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신영 그룹이 망할 수도 있어요!
신영 타이탄스 사무실.
신임 구단주의 불합리한 인사 발령에 반발하며 김종문 단장과 그를 따르는 홍보팀, 전력분석팀, 육성팀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해서 한산했다.
그렇지만 사무실 분위기와 달리 직원들은 결근한 인원들의 업무를 대신 처리하느라 무척 바빴다.
이소희도 업무 인계를 받으면서 전력분석팀 일까지 하고 있었는데···.
전력분석팀이 너무 엉망진창으로 해놔서 할 일이 태산이었다.
이소희는 분석 자료들을 확인하며 인상을 썼다.
‘데이터 분석이 왜 이 모양이야? 이딴 것도 세이버매트릭스라고 한 거야?’
그나마 영상 분석은 열심히 한 티는 났지만, 수준이 높지 않았다.
영상 분석은 영상 자료를 보면서 상대 선수의 습관을 분석하는 거다.
이런 습관들은 선수 출신이 잘 파악한다.
하지만···.
‘우리 타이탄스 전력분석팀에는 선수 출신이 하나도 없어.’
前 전력분석팀 권재중 팀장이 선수 출신들을 싫어해서 팀에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소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타이탄스···. 상상한 것보다 더 엉망진창이야. 양승진 사장이 왜 맨날 김 단장이나 박 사장이랑 싸웠는지 이해가 돼.’
“그나마 구단주가 새로 와서 다행···.”
그녀는 말하다가 흠칫했다.
한수가 와서 다행이라니···!
‘피곤해서 정신이 잠깐 어떻게 됐나 봐. 다행은 무슨, 안하무인에 천하의 바람둥이인데···.’
이소희는 고개를 젓고 일에 집중했다.
그때 운영팀 팀원 윤가희가 데이터 분석 자료를 보며 중얼거렸다.
“권 팀장 금마 함 자피바라 고마쎄리 궁딜 콱 주차삘라니깐···.”
그러면서도 빠르게 일 처리를 하는 윤가희.
이소희는 빙긋 웃으며 생각했다.
‘가희 씨가 있어서 다행이야. 양 사장님은 이런 인재를 어디서 찾은 거지?’
그때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빌어먹을! 인터뷰 일정을 왜 우리가 짜냐고! 홍보팀 XX들 언제 출근하는 건데!?”
마케팅팀 공철수였다.
이소희는 인상을 썼다.
‘또, 저 사람이야?’
공철수는 툭하면 성질을 내며 사무실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트러블 메이커다.
그런데 요즘은 성질만 부리는 게 아니고···.
“낙하산 하나 때문에···! 어휴, 재벌 애인 없는 놈은 서러워 살겠나?”
···헛소문을 퍼뜨리며 이소희를 괴롭히고 있다.
이소희는 뒷골이 당겨오는 걸 느꼈다.
‘구단주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왜 저러는 건데?’
마음 같아서는 뒤통수에 을용타를 먹여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렇지 않아도 굴러들어온 돌 취급당하고 있는데···. 참자. 실력으로 저 주둥이를 다물게 하는 거야. 실력으로!’
그러면서 더 열심히 일하려는 순간, 윤가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문디 자슥아! 고마 쌔리, 마!”
이소희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가희 씨!”
그때 공철수가 험악한 얼굴로 물었다.
“너 방금 뭐라고 했냐? 2년 차 직원 나부랭이가 감히 선임한테!”
선임은 4년 차 이상 직원의 직급이다.
“선임이 선임다워야 선임 대접을 하지! 글베이 맨치로 추잡꾸로 굴면서 선임 대접을 바라냐?”
“이, 이게 돌았나!?”
공철수가 씩씩거리며 윤가희에게 다가갔다.
다른 직원들은 공철수의 더러운 성격을 알아서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마케팅팀 팀장 전주희라도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녀는 경영기획팀 팀장 서동민과 함께 사장실에서 회의 중이다.
이소희는 벌떡 일어나 윤가희를 보호하듯 앞을 막아섰다.
공철수가 인상을 팍 쓰며 ‘넌 또 뭐야?’라는 눈빛을 보내자, 이소희가 단호하게 말했다.
“가희 씨는 놔두고 저랑 얘기해요.”
“비켜요. 댁한테 볼 일 없으니.”
“댁이요? 지금 저한테 댁이라고 했어요?”
“아~ 이제 팀장님이시죠? 초고속 승진을 하셔서 팀장이라는 호칭이 입에 안 붙어서···.”
“···할 말 있으면 제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세요. 비겁하게 뒷담하지 마시고!”
“괜히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마십쇼. 저는 뒷담한 적 없습니다!”
그러자 윤가희가 이소희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소리쳤다.
“공 선임··· 바보? 좀 전에도 했잖아요! 뒷. 담.”
“이, 이 건방진···.”
공철수는 윤가희를 노려보다가, 이소희의 싸늘한 시선을 느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뭐···. 제가 없는 말 했습니까?”
“몇 번을 말해요? 저는 구단주님과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고요!”
“하루아침에 사장 비서에서 운영팀 팀장이 됐는데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요?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차라리 구단주 애인이라서 초고속 승진이 됐다는 게 훨씬 설득력 있지 않나?”
“그건···.”
사실 이소희도 한수가 이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소희가 광안리 인어공주라는 것도 모른다.
그런데···.
[비서 씨가 어제 그랬잖아. 당신 보고서대로만 하면 타이탄스가 정규시즌 1위도 하고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할 수도 있다고요.]
딸랑 보고서 한 번 보고···.
‘나한테 운영팀을 맡겼다고?’
그녀조차 믿기 힘들었다.
그때였다.
“능력 있어서 시킨 거죠.”
모두의 시선이 사무실 입구로 향했다.
한수가 걸어오고 있었다.
한수는 차가운 미소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 애인한테 타이탄스 운영팀 팀장을 왜 시킵니까? 동화 속 공주님처럼 편하게 살게 해주지.”
“······!?”
= = = = = = =
방금 전, 타이탄스 사무실 앞 복도.
한수는 윤가희의 외침부터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이놈의 구단은 전부 왜 이러냐?’
“정말···. 대단한 팀이야, 타이탄스.”
그때 강덕수가 물었다.
“안 말리실 겁니까?”
“덕수야, 인생은 타이밍이야.”
“타이밍이요?”
“지금 내가 나서면 그냥 양쪽의 다툼을 말리는 꼴밖에 더 되냐?”
“······?”
강덕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한수가 웃으며 말했다.
“잘생긴 내가 더욱더 멋져 보이는 각을 보고 개입해야지.”
“실장님···.”
강덕수는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그때 공철수가 큰소리로 말했다.
“하루아침에 사장 비서에서 운영팀 팀장이 됐는데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요?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차라리 구단주 애인이라서 초고속 승진이 됐다는 게 훨씬 설득력 있지 않나?”
이소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수는 웃으며 중얼거렸다.
“Let't Go.”
그리고는 사무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능력 있어서 시킨 거죠.”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한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 애인한테 타이탄스 운영팀 팀장을 왜 시킵니까? 동화 속 공주님처럼 편하게 살게 해주지.”
한수는 공철수에게 다가가 물었다.
“마케팅팀 공철수 선임 맞죠?”
“네···.”
“내 애인이 이 팀장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
“혹시 구단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고 이런 건가요?”
“그게···.”
공철수는 차마 대답을 못 하고 생각했다.
‘미친, 구단주가 이 시간에 왜 여기 있는 거야!?’
김종문 단장이 지시한 대로 이소희를 엿 먹이려다가 이렇게 되다니!?
한수는 웃으며 말했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네···.”
“겨우 말 몇 마디 물어봐서 이렇게 긴장하면 경찰 조사받을 땐 어쩌려고 그래요?”
“경찰 조사라뇨···?”
겨우 헛소문 몇 마디 했다고 경찰 조사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한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저는 신영 그룹의 창업자의 손자이자 오너의 일가이고, 타이탄스의 구단주입니다. 저의 행동과 말 한마디에 신영 그룹 주가가 상승할 수도, 폭락할 수 있죠.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뒤에 있던 강덕수는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았다.
조심은 한수와 거리가 먼 단어였기 때문이다.
‘실장님···.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어떻게 이런···.’
한수는 공철수에게 재차 말했다.
“그런데 당신이 나와 관련된 근거 없는 헛소문을 흘려서 회사의 주가가 폭락한다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
“저는 눈물을 머금고 그룹을 위해 구조조정을···.”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쇼! 겨우 이런 소문으로···.”
한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소리쳤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토네이도를 만드는 법이에요! 당신의 헛소리 때문에 신영 그룹이 망할 수도 있어요!”
“······!”
“그래서 저는 당신을 신고할 겁니다! 경찰서에서 당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깨닫고 반성하세요!”
“구, 구단주님···!”
“출근 걱정은 하지 마요. 오늘부터 직위 해제니까!”
“······!”
공철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러다가 한수의 웃는 얼굴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구, 구단주님! 자, 잠깐···.”
한수에게 달려드는 공철수를 강덕수가 막아섰다.
“물러서세요! 험한 꼴 보기 전에!”
“으으···.”
곰 같은 강덕수를 보고 있자니, 달려들 엄두가 안 났다.
공철수는 씩씩대며 한수를 노려보다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한수는 이소희에게 다가갔다.
이소희는 한수를 불편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 팀장, 이런 고충이 있으면 진작 말하지. 괜찮아요?”
“······.”
말하긴 했었다.
한수가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란 식으로 말했을 뿐이지.
이소희가 아무런 대답도 없자, 한수는 웃으며 말했다.
“이 팀장은 쑥스러움이 많은 거예요? 고마움을 모르는 거예요? 기왕이면 쑥스러움이었으면 좋겠는데···. 난 배은망덕한 인간은 사람 취급을 안 하거든요.”
그때 이소희 등에 매미처럼 붙어있던 윤가희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 오빠야, 억쑤로 멋지네. 완전 내 스타일이네.”
이소희는 이게 멋진 건지 의아했지만···.
하여튼!
일단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고맙습니다.”
그러자 한수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우면 나랑 같이 점심 식사 어때요? 혼자 먹기 그래서···.”
그러더니 한수는 쓸쓸한 미소에 우수에 찬 눈빛을 어필했다.
그에 이소희는 썩소를 날리며 대답했다.
“선약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그럼.”
자리로 돌아가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한수는 내심 당황했다.
‘···나 지금 까인 건가?’
익숙하지 않은 상황···.
묘하게 자존심도 상했다.
그때였다.
윤가희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야, 내는 점심 약속 없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가자, 덕수야.”
한수는 몸을 휙 돌리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윤가희가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튕기는 것도 고내이 맨치로 억수로 구엽네···.”
= = = = = = =
멍한 표정으로 구단 사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는 한수를 강덕수가 따라오며 물었다.
“싼타루치아 예약은 어떻게 할까요?”
“취소해.”
“그럼, 점심은···.”
한수는 사무실을 힐끗 쳐다보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돼지국밥이나 먹으러 가자.”
‘상호 아저씨나 보러 가자.’
“네.”
한수는 엘리베이터로 향하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상호 아저씨 정보창을 확인 안 해봤네. 이번에 확인해봐야겠다.’
그때였다.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한수는 옆을 쳐다봤다.
양승진이 환한 얼굴로 다가왔다.
“회의는 잘 마쳤습니까?”
“네, 방금 마치고 나오는 길입니다. 점심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이요.”
“그럼, 제가 모셔도 되겠습니까? 보고드릴 것도 있고, 승진 감사도 드릴 겸···.”
한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승진턱이니까 쎄게 얻어 먹어야겠는데···. 돼지국밥 어때요?”
“돼지국밥이요?”
“돼지국밥 싫어합니까?”
“저야 물론 좋아하지만···. 구단주님께서 돼지국밥을 드신다니까, 의외여서···.”
“제가 의외인 면이 많습니다. 차차 보여드리죠. 근데 특별히 보고할 사안이라도 있나요?”
“조직 개편에 대한 겁니다.”
한수는 무척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돼지국밥 타이탄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