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 포기하지 말라고!
한수는 버럭 소리치며 일어난 신민호를 쳐다봤다.
그러자 신민호의 몸에서 금색 빛이 뿜어지더니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신민호】【Gol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1%)
(타이탄스 코치진: 10%)
(타이탄스 프런트: 80%)
결론: 프런트의 간옹(簡雍). 품행과 언행이 단정치 못하긴 하지만 제법 뛰어난 능력을 갖췄습니다. 특별한 재능을 보유한 사람을 알아보는 촉이 발달했습니다.
【적성】
1순위: 스카우트팀.
2순위: 육성팀.
【특기】
1. 안목 [투수, 유격수]
2. 너는 에이스가 될 상이다!
3. 계약의 베테랑
4. 말재주
【호감도: - 10%】
‘특기가 재밌네.’
그렇지만 크게 욕심이 나진 않았다.
신민호보다 고민수나 이소희가 월등히 뛰어난 인재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이소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치사하다니요? 드래프트는 원래 이런 거 아닌가요? 말씀이 좀 심하시네요.”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서 이럽니까?! 댁들이···!”
그때 스페이스 임정태 단장이 신민호를 말렸다.
“신 팀장, 앉아!”
“하지만···!”
“이 사람이! 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 드래프트 중인 거 잊었어!?”
임정태의 말에 신민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맞는 말이다.
3라운드에 지명하려고 했던 염철수를 타이탄스에 뺏긴 이상 드래프트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젠장···.’
사회자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스페이스에서 원하던 선수를 타이탄스에 뺏겨서 속이 상했나 봅니다. 하지만 이게 드래프트 아니겠습니까? 보석을 얻기 위한 치열한 전쟁! 자, 그럼 계속 진행해보겠습니다! 3라운드 4번 지명권을 지닌 ST 위닝스(수원 불빠따) 지명하겠습니다!]
신민호는 결국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임정태가 속삭였다.
“이 사람아, 최민준에 대한 건 입도 벙긋하지 마. 구단주님께서 대신 운영 자금을 인상해주기로 한 거 잊었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여자나 사회자 말처럼 드래프트는 원래 이런 거잖아.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
신민호는 말없이 지명 선수 명단을 수정하기 시작했고, 임정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소희는 콧방귀를 끼며 자리에 앉았고, 한수가 엄지척을 하며 말했다.
“이 팀장은 일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네. Good!”
“고맙습니다.”
이소희는 묘한 눈빛으로 한수를 쳐다봤다.
그녀는 염철수의 재능을 알아봤지만, 5라운드에 지명하자고 했다.
고민수도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런데 한수가 지명 선수 명단을 보더니···.
[염철수는 3라운드에 지명하세요.]
···라고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한수 덕분에 염철수를 스페이스 구단에 뺏기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설마 스페이스가 3라운드에 염철수를 지명할 걸 예상한 건가?’
그때 한수는 안도했다.
‘3, 4라운드에 지명하려던 애들이 Silver 등급이라 염철수를 3라운드로 당기라고 한 건데···. 안 당겼으면 큰일 날 뻔했네···.’
신인 선수 중에 염철수와 비등한 잠재 레벨을 보유한 선수도 몇 명 보였지만···.
Diamond 등급은 염철수 하나뿐이다.
‘하마터면 임무 8을 완료하지 못할뻔했어.’
한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군!”
이소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드래프트 재밌네요. 우리가 지명할 때마다 다른 팀에서 뒤통수 맞은 표정을 하는 게···. 흐흐.”
“그런 재미로 드래프트를 보는 팬들도 많죠.”
다만···.
‘지금은 타이탄스를 욕하느라 정신없겠지···.’
그리고 그녀의 예상대로 야구팬들은 난리였다.
특히 타이탄스 팬들은 무척 격한 반응을 보였다.
└스페이스가 1라운드에 병신처럼 지명해서 최민준을 주워 먹긴 했는데···. 뜬금없이 김효철이랑 염철수?
└드래프트 삼수생이랑 듣보잡을 3라운드에···?
└씨X···. 경이로운 지명에 욕 밖에 안 나오네···.
└빌어먹을 프런트 XX들아! 뚝배기를 확! 마!
└염철수 쟤는 동산고 패전처리용 후보 선수인데···.
└우리 좋게 생각하자. 용왕 용정식도 무명 신인···. 이라고 할 줄 알았냐!? 미친 타이탄스 XX들아!
└포수 마스크 쓴 XX는 뭐야? 병X인가?
└타이탄스 그냥 해체해! 지명도 병신같이 하는···!
└궁금한 게 있는데, 신성 스페이스는 왜 타이탄스한테 지랄한 거냐?
└지명을 너무 지랄같이 하니까 지랄한 거지!
└ㅇㅈ. 마산 티라노스로 환승할 분 찾아요!
윤가희가 양승진 사장한테 온 톡을 보며 말했다.
“프런트 지금 난리 난 거 같아요. 팬들이 계속 전화해서 드래프트 똑바로 안 하냐고···. 직원들 전부 전화 받느라 정신없대요.”
그녀는 한수의 눈치를 살피더니,
“아무래도 염철수를 3라운드에 지명한 게 조금 쇼크였나 봐요···.”
이소희는 머리를 짚으며,
‘이럴 거 같아서 고 팀장이랑 상의해서 5라운드로 미룬 건데···.’
5라운드도 욕은 먹겠지만, 3라운드 지명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때 한수가 물었다.
“양 사장이 연락한 겁니까?”
“네···.”
“오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전 직원 금일봉 주라고 하세요.”
“금일봉이요? 진짜요?”
한수는 피식 웃더니,
“성난 팬들 주둥이를 다물게 할 수 없으니, 우리 직원들 마음을 위로해줘야죠.”
“오오···! 구단주 오빠야~! 멋지데이!”
“직원을 생각하시는 구단주님의 깊으신 마음이 정말정말 감동적입니다!”
“뭘 이 정도로···.”
그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소희에게 물었다.
“이 팀장은 뭐 할 말 없습니까?”
칭찬 좀 하라고 꺼낸 말이지만···.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없는데요?’라고 하며 정색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녀는 살포시 웃으며 자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명한 판단 같아요. 잘하셨어요.”
한수는 이소희가 왜 이러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뭐 잘못 먹었냐고 물으려는데,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페이스 구단! 타임 요청까지 하더니 영훈고 신병용 타자를 지명했습니다! 많이 고심한 흔적이 느껴지는 지명이네요! 그럼, 바로 4라운드를 진행해보겠습니다! 4라운드 1번 지명권을 지닌 신영 타이탄스 지명해주세요!]
그러자 이소희가 마이크를 잡았다.
한수는 중요한 질문이 아니니까 그냥 패스하자고 생각하고, 최고의 구단 가이드로 시선을 돌렸다.
‘계약서까지 작성해야 임무가 완료되는 건가?’
임무 메뉴를 선택하자, 임무 창이 나타났다.
『임무 8』
【구단주님!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재밌는 보물찾기를 해봐요! 다이아몬드 1개, 백금 1개, 황금 2개를 쟁취하세요!】
└Diamond 등급: 0/1 (미완료)
└Platinum 등급: 1/1 (홍진철 완료)
└Gold 등급: 2/2 (최민준, 김효철 완료)
【보상 : 5 Point】
한수는 인상을 팍 썼다.
‘뭐야, 이게?’
다른 등급은 이름과 함께 완료됐다고 떴는데···.
‘어째서 Diamond 등급은 미완료라고 뜨는 건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휙 돌려 신인 드래프트 지명자 대기석에 앉은 염철수를 쳐다봤다.
염철수의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염철수】【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7%)
(타이탄스 코치진: 12%)
(타이탄스 프런트: 10%)
결론: 경기장의 자룡(子龍)입니다. 심지가 곧고, 강직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는···.
···(중략)···
【특기】
1. 흔들리지 않고 침착한 Ace 마인드
2. ??? 슬라이더(미개발)
···(중략)···
‘Diamond 등급 맞는데···. 그럼, 대체 왜 완료라고 안 뜨는 거지?’
= = = = = = =
염철수는 대기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지명될 거라는 기대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그저···.
타이탄스를 반드시 우승시키겠다던 꿈을 잊고···.
꿈을 이루라던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빌기 위한···. 슬픈 자리였다.
그런데···.
‘내가 3라운드에서 지명되다니···.’
그것도···.
‘꿈에 그리던 타이탄스에···!’
너무 기뻐서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 순간이었다.
“저 새끼 패전처리 투수 아냐? 저딴 쓰레기 새끼보다 내가 백만 배는 잘하는데···.”
“저런 놈을 3라운드에? 하···. 꼴빠 미쳤네···.”
“혹시 동산대 김철수 선배를 지명하려다가 저 새끼를 부른 거 아냐?”
“인마, 김철수 선배는 드래프트 참여 안 했어! 야구 그만두고 회사 들어갔어! 이제 신입사원이라고!”
“그럼 정말 저 새끼를 지명한 거라고?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시기와 질투심 가득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염철수는 모자를 꾹 눌러쓰며 생각했다.
‘저 사람들 말처럼···. 잘못 지명한 건 아닐까? 나는 제구도 제대로 안 되는 투수인데···.’
그러다가도 왠지 모를 기대감이 들었다.
‘혹시···. 정말 내가 필요해서 지명한 거라면···.’
왠지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순간···.
어머니 김명숙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철수야,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다 잘할 순 없어. 인정하기 힘들 수는 있겠지만···.]
[······.]
[더는 힘들게 야구하지 말고···. 다른 일을 찾아봐. 아빠도 그걸 바랄 거야. 대학 진학을 해도···.]
아빠는 말씀하셨다.
설령 아빠나 엄마라도···.
너는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믿지 말라고···.
꿈을 지키라고···.
하지만 염철수는 꿈보다 엄마를 지키기로 했다.
[···알겠어요. 그런데 대학 진학 말고 그냥 엄마 도와서 11번 포차에서 일할래요.]
[포차는 안 돼! 차라리 취업해. 엄마가 아는 사장님이 있는데 거기 소개를···.]
어깨에 힘이 쭉 빠지고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랑 약속했잖아. 드래프트 참가를 마지막으로 야구에 대한 미련을 다 털어내겠다고···. 그냥···.’
“이 새끼 봐라? 쪼개고 있네? 기쁘냐?”
고개를 돌려보니 강대한이 험악한 얼굴로 서 있었다.
“대한아, 그게 아니고···.”
“아~ 타이탄스 우승시키는 게 네 꿈이었지? 병신 XX···. 너 같이 덜떨어진 놈이 타이탄스 마운드에 설 수나 있을 거 같아?”
염철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강대한과는 중학교부터 동창이다.
사이가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지독하게 비난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홍진철뿐만 아니고, 나한테 밀렸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여튼 자존심하고는···.’
염철수는 적당히 대꾸하려고 했다.
그 순간, 강대한은 비웃으며,
“아비 뒈진 거 때문에 입스(YIPS) 와서 공도 제대로 못 던지는 병신 새끼가···.”
“강대한···.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왜? 또 말해줘? 아비 뒈진 거 때문에···.”
“너···!”
“왜? 열 받냐? 한 대 쳐봐? 왜? 무섭냐?”
염철수는 주먹을 꽉 쥐더니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뒤에서 뻗어온 커다란 두 손이 그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
놀라서 돌아보니 폭풍고 홍진철이었다.
홍진철은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자식 노림수에 넘어가지 마. 너 X 되게 하려고 개수작 부리는 거야.”
“뭐?”
“중계방송 중인 거 몰라? 여기서 네가 강대한 면상이라도 후려치면···. 지명이고 뭐고 다 끝이야.”
“······!”
강대한은 자리로 돌아가며 콧방귀를 꼈다.
“병신 같은 놈끼리 잘들 노네.”
염철수는 강대한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홍진철을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덕분에···.”
“강대한 저 자식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나선 거뿐이야. 딱히 널 도와주려던 건 아니니까 고마워하지 마.”
“······.”
홍진철은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멈칫하더니, 염철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중딩 때 입스 왔었거든···. 그런데 피 토할 정도로 던지다 보니까 해결됐어.”
“어···?”
“포기하지 말라고! 그럼, 다음에 또 보자!”
염철수는 멀어지는 홍진철을 보며 생각했다.
‘엄청 착한 애네···.’
그는 오른손을 펼쳐서 바라봤다.
“피 토할 정도로···.”
그렇지만 곧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는 이제 야구를···.’
그 순간!
“······?”
묘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타이탄스 테이블에 앉아 있는 포수 마스크를 쓴 남자, 한수와 시선이 마주쳤다.
마치 그를 잡아먹을 듯한 이글거리는 눈빛···.
염철수는 당황하며 시선을 피했다.
‘누, 누구지? 눈빛이 무서워···. 내가 뭐 잘못했나?’
이때 한수는 이소희한테 말했다.
“이 팀장, 드래프트 끝나는 대로 염철수 선수랑 계약 진행할 겁니다. 도망 못 가게 잡아요.”
“···염철수 선수가 왜 도망가요?”
“묻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소희는 의아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KBO 신인 드래프트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