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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2화 (12/187)

12화 : 전부 다 불태우려고요.

한수가 양승진과 윤가희를 데려오자, 강덕수는 테이블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실장님, 오셨습니까? 이분들은···.”

“너도 알지? 양승진 씨라고 타이탄스 운영팀 팀장이야. 이분은 팀원인 가희 씨.”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강덕수입니다.”

“···양승진입니다.”

“윤가희예요. 반가워요.”

강덕수는 타이탄스 직원들 뒷조사를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누군지 잘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그는 한수의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실장님, 여기 앉으십쇼.”

“주문은 했어?”

“네! 이것저것 주문하긴 했는데···. 손님이 오실 줄 알았으면 더 주문할 걸 그랬습니다.”

“지금 시키면 되지. 메뉴판 좀 가져와.”

“네!”

양승진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덕수가 훨씬 연장자로 보이는데, 한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깍듯했기 때문이다.

그때 한수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반갑습니다. 이한수라고 합니다.”

그 순간, 양승진은 눈가를 움찔했다.

‘이한수···? 설마···.’

양승진이 생각에 잠긴 사이, 윤가희는 한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난 윤가희! 반갑데이~.”

“저도요.”

윤가희는 더욱 초롱초롱한 눈빛을 했다.

‘이 오빠야, 억수로 잘 나가나 보네. 캬···. 흰 살키 피부 좀 보레이···. 밀가리를 뿌렸나? 우야꼬~’

그때 강덕수가 메뉴판을 들고 왔다.

한수는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두 분 드시고 싶은 거 주문하세요. 오늘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맞나?!”

“네, 정말이요.”

“와! 팀장님, 우리 킹크랩 시켜요! 저 여기 킹크랩 전부터···.”

그러자 양승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건 저희가 알아서 계산하겠습니다.”

“에? 팀장님···?”

윤가희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양승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윤가희는 움찔하더니 아랫입술을 비쭉 내밀며 토라진 얼굴을 했다.

그때 한수가 말했다.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프런트 업무가 어떤 건지 듣는 조건으로 대접하는 거니까요. Give & Take. OK?”

그 말에 윤가희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양승진을 쳐다봤지만, 양승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한수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양승진 팀장, 눈치챘죠?”

“······.”

“······?”

양승진은 진지한 눈빛을 했고, 윤가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뭘 눈치챘냐는 거야?’

한수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내 호의를 거절하는 건···. 어떻게 해석하는 게 좋을까요? 양 팀장도 나랑 친해지기 싫은 건가? 김종문 단장처럼?”

“김 단장의 뜻에 따르고 싶지도 않고, 구단주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딱히 없습니다. 저는 타이탄스의 승리를 위해서 일할 뿐입니다. 편 가르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윤가희는 흠칫 놀랐다.

‘구, 구단주···? 그러고 보니 이 오빠야 이름이···.’

그때 한수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 멋지네요. 난 양 팀장처럼 소신 있는 사람이 참 좋더라.”

“······.”

“타이탄스의 승리를 위해서···. 참 마음에 드는 말이에요. 그렇지 않냐, 덕수야?”

“맞습니다, 실장님. 정말 가슴에 와닿는 말이에요!”

양승진은 촌극 같은 둘의 대화에 미간을 찌푸렸다.

‘놀리는 거야, 뭐야?’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한수가 말했다.

“궁금하네요.”

“네?”

“양 팀장은 어떻게 하면 우리 타이탄스가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또 다른 Platinum 등급 이소희는 문제 요소들을 파악하고 파격적인 대책들을 제시했다.

그건 우승으로 향하는 최단 루트였다.

‘양 팀장한테 컨펌 받았다고 했지. 그럼, 이 사람도 같은 생각인가?’

양승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들려온 대답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한수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농사요?”

“경기장 리모델링과 뛰어난 유망주 영입. 취약한 외야 수비와 투수진 보강 그리고 육성팀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서 신인 선수 육성에 힘쓰고···.”

그의 설명을 듣던 한수는 물었다.

“양 팀장 말대로하면 유의미한 성적을 내는데 너무 오래 걸리지 않나요? 그리고 선수랑 코치진에도 문제가 많던데, 그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죠?”

이소희는 이 문제에 대해서 프런트에서 강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 되는 선수를 트레이드하고 방출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나 양승진의 생각은 달랐다.

“선수들 사이의 불화는 지도자의 역량과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프런트가 너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건 단기적으론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좋지 못하다고 판단됩니다. 저희가 할 일은 선수들이 성장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이소희와 너무 달랐다.

한수는 묘한 표정을 짓다가 물었다.

“양 팀장, 이소희 비서 보고서 컨펌한 거 맞나요?”

“이 비서···? 아, 그거요. 메일로 받긴 했는데 처리할 일이 많아서···. 저 친구가 대신했습니다.”

그가 가리킨 건 윤가희였다.

윤가희는 움찔하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했어요. 재, 재밌는 보고서였어요.”

“재미? 너 똑바로 한 거 맞아?”

“팀장님, 저 일할 땐 진지한 거 아시면서···.”

한수는 더는 사투리를 쓰지 않는 윤가희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양승진이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하여튼···. 저는 한 시즌 반짝하는 타이탄스를 원하는 게 아닙니다.”

“······.”

“제 꿈은 80년대 황금기를 뛰어넘는···. 타이탄스 왕조를 세우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수는 양승진의 깊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던 이소희와는 전혀 다른 느낌.

어쨌든 중요한 건 이거다.

‘정보창의 설명처럼 뛰어난 인재인 건 사실 같네.’

“얘기 잘 들었습니다. 그러면 음식 시키죠.”

“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제가 사는 밥···.”

“괜찮습니다.”

“······.”

한수는 피식 웃더니 지갑에서 블랙 카드를 꺼내더니 강덕수에게 건넸다.

“덕수야, 사장한테 지금부터 손님들 드시는 거 다 이걸로 결제하라고 해.”

“네!”

양승진과 윤가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

“와···!”

강덕수가 계산대로 향하자, 한수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볍게 킹크랩, 랍스터 열 마리씩 주문할까요?”

= = = = = = =

크랩 랜드 전복 공주 주차장.

타이탄스 홍보팀 팀장 마재호는 주차하며 조수석의 전력분석팀 팀장 권재중에게 물었다.

“재중아, 정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냐? 여기 예약 안 하면 무조건 대기인데···.”

권재중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 홀 매니저가 친구 동생이라니까요. 걱정하지 마십쇼.”

“그러면 뭐···. 아, 재민이한테 다시 연락해볼까?”

그들과 같은 타이탄스 삼재(三災)라고 불리는 육성팀 팀장 이재민은 오늘 불참했다.

마재호는 요즘 왠지 모르게 바쁘고 피곤해 보이는 이재민이 신경 쓰였다.

그러자 권재중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냥 놔두십쇼. 요새 술 마시자면 빼는데···! 아주 밥맛입니다. 밥맛! 그냥 우리끼리 마십시다.”

“그래도···.”

“됐고! 가자고요.”

권재중이 차에서 내리자 마재호는 볼을 긁적이다가 같이 가자고 소리치며 따라갔다.

그렇게 둘은 크랩 랜드 전복 공주로 향했지만···.

들어가진 못했다.

권재중은 홀 매니저에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

“뭐? 재료가 다 소진됐다고?”

홀 매니저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오늘 사정이 생겨서···.”

“저기 수조에 랍스터랑 게들은 다 뭔데?”

“아, 저건 다 결제가 된 겁니다···.”

“뭐?”

마재호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권재중의 어깨를 잡았다.

“그냥 돼지국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니, 형님, 기다려 봐요. 야, 너, 테이블 잡아주기 싫어서 수작 부리는 거지?”

“무, 무슨 말씀이에요. 그런 거 아녜요!”

“아니긴! 친구 동생이라고 귀엽게 봐줬더니만···.”

권재중이 험악한 표정을 짓자, 홀 매니저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마재호가 권재중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냥 가자. 다 팔렸다잖아.”

“형님, 저기 대게들이 잔뜩 있는데···!”

“정말 다 팔린 거라고요. 거짓말 아니에요!”

“이 자식이 그래도···!?”

권재중은 마재호의 팔을 뿌리치고 홀 매니저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두 분 여기서 또 뵙는군요.”

“······?”

“······?”

마재호와 권재중이 시선을 돌리자 한수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났다.

한수는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마 팀장님, 할아버지 제사는 벌써 끝난 겁니까?”

“······.”

“권 팀장님은 장모님 생신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 혹시 가족분들하고 오신 건가요?”

“······.”

둘은 눈알을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으으, 단장님 알면 큰일인데···.’

‘젠장···. 재수 옴 붙었네···.’

그때였다.

한수의 뒤로 양승진이 나타났다.

“구단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저희가 먹은 건 저희가···. 어?”

“뭐야, 양 팀장이 왜 여기 있어?”

“그러는 마 팀장님은···. 권 팀장도···.”

그때 권재중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양 팀장 너 설마···.”

양승진은 아차 싶었다.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마재호는 조금 둔한 편이라 적당히 구슬리면 한수와 우연히 만났다는 걸 믿어주겠지만···.

권재중은 의심 많고 입이 가벼워서 이걸 빌미로 양승진이 구단주 라인이라며 동네방네 소문을 낼 거다.

그래서 다급하게 말했다.

“권 팀장, 이건 오해···.”

“오해? 웃기지도 않네. 그렇게 단장 자리가 탐났냐? 하!”

“아니···.”

“깨끗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구단주한테 붙어서 열심히 꼬리 흔들어?”

“···권 팀장 말이 심하잖아. 누가 꼬리를···.”

“됐고! 너는 이제···.”

그때 한수가 나섰다.

“야, 권재중.”

“···네? 바,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뭐, 이 자식아.”

“뭐, 뭐···?”

“적당히 웃어 넘겨줬으면 그냥 갈 것이지 왜 이렇게 나대?”

“허허···. 허허허···!”

황당한 표정으로 웃는 권재중.

마재호는 불길함을 느끼고 권재중의 어깨를 잡아끌며 말했다.

“야, 가자.”

“형님, 잠깐만요. 아무리 구단주라도···.”

“인마, 진정하고 그냥 가자고!”

그때 한수가 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비서 씨, 소개팅 중?”

[···무슨 일이시죠?]

“지시할 게 생겨서.”

[말씀하세요.]

“권재중 팀장 직위 해제하세요.”

그 말에 권재중, 마재호, 양승진 모두 깜짝 놀랐다.

권재중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무, 무슨···!? 이딴 게···.”

그러자 한수는 검지를 곧게 펴 입술로 가져가며, 매서운 눈빛을 했다.

권재중은 흠칫 놀라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그때 이소희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네, 서동민 팀장한테 전달해놓겠습니다. 더 시키실 일 있나요?]

“톡 할게요~. 소개팅 방해해서 Sorry!”

이소희는 말없이 전화를 끝냈다.

한수는 폰을 넣고 권재중을 보며 말했다.

“직위 해제는 잽이에요. 직위 해제 기간이 끝나면 징계 위원회를 열릴 거고, 문제가 있는 직원들은 대기 발령이 날 겁니다. 그다음은···.”

한수는 엄지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권재중이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저,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겨, 겨우 회식에 참석 안 했다고···.”

“에이, 고작 그런 걸로 이러겠어? 솔직히 당신이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몰라요.”

“그, 그럼···.”

한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아까 말했잖아요. 정규시즌 1위와 한국 시리즈 우승을 위해서 뭐든 할 거라고.”

“······!”

“당신은 말이지. 타이탄스의 승리에 방해가 될 거 같아. 그래서 잘리는 거야. Do you understand?”

“그, 그런···.”

절망한 권재중을 보며 한수는 말했다.

“알아들었으면, 내 눈앞에서 사라져.”

마재호는 침을 꼴깍 삼키며 권재중을 잡아끌었다.

“일단 가자.”

“형님, 하지만···.”

“단장님께 가보자. 알았지?”

“······.”

권재중은 고개를 떨군 채, 마재호와 함께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눈치를 보던 홀 매니저는 식당 안으로 들어갔고···.

입구에는 한수와 양승진만 남았다.

양승진은 물었다.

“무슨 생각입니까?”

“타이탄스를 우승시킬 생각이죠.”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글쎄? 내 생각은 다른데?”

“구단주님···!”

한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 팀장이 장기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며 농사를 지어 타이탄스 왕조를 세우겠다는 말···. 좋아요. 아주 인상 깊었어요.”

“······.”

“그런데 말이죠. 내가 참을성이 별로 없어요. 간단한 길을 놔두고 빙글빙글 도는 건 싫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어요. 잘못하면 다 무너질 수도 있어요.”

“알아요.”

양승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안다고? 아는 사람이···.’

“그러니까 양 팀장이 도와줘요.”

“···네?”

“내가 봤을 때 타이탄스라는 땅은 지력이 다 고갈됐어요. 그래서···. 이 땅에 뿌리 내린 쓸데없는 것들을 전부 다 불태우려고요.”

“······!”

“그런 다음에 당신이 농사를 지어.”

“···화전 농업을 하자는 건가요?”

“이해가 빨라서 좋네.”

“···장기적으로 좋진 않습니다. 구단에 나쁜 선례를 남길 수도 있고, 팬들의 반응도···.”

“그런 건 양 사장이 알아서 처리해야지.”

“제가 어떻게···. 바,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알아서 처리하라고요.”

“그거 말고···. 저, 저한테 양 사장이라고···.”

한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 방금 승진했어요.”

“아, 아니. 이게 무슨···. 저, 저는···!?”

“거절은 거절할게요.”

“······!”

황당함에 넋이 나간 양승진.

한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양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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