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운이 좋군.
한수가 팀에서 꺼지라고 하자 남정남은 아찔했다.
구단주가 새로 취임하고 박종철 사장, 김종문 단장, 타이탄스 삼재(三災), 프랜차이즈 스타 독고준 그리고 염규식 감독까지 전부 쫓겨났단 사실이 떠올랐다.
‘지, 진심인가? 그, 그냥 화나서 하는 말이겠지?’
당장이라도 매달려서 화를 풀라고 하고 싶었지만···.
선수들과 코치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여기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 그의 인생은 답이 없을 거 같았다.
그는 애써 담담한 척하며 말했다.
“구단주님, 말씀이 지나치시군요. 타이탄스는 제 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디를···.”
“이 팀장.”
그의 부름에 이소희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 감독님, 저랑 얘기하시죠.”
“뭐라고? 난 댁이랑···.”
그때 한수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여기 있으려면 계속 있어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궁금하면 말이죠?”
“······.”
남정남은 어깨를 움찔하더니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때 이소희가 재차 말했다.
“따라오세요.”
그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뭔 얘기를 할 게 있다고···. 그래요! 갑시다! 가!”
두 사람이 나가자 더그아웃에 정적이 흘렀다.
한수는 장보형에게 다가갔다.
“장보형 투수 코치 맞죠?”
“네···.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부터 장 코치가 임시 2군 감독입니다.”
“······네?!”
장보형은 물론, 주변에 있는 코치진과 선수들이 모두 놀랐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남정남 감독을 자른 건가!?
한수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장보형에게 말했다.
“내가 말입니다. 저어~기 마운드에 있는 염 선수한테 거는 기대가 무척 큽니다.”
“······.”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프런트에서도 염철수에 대해 신경을 썼고, 남정남은 그게 배알이 꼴려서 개수작을 부렸던 건데···.
“장 감독이 잘 좀 지도해주세요. 왕년에 공 좀 던졌다면서요? 비장의 무기 같은 거 있으면 숨겨두지 말고요. 오케이?”
“그게···.”
한수는 뒷말을 흐리는 그에게 ‘2군 선수(지명 선수, 육성 선수) 육성 계획’ 보고서를 내밀었다.
장보형은 고개를 갸웃했다.
“구단주님, 이게 뭡니까?”
“육성팀 팀장이 쓴 겁니다. 참고하세요. 육성팀이랑도 잘 좀 지내시고요. 같은 팀끼리 상부상조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네···.”
장보형은 조심스럽게 보고서를 받았다.
한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경기 다시 진행하죠. 흠···. 어디 앉지?”
장보형은 움찔하며 물었다.
“구단주님, 혹시 여기 계실 겁니까?”
“네.”
“······.”
코치들과 선수들 모두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모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포수 마스크는 왜 써?’
‘설마 포수를 보려는 건···.’
‘공 날아오는 거 무서워서 저러나···?’
‘완전 미친놈이네.’
‘괜히 거슬리게 행동하지 말자···.’
그때 한수는 홍진철을 발견했다.
염철수 다음으로 기대되는 유망주.
‘얼마나 성장했나 볼까?’
안경 D 에이스의 의지가 발동되면서 홍진철 머리 위로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띠링!
【이름: 홍진철】
【레벨: 38 / 86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체력관리 S】
처음에 봤을 땐 36레벨이었고, 신인 드래프트 때는 37, 오늘은 38레벨이다.
그의 꾸준한 성장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지어졌다.
‘흐흐, 염 선수와 함께 우리 타이탄스의 원투 펀치로 무럭무럭 성장해라! 오랜만에 정보창도 확인해볼까?’
그 순간, 알림창이 떠올랐다.
-띠링!
【홍진철 선수의 정보창이 업데이트됐습니다!】
‘업데이트? 설마, 김효철처럼···.’
기대감을 품으며 홍진철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홍진철】【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4%) 【+2%】
(타이탄스 코치진: 11%)
(타이탄스 프런트: 3%)
결론: 경기장의 서황(徐晃)입니다. 엄격하고 검소한 성격처럼 마운드에서 던지는 공 하나하나를 신경 씁니다. 수비수들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선호해서, 그가 선발이면 수비수들 체력 소모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러면서도 본인은 항상 체력 안배를 합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투타】
우투우타
【특기】
1. 너구리.
2. S급 맞춰잡기.
3. 강심장.
4. 뛰어난 제구력.
5. 견제의 스페셜리스트.
6. 뛰어난 볼 배합 【NEW】
【호감도: + 75%】
타이탄스 선수로서 재능은 2% 올라 94%가 됐고, 새로운 특기로 ‘뛰어난 볼 배합’이 생성됐다.
‘좋군, 좋아.’
그때 홍진철은 한수의 시선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건넸다.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냈죠?”
“네···!”
한수는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홍 선수한테 거는 기대가 큽니다. 타이탄스의 미래가 홍 선수의 어깨에 달렸어요. 파이팅!”
홍진철은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고교 최고 유망주 강대한을 포기하고 만년 2등이던 그를 선택한 것도 고마운데···.
‘내가 타이탄스의 미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수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홍진철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엄지척했다.
“믿습니다.”
‘네 잠재 레벨을 말이야. 흐흐.’
그는 경기장이 잘 보이는 제일 앞줄에 자리 잡았다.
그때쯤 이소희가 돌아왔다.
“남정남은?”
“구단주님께 잘 말씀드릴 테니 안심하라고 한 뒤 귀가시켰습니다.”
“어떻게 처리할 거죠?”
“오늘 중으로 계약해지 통보하겠습니다. 뇌물을 받고 선수의 정보를 파는 건 계약 위반이니까요.”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오케이. 이 팀장이 수고해줘요.”
“네.”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녀는 한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 = = = = = =
타이탄스 2군 청백전(6이닝)은 0 : 1로 백팀이 승리했다.
염철수는 볼넷은 하나도 없이, 삼진도 9개나 잡으며 호투를 했다.
전과 달리 안정된 와인드업으로 투구를 한 덕분에 고교 시절 120km/h도 안 됐던 평균 구속이 대폭 올라갔다.
포심은 평균 139km/h, 투심은 평균 129km/h.
이닝을 거듭할수록 구속이 올라갔고, 마지막에 던진 포심은 145km/h였다.
심지어 무브먼트도 엄청나서 공의 구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호투와 달리 안타를 꽤 맞았는데···.
청팀 선수들이 수비실책이 많은 유격수 김효철 쪽을 계속 공략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위에 밀려 타자가 친 공이 빠르게 날아가지 않은 덕분에 2루수가 김효철 대신 뛰어다니며 간신히 실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리고 5이닝부터 염철수는 삼진만 노리기 시작했고, 6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했다.
그리고 6회 말, 무승부로 끝날 뻔한 순간···!
경기 내내 죽을 쓰던 김효철이 홈런을 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하여튼 중요한 건···.
‘염 선수가 입스를 극복했다는 거지!’
한수는 더그아웃 앞에 집합한 2군 선수들을 훑어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타이탄스의 미래를 책임질 여러분의 청백전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지만···. 여러분이 무척 멋진 경기를 펼쳤다는 사실만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2군 선수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염철수가 완봉승한 것 말고는 실책에 실책이 난무한 경기였다.
선수들은 생각했다.
‘지금 비꼬는 건가?’
‘그냥 가식 떠는 거 같은데?’
‘염철수가 잘해서 좋아하는 거 아냐?’
‘더 열심히 하라는 소리인가?’
그러나 한수가 감동한 건 정말 사실이다.
‘염 선수는 입스를 완벽히 극복했고, 김효철은 수비 훈련이 필요하지만, 위기 해결 A 특성 덕분에 팀을 승리로 이끄는 걸 확인했어. 그리고 강민수의 포수 능력이나 최민준 타격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파악했어. 그리고···.’
한수는 불만 가득한 표정의 박종구를 쳐다봤다.
에이스급 투수 잠재력을 보유했지만, 마운드에만 오르면 어마어마한 새가슴이 돼서 본래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는 연습 경기의 페드로.
그는 3회 초, 좌중간으로 빠지는 장타를 날렵한 몸놀림으로 잡더니 번개 같은 송구로 주자를 아웃시켰다.
이소희는 오늘 백팀이 승리한 건 박종구의 플레이 덕분이라며 치켜세우며,
[박종구, 최민준이 잘만 성장해준다면 이번에 독고준과 트레이드하는 오재근 선수와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거 같습니다.]
한수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좋아. 통합 우승을 향해 쭉쭉 나아가자!’
한수는 선수들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렇게 한수와 이소희는 경기장에서 걸어 나갔다.
= = = = = = =
경기장의 코치들과 선수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한수의 지시로 남정남 감독이 쫓겨났고, 갑자기 장보형 투수 코치가 임시 감독을 맡게 됐기 때문이다.
장보형과 평소 친분이 깊은 수비 코치와 주루 코치가 다가와서 물었다.
“선배, 어떻게 할까요?”
“훈련 끝내긴 조금 애매한 시간인데···.”
장보형은 잠시 고민하더니, 선수들을 보며 소리쳤다.
“오늘 훈련은 여기서 마친다. 각자 개인 정비를 하도록! 혹시 몸이 불편한 선수는 나한테 보고하고···. 그리고 염철수!”
의자에 앉아 아이싱하고 있던 염철수는 군기 잡힌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제 공 제대로 던질 수 있겠어?”
“그게···.”
염철수가 머뭇거리자, 청백전에서 함께 배터리를 했던 강민수가 엄지척하며 말했다.
“넌 잘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
“고맙습니다···!”
염철수는 장보형에게 큰소리로 대답했다.
“제대로 던질 수 있습니다!”
“좋아! 그럼, 내일부터는 투수 훈련이야. 각오해!”
“네! 알겠습니다!”
장보형은 염철수가 꾸벅 허리를 숙이자 피식 웃었다.
선수들을 해산시키고, 장보형은 홀로 더그아웃에 남아 ‘2군 선수(지명 선수, 육성 선수) 육성 계획’ 보고서를 펼쳤다.
‘제목이 낯이 익다 했더니, 정남 선배가 쓰레기라고 집어 던졌던 보고서네.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는데···.’
잘됐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보고서를 읽었다.
그러더니 곧 진지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아주 정확하게 선수들을 파악했는데? 정남 선배 미친 거 아냐? 이게 쓰레기라니···.”
그는 보고서를 덮으며 생각했다.
‘심상호 팀장이었지? 내일 연락해보자.’
= = = = = = =
타이탄스 프런트 오피스.
이소희는 퇴근 전에 남정남 감독 계약해지 문제를 처리하겠다며 운영팀으로 갔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쓴 채 스카우트팀으로 향했다.
‘외국인 용병 계약을 빨리 처리해야겠어.’
그때 스카우트팀 사무실에서 휠체어에 탄 고민수가 나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화려한 금발의 남자가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었다.
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외국인? 아니, 동양인인데···.’
그때 고민수가 한수를 발견하더니,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오후네요, 고 팀장. 그런데 이분은···.”
“아! 제가 예전에 잠깐 지도했던 친구입니다. 기용찬이라고 합니다.”
고민수는 부상으로 선수를 그만두고 지도자 과정을 밟았고, 몇몇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코치로 일한 적이 있었다.
기용찬도 그때 가르쳤던 선수다.
기용찬은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기용찬입니다.”
“반가워요, 이한수예요.”
한수는 악수를 하며 부산 갈매기의 삼륜안(三輪眼)으로 기용찬의 정보창을 확인하려고 했다.
그 순간 기용찬의 몸에서 하얀색이 흘러나왔다.
‘이건···!’
【기용찬】【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4%)
(타이탄스 코치진: 10%)
(타이탄스 프런트: 18%)
결론: 경기장의 하후돈 원양(元讓)입니다. 고교 시절 초특급 유망주였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오른쪽 어깨를 다쳤습니다. 오른쪽 어깨는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왼쪽 눈에 난시까지 심하게 왔습니다. 야구부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갔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야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오른쪽 어깨는 망가졌지만, 그는 좌완투수 훈련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현재는 싱글 A 팀에서 배팅볼 투수를 하고 있습니다.
└팁: 안경보다 시력교정술을 받는 걸 추천합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투타】
좌투우타
【특기】
1. 의지의 끝판왕
2. 강철 좌완
3. ??? 【개발 중】
4. 지독한 훈련 중독자
5. ?급 영점 조절 【개발 중】
6. 전력투구(全力投球) 【비활성화】
7. 내 사전엔 삼진(三振)밖에 없다!
【호감도: 0%】
아주 좋은 외국인 용병이 등장했다.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