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30화 (30/187)

30화 : 물론이죠!

KBO 신인 드래프트가 끝난 뒤.

한수의 지시를 받은 이소희는 곧바로 염철수를 찾아갔지만, 염철수는 이미 호텔에서 떠난 뒤였다.

지명된 신인 선수들은 인터뷰나 기념 촬영 때문에 곧바로 가지 않는데, 염철수는 그냥 가버렸다.

이소희는 호텔 로비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꼬맹이한테 한 소리 듣겠네···.’

그때 안경을 쓴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타이탄스 이소희 운영 팀장님 맞으시죠?”

“···누구시죠?”

“야구 Time의 배동식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야구 Time은 야구 전문 잡지다.

프로리그뿐만 아니라, 고교 리그, 대학 리그 심지어 아마추어 리그까지 다양한 야구 이야기를 다루는데, 주관적이지 않고 상당히 객관적으로 기사를 써서 야구팬들 사이에선 인지도가 꽤 높다.

배동식은 명함을 건네며 말을 이어갔다.

“홍보팀을 통해서 인터뷰 요청을 드렸어야 하는데···. 오늘 신인 드래프트를 보니 너무 궁금해서···. 이렇게 불쑥 찾아왔습니다. 하하.”

“······.”

야구 Time이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만들어내는 잡지사는 아니긴 하지만···.

예정에도 없는 인터뷰는 사절이다.

이소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인터뷰는 홍보팀을 통해서 연락해주세요.”

“저도 알죠. 그래도 조금만 부탁드립니다. 절대 나쁜 기사 쓰지 않겠습니다. 있는 그대로···.”

“죄송합니다.”

이소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지나치려고 했다.

그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 팀장, 여기서 뭐 해요? 염철수는요?”

고개를 돌리니 손에 포수 마스크를 든 한수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게···.”

그때 배동식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타이탄스 구단주님 맞으시죠?”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배동식입니다! 이야! 소문보다 훨씬 더 잘생기셨습니다! 사실 구단주님께도 여쭙고 싶은 게 있는데···.”

“다음 달 야구 Time 커버 모델 누굽니까?”

“네? 아직 안 정해졌습니다만···.”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거 제가 정하게 해주면 인터뷰에 응하죠.”

“네? 그건 제가 결정할게···.”

“그럼, 바빠서 이만···. 이 팀장, 따라와요.”

“어, 잠깐···!”

한수와 이소희는 배동식을 놔두고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염 선수, 없어졌습니까?”

“네···. 보통 기념 촬영이나 인터뷰를 할 텐데···.”

“······.”

보통이라면 그럴 거다.

하지만···.

‘애초에 계약할 의사가 없다면···. 그냥 가버리는 게 말이 되지.’

한수는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오늘 지명한 선수들하고 신속하게 계약 진행하세요. 한시라도 빨리 팀에 합류해서 적응할 수 있도록요.”

“알겠습니다. 계약금이나 연봉은···.”

“이 팀장에게 일임할게요.”

그녀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정말요?”

“왜요? 부담스럽습니까?”

“부담도 약간 되지만, 그보다 저를 뭘 믿고···.”

한수가 믿는 건 부산 갈매기의 삼륜안(三輪眼)으로 본 그녀의 정보창이다.

그녀의 업무 재능 1순위는 단장과 운영팀이다.

둘 다 선수와의 계약을 결정하는 직책···.

‘믿을 수밖에 없지.’

그러나 이 사실을 말할 순 없다.

그래서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믿는데 뭔 이유가 필요합니까? 믿음이 가니까, 믿는 거죠.”

“······.”

이소희는 복잡한 눈빛으로 한수를 쳐다봤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시간을 확인하더니,

“저는 부산으로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계약 중에 문제가 있으면 양 사장한테 연락하세요.”

“···알겠습니다.”

한수는 그녀를 놔두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다가 멈칫하더니, 돌아보며 말했다.

“당부할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선수들 능력에 맞게 대우해주세요. 푼돈 아낀답시고 제 체면 구기지 마시고요. 알겠습니까?”

그 말에 이소희는 피식 웃더니,

“알겠습니다. 구단주님 체면 확실히 세워드리죠.”

한수도 마주 웃으며,

“역시 믿음직스러워. 그럼, 부산에서 봅시다!”

한수는 꾸벅 인사하는 이소희를 뒤로 한 채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리고 강덕수에게 전화했다.

“염철수 지금 어딨어?”

= = = = = = =

염철수는 신인 드래프트가 끝나기 전에 호텔을 빠져나왔다.

괜히 타이탄스 프런트 관계자들이나, 기자들을 만나면 미련이 생길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오자마자 엄마 김명숙한테 전화했다.

“드래프트 끝나서 나왔어. 바로, 출발하려고.”

[그래? 지명은 어떻게 됐니···?]

김명숙은 중계방송을 안 본 거 같았다.

그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명됐단 걸 아시면 괜히 신경 쓰실 거야.’

김명숙은 재능이 부족한 그가 야구를 하는 걸 더는 원치 않으니까.

염철수는 애써 웃음기 섞인 목소리를 냈다.

“하하, 그게···. 아무도 날 지명 안 했어.”

[······그래?]

“응! 덕분에 확실히 미련을 털어냈어. 엄마 말대로 이젠 취업에 힘써야지!”

[···우리 아들 파이팅.]

“땡큐!”

[기왕 서울 갔으니 놀다 와. 미령 고모 알지? 미령 고모 댁에서 잠깐 지내도 될 거야. 부탁해둘 테니···.]

염미령은 돌아가신 아빠의 먼 친척으로 막장의 대모라고 불리는 유명한 드라마 작가다.

장례식 때 처음 만났었지만···.

진심으로 애도하고 그와 엄마를 위로해줬던 좋은 분이다.

오랜만에 뵙고 인사드리는 것도 좋지만···.

“아니야. 바로 부산으로 갈게요.”

[아니야. 서울 간 김에 남산도 가고···.]

“지금 KTX 타고 가면 포차 오픈 전까지 도착할 수 있어요.”

[철수야, 괜찮아. 그냥 좀 더 기분 전환을···.]

“괜찮다니까. 하여튼 KTX 타면 연락할게!”

통화를 끝낸 염철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뚝 멈춰서서 멀찍이 있는 서울 마이어 호텔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타이탄스와 계약해서 계약금을 받으면···.’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된 공도 못 던지는데 무슨···.’

한숨을 내쉬면서 지하철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를 불렀다.

“염철수 선수, 어디 가십니까?”

“······?”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무척 잘생긴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낯이 익었다.

“···누구세요?”

한수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최근 새롭게 만든 명함을 건넸다.

“반갑습니다. 이한수입니다.”

‘이한수···?’

이름도 익숙했다.

염철수는 그가 건넨 명함을 확인했다.

【신영 타이탄스 구단주 : 이한수】

“······!”

이제야 생각났다.

최근 SNS에서 논란인 재벌 3세 구단주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염철수입니다.”

“네, 잘 알죠. 우리 염 선수.”

염철수는 흠칫했다.

‘우리 염 선수···? 나, 나한테 왜 이러지?’

“염 선수, 기념 촬영이나 인터뷰도 없이 어딜 그리 급히 가세요?”

“그게 어머니 포차 오픈 때문에···.”

“이야~ 우리 염 선수, 효자시네.”

“아, 아뇨”

갓길에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멈춰섰다.

한수는 그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부산으로 가실 거면···. 같이 가시죠.”

“아, 아닙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리고 지하철 타고 KTX로 가는 게 더 빠른···.”

그때 차에서 거대한 덩치의 남자 강덕수가 내렸다.

그는 뒷문을 열었다.

“공항에 전세기가 대기 중입니다. 함께 타고 부산으로 가시죠.”

“저, 전세기를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얘기도 있어서 그럽니다. 타세요.”

그 말에 염철수는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차에 탔다.

= = = = = = =

자동차 안.

한수는 잔뜩 긴장한 염철수를 살피며 생각했다.

‘자, 그러면···. 무슨 생각인지 들어볼까?’

“염 선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네···?”

“타이탄스에 지명된 거 싫습니까?”

“아, 아뇨! 싫다뇨.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둡습니까? 신인 선수로서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됐으면 무척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염철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되나 고민했다.

그때 한수가 말했다.

“염 선수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편하게 얘기하세요.”

“···야구를 그만둘 생각입니다···.”

한수는 주먹을 꽉 쥐며 생각했다.

‘X 됐네···. 요놈의 Diamond를 어떻게 설득하지?’

“···왜 그만두려는 겁니까? 이제 겨우 19살인데···. 우리 구단으로 와서···.”

“저는···. 재능이 없으니까요···.”

“······.”

“죽을 만큼 노력했지만···. 아직도 공 하나 원하는 대로 못 던집니다. 그런 제가 프로 선수라니···. 차라리···.”

그 순간, 한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그럽니까?”

“네?”

“누가 염 선수 재능이 없다고 그럽니까?”

한수의 표정은 왠지 화난 거 같았다.

염철수는 조금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야, 전부···.”

“그렇게 말하는 인간들은 다 쓰레기 동태 눈깔인 겁니다.”

“···네?”

“신성 스페이스 구단이 드래프트 때 왜 저희한테 왜 치사한 놈들이라고 소리친 줄 압니까?”

“그건···.”

“염 선수 때문입니다.”

“······!”

“본인들이 3라운드에 지명하려고 했던 염 선수를 우리가 먼저 지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죠? 근데 사실입니다.”

“······.”

한수는 발치에 놓인 가방에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이게 뭔 줄 아십니까?”

“아, 아뇨.”

“염 선수에 대한 자료들입니다.”

“네? 이, 이런 걸 왜···?”

“왜일 거 같습니까?”

“······.”

“염 선수가 다이아몬드이기 때문이죠.”

“······!?”

한수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보통 사람들한테 세공이 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은 평범한 돌멩이로 보입니다.”

“······.”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내 눈에는 당신의 빛나는 재능이 보여.”

염철수는 한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조금 무섭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수는 염철수의 어깨를 잡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들은 말입니다. 자기들이 못하는 건 남도 못 할 거라며 개소리를 지껄이죠. 그딴 소리 다 무시해요. 설령 그게 부모님께서 하는 말이라도···. 그런 소리에 꿈을 포기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에요.”

“······!”

‘이 말은···.’

문득,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철수야, 누가 넌 할 수 없다고 하거든, 귀담아듣지 마. 그게 설령 아빠나 엄마라고 해도. 알았지?]

[사람들은 말이다. 자신이 못 하면 남들도 못할 거라고 쉽게 단정해버려. 그러니까 남들 말에 휘둘려서 꿈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염철수는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한수는 염철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물론 자신이 없을 수도 있어요. 염 선수는 지금까지 야구로 뭔가 이룬 게 없으니까. 자존감도 바닥일 거고···. 본인 재능을 믿을 수 없겠죠. 네, 이해합니다.”

“······.”

“그러면 말입니다.”

한수는 엄지로 본인을 가리키며,

“염 선수 본인을 믿지 말고, 염 선수 재능을 알아본 저를 믿어보세요.”

“······!”

염철수의 눈동자가 떨렸다.

아버지와 나눴던 추억과···.

[···스스로한테 자신이 없을 수 있어. 철수 너 아빠 믿지?]

[그럼, 너를 믿는 아빠를 믿어봐.]

한수와 나누는 대화가 너무 비슷했다.

갑자기 한수의 얼굴에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져 보이기까지 했다.

‘정신 차려. 나는 야구를···.’

“······구단주님, 저한테···. 정말 재능이 있나요···?”

한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신영 그룹 황태자인 제가 장담하는데, 염 선수는 누구보다 재능이 있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아빠가 장담하는데, 철수 너는 누구보다 재능이 있어. 아빠를 믿어!]

염철수는 생각했다.

‘이 사람은 어쩌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가 나한테 보낸···.’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떨궜다.

한수는 당황했다.

‘뭐야? 왜 이래? 내 말이 그렇게 감동이었나?’

힐끗 백미러를 쳐다보니, 강덕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강덕수 생각에도 울 정도로 감동적인 멘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염철수가 한수를 보며 말했다.

“구단주님···. 저 야구를 하고 싶어요···!”

“그러면···.”

“···저한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엄마랑 얘기를 나눠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때였다.

-띠링!

옆에 있던 포수 마스크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임무 8이 완료된 게 분명했다.

한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염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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