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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5화 (15/187)

15화 : 문제 될 거 없잖아!

돼지국밥 타이탄스 근처에 차가 멈추자,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고 말했다.

“덕수야, 넌 차에서 대기해.”

“네!”

그는 차에서 내려서 돼지국밥 타이탄스로 향했다.

그리고 들어가려고 문으로 손을 뻗은 순간!

-딸랑.

안에서 이소희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등장에 한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근무시간에 왜 여기서 나와요? 팀장 승진 하루만에 땡땡이입니까?”

이소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발로 한 대 차버리고 싶지만···.

이소희는 참을 인(忍)을 마음에 새기며 말했다.

“어이없는 스캔들에 점심도 못 먹고 내내···. 이제서 국밥 한 그릇 먹고 나왔습니다.”

“아··· 스캔들! 그딴 거 신경 쓰지 마요. 일주일이면 시들해지니까.”

“···구단주님은 스캔들 경험이 많아서 별일 아닌가 본데, 저한테는 큰 사건이고 몹시 불쾌한 일입니다.”

한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 당해본 일이라 큰 사건일 수야 있겠지만···. 불쾌해할 것까진 없지 않나?”

이소희는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근거 없는 소문으로 남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 저는 불쾌합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한수는 고개만 까닥하고 지나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 팀장, 고맙다는 인사는 끝까지 안 하네?”

“스캔들 주인공이 돼서 고맙단 인사라도 하라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초고속 승진을 시켜줬는데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해야 예의 아닌가?”

“억수로 고맙습니데이!”

이소희는 비꼬듯 인사를 하고 몸을 휙!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며 생각했다.

‘문디 자슥, 배아지를 수굼포로 확 기리 뿐디···!’

멀어지는 이소희를 보며 한수는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나 같은 남자랑 스캔들이 난다는 건 요즘 핫한 연예인이랑 레벨이 같아지는 건데···. 왜 저렇게 툴툴대는 거야?”

그때 돼지국밥 타이탄스에서 심상호가 나왔다.

“···또 당신이요?”

“하하, 안녕하세요. 돼지국밥 한 그릇···.”

“오늘은 휴일이요.”

한수는 웃으며 말했다.

“좀 전에 손님 나오는 거 봤습니다. 혹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휴일 맞소. 방금 나간 여자는···. 뭐, 당신이 알 바 아니고.”

“······.”

“그럼.”

심상호는 식당 문을 닫더니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출발했다.

한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후다닥 차에 타며 강덕수에게 말했다.

“저기 저 자전거 쫓아가!”

= = = = = = =

심상호가 자전거를 타고 사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장소는 부산역이었다.

그는 자전거를 주차하며 아까 돼지국밥 타이탄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갑자기 찾아온 조카, 이소희가 했던 말을···.

[삼촌, 저 타이탄스 운영팀 팀장이 됐어요.]

[그래서 말인데···. 저 좀 도와주세요]

[전 타이탄스를 우승시키고 싶어요.]

[생각해보시고 말씀해주세요. 국밥 잘 먹었어요.]

‘타이탄스의 우승···.’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황금 깃발을 부러뜨렸을 때, 다 포기했으니까.

‘내가 사랑하던 타이탄스는 이제···.’

심상호는 멍하니 부산역을 훑어봤다.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변했지만···.

그는 여기 올 때마다···.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한다.

.

.

.

이른 아침.

운동복 차림으로 구령에 맞춰 부산역 근처 차도를 달리는 청년들이 대청동을 지나 용두산 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뒤를 따르는···.

긴 장발에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

그는 부산 갈매기 로고가 새겨진 황금 깃발을 세차게 흔들며 달리고 있다.

바로, 자칭 타이탄스 응원단장 심상호다.

힘든지 땀을 뻘뻘 흘리며 헉헉거리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깃발을 펄럭이며 소리친다.

[마! 올해 기필코 우승해라! 타이탄스 힘내라!]

지나가던 부산 시민들도 심상호를 따라 응원한다.

선수들도, 시민들도, 모두 밝게 웃으며···.

희망에 찬 얼굴로 타이탄스의 승리를 바라는···.

그때 추억 속의 심상호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으악!]

무릎도 깨지고 무척 아파 보이지만···

그는 바닥에 떨어진 황금 깃발부터 챙긴다.

[내 깃발···!]

쭈그리고 앉아 황금 깃발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갑자기 그림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들리는 한 남자의 목소리.

[괜찮아? 무릎에서 피가 많이 나는데···.]

고개를 돌리자 다정다감한 인상의 남자가 보인다.

심상호는 누군지 바로 알아봤다.

바로, 타이탄스의 등번호 9번···.

.

.

.

심상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접어뒀다.

‘용두산 공원까지 걸어가볼까?’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고개를 돌리니 한수가 서 있었다.

심상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따라온 거요? 설마, 국밥 때문에···.”

“아뇨.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입니다.”

“부탁···?”

그는 한수를 가만히 살펴봤다.

왠지 낯이 익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러나 그건 그거고···.

“내가 왜 당신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거요?”

“공짜로 들어달라는 건 아닙니다. Give & Take죠! 저한테 원하시는 게 있으면···.”

“없소.”

한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씨알도 안 먹힐 거 같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그가 이정호 포수의 아들이란 걸 밝히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라?’

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정호의 아들이란 걸 밝혀도···.

‘문제 될 거 없잖아!’

한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

“저···. 한수예요.”

“한수?”

한수는 재차 입을 열었다.

“이한수 모르세요? 저 어릴 때···.”

심상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한수를 천천히 살폈다.

그때 돼지국밥이 먹기 싫다고 징징대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어어···! 너 이정호 선수의 울보 아들 맞지?!”

그러자 한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울지는 않았습니다만?”

심상호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호탕하게 웃으며 한수를 와락 껴안으며 소리쳤다.

“하하! 반갑다! 반가워! 이정호 선수는 잘 계시지?”

한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돌아가셨어요. 부산을 떠나고 얼마 뒤에···.”

“뭐?! 어, 어쩌다···.”

“교통사고로요. 갑자기···.”

그렇게 말하는 한수의 눈빛은 몹시 차가웠다.

심상호는 몹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쩌다 그런 일이···. 자네가 맘고생이 심했겠군···.”

한수는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이젠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 그래···. 근데 왜 처음에 만났을 때 아는 척을 안 한 거야?”

“그게 워낙 어릴 때라 기억 못 하실 것 같기도 하고···. 왠지 좀 쑥스럽기도···.”

“이정호 선수 아들인데 기억을 왜 못해? 그러고 보니 아버지를 닮아 무척 미남이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부탁드릴 일이 좀 있습니다.”

“뭔데? 말해봐!”

“이런 부탁드려서 죄송한데···. 혹시 사회인 야구 경기 한 번만 뛰어주실 수 있으세요? 포수로요!”

심상호는 타이탄스 황금기 응원단장을 하면서 종종 불펜 포수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그는 철인(鐵人), 용왕(龍王), 고독한 장군 등등···.

타이탄스 황금기 투수들의 공을 경험했다.

‘아마추어 경기 따윈 식은 죽 먹기지!’

“경기 날짜가 언제야?”

“이번 주 일요일이요!”

심상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OK. 알았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한수는 생각했다.

‘김종문을 공격할 첫 번째 칼은 얻은 거나 다름없어!’

= = = = = = =

부산시 수영구, 김종문 단장의 집, 서재.

김종문 단장은 갑자기 찾아온 권재중(前 전력분석팀장 / 직위 해제 상태)에게 물었다.

“당분간 찾아오지 말라니까, 왜 또 온 거야?”

“단장님! 경찰한테 연락이 왔는데, 저, 저를 신고했답니다. 초상권침해랑 며, 명예훼손 모욕죄로···. 구단주가 한 짓이 분명합니다!”

구단주가 아니고 이소희가 신고한 거지만, 어쨌든 권재중이 곤란한 상황에 빠진 건 맞다.

권재중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저, 전 단장님께서 시킨 대로 올린 거잖아요···. 저는 아무런···.”

권재중을 바라보는 김종문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러나 눈빛과 달리 김종문은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권 팀장, 이 사람아.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나? 지금 우리 뒤를 봐주고 계신 분이 있어.”

“하지만···.”

“아무 걱정하지 말게. 신고 건도 내가 그분께 말씀드려서 잘 처리해주겠네.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알겠어?”

“···네.”

권재중이 물러가자 김종문은 곧장 타이탄스 사무실에 출근한 직원에게 전화했다.

[단장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이소희 비서, 어떻게 됐나?”

직원, 공철수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뒷담을 듣고 똥 씹은 표정을 하더니, 오후쯤에 조퇴했습니다.]

김종문은 입꼬리를 올렸다.

“알겠네. 계속 오늘처럼···. 알겠지?”

[네, 맡겨두십시오.]

그는 공철수와 전화 통화를 끝내고, 책상에 있는 노트북에 시선이 갔다.

화면에는 워드 파일이 실행되고 있었다.

상단에는 날짜가 적혀 있는데, 구년 전 오늘이다.

그 아래 제목에는···.

『타이탄스 신임 단장 김종문에 대한 평가』

『By, 광안리 인어공주』

···라고 적혀 있었다.

김종문은 커서를 움직여 평가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한 부분에서 커서를 멈췄다.

『···김종문 단장은 세이버매트릭스 보다 개인의 감에 의존해서 선수 트레이드를 강행해서 대운 라이언스에서 감독과 마찰이 잦았다. 결과론적으로 따지자면 김종문 단장의 선택은 옳았지만, 감만 믿고 트레이드를 강행하는 건 구시대적인 방법···.』

김종문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야구공 한번 제대로 던져본 적 없는 X이 감히 누구한테 구시대적이라고···.”

이 블로그 글 때문에 김종문은 광안리 인어공주를 무척 싫어했다.

그런데 재작년에 이소희가 운영팀 입사 면접 때 본인을 광안리 인어공주라고 소개했었다.

그래서 대놓고 면박을 준 뒤 떨어트렸는데···.

얼마 뒤, 비서실로 입사했다.

그리고 이번에···.

‘구단주에게 꼬리를 쳐서 운영팀으로 가다니. 여우 같은 계집이야.’

그는 노트북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비서로도 못 오게 막았어야 했는데···. 박종철 그 자식 때문에···.”

그렇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보내버릴 수 있다.

‘이한수랑 엮어서 쓰레기로 매장을 시키는 거지.’

그의 수족이었던 권재중이 신고를 당하긴 했지만, 이한수를 공격하라고 지시한 이재수 사장한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될 거다.

‘잘 안 풀려도···. 어쩔 수 없지. 나중에 돈 좀···.’

그때 문자 메시지가 왔다.

모르는 번호에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지?’

└아빠···. 나 윤희야. 연 끊자고 해놓고 이렇게 연락해서 정말, 정말 미안해. 아빠, 아빠가 반대하던 결혼···. 이런 부탁을 해서 정말···. 제발, 제발 우리 민수씨 좀 살려줘. 도와줘, 아빠, 제발···.

“······!?”

그는 예상치 못한 문자에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나 곧바로 폰 화면을 꺼버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뭔데 감히 연락을···!”

= = = = = = =

일요일, 서울 어느 야구장에서 열린 ‘더 자이언츠’와 ‘빅토리 베어’의 경기는 더 자이언츠가 13:7로 승리했다.

권순민은 9회까지 마운드를 지키며 승리 투수가 됐지만, 홈런을 5개나 맞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도 권순민 시장은 웃었다.

왜냐면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빅토리 베어를 상대로 승리했기 때문이다.

모두 한수가 섭외한 심상호 덕분이었다.

심상호가 뛰어난 수비력과 정교한 타격 능력으로 ‘더 자이언츠’를 승리로 이끌었다.

권순민은 회식 중에 몇 번이나 심상호를 더 자이언츠로 영입하고 싶어 했지만···.

심상호는 극구 사양했다.

“생업이 바쁜지라···. 죄송합니다.”

“그래요? 이거 참 아쉽구만···. 그래도 가끔 놀러 오시오. 심 사장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니!”

“하하···.”

사실은 생업 때문이 아니고, 이 팀이랑 야구를 같이 하다간 혈압으로 쓰러질 거 같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임무를 완료했단 거지!’

한수는 회식 중인 식당 구석으로 가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임무 6, 첫 번째 칼을 얻기에 성공합니다!】

【권순민의 호감도 + 70%가 됩니다.】

【5 Point를 획득합니다!】

【현재 9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수는 활짝 웃었다.

‘이걸로 아이템을 잘못 사서 날린 포인트는 회복했어!’

-띠링!

【임무 6, 두 번째 칼 얻기 정보가 오픈됩니다.】

한수는 곧바로 임무 메뉴를 확인했다.

메인 임무 내용은 역시나 똑같았다.

다만, 하단부가 바뀌어 있었다.

└첫 번째 칼 : (미획득)

└두 번째 칼 : 이소희의 호감도를 + 30% 이상으로 높여서 당신을 적극적으로 돕게 하세요.

【보상 : ? Point】

한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 팀장과 친해지라는 말인데···.’

쉽지 않은 임무였다.

그녀는 한수와 한자리에 있는 거조차 싫어하니까.

‘이건 차차 생각해보고···.’

“그런데 첫 번째 칼은 대체 뭐야?”

그때 한수가 있는 곳으로 권순민 시장이 다가오며 말했다.

“이보게, 이 실장. 포수 마스크 쓰고 뭐 하나?”

“아, 잠시 생각 좀 하느라···.”

그러자 권순민이 한수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고맙단 말을 하고 싶어서 말이야. 자네가 심 사장을 데리고 와줘서 곰돌이 놈들을 납작코로 만들었네! 하하.”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내가 이 답례는 나중에 꼭 하지!”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때 권순민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요즘 많이 힘들겠어? 김종문 단장이 설친다는 거 같던데···.”

“뭐, 그렇게 힘들진 않습니다.”

“하하, 하긴 대 신영 그룹 황태자에 비하면 김종문 끗발은 한참 아래지. 그래도 너무 우습게 보진 말게. 김종문 그 친구 아주 독종이야.”

“독종이요?”

“그래,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하나뿐인 딸까지 내쳐버린···.”

그때였다.

-띠링!

새로운 창이 떠올랐다.

【첫 번째 칼을 획득합니다!】

【구단주님! 김종문의 딸, 김윤희를 찾으세요.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김종문의 딸, 김윤희···. 이게 첫 번째 칼!’

한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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