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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4화 (14/187)

14화 : 포수 좀 하나?

부산 시청, 시장실 앞.

포수 마스크를 쓴 한수는 보좌관에게 물었다.

“시장님, 안에 계시죠?”

“네. 그런데 그러고 시장을 뵈려는 겁니까?”

한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 비밀 친구잖아요. 나름대로 변장한 거예요.”

“더 눈에 띌 거 같습니다만···.”

“그런가? 다음 방문 땐 더 신경 쓰죠.”

보좌관은 그냥 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저 한숨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박종철이 준 뇌물만 아니었어도···.’

한수는 노크와 동시에 시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수는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검토 중인 권순민 시장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시장님, 오랜만입니다. 얼굴이 더 좋아지신 거 같습니다. 하하.”

권순민한테서 희미한 갈색빛이 뿜어졌다.

-띠링!

【권순민】【Iron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0.5%)

(타이탄스 코치진: 1%)

(타이탄스 프런트: 1%)

결론: 부산 사회인 야구팀 ‘더 자이언츠’의 1선발 투수다. 공무원은 절대 칠 수 없는 마구를 보유했다. 권순민이 선발이면 공무원은 도루를 못 한다.

【선수 적성】

1순위: 투수

【특기】

1. 공무원 킬러

2. 야구 사랑

【호감도: + 0%】

그의 정보를 확인한 한수는 입술을 씰룩였다.

“······!”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간신히 참았다.

다행히 권순민은 서류를 보고 있었다.

‘다행이네···.’

그때 권순민이 냉정하게 말했다.

“무슨 일로 왔나? 우리 거래는 끝난 걸로 아는데?”

한수는 권순민이 뇌물 받는 사진을 지우는 조건으로 박종철을 처리할 때 도움을 받았다.

박종철이 한수에게 금고를 빼앗기고도 조용한 건 전부 권순민 덕분이다.

한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거래는 끝났지만, 인연이 끝난 건 아니죠.”

“하아···.”

권순민은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흠칫 놀랐다.

“자네 꼴이 그게 뭔가? 포수 마스크는 왜···.”

“저희는 비밀 친구 아닙니까? 정체를 숨겨야죠.”

“···소문보다 더 이상한 친구군.”

그때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권순민의 호감도가 3% 상승했습니다.】

‘어? 왜···?’

권순민은 일어나 소파로 향하며 말했다.

“앉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한 번 들어보지.”

“바쁘신데 용건만 간단히 끝내겠습니다.”

그때 한수는 한쪽 벽에 붙은 액자를 발견했다.

등번호 11번.

타이탄스 옛날 유니폼을 입고 있는···.

금테 안경을 쓴 투수.

철인(鐵人) 최종권의 사진이 보였다.

‘저건···.’

권순민은 한수가 최종권의 사진을 본 걸 눈치채곤 웃으며 말했다.

“자네도 최종권 선수 좋아하나?”

“네? 아, 네···.”

좋아했다.

어릴 때 자주 놀아줬으니까.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산을 떠나 한남동 저택으로 들어가면서 인연이 끊겼다.

최종권이 병으로 죽은 사실도 뉴스로 알았으니까.

그때였다.

-띠링!

【권순민의 호감도가 2% 상승했습니다.】

그때 권순민의 특기가 떠올랐다.

‘야구 사랑···.’

한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호감도를 쉽게 올릴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오늘 찾아온 건···. 시구 때문입니다.”

“시구?”

“네, 사실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 때···. 시장님께서 시구하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랬나?”

권순민은 담담한 척했지만, 내심 본인 시구가 어땠냐고 묻고 싶었다.

한수는 그 부분을 정확히 캐치했다.

“마치 최종권 선수가 마운드에 선 거 같았습니다!”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정말입니다. 전 빈말 같은 거 모르는 사람입니다.”

“흠···.”

권순민은 아부인 걸 뻔히 알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그때 한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내년 개막전에 시장님께서 다시 한번 시구를 해주실 수 있을까 해서···.”

“내가? 당연히···.”

너무 기뻐서 당연히 하겠다고 할 뻔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시장으로서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다.

권수민은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말을 이어갔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나도 일정이 있어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아쉽네요. 다시 한번 시장님의 역동적인 투구를 보고 싶었는데···.”

【권순민의 호감도가 5% 상승했습니다.】

【권순민의 호감도가 10%가 됐습니다.】

한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첫 번째 칼을 얻을 수 있겠어!’

임무가 쉬워도 너무 쉽다고 생각됐다.

그때 권순민이 껄껄 웃으며 물었다.

“내 투구가 그렇게 보고 싶나?”

“네, 물론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 받아보고 싶습니다. 하하!”

“그래? 잘 됐군!”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 이번 주 일요일에 시간 좀 되나?”

“일요일이요?”

그때였다.

-띠링

【구단주님, 임무 6 내용이 변경됐습니다. 확인해주세요.】

‘변경됐다고?’

한수는 임무를 확인하기 전에 권순민에게 말했다.

“하하, 잠시 일정을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러게.”

한수는 폰을 꺼내 일정을 확인하는 척하며 변경된 임무를 확인했다.

메인 임무는 바뀐 게 없었다.

다만, 첫 번째 칼을 얻는 방법이 바뀌었다.

└첫 번째 칼 : 권순민을 서울시 사회인 야구팀 ‘빅토리 베어’와 경기에서 승리 투수로 만드세요.

성공 시, 첫 번째 칼 + 호감도 대폭 상승 + 추가 포인트 획득.

실패 시, 호감도 상승 난이도 100배 상승.

그리고···.

【보상 : ? Point】

임무 6을 완료했을 때 받는 포인트가 물음표로 바뀌었다.

한수는 인상을 썼다.

‘괜히 아부했어. 근데 승리 투수로 만들라니···. 나한테 뭘 어쩌라는 거야?’

그때 권순민이 물었다.

“뭐, 다른 일정이 있는 건가?”

마음 같아서는 그렇다고 한 뒤 일어나고 싶지만.

‘···김종문 단장한테 죽는시늉까지 하게 만들 수 있는 칼을 포기할 순 없지.’

한수는 웃으며 말했다.

“하하, 아닙니다. 별다른 일정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사실 말일세. 내가 사회인 야구단을 하고 있는데···. 이번 일요일이 내가 선발인 경기거든.”

“경기··· 요?”

“그래! 그런데 우리 팀 포수가 치질로 입원을 해서···.”

“네···.”

“그래서 포수를 구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

“······.”

“······.”

한수는 조심스럽게 포수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권순민이 말했다.

“자네, 포수 좀 하나?”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꽉 쥐며 생각했다.

‘젠장, 망했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포수 마스크로 시선이 갔다.

‘잠깐만 분명히···.’

한수는 애써 여유로운 척하며 대답했다.

“잡는 정도라면 조금···.”

“하하, 잘됐군. 잘됐어! 자네 이번 주 일요일에 우리 ‘더 자이언츠’ 포수로 뛰어주겠나?”

어쩌다 얘기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다.

한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하하.”

= = = = = = =

늦은 오후, 타이탄스 사무실.

운영팀 팀장 자리에 앉아서 인계 자료를 검토하던 이소희는 생각했다.

‘최악이야···.’

구단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과 사진 때문이다.

‘구단주 애인? 말도 안 되는···.’

곧장 명예훼손으로 글쓴이를 신고했고, 글도 삭제 요청했지만 이미 동네방네 소문은 다 퍼졌다.

한수가 워낙 유명한 탓에 기사가 터졌고···.

[신영 그룹 황태자의 새로운 애인은 일반인!?]

[스캔들 메이커 이한수의 새로운 애인은···!?]

[레아, 강세나는 그냥 친구? 진짜 연인은···!]

야구 커뮤니티에선 타이탄스 구단주가 애인을 운영팀 팀장에 앉혔다는 글에···.

└꼴매기럽럽: 타이탄스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풍기형아: 마!!! 스토브리그 준비 안 하나?!

└해운대작은호랑이: 진심···. 팀 세탁하고 싶네.

└코킹각도270도: 근데 구단주 엄청 잘생겼다.

└MLB파이어볼: What the···.

└부러진황금깃발: 타이탄스 그냥 해체해라.

그리고 프런트 직원들도···.

“구단주는 어떻게 꼬신 거래?”

“반반한 얼굴 믿고 들이댔나?”

“이 비서, 여우였네. 여우.”

“박 사장 해임되자마자 구단주한테···. 역겹다.”

이소희는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윤가희가 그녀를 불렀다.

“저기···.”

“네?”

“오늘은 사장님한테 보고하고 일찍 퇴근하세요.”

“하지만···.”

윤가희는 웃으며 말했다.

“전 괜찮아요. 특별한 일도 없어서···.”

“···배려해줘서 고마워요.”

이소희는 한숨을 내쉬더니 짐을 챙겨 일어났다.

윤가희가 재차 입을 열었다.

“저···.”

“······?”

“미친개이들이 부러워서 저러는 거예요. 마음 단디 하고, 파이팅!”

이소희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가희씨.”

“아녜요. 오늘 욕봤심니더!”

“가희씨도 수고했어요.”

그녀는 양승진한테 일찍 퇴근해보겠다고 보고한 뒤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이소희는 멈춰 서서 잠시 고민했다.

‘삼촌네 가게에서 먹고 갈까?’

그녀는 걸음을 돌려 삼촌네 가게, 돼지국밥 타이탄스로 향했다.

= = = = = = =

부산시 어느 도로, 달리는 차 안.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쓴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운전하던 강덕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장님, 권 시장하고 얘기가 잘 안 풀린 겁니까?”

“아냐, 그냥 좀···.”

강덕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일요일에 만날 약속도 잡아놓고 왜 저러시지?’

그나저나···.

‘요즘 저 마스크는 왜 자꾸 쓰시는 거지?’

강덕수는 한수가 교통사고로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사모님께서 잘 부탁한다고 하셨는데···. 병원을 모시고 가야 하나?’

이때 한수는 ‘타이탄스 전용 Lv 1 상점’에서 두 가지 아이템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조잡하고 낡은 거지왕의 미트]

└종류 : 포수 전용 아이템

└등급 : 브론즈

└설명

① 포구력 + 1

└필요 포인트: 4

[조잡하고 낡은 풍데렐라의 배트]

└종류 : 포수 전용 아이템

└등급 : 브론즈

└설명

① 장타력 + 1

└필요 포인트: 4

[현재 보유 Point : 8]

‘미트는 꼭 필요한데···.’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선 권순민 시장을 승리 투수로 만들어야 한다.

이기기 위해선 점수를 내야 하니까.

그래서 ‘조잡하고 낡은 풍데렐라의 배트’를 살지 고민하는 거지만···.

‘꼭 내가 점수를 낼 필요는 없잖아. 배트는 보류하자.’

한수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조잡하고 낡은 거지왕의 미트’를 구매했다.

-띠링!

【구매 완료했습니다. 아이템이 보관함에 보관됩니다. 정보창이 등록된 선수만 아이템을 장착시킬 수 있습니다.】

‘보관함이라고?’

-띠링

【보관함이 오픈됩니다.】

【보관함】

└ +0 조잡하고 낡은 거지왕의 미트(브론즈)[장착]

한수는 장착 버튼을 쳐다봤다.

그때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장착시킬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타이탄스 선수만 착용 가능합니다.】

【선수 정보를 등록해주세요.】

한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거···. 설마···.”

그때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띠링!

【구단주님은 구단주 전용 장비만 장착할 수 있습니다.】

한수는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그런 건 빨리 말해! 젠장!”

강덕수는 흠칫 놀라며 물었다.

“뭘 빨리 말합니까?”

“···아냐, 아무것도.”

“네···.”

강덕수는 내일이라도 당장 한수를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수는 권순민을 승리 투수로 만들 Plan B를 계획···.

‘···이고 나발이고, 미트로 포구(捕球)한 게 이십 년도 더 됐는데···. 젠장.’

“망했네.”

한수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돼지국밥 타이탄스의 간판이 보였다.

‘잠깐···. 꼭 내가 포수를 할 필요는 없잖아? 권 시장을 승리 투수로 만들기면 되는 거잖아.’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강덕수에게 말했다.

“덕수야, 차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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