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1화 (11/187)

11화 : 지나가던 타이탄스 팬입니다.

마이어 부산 의료원, VIP 병동 7층.

이소희는 고급스러운 그림과 우아하게 꽃으로 장식이 된 대리석 복도를 지나 717호 병실 앞에 섰다.

병실에는 ‘김●호(67)’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노크하며 말했다.

“저 소희예요. 들어가도 될까요?”

그러자 병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 들어오렴.”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머리에 붕대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노인 낑낑거리며 일어나려고 하는 게 보였다.

바로, 신영 타이탄스에서 일하는 청소 용역 김병호였다.

이소희는 깜짝 놀라 병실 문도 닫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냥 누워 계세요!”

김병호는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냐. 소희 네가 왔는데···.”

“괜찮으니까 그냥 누워 계세요.”

이소희가 조심스럽게 그를 다시 눕혔다.

그러자 김병호가 몹시 미안한 얼굴을 했다.

“···미안하구나. 뭐라도 대접해야 하는데···.”

“정 미안하시면, 빨리 나으세요. 할아버지 없으니까 최종권 선수 동상을 아무도 안 닦아줘서 엄청 지저분하다고요.”

“하하, 그래야지. 그런데 소희야···.”

“왜요?”

“그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이 병실 말이다. 비싼 거 같은데···.”

“구단에서 지원해주는 거예요.”

“구단에서? 우리는 용역 회사 소속인데 왜···”

“일개 비서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보다 이것 좀 드셔보세요. 전복죽이에요.”

“뭘 이런걸···. 고맙구나.”

“아녜요.”

이소희는 침대 옆에 있는 버튼으로 매트를 세웠다.

김병호는 웃으며 물었다.

“소희 너는 저녁 먹었니?”

이소희는 죽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약속 있어서요. 신경 쓰지 말고 드세요.”

“고맙다···.”

그녀는 김병호가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저씨, 전 약속 때문에 가볼게요.”

“···오늘 와줘서 고맙구나.”

“아녜요.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빨리 쾌차하세요.”

“그래, 조심히 가렴.”

이소희는 꾸벅 인사를 하고 병실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또 보네요?”

“······?”

이소희는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봤다.

거기에는 한수가 벽에 기댄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여기에 계신 거죠?”

“소개팅 간다는 사람이 음식을 포장해서 병원으로 가니까. 궁금해서 따라와 봤죠.”

“······”

“하하, 내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라···. 기분 나빴다면 Sorry.”

이소희는 한수를 지나치며 쌀쌀맞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럼.”

한수는 그녀를 따라가며 물었다.

“저 노인, 전등 교체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진 분 맞죠?”

“······.”

“우리 구단에서 청소 용역 병원비도 내주나?”

“······.”

“어라? 그런데 이상하네? 우리 구단에서 지원해주는 거면 왜 마이어 의료원으로 왔지? 그것도 VIP 병동으로···. 돌아가신 이태백 회장님이 마이어 그룹을 얼마나 싫어···.”

“병원비는 제가 냈습니다. 할아버지한테 부담을 드리기 싫어서 구단 핑계를 댄 겁니다.”

“친할아버지예요?”

“아뇨.”

“그런데 왜···.”

이소희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사적인 것까지 구단주님께 보고드려야 하나요?”

한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죠.”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말해봐요.”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왜 자꾸···.”

처음에는 그냥 좀 재밌는 여자구나 싶었고, 정보창을 확인했을 때는 Platinum 등급 인재여서 관심을 가졌던 거지만···.

지금은···.

한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입원한 할아버지랑 어떤 사이인지 말해주면, 대답해줄게요.”

이소희는 어이없단 표정으로 그를 보다가 재차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습니다. 그럼.”

이소희는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때 강덕수한테 전화가 왔다.

[실장님, 어디십니까? 식당에 들어왔는데···.]

“주문해놔. 지금 갈게.”

[네!]

“아, 그리고 이소희 비서에 대해서 좀 알아봐.”

[네, 지시해두겠습니다.]

“내일까지.”

[네!]

그는 엘리베이터에 타는 이소희를 보며 생각했다.

‘재밌는 여자야.’

한수는 피식 웃더니 크랩 랜드 전복 공주로 향했다.

= = = = = = = =

크랩 랜드 전복 공주 입구.

신영 타이탄스 운영팀 팀장 양승진은 대기 번호표를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며 운영팀 직원 윤가희에게 말했다.

“야, 그냥 다른 데 가자. 대기 인원이 37명이래.”

그러자 윤가희는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눈매를 더욱 치켜뜨며 말했다.

“팀장님, 남자가 한입 가지고 두 말하시면 안 되죠! 오늘은 제가 먹고 싶은 거 사주신다면서요!”

“······.”

양승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요즘 스토브리그 준비로 야근, 외근, 보고서 등···.

윤가희를 심하게 부려 먹었더니 입술을 삐쭉 내밀고 다니길래 당근을 던진 게 화근이었다.

‘그냥 소고기 사달라고 할 줄 알았더니.’

양승진은 밥은 영양소만 섭취되면 OK고, 맛집에서 줄 서서 먹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는 식당 내부를 살피며 생각했다.

‘저쪽 테이블은 곧 빌 거 같은데···. 저쪽도···. 음식이 준비되는 시간을 추가하고··· 예측되는 대기 시간은···. 아, 중간에 기다리지 못하고 빠지는 인원에 대한 변수도 포함해야지. 그럼···.’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적어도 두 시간···.”

그때 윤가희가 말했다.

“뭘 그걸 또 계산하고 있어요.”

“우리 그냥 다른 식당으로 가자.”

“팀장님!”

“···알겠어. 알겠어.”

양승진이 투덜거리며 대기 의자에 앉자 윤가희가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정말 맛집이에요!”

“···그럼 예약해두던가.”

“퇴근 직전 갑자기 먹고 싶은 거 사주시겠다고 하셨잖아요!”

“···넌 어떻게 팀장한테 한 마디를 안 져주냐?”

그러자 그녀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팀장님이 그러셨잖아요. 할 말은 해야 한다고.”

“······.”

“그런데 팀장님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뭐가.”

“구단주요. 김종문 단장이 오늘 다른 팀장들 불러서 같이 엿 먹이자고 지시했다잖아요. 구단주 회식 제안도 다 거절하고···. 전 팀장도 눈치 보여서 빠졌다고 팀장님 어디냐고···.”

양승진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애들도 아니고 유치하게···. 정치질할 거면 프런트에 있지 말고 국회로 가든가.”

“그러면 우리는 구단주 라인인가요?”

“헛소리할 거면 오늘 만났던 유망주들 데이터 정리해서 윤 팀장한테 보내.”

유망주 데이터를 모으는 건 스카우트 팀의 일이지만, 스카우트 팀은 윤재규 팀장을 시작으로 선수 보는 눈이 별로였다.

매년 우선 지명권을 얻고도 신인왕을 한 번도 못 냈을 정도로···.

하여튼 그래서 양승진이 스카우트 팀 일도 돕고 있는 거다.

윤가희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쯧···.”

그때였다

“저기···. 양승진 팀장님, 맞죠?”

“······?”

양승진은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포수 마스크를 쓴 정장 남자가 서 있었다.

바로, 한수였다.

양승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 미친놈은?’

그때 한수가 포수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조각처럼 잘생긴 외모가 드러났다.

심드렁하게 있던 윤가희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더니 양승진에게 속삭였다.

“팀장님, 이 오빠 누구예요? 와···. 대박···. 엄청 잘 생겼네. 눈부시다 눈부셔···!”

‘오빠···?’

양승진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윤가희를 보다가, 다시 한수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누구시죠? 처음 뵙는 분 같은데···.”

그러자 한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지나가던 타이탄스 팬입니다.”

= = = = = = =

한수는 병원에서 나와 크랩 랜드 전복 공주 식당 으로 들어가려다가 양승진을 발견했다.

엊그제 경기장 입구에서 잠깐 봤던···.

[사장은 지역 유지랑 인맥 쌓는 데 혈안이고···. 단장은 쓰레기···. 감독은 허수아비···. 선수들은···. 하···. 답답하다, 답답해···.]

···제법 인상 깊었던 인물.

한수는 강덕수가 조사해온 양승진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별명이 일 중독자, 타이탄스랑 결혼한 인간, 바른 생활 청년 그리고···.’

“싸움꾼이랬지?”

그래서 박종철 사장이랑 김종문 단장이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흠···. 어디 정보창 좀 볼까?’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양승진을 쳐다봤다.

그때 양승진에게서 찬란한 하얀빛이 흘러나왔다.

‘이건···!’

동시에 화려하게 빛나는 하얀색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양승진】【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18%)

(타이탄스 코치진: 59%)

(타이탄스 프런트: 92%)

결론: 프런트의 전풍입니다. 너무도 강직하여 윗사람과 부딪치는 일이 잦습니다. 잘려도 이상하지 않지만, 뛰어난 능력을 지녀 중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효율과 합리 그리고 도의를 중시하는데, 이중 으뜸은 효율입니다.

【적성】

1순위: 사장

2순위: 단장

3순위: 운영팀

【특기】

1. 안목 [프런트 직원, 코치진]

2. 효율적인 책사.

3. 치밀한 세이버매트릭스.

4. 긍정적인 마음가짐.

【호감도: + 0%】

한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Platinum 등급, 또 찾았다!’

타이탄스 프런트에 이소희 빼고 하위 등급만 있는 줄 알고 실망했는데···.

‘잘됐네.’

한수는 양승진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다.

‘여기서 식사하려는 거 같은데 합석하자 해볼까?’

여자가 아닌, 남자한테 합석 제안을 하려 하다니!

한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타이탄스 때문에 별짓을 다 하네···.”

그때 양승진이 옆에 앉은 단발머리 여자랑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저 여자는···.’

한수는 강덕수가 조사해온 자료들 덕분에 여자의 정체를 알아챘다.

‘운영팀의 유일한 직원···. 윤가희구나.’

그 순간, 윤가희의 몸에서 황금색 빛이 흘러나왔다.

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 순간!

-띠링!

황금색으로 멋지게 꾸며진 정보창이 나타났다.

【윤가희】【Gol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0.1%)

(타이탄스 코치진: 19%)

(타이탄스 프런트: 87%)

결론: 프런트의 장합. 판단력과 행동력이 뛰어납니다. 단독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보다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할 때 더욱 빛나는 인재입니다.

【적성】

1순위: 운영팀.

2순위: 스카우트팀.

3순위: 전력분석팀.

【특기】

1. 안목 [내야수, 외야수]

2. 외모지상주의.

3. 터보 엔진.

4. 세이버매트릭스.

【호감도: + 0%】

한수는 활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타이탄스 삼재(三災) 같은 놈들만 있는 건 말이 안 되지!”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저 둘을 내 사람으로 만들자!’

한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지나가던 타이탄스 팬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양승진은 한수를 경계했다.

“아, 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아시죠?”

한수는 구렁이 담 넘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프런트 업무에 관심이 많아서 양 팀장님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

양승진은 한수가 더 의심스러웠다.

아무리 타이탄스 팬이고, 프런트 업무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본인의 이름을 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종문 단장처럼 방송에 출연하거나, 자서전을 낸 것도 아닌데···.’

양승진은 한수를 모른 척하자고 생각했다.

그때 윤가희가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오빠야~. 내도 프런트 업무에 대해 억쑤로 잘 안데이~. 내랑 소주 한잔하믄서 프런트 얘기할래~?”

양승진은 당황하며 물었다.

“윤가희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남의 연애 사업 방해하지 말고요!”

“너, 너···.”

‘저놈 외모에 홀라당 넘어갔구나!’

그때 한수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따라오세요!”

“아니, 잠깐···.”

양승진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윤가희는 한수에게 쪼르르 달려가 물었다.

“오빠야~ 이름이 뭐예요~? 전화번호 뭐예요~?”

양승진은 그 꼴을 보고 똥 씹은 표정을 했지만···.

‘그래도 줄 서서 시간 낭비하는 일은 없어졌으니···. 그래, 좋게 생각하자. 밥만 먹고 일어나자. 밥만 먹고!’

그는 천천히 한수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크랩 랜드 전복 공주 식당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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