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이건 또 뭐야?
한수가 타이탄스 선수들을 똥 덩어리라고 부르자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순식간에 라커룸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오늘 선발 투수였던 독고준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구단주면 다야!? 시즌 내내 생고생한 우리한테 뭐? 똥덩어리!?”
“좀 지저분한가? 그럼 이렇게 부르죠? 패배자.”
“······.”
“불만이 많은 표정이네? 분해요? 그러게 잘 좀 던지지. 무슨 발야구 하는 줄 알았어요. 타자들이 공이 날아올 때마다 뻥! 뻥! 아? 효과음을 깡! 깡! 이라고 해야 하나?”
“발야구···? 이 개X끼가···.”
“이야, 화끈한데? 구단주를 강아지 취급하고···. 댁 연봉이 반 토막나도 그 태도 유지할 수 있는지 보고 싶네?”
“······!?”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염규식 감독이 입을 열었다.
“저···. 경기가 막 끝났습니다. 선수들은 휴식이 필요합니다. 성적에 대한 건 저랑 얘기하시는 게···.”
“조용.”
“······.”
“보채지 마세요. 감독님이랑도 나중에 얘기할 거니까요. 마음의 준비는 해두시고···. 아셨죠?”
“······.”
섬뜩한 말에 염규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수는 선수들을 쭈욱 훑어보며 말했다.
“난 야구는 잘 몰라. 그래도 이거 하나는 알겠어. 타이탄스 팬들은 최선을 다해 응원했고, 댁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거.”
하민철과 몇몇 선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궜고, 이소호를 비롯한 몇몇 선수는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으며, 몇몇 선수들은 복잡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독고준과 그 패거리들은 한수를 죽일 듯 노려봤다.
한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어갔다.
“이런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불쌍하고, 이런 놈들에게 투자하는 돈이 아까워. 그러니까···.”
그는 아이싱 중인 독고준의 어깨를 토닥였다.
“내년엔 잘 좀 합시다. 발야구는 그만하고. OK?”
“큭···.”
한수는 그대로 라커룸에서 나갔고, 강덕수가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선수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쟤 정말 구단주 맞아?”
“···몰카 아니야?”
“누가 이딴 몰카를 하냐?”
“···젠장, 시즌 끝나자마자···.”
“연봉 반 토막 진짜인가?”
염규식 감독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럴 때 감독이 뭐라고 한 마디 해줘야겠지만···.
그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밖으로 나갔다.
이때 독고준에게 한 선수가 다가오며 물었다.
“형님, 저 구단주 XX 가만히 둘 겁니까?”
“······.”
“애들 풀어서 확···.”
“···닥쳐.”
“······.”
독고준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글러브를 발로 뻥 차버린 뒤 씩씩거리며 라커룸에서 나갔다.
하민철은 그런 독고준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이소호가 물었다.
“고생했다. 회식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은데···. 이따 우리끼리 삼겹살에 한잔 어때?”
“좋아요.”
짐을 챙기던 하민철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형, 내년에는···. 꼴찌 탈출할 수 있을까요?”
“···열심히 해봐야지. 그보다 아깐 미안했어. 괜히 나 때문에 독고준 선배한테···.”
“아녜요. 준 선배님이 저러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하민철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고, 이소호는 그를 걱정스레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라커 안에 붙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 곰돌이와 준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영광의 날을 기념하며 찍은 사진···.
‘······.’
그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패배···.
고대했던 한국 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이소호는 실의에 빠졌고···.
결국, 타이탄스를 떠나 일본으로 향했다.
그리고 타이탄스는 꼴찌의 늪에 빠졌다.
‘···내가 그때 팀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렇게까지는···.’
그는 재차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 = = =
타이탄스 구장 주차장.
-띠링
포수 마스크 위로 느낌표가 나타났다.
한수는 눈가를 움찔하며 생각했다.
‘···두 번째 임무를 성공한 건가? 이제 세 번째 임무를 주려나?’
한수와 강덕수는 주차된 차량에 탑승했다.
강덕수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며 말했다.
“박종철 사장은 경기 관람을 안 하고 부산 시장과 저녁 식사하러 갔습니다. 지금은 술집으로 이동한 거 같습니다.”
“미행은 붙였지?”
“네.”
한수는 팔짱을 끼며 중얼거렸다.
“분명 직관하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착하게 말했나? 왜 내 말을 무시한 거지?”
“실장님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습니다.”
한수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확실히 알려줘야겠네.”
그때 강덕수의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왔다.
그는 문자를 확인하더니, 한수에게 말했다.
“재밌는 사진이 왔습니다.”
“뭔데?”
강덕수는 한수에게 사진을 전송했다.
한 남자가 차 트렁크에 케이크 상자를 싣고 있는 모습이었다.
강덕수가 입을 열었다.
“박종철의 운전기사가 부산 시장의 차 트렁크에 뇌물을 싣는 장면이랍니다.”
“뇌물? 확실해?”
“운전기사가 케이크 상자를 떨어뜨려서 돈이 쏟아지는 걸 찍었답니다.”
“흠···. 박종철이 시장한테 왜 돈을 주는 거지?”
“이새롬 기자한테 물어봤는데, 부산 시장이 지인들에게 부동산 정보를 흘렸다는 찌라시가 도는 거 같습니다.”
이새롬은 한수와 친분이 있는 사회부 기자다.
한수는 팔짱을 끼고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사진값은 제대로 쳐줘.”
“알겠습니다. 그럼 호텔로···.”
“아니, 호텔 말고.”
“······?”
한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시장한테 가자.”
“약속도 없이···. 괜찮을까요?”
“덕수야, 약속 잡고 협박하러 가니?”
“아뇨···.”
“박 사장이랑 만나고 있다는 술집으로 가.”
“알겠습니다.”
차가 출발하고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바라봤다.
‘또, 느낌표···.’
그는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썼다.
-띠링!
눈앞에 창들이 나타났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임무 2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Point 1이 지급됩니다.】
잠시 후 창들이 사라지고 네 가지 메뉴가 보였다.
【Lv. 1 타이탄스 전용 상점】
【임무】 【보관함】 【스킬】
한수는 팔짱을 끼고 메뉴를 살펴보다가 생각했다.
‘···임무.’
-띠링!
임무 창이 나타났다.
『임무 3』
【구단주님! 소리장도(笑裏藏刀)라고 했습니다. 박종철 사장의 처우를 결정하세요.】
【보상 : 2 Point】
‘박종철의 처우라···.’
공교롭게 이번에도 그가 하려고 했던 일이 임무로 생성됐다.
‘이 임무도 손쉽게 해결하겠네.’
2포인트를 받고 나면 총 3포인트가 된다.
그러면 상점에서 새로운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
‘3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 건 대충···.’
[조잡하고 낡은 고독한 글러브] (3 Point)
[조잡하고 낡은 콩코드 야구공] (3 Point)
이 정도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포기를 모르는 원조 금테 안경] (20 Point)
이 아이템이 끌렸다.
‘일단 포인트를 좀 더 모아보자.’
포수 마스크를 벗으려다가 【스킬】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아까 상점에서 스킬을 산 거 같은데···.’
스킬 창이 나타났다.
창에는 부산 갈매기의 삼륜안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부산 갈매기의 삼륜안]
└종류 : 구단주 전용 스킬
└등급 : 다이아몬드
└설명 : 선수, 코치진, 프런트 직원의 정보창을 확인할 수 있는 신비한 눈이다. 포수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
동시에 또 다른 창이 떠올랐다.
【스킬은 자동 실행 기능이 있습니다. 자동 실행을 활성화해두고 포수 마스크를 쓰면 곧바로 스킬이 사용됩니다.】
한수는 자동 실행을 선택했다.
그 순간, 양쪽 눈동자가 화끈거렸다.
그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윽···.”
운전석에 있던 강덕수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실장님,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괜찮아.”
“네···.”
한수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 앱에 얼굴을 비쳤다.
눈에 뭔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이제 안 아프긴 한데···.’
한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다가 강덕수를 쳐다봤다.
그 순간···.
-띠링!
은색으로 빛나는 창이 떠올랐다.
【강덕수】【Silver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1%)
(타이탄스 코치진: 3%)
(타이탄스 프런트: 58%)
결론: 보기와 달리 눈치가 빠르고 일을 잘함. 프런트 직원에 적합.
【적성】
1순위: 홍보팀
2순위: 경영기획팀
3순위: 비서실
【특기】
1. 스캔들, 찌라시, 악성 루머 막기
2. 인물 뒷조사
3. 요인 경호
이상한 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야?’
한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 = = = = = =
부산 서면 외곽에 있는 고급 술집.
부산 시장 권순민은 술에 잔뜩 취해 보좌관의 부축을 받으며 술집에서 나왔다.
그때 박종철 사장이 뒤따라 나오며 말했다.
“권 시장님, 조심히 가십시오. 다음 주에 필드에서 뵙겠습니다.”
권순민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그래. 그래. 오늘 잘 놀다 가네.”
“하하, 아닙니다. 그리고 가족분들과 드시라고 차에 케이크를 실어 놨습니다.”
그 말에 술에 취해 풀려있던 권순민의 눈동자에 또렷해졌다.
그는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는데···.”
“걱정하지 마시고 드셔도 됩니다. 제가 직접 만든 거니까요.”
“이거 참···.”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장님.”
“···알겠네. 알겠어.”
권순민은 못 이기는 척 했다.
박종철이 다시 술집으로 들어가고, 권순민은 보좌관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탔다.
보좌관은 운전석에 앉으며 말했다.
“박 사장이 준 선물···. 괜찮을까요? 지금이라도 돌려주는 게···.”
“괜찮아. 괜찮아. 걱정하지 말라잖아. 허튼 소리할 놈은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차가 출발하고 조금 달렸을 때, 갑자기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앞을 가로막았다.
보좌관은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클락션을 눌렀다.
-끼이익! 빠아아아앙!
뒤에 앉아 있던 권순민이 “어이쿠!” 비명을 질렀다.
“시장님! 괜찮으십니까?”
“으···. 뭐야?”
“어떤 미X놈이 차를···.”
보좌관은 창문을 열고 앞을 막아선 운전자에게 소리쳤다.
“마!!! 돌았나!? 운전을 할 거면 똑바로···.”
그때 고급 승용차의 앞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덩치에 남자, 강덕수가 내렸다.
보좌관은 강덕수의 등빨을 보고 흠칫했다.
‘뭐, 뭐야? 저놈 설마 조폭···.’
강덕수는 고급 승용차의 뒷문을 열었다.
그러자 모델처럼 훤칠하게 잘생긴 한수가 내렸다.
그는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권순민의 차로 다가오더니 유리창을 똑똑 두드리며 말했다.
“권 시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권순민은 보좌관에게 눈짓을 줬다.
보좌관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린 뒤 한수에게 물었다.
“···댁은 누구요. 누군데 감히 우리 시장님 차를···.”
“저는 이한수라고 합니다. 권순민 시장님과 조용히 차 한 잔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보좌관은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이보시오! 시장님이 댁 친구요! 만나고 싶다고 이렇게···.”
“오늘부터 저랑 친구가 되실 겁니다.”
“뭐, 뭐요?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한수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강덕수가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박종철 사장의 운전기사가 바닥에 떨어진 돈다발들을 케이크 상자에 넣는 장면과 권순민 시장의 차 트렁크에 케이크 상자를 싣는 장면이 보였다.
보좌관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러자 한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친구가 안 되시면···. 이 사진들은 SNS에 뿌릴 거거든요. 참고로 제가 연예인 친구들이 조금 많아서 파급력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다, 당신···!”
그때 권순민이 창문을 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차는 어디서 마시겠나?”
“부산 마이어 호텔 2층에 괜찮은 찻집이 있다는 거 같은데···. 어떠신가요?”
“···알겠네.”
권순민은 다시 창문을 닫았다.
보좌관은 부들부들 떨며 한수를 노려보다가 차에 탔다.
한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강덕수에게 말했다.
“가자.”
“네!”
그리고 그날···.
한수는 권순민 시장과 비밀 친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