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벌써 완료했다고?
한수 덕분에 부산에 무척 일찍 도착한 염철수는 포차 오픈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집으로 향했다.
‘엄마도 집에 계시겠지···.’
그는 김명숙에게 타이탄스에 지명된 사실을 말씀드리고, 야구를 계속하고 싶단 얘기를 할 생각이다.
아마 반대할지도 모른다.
아빠와 한 약속 때문이면 이제 괜찮다고 그만 포기하라고, 하지만···.
‘약속 때문만이 아니야.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그는 철인(鐵人) 최종권처럼 타이탄스 한국 시리즈 우승을 이끄는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다!
낡은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 방.
여기가 염철수의 집이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잠겨 있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벌써 나갔나?’
현관 옆에 놓인 화분 받침대에서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무척 낡았지만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이 보였다.
그는 김명숙의 외투와 신발이 없는 걸 확인하며 생각했다.
‘옷만 갈아입고 포차로 가야겠다.’
그는 옷을 갈아입으면서 중얼거렸다.
“계약금을 받으면 집부터 이사 가야지. 아파트가 좋을 거 같은데···. 좀 비싸려나?”
그때 갑자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염철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방에서 나왔다.
그러자 김명숙이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엄마, 어디 갔다 와?”
김명숙은 철수가 방에서 나오자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너 어떻게···.”
“하하, 그게···.”
염철수는 타이탄스 구단주가 전세기를 태워줬다고 말하면 엄마가 너무 놀랄 거 같았다.
“그보다 엄마 할 얘기가 좀 있는데···.”
“할 얘기?”
그때 김명숙이 손에 든 쇼핑백을 힐끗 보더니,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나도 할 얘기가 있는데···.”
“무슨 얘기인데?”
“잠깐 거기 앉아봐.”
“응···.”
거실 바닥에 마주 앉은 두 사람.
김명숙은 쇼핑백을 염철수에게 내밀며 말했다.
“선물이야.”
“오, 진짜? 뭐야? 아, 정장인가?”
염철수는 빙긋 웃으며 쇼핑백 안을 살피더니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쇼핑백 안에 들어있는 건 글러브였다.
“엄마, 이건···.”
“장비 많이 낡았더라···. 네가 말하지 않아도 엄마가 챙겨줬어야 했는데···.”
“아냐, 나는···.”
“철수야.”
“······.”
“···타이탄스에 지명된 거 봤어.”
“······!”
김명숙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네 아빠가 죽기 전에···. 그러더라. 철수가 타이탄스 투수 돼서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 꼭 보고 싶었다고···.”
“······.”
“그러면 빨리 일어나라고···. 힘내라고···. 함께 응원하러 가자고 그랬더니···. 너희 아빠가 아무 말 없이 내 손만 꼭 잡더라.”
“엄마···.”
염철수의 아버지 염민규는 새벽녘에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원으로 급히 옮겨서 응급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정신이 돌아왔지만···.
하루를 채 못 넘기고 숨을 거뒀다.
김명숙은 그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신 지켜봐달라고 한 거겠지···. 그 사람, 자기는 이미 틀렸다고···. 네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
“너한테 엄마가 몹쓸 짓을 했어···. 네가 아빠와 한 약속 때문에 야구를 하는 게 아닌데···. 야구를 정말 많이 사랑하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약속 때문에 힘들게 야구를 하지 말라고···. 그런 말을 해선 안 됐는데···.”
김명숙이 눈물을 흘리며 자책하자 염철수는 당황하며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냐, 엄마···. 엄마는 나를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괜찮아. 울지 마, 응?”
김명숙은 눈물을 닦아내더니 염철수를 똑바로 보며,
“철수야.”
“······.”
“야구···. 포기하지 마. 기회가 왔을 때 잡아. 후회 없이 끝까지 해.”
“···엄마···.”
“엄마가···. 아빠 몫까지 응원할게.”
그 말에 염철수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응, 고마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
= = = = = = =
부산, 어느 도로, 달리는 차 안.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최고의 구단 가이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임무 8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5 Point를 획득합니다.】
【현재 18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임무 9가 생성됐습니다.】
그는 창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Diamond가 도망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스토브리그 때 잘 키워서 내년 시즌에 선발로 던지게 하면 좋은데···.’
신인 및 2군 육성을 전담하는 부서는 육성팀이다.
현재 육성팀은 책임급 직원 한 명만 남기고 전부 정리된 상태인데, 한수는 돼지국밥 타이탄스의 심상호가 육성팀 팀장을 맡아주길 바라고 있다.
심상호의 특기 때문이다.
【심상호의 특기】
1. 함구구(陷球鷗) 육성
2. 응원의 마에스트로
3. 우리 선수가 달라졌어요!
4. 본능적인 재능 파악
전부 육성에 특화되어 있다.
특히, 상대 구(球)단을 함(陷)락하는 갈매기(鷗)라는 함구구 육성이 기대됐다.
한수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상호 아저씨는 아직도 결정을 못 내린 건가? 조만간 찾아가 봐야겠어.’
그러면 임무 메뉴를 확인했다.
『임무 9』
【구단주님! 꼴찌팀 통합 우승을 시키기 위해선 몸이 세 개라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세 가지 임무를 한 번에 드리려 합니다! 파이팅!】
└① : 감독의 처우를 결정하세요!
└② : Gold 등급 이상의 외국인 용병(투수, 외야수)과 계약하세요!
└③ : 신인 계약 + 선수 연봉 협상을 완료하세요!
【보상 : 30 Point】
한수는 한 번에 세 가지 임무를 받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보상이 마음에 들었다.
‘30 Point면···.’
한수는 Lv 1 상점을 확인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아이템은 ‘포기를 모르는 원조 금테 안경(Gold 등급)’이었지만···.
‘이건 2 Point만 더 모으면 살 수 있어. 이것보다 비싼 아이템은···.’
하지만 Lv 1 상점에선 20 Point 안팎의 Gold 등급 아이템이 가장 비쌌다.
‘Platinum 등급이나 Diamond 등급 아이템은 없는 건가?’
그때 상점 옆에 떠오른 작은 창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탄스 전용 1 Lv 상점】
└상점 Lv UP을 위해서 3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상점 Lv UP···. 이걸 하면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오는 건가? 흠···.’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안경은 다음에 사도 되니까. 임무 9를 완료하면 상점 Lv UP을 하자!’
그렇게 결정한 뒤 운전 중인 강덕수에게 말했다.
“덕수야, 염규식 감독한테 내일 점심쯤 보자고 해.”
“어디로 오라고 할까요?”
“구단 근처에 적당한 식당 알아봐.”
“알겠습니다.”
덕수는 신호가 걸리자 한수의 지시사항을 재빨리 메모했다.
그리고는 “아···!” 하더니,
“실장님, 보고드리는 걸 깜박했는데요. 김관필 본부장이요.”
“김관필? 누구야 그게?”
“구단 운영 자금 담당하는 본사 CFO요.”
“오케이. 오케이. 기억났어. 그런데 김 본부장 내가 부르지 않았나? 왜 안 와?”
“그게···. 김 본부장은 구단 CFO에서 물러났다고 합니다.”
“인마, 그런 건 바로 보고해야지. 제발 정신 좀 차려!”
“죄송합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새로운 CFO는 누군데?”
“···박동석 상무입니다.”
한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박동석 상무는 이창호 부회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또한, 이재수를 무척 아끼는데···.
‘이재수 짓이군. 운영 자금을 줄이겠다는 건가? 개자식, 마카오에서 한탕 한 거 기사 터뜨렸다고 이딴 식으로 엿을 먹이네. 박동석···. 박동석이라···. 분명···.’
“일단···. 박동석은 놔둬.”
“알겠습니다.”
어차피 신인 선수 계약으로 운영팀에서 CFO한테 연락할 거다.
그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보고 대응할 생각이다.
“더 보고할 거 있어?”
“희수 아가씨한테 연락 왔었습니다. 서울 올라왔으면 잠깐 얘기 좀 나누고 싶다고.”
“걔가 내가 서울 갔던 걸 어떻게 알아?”
“방송을 본 거 아닐까요?”
한수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부산 왔으니, 얘기는 다음 기회에~!”
“희수 아가씨 전화라도 받아주세요. 다른 가족분들이랑 달리···.”
“됐고. 운전이나 해.”
“···알겠습니다.”
한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희수 그 X이 하려는 말이야 뻔해. 그만 포기하고 집으로 들어오라는 거겠지. 유산 상속 문제도 이재수랑 적당히 합의하라고···. 속없는 X.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창호, 이재수한테 내 걸 뺏기라고? 지랄···!’
그는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포기 못하지. 절대···!”
그때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이소희가 보낸 톡이었다.
└이소희 팀장: 구단주님, 염철수 제외한 신인 선수들과 계약금 및 연봉 협상 완료했습니다. 내일 오전까지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한수는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벌써 완료했다고?”
= = = = = = =
다음날, 신영 타이탄스 프런트 오피스 소회의실.
한수는 이소희가 가져온 신인 선수 계약금 및 연봉 협상 보고서를 확인하고 있었다.
【1라운드】
이름: 홍진철 / 포지션: 투수 / 소속: 폭풍고
계약금: 4억 5천만 원 / 연봉: 3,000만 원
【2라운드】
이름: 최민준 / 포지션: 외야수 / 소속: 웅담고
계약금: 3억 원 / 연봉: 3,000만 원
【3라운드 ①】
이름: 김효철 / 포지션: 지명 타자 / 소속: 원암대
계약금: 2억 1천만 원 / 연봉: 3,000만 원
【3라운드 ②】
이름: 염철수 / 포지션: 투수 / 소속: 동산고등학교
계약금: (미확정) / 연봉: (미확정)
【4라운드】
이름: 양동식 / 포지션: 내야수 / 소속: 무상고
계약금: 1억 6천만 원 / 연봉: 3,000만 원
【5라운드】
이름: 서동진 / 포지션: 내야수 / 소속: 신이고
계약금: 1억 4천만 원 / 연봉: 3,000만 원
【6라운드】
이름: 한민석 / 포지션: 투수 / 소속: 웅담고
계약금: 1억 원 / 연봉: 3,000만 원
【7라운드】
이름: 고대현 / 포지션: 외야수 / 소속: 세일고
계약금: 9천만 원 / 연봉: 3,000만 원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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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보고서를 내려놓고 이소희한테 물었다.
“홍진철은 원래 5억부터 협상을 시작하려던 거 아니었나요?”
“본인이 4억을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의 가치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라고 하면서 4억 오천으로 협상을 한 겁니다.”
“홍 선수, 생각보다 담이 작군요. 뭐, 우리야 땡큐지만···. 협상 내용이 아주 마음에 드네. 수고했어요, 이 팀장!”
이소희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구단주님 덕분이에요.”
“뭔 소리예요? 협상은 이 팀장이 다 해놓고···.”
“구단주님께서 저를 믿고 전권을 일임해주셨잖아요. 덕분에 마음 편하게 협상을 할 수 있었고, 결과가 더 잘 나온 거 같아요. 고맙습니다.”
한수는 그녀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자 이소희는 고개를 갸웃하며,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뇨. 그냥 좀···. 이 팀장이 변한 것 같아서요. 나한테 너무 친절하달까···.”
이소희는 눈가를 움찔하더니,
“펴, 평소랑 똑같습니다만?”
“···뭐, 그럼 됐고. 이따 저녁 시간 비워둬요.”
“저녁에요? 왜요?”
한수는 씨익 웃으며 보고서에 적힌 염철수의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계약 마무리하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