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4화 (4/187)

4화 : 마, 함 해보입시더!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

한수는 어머니 오정숙 여사의 전화를 받았다.

[너 제정신이야? 그 몸으로 어딜 돌아다니는 거야!?]

“진정하세요, 오 여사님! 엄마 아들 멀쩡해요.”

[이 녀석이 근데···. 당장 병원으로 돌아와!]

“그건 좀 곤란한데. 부산에 가는 중이라···.”

[부산? 너 혹시 타이탄스에···.]

“유산을 포기할 순 없잖아.”

[···돌아와. 일단 엄마랑 얘기를···.]

한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영 군수랑 패션, 포기 못 해. 바보처럼 뺏길 순 없어.”

[한수야···.]

“타이탄스 우승? 십 년이 걸리든 이십 년이 걸리든 해낼 거야.”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옆자리에 놔둔 아버지의 포수 마스크를 쳐다봤다.

‘아버지도···.’

이내 고개를 젓더니, 재차 말을 이어갔다.

“이런 말 하는 거 닭살이긴 한데···.”

[······?]

“···신영 군수랑 패션을 지키고, 우리 오 여사님도 지킬 거야. 너무 비장했나? 흐흐.”

[한수야···.]

“···당분간 부산에서 지낼 거야. 약 잊지 말고 잘 챙겨 드셔.”

[······.]

한수는 그렇게 통화를 끝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두통이 밀려왔다.

‘···눈 좀 붙일까?’

그는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 후, 강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장님, 곧 부산입니다.”

“······.”

한수는 눈을 뜨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서히 부산 전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십 년만인가···.’

추억에 젖은 눈빛을 하다가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강덕수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리고 박종철 사장은 아직도 전화를 안 받습니다.”

“···그래?”

“어떻게 할까요?”

“···부산에 도착하면 박 사장 뒤 좀 털어봐.”

“알겠습니다.”

그때 백미러에 강덕수의 긴장한 얼굴이 비쳤다.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표정이 왜 그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부산이니까요.”

“······?”

“이 도시는 강한 드라이버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렝게티 초원···.”

“헛소리 그만하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네···. 바로 구장으로 갈까요?”

“···경기까지 아직 시간 남았지?”

오늘은 신영 타이탄스와 대명 티라노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있는 날이다.

강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여섯 시 반 시작이니까. 아직 여유 있습니다.”

“그럼, 부산 시내나 좀 구경하자.”

“어디로 모실까요?”

한수는 창밖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돼지국밥 타이탄스.”

“알겠습니다.”

강덕수는 재빨리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돼지국밥 타이탄스로 출발했다.

‘가게 이름 한번 특이하네···. 근데 실장님, 돼지국밥도 드실 줄 아셨나?’

그는 백미러로 힐끗 한수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평소랑 분위기가 다른데···. 유산 때문인가? 아니면, 죽다 살아나시더니 철이라도 든 건가···?’

= = = = = = =

돼지국밥 타이탄스는 동래구의 어느 길거리에 있는 식당이다.

부산에 널리고 널린 게 돼지국밥 식당이지만, 이곳은 조금 특별했다.

이곳 사장이 90년대 신영 타이탄스 황금기의 응원단장 황금 깃발 심상호였기 때문이다.

한수는 돼지국밥 타이탄스 입구에 붙은 임시 휴업 팻말을 보며 생각했다.

‘···금요일인데 쉰다고? 심지어 타이탄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인데? 무슨 일 있나?’

그때 강덕수가 다가오며 말했다.

“오늘 쉬나 봐요. 다른 맛집 알아볼까요?”

“···아니, 그냥···.”

그냥 구장으로 가자고 하려는데, 강덕수가 포수 마스크를 들고 온 걸 보고 인상을 썼다.

“그건 왜 들고 왔어?”

“굉장히 아끼시는 거 같아서···. 갖다 둘까요?”

“···아니, 이리 줘. 넌 가서 차 대기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와 돼지국밥 타이탄스를 번갈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갑자기 식당 문이 열리더니, 험상궂게 생긴 오십 대 중후반의 남자가 나왔다.

머리에 부산 갈매기 로고가 새겨진 낡은 두건을 쓴 게 인상 깊었는데···.

바로, 돼지국밥 타이탄스 사장 심상호다.

그는 한수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남의 가게 앞에서 뭐 하는 거요?”

“아, 그게···. 블로그에 여기가 맛집이라고 해서.”

“임시 휴업인 거 안 보입니까?”

“멀리서 왔습니다. 혹시 국밥 한 그릇만 어떻게 안 될까요?”

심상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한수를 위아래로 살폈다.

그러다가 그가 들고 있는 포수 마스크에 눈길이 갔다

한수는 조심스럽게 포수 마스크를 뒤로 감추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심상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내가 먹으려고 끓여둔 거라도 좋다면···.”

“감사합니다!”

한수는 심상호 뒤를 따라 돼지국밥 타이탄스로 들어갈 때 왠지 기분이 묘했다.

왜냐면 이 식당은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그런데 안으로 들어온 한수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가게 안에 이삿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사 가시나요?”

“보면 모르오? 저쪽에 앉으시오.”

“······.”

한수는 자리에 앉으며 이삿짐들을 살폈다.

그러다 쓰레기봉투에 부러진 낡은 황금 깃발을 발견하고 눈가를 움찔했다.

“저건···.”

깍두기를 들고 오던 심상호가 말했다.

“저 깃발을 아는 거 보니···. 혹시 갈매기 팬이요?”

“뭐···. 그냥···.”

팬은 아니고, 구단주지만···.

한수는 사실을 말할 수 없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누가 저렇게 만든 건가요? 저 황금 깃발은 84년과 92년 우승을 함께한 소중한···.”

“내가 그랬소.”

“······!”

한수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냐면 그가 기억하는 심상호는 가게는 팔아도 황금 깃발은 안 판다고 하던 사람이다.

“···왜 저렇게 만든 겁니까?”

심상호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미주알고주알 속내를 털어놓는 성격은 아니다.

그런데 왠지···.

‘이 친구···. 묘하게 낯이 익네. 누굴 닮은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일까.

심상호는 한수의 맞은편에 앉더니 입을 열었다.

“···내 청춘을 다 바친 신영 타이탄스가 썩어가는 꼴을 더는 지켜보기 힘들어서···.”

“그래서 깃발을 부러뜨린 겁니까?”

“······.”

“설마, 이사 가는 것도···.”

“······.”

대답은 안 했지만, 무언의 긍정이 분명했다.

한수는 어두운 표정의 심상호에게 물었다.

“···팔 년 연속 꼴찌를 하는 것 때문에···.”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고···.”

“그러면···.”

심상호는 단호한 목소리 말했다.

“···신영 타이탄스는 글러 먹었소! 팀 해체밖에 답이 없소!”

“해체요!?”

“팬들에게 마지막 예의를 지킬 마음이라도 있다면···.”

“······.”

팀 해체는 절대 안 된다.

그러면 할아버지 유산이 이재수한테 넘어간다.

한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지갑에서 오만 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심상호가 당황하며 물었다.

“이건···.”

“국밥값입니다.”

“국밥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입맛이 없네요. 얘기 잘 들었습니다. 그럼.”

심상호는 한수가 나간 문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봤지···?’

= = = = = = =

타이탄스 홈구장으로 향하는 차 안.

한수는 심상호와 나눴던 얘기를 떠올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래도 타이탄스 내부 사정을 제대로 파악해야 할 거 같은데···.’

그때였다.

-띠링!

기묘한 소리가 들렸고, 한수는 흠칫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포수 마스크 위에 느낌표가 나타난 걸 발견했다.

“뭐, 뭐···.”

운전 중이던 강덕수가 물었다.

“실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포수 마스크 위에···.”

“포수 마스크 위에요? 왜요? 벌레라도 있어요?”

“아니···. 너 이게 안 보여?”

“뭐가 보인다는 거예요?”

“······!”

그때 마스크를 썼을 때 봤던 문구가 생각났다.

‘맞아. 분명 나만 볼 수 있다고···.’

“실장님,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거면···.”

“···아냐, 내가 잠시 착각했어. 신경 쓰지 마.”

강덕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잡더니 이리저리 살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느낌표로 손을 뻗었다.

‘······.’

반투명한 창과 비슷한 감촉···.

한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생각했다.

‘또, 써야 하는 건가···?’

한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 순간이었다.

-띠링!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보였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신영 타이탄스 정보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안내···?’

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임무 1』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첫 임무입니다! 오늘은 타이탄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예요! 관중석에서 직관하세요!】

【보상 : 1 Point】

한수는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임무···? Point···? 이건 대체 무슨···.’

= = = = = = =

신영 타이탄스 사장실.

박종철 사장은 소파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며 골프채를 닦고 있었다.

그때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짧은 스포츠머리에 정장을 입은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바로, 운영팀 팀장 양승진이다.

“사장님! 외야 펜스 증축 결재가 왜 아직 안 난 겁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당신 위아래도 없어?”

“펜스 증축 안건! 이거 제가 8월에 올린 겁니다! 빨리 작업을 해야지. 겨울 전에 선수들이 한 번이라도 더 적응 훈련을 시작합니다! 날이 추워지면···.”

“일에는 절차라는 게 있는 거야.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사장실에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떼를 쓰면 어떡하나?”

양승진은 박종철의 책상을 탕! 내리치며 소리쳤다.

“절차대로 일이 진행되면 이러지도 않습니다! 멀쩡한 관중석 보수 공사는 왜 하는 겁니까? 그리고 치어리더 대기실 리모델링은 두 달 전에도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고 경기장 리모델링입니다!”

“관중석은 민원이 들어와서 그런 거고, 치어리더 대기실은 김 단장이 결정한 거잖아. 그리고 펜스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낭비 같단 말이지. 우리 구장 펜스는 이미 국내에서 제일 높은데···.”

“제가 올린 보고서 안 읽어보셨습니까? 펜스 증축을 해서 투수친화적 환경으로 만들어 유망주 투수들을 성장시켜야지만 우리 타이탄스에···.”

“그만! 그만!”

“······.”

“양 팀장, 일이라는 게 우선순위가 있는 거야. 땅 파서 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만년 꼴찌인 우리 팀은···.”

양승진은 부들부들 떨더니 버럭 소리쳤다.

“그러니까 제발 우선순위를 생각해서···!”

“양 팀장! 너 인마!”

“······!”

“너만 타이탄스 생각하냐? 나는 뭐 타이탄스 망하게 하려고 이러는 줄 알아!? 네가 그렇게 잘났어!?”

“저는···.”

“시끄럽고! 당장 나가!”

양승진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몸을 휙! 돌려 사장실에서 나왔다.

그때 비서실에 앉아 있던 이소희 비서가 물었다.

“맨날 싸우는 거 지치지도 않으세요?”

“······.”

양승진은 별다른 대꾸 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이소희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려다가 “아!” 하면서 입을 열었다.

“새로운 구단주 결정된 거 아세요?”

양승진은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구단주가 누구든 뭔 상관입니까? 썩어빠진 팀은 그대로일 텐데···.”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밖으로 나갔다.

이소희는 고개를 흔들더니 힐끗 시계를 쳐다봤다.

어느덧 다섯 시 반.

그녀는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 사장실 문이 열리고 박종철이 나왔다.

“이 비서, 남 기사 좀 오라고···. 근데 뭐해?”

“퇴근 준비요.”

“벌써?”

시즌 중에 신영 타이탄스 프런트의 출근 시간은 오후 1시다.

물론 비서는 사장 스케줄에 맞추긴 하지만···.

아직 퇴근 시간은 멀었다.

이소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주에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조금 빨리 가 봐야 한다고 보고드렸습니다.”

“그랬나? 아! 식당 예약은 한 거지?”

“시장님 단골 한정식집으로 예약해뒀습니다.”

그러자 박종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남 기사만 오라 하고 퇴근해.”

“네.”

이소희는 남 기사에게 연락한 뒤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인사했다.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어, 내일 보자고.”

박종철은 다시 사장실로 들어가려다가 “아!”하며 이소희를 불렀다.

“이 비서, 나 커피도···!”

그러나 그녀는 이미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 뒤였다.

박종철은 혀를 차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밑에서 케이크 상자를 꺼내 들고 금고로 다가갔다.

‘···이재수가 내 뒤를 봐주겠다고 했지만, 그놈만 믿고 있을 순 없지.’

금고를 열자 다양한 문서와 현금 뭉치, 금괴들이 보였다.

그는 오만 원권 현금 뭉치를 꺼내 케이크 상자에 꾹꾹 눌러 담았다.

박종철은 조금 아까운 눈빛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아냐, 아까워하지 말자. 괜히 갖고 있어봤자 문제만 되는 돈이야.’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남 기사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잠깐 기다려!”

그는 금고를 재빨리 잠그고 케이크 상자를 테이프로 봉했다.

“들어와!”

그러자 남 기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 찾으셨다고···.”

박종철은 케이크 상자를 내밀며 말했다.

“이따가 식당에서 시장님 트렁크에 실어 드려. 실수하지 말고!”

“네···.”

“가봐!”

“네.”

남 기사가 사장실에서 나가고, 혼자 남은 박종철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 = = = = = =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쓴 채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때 운전석에 앉아 있던 강덕수가 말했다.

“실장님, 구장에 거의 도착했어요.”

“알겠어.”

“실장님···.”

“······?”

“설마 그 마스크 쓰고 다니실 건가요?”

한수는 움찔하더니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미쳤냐?”

“그건 왜 자꾸 쓰시는 거예요?”

“몰라도 돼.”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사장실로 가실 건가요?”

“아니.”

한수는 선글라스를 끼며 말했다.

“일단 구단 구경 좀 하고···.”

“저도 같이 갈까요?”

“아냐. 내가 연락할 때까지 차에서 대기해.”

“알겠습니다.”

그렇게 구장에 도착한 뒤, 한수는 차에서 내렸다.

그는 구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설들을 살폈다.

‘시설이 왜 이렇게 낡았지? 할배가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

한수는 금이 가 있는 구장 외벽을 손으로 짚으며 중얼거렸다.

“보수도 안 된 거 같고···.”

그때였다.

갑자기 구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삐뽀···. 삐뽀···.

구급차 소리까지 들리고···.

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무슨 일이···.’

구장 정문으로 향하자 청소부 아저씨가 구조대 들것에 실려 가는 게 보였다.

그때 청소부들의 대화가 들렸다.

“김 씨 저 꼴 날 줄 알았어. 그러니까 왜 전등을 갈겠다고 나서서···.”

“김 씨라고 하고 싶어서 했겠어요? 위에서 시키니까···.”

“우라질···. 시설팀은 어디에 팔아먹고 우리한테···.”

“김 씨마저도 못 나오면 어째요? 가뜩이나 인원도 달리는데···.”

“···그래도 오늘부로 시즌이 끝나니까 다행이죠.”

“다행은! 아마 내년 봄까지 이대로 쭉! 갈 텐데!? 퍽이나 다행이겠다!”

“···서 팀장한테 얘기해볼게요···.”

한수는 청소직원들의 대화를 듣고 팔짱을 꼈다.

‘···이놈의 팀은 대체 어디부터 썩은 거야?’

“다 썩었어···!”

“······?”

한수는 어디선가 들려온 외침에 고개를 갸웃했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직원 전용 출구에서 스포츠머리에 왜소한 체구의 남자, 양승진이 전화 통화를 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한수는 그의 목에 걸린 사원증을 쳐다봤다.

‘운영팀···. 양승진 팀장···. 운영팀이라···.’

자연스럽게 그의 통화에 귀가 기울였다.

“사장은 지역 유지랑 인맥 쌓는 데 혈안이고···. 단장은 쓰레기···. 감독은 허수아비···. 선수들은···. 하···. 답답하다, 답답해···.”

듣고 있던 한수도 답답했다.

그때 양승진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모기업 투자 좋지 않냐고? 웃기지 말라고 해···!”

한수는 미간을 좁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웃기지 말라고?’

“그거 전부 다···.”

양승진은 뭐라고 말하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수는 멀어지는 양승진을 보다가 생각했다.

‘여기저기서 구린내를 풀풀 풍기는구나.’

“···총체적 난국이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때 1984년 타이탄스 첫 우승 주역이자, 타이탄스의 유일한 영구 결번인 철인(鐵人) 최종권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다.

‘종권 아저씨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

한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마, 함 해보입시더!”

일단 박종철 사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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