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자, 모두 따라 해봐!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투구가 타격, 주루, 수비를 더한 것보다 중요하다는 소리지만, 실제 투수가 경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하다.
즉, 터무니없는 헛소리라는 건데···.
신영 타이탄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 팀의 경기는···.
‘투수 놀음이다.’
타이탄스 구장 마운드 위에 선 선발 투수 독고준.
그는 포수 하민철이 티라노스의 4번 타자 윤진호를 볼넷으로 거르라는 사인을 보내자 인상을 썼다.
‘원아웃 주자 만루로 만들라고? 누구 엿 먹이냐? 더군다나 윤진호 저 새X랑 승부를 피하라고?!’
독고준은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하민철은 재차 볼넷 사인을 보냈다.
독고준도 재차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하민철이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심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운드로 다가와 글러브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선배님, 거르고 다음 타자 잡죠.”
“내가 2회에 저 새X 삼진 잡은 거 잊었어?”
“하지만···.”
삼진을 잡긴 했지만, 파울을 8개나 맞았다.
오늘 윤진호는 물빠따가 아니란 소리다.
반면에 독고준은 일주일 만에 등판인데도 컨디션이 영 좋지 못하다.
하민철은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어제도 애들이랑 새벽까지 술을 마셨댔지···.’
“선배님, 오늘 컨디션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진호 형은 보내고 다음 타자랑···.’
“야, 하민철!”
“네, 선배님.”
“너 지금 나 가르치냐?”
“아뇨. 그게 아니고···.”
“시건방 떨지 말고 가서 공이나 잡아. 2년 차 애송이 X끼가 어디서 주둥이를 털어.”
“······.”
하민철은 고개를 떨구며 더그아웃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젓고, 투수 코치는 손으로 X를 그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다.
하민철은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젠장, 나보고 어쩌라고···.’
그때 독고준이 소리쳤다.
“꺼져!”
“···네.”
하민철이 홈으로 돌아가고 경기가 재개됐다.
독고준은 상대 타자 윤진호를 노려보더니, 역동적인 와인드업을 하며 소리쳤다.
“이번에도 삼진이야. 이 XX야···!”
공이 손을 떠나며, 독고준은 생각했다.
‘긁혔다···!’
그는 확신했다.
‘이건 스트라이크야!’
그 순간,
-까아아아앙!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리가 들렸고···.
포수 하민철은 고개를 떨궜으며···.
배트를 휘두른 윤진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티라노스 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와아아아아아!
동시에 독고준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젠장···!”
= = = = = = =
윤진호가 친 공이 홈런이 되자 캐스터가 소리쳤다.
[윤진호! 3점 홈런! 이야! 역시 이번 시즌 홈런 5위 다운 뜨거운 한 방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해설위원은 점수가 ‘7 : 1’이 된 걸 확인하며 고개를 저었다.
[주자가 만루가 되더라도 윤진호 타자는 거르고 다음 타석에서 승부를 봤어야 했는데···. 하민철 포수는 볼넷을 요구한 거 같습니다만···.]
[하하! 하지만 독고준 선수가 윤진호를 피할 리가 없죠! 둘은 고교 시절부터 라이벌···.]
[타이탄스 입장에서는 무척 중요한 경기입니다. 독고준 선수는 개인보다는 팀을···.]
[그래도 독고준 선수는 타이탄스 최고 투수고···.]
한수는 스마트폰을 끄고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5회에 7대 1···.”
‘야구는 9회 말 투아웃까지 모른다고 하지만···.’
선발 투수인 독고준은 윤진호에게 한 방 맞은 이후 정신을 못 차리고 거하게 불을 지르고 있고···.
하민철은 불펜 포수나 다름없고···.
수비수들은 몸개그를 하며 계속 실책을 범하고 있다.
대형 스크린에서 타이탄스 더그아웃을 비쳤다.
팀이 위기의 순간임에도 감독은 모자를 눌러 쓰고 의자에만 앉아 있고···.
투수 코치는 마운드를 향해 삿대질하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고···.
다른 코치들은 전의를 상실한 표정이다.
한수는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끝났네.”
‘유산만 아니었으면 이딴 팀 팔아버리는 건데···.’
그 순간, 이소희가 소리쳤다.
“아직 끝이 아니에요! 겨우 5회라고요! 이번만 잘 막아내면 이소호 선수가 타석에 선다고요!”
“2회에 홈런 친 타자요?”
“네!”
그녀는 경기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야구는 분위기만 타면 순식간에 승부가 뒤집힌다고요. 이소호라면···. 분명 할 수 있어요!”
“글쎄요. 어려울 거 같은데요? 타자 한 명이 뭘 할 수 있다고···.”
이소희가 고개를 휙! 돌리더니 한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소호는 불씨에요. 그 불씨를 살릴 중계 투수로 문희동 선수가 준비 중일 거예요.”
“문희동? 처음 듣는 이름인데?”
“이번 시즌에 홀드를 6번 한 선수예요.”
한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6번이면 적은 거 아닙니까?”
“그중 5번이 홈구장에서 잡은 거예요.”
“······.”
“우리 구장은 홈플레이트에서 펜스까지 거리는 가깝지만, 펜스가 4.8M로 다른 경기장보다 높아요. 웬만해선 홈런이 나오지 않죠. 문희동 선수는 그 점을 잘 활용하는 투수예요. 무엇보다 포수의 리드를 잘 따르죠.”
“그럼 문희동이 9회까지 던지면 되겠네.”
“문희동 선수는 어깨가 좋지 않아요. 많이 던져도 3회 정도···. 아마 8회에 교체를···. 하지만 그럼 마무리 투수가 또 문제인데···.”
“마무리 투수는 왜 문제입니까?”
“그건···.”
그 순간 티라노스 팬들이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한수와 이소희는 흠칫 놀라며 전광판을 쳐다봤다.
5회 초 원아웃 주자 1루 상황···.
독고준 투수가 또 홈런을 맞았다···!
점수 차는 9 대 1.
한수는 마운드 위에 무릎을 꿇은 독고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투수 교체는 언제 되는 거야?’
그때 이소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감독님이 타임이라도 걸어서 문희동 선수가 준비할 시간을 벌면 좋을 텐데···.”
한수는 이소희를 묘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물었다.
“대답 마저 하세요.”
“네?”
“마무리 투수는 뭐가 문제인데요?”
“아, 그게···.”
신영 타이탄스의 마무리 투수는 전부···.
“···독고준 라인이거든요.”
“라인? 파벌 같은 겁니까?”
“네···.”
“그게 왜 문제입니까?”
“···하민철 포수랑 사이가 안 좋아요. 아마 리드를 안 따르고 멋대로 던질 거예요.”
“그럼 포수를 바꾸면 되겠네요.”
“다른 주전 포수는 부상으로 치료 중이에요. 2군에서 올라온 포수가 있긴 한데 실력이 조금···.”
“음···.”
“독고준은 스타성은 있지만, 도량이 좁아요.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들은 심하게 괴롭히죠.”
“처음 듣는 얘기네요.”
“선수단에서 쉬쉬하니까요. 독고준의 파벌만 어떻게 처리해도 타이탄스의 승률이 1할은 오를 텐데···.”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요.”
“······?”
“타이탄스 내부 사정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죠?”
그러자 이소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부산 갈매기 응원가를 듣고 자랐으니까요. 이 정도는 기본이죠.”
“······.”
“하여튼! 아직 승부를 포기하긴 일러요!”
문희동이 틀어막는 동안 어떻게든 점수를 내면···.
한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기는 건 어려울 거 같은데···.”
이소희는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갈매기 사전에 포기란 없어요!”
“······.”
한수는 그런 이소희를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으며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조금 더 지켜볼까?’
그렇게 경기는 이어졌다.
이소희 예상대로 문희동이 5회 초 투아웃 상황에 마운드에 올라와서 위기를 넘겼다.
5회 말, 4번 타자 이소호가 두 번째 솔로홈런을 치며 점수 차를 9 : 2로 좁혔다.
그리고 9회 초 문희동 투수를 대신해서 마무리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고···.
시원하게 연타석 홈런을 맞았다.
점수 차는 11 : 2.
그리고 9회 말, 타이탄스의 마지막 공격.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고···.
타이탄스는 11 : 2로 패배했다.
그렇게 정규시즌이 끝났다.
한수는 타이탄스 선수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인사를 하며 웃는 걸 보며 혀를 찼다.
‘개판이네.’
그러다가 옆에 앉은 이소희가 씁쓸한 미소로 경기장을 응시하는 게 보였다.
한수는 그녀에게 말했다.
“아쉽게 됐네요.”
“···네, 뭐···.”
몹시 풀이 죽은 모습.
‘갈매기 사전에 포기란 없다더니···.’
그 순간, 이소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마!!! 타이탄스!!! 내년에는 반드시 우승하자!!! 갈매기 사전에 포기란 없다!!!”
한수는 흠칫 놀랐다.
그러더니 이소희는 혼자 ‘돌아와요, 부산에’를 열창하기 시작했다.
“갈매기 머무는 동백섬에 겨울이 왔건만···. 떠난 형제는 언제쯤···.”
한수는 그런 그녀를 빤히 보며 생각했다.
‘···재밌는 여자네.’
그때 강덕수 비서가 한수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실장님, 출입증 발급받았습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라커룸으로 안내할까요?”
한수는 이소희를 한 번 더 본 뒤에 몸을 휙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엔 아까 확인했던 임무 2가 떠올랐다.
『임무 2』
【구단주님! 경기 종료 후에 타이탄스 선수들을 만나서 한 말씀 해주세요!】
【보상 : 1 Point】
‘한 말씀···. 해줘야지.’
그는 포수 마스크를 강덕수에게 건네며 말했다.
“라커룸으로 가자.”
“네.”
그렇게 두 사람은 타이탄스 라커룸으로 향했다.
= = = = = =
타이탄스 라커룸.
독고준은 친한 후배들과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이야, 드디어 끝났다. 끝났어.”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8승이나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하하, 이것들아 내년에는 마무리 좀 잘해라. 그래야 나도 다시 두 자리 승수로···.”
-쾅!
라커룸에 있던 선수들이 전부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를 가진 남자, 이소호가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독고준은 부숴진 라커와 이소호를 번갈아 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열 받아서 그랬습니다!”
“이 새X가 일본에 있다 오더니, 눈에 뵈는 게 없나. 어디서···.”
“독수리 새끼들 졌답니다!”
“···어쩌라고?”
“우리가 이겼으면 9위가 될 수 있었습니다! 빌어먹을 꼴찌를 탈출할 수 있었다고요!”
“······.”
이소호는 독고준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왜 민철이 리드에 안 따른 겁니까!?”
“이 새X가···. 말하는 꼬락서니 보소. 지금 우리가 진 게 내 탓이라는 거야!?”
“누가 선배 탓이라고 했습니까!?”
“야! 솔로 두 방 쳤다고 위세 떠냐!”
“제가 언제···!”
“오늘 이겼으면 꼴찌 탈출이라고? 하! 야! 그런 X끼가 지난주 경기 때 전 타석 삼진을 당했냐?! 네가 그때 잘만 했어도 꼴찌는 진작에 탈출했어!”
“저는 그때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선배는···!”
포수 하민철이 나서며 두 사람을 말렸다.
“소호형, 진정해요. 선배님도 진정하세요. 다 끝난 경기잖아요. 같은 팀끼리 왜···.”
그러자 독고준이 하민철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민철 너 이 자식···! 소호한테 네 리드 안 따라서 패배한 거라고 지껄였냐?”
“아닙니다! 전 아무 말도···.”
“네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소호 저 새X가 왜 나한테 지X을 하는 건데!?”
“그건···.”
그러자 이소호가 하민철을 감쌌다.
“만만한 민철이 잡지 말고 저랑 얘기합시다! 왜 피하십니까? 제가 무섭습니까?”
“뭐야!?”
독고준은 이소호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너, 죽고 싶냐···?”
이소호는 독고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
“손···. 놓으십쇼.”
“하! 눈빛 봐라? 한 대 치겠다? 야, 쳐봐. 쳐봐!”
그때 라커룸으로 타이탄스의 감독 염규식이 들어왔다.
그는 두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둘 다! 떨어져! 독고준! 그 손 놔!”
“신경 쓰지 마십쇼!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놈 교육 중이니까!”
“뭐, 뭐···?”
그러자 이소호도 말했다.
“감독님, 선배랑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염규식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떨궜다.
그 순간,
-짝짝짝
입구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라커룸에 있던 모두가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한수가 박수를 치며 걸어 들어왔다.
그 뒤로 커다란 덩치의 강덕수가 따르고 있었다.
한수는 염규식 옆에 멈춰서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이탄스···. 얼마나 대단한 팀인가 했더니. 상상 이상이야. 아주 인상 깊어.”
모두가 멍하니 한수를 쳐다봤다.
그때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염규식이 말했다.
“여긴 관계자 외엔 출입 금지요. 당장 나가시오!”
그러자 강덕수가 출입증 내밀며 말했다.
“관계자 맞습니다.”
“네···?”
한수는 당황하는 염규식을 놔두고 선수들을 쭈욱 훑어보며 말했다.
“꼴매기, 꼴영, 꼴탄스, 꼴빠, 만년 꼴찌···. 타이탄스를 지칭하는 별명이 많잖아? 그런데 오늘 경기를 보고···. 난 너희를 이렇게 불러주고 싶었어.”
염규식을 비롯한 선수들이 모두 인상을 썼다.
‘저놈은 대체 뭐야?’
‘짜증 나는 별명은 왜 부르고···.’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생긴 거만큼이나 재수 없는 XX네.’
한수는 그들을 향해 빙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똥.덩.어.리.”
그 순간, 감독과 선수 할 것 없이 표정이 굳어졌다.
라커룸에는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한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자, 모두 따라 해봐! 똥.덩.어.리.”
그러자 독고준이 이소호의 멱살을 놓으며 버럭 소리쳤다.
“너 뭐 하는 XX야!? 뭔데 감히···!”
“타이탄스 주인.”
“뭐···?”
한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구단주다, 이 자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