구팬들한테 다 물어봐. 그게 가능한지! 갈매기가 우승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이재수는 몸을 휙 돌렸다.
한수는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내가 형 손에 반드시 장 지지고 만다!”
그때 양민호 변호사가 다가왔다.
그는 한수에게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회장님께서 한수 도련님께 남기신 겁니다.”
“···비싼 겁니까?”
“저도 뭔지 모릅니다. 그럼, 저는 이만···.”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상자를 열어보려고 했다.
그때 휠체어에 탄 오정숙이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이크!’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재빨리 밖으로 나와 슈퍼카에 탔다.
그리고 상자를 조수석에 휙 던져 놓고 시동을 걸며 생각했다.
‘일단 타이탄스가 돈이란 돈은 있는 대로 처먹고도 매년 꼴찌를 도맡아 하는 이유를 파악해봐야겠어!.’
그는 비서한테 전화를 걸었다.
“덕수야.”
[네, 실장님.]
“타이탄스 사장한테 내일 아침까지 오라고 해.”
[타이탄스요···? 왜요?]
“그건 알 거 없고!”
[네! 그런데 어디로 오라고···.]
“어디긴 어디야? 내 집이지.”
[씨파크 호텔로 안 가세요? 레아랑 약속 있잖아요. 내일은 강세나랑 정동진···.]
“다 취소해. 아! 타이탄스 감독이랑 그, 뭐냐 프런트 책임자를 뭐라고 하지?”
[단장이요?]
“그래, 단장. 그 둘도 오라고 해.”
[네!]
그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운전을 하다 보니 인적이 드문 도로에 접어들었다.
한수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밤공기를 쐬는데···.
조수석에 던져둔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뭐가 들어있는 거지?’
그는 손을 뻗어 상자를 잡고 조심스레 열어봤다.
거기엔 낡은 포수 마스크가 들어있었다.
한수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할배, 해도 해도 너무하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꺼내 들었다.
‘왠지 낯이 익은데?’
그때 마스크 아래 새겨진 ‘No. 09 이정호’라는 글씨를 발견했다.
‘이건···.’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이 마스크는 뭐예요?]
[이건···. 내 눈물과 너희 아빠의 땀이 맺힌···.]
[땀? 눈물? 으엑···. 더러워···.]
[뭐야? 더럽다고? 욘석이···!]
한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빠가 선수 때 썼던 포수 마스크잖아···. 이걸 아직도 가지고 계셨던 거야? 염병, 타이탄스에 왜 그렇게 투자하나 했더니···.”
그는 애증 어린 눈빛으로 포수 마스크를 바라보다가 얼굴에 착용했다.
오래된 물건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한수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우, 냄새···. 이딴 걸 왜 애지중지···.”
그 순간!
-빠아아아앙! 끼이이이익!
반대차선에서 달려오던 덤프트럭이 갑자기 그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뭐, 이, 미···!?”
한수는 황급히 엑셀을 밟으며 핸들을 돌렸다.
그러나 충돌을 피하진 못했다.
-콰과과과광!
슈퍼카는 가드레일로 날아가 충돌하더니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한수는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온몸이 아프고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한수는 생각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서 죽을 땐 아쉬운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젠장···.’
그때 할아버지 유언이 떠올랐다.
[너한테 죽어서라도 효도 좀 받고 싶구나.]
‘할배···. 아무래도 난 효도할 팔자가 아닌가 봐.’
한수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나한테 상속될···.
‘할아버지 유산은···.’
전부···.
‘···이재수 그 인간한테···.’
한수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건···! 절대 안 되지! 유산은···! 내가···! 반드시 내가···! 타이탄스를 우승시켜서···! 내가···!”
그러나 의지와 달리 의식은 점점 아득해져 갔다.
‘젠장···. 이대로 죽긴 싫다고···!!!’
너무도 분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 눈물은 흐르는 피와 섞여 피눈물이 됐고···.
-뚝···. 뚝···.
착용하고 있던 포수 마스크에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번쩍!
갑자기 포수 마스크에서 환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띠링!
한수의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위대한 천사 H가 당신의 염원에 응답합니다.】
【위대한 천사 H의 축복으로 몸이 회복됩니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를 설치합니다.】
【설치가 완료됐습니다.】
【구단주님, 당신의 팀을 선택해주세요!】
한수는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뭐야···?”
그렇게 그는 포수 마스크를 쓴 채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