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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41화 (41/187)

41화 : 제법 쓸만하네.

타이탄스 구장 근처, 사직 1동 어느 주택가.

기용찬은 고민수의 휠체어를 밀고 걸어가며 말했다.

“구장이랑 가까운데 집을 구하셔서 다행이에요. 아니었으면 출퇴근하기 힘드셨을 텐데···.”

“구단주님께서 도와주신 덕분이지.”

“아···.”

고민수는 힐끗 그를 보며,

“미국엔 언제 돌아가?”

“다음 주요.”

“가기 전에 또 보자. 그땐 둘이. 콜?”

기용찬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코치님.”

“저기 저 집이야. 이젠 나 혼자 가도 돼. 데려다줘서 고마워.”

“별말씀을요. 빨리 나으셔야 할 텐데···.”

“재활 치료도 꾸준히 받고 있으니, 곧 낫겠지.”

그렇게 말하며 고민수는 밝고 건장한 옛 제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부상에 절망하며 꿈을 포기하려던 어두운 소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행인가? 하지만···.’

고민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실 그는 기용찬한테 죄책감이 있다.

꿈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으려던 기용찬을 붙잡은 게 그였기 때문이다.

지금 포기하면 평생 후회한다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꿈을 이루라고···.

물론 기용찬을 위해서 했던 말이라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거다.

하지만 그때 기용찬을 일으켜 세운 건 고민수 자신을 위해서였다···.

고민수는 고교 시절 부상으로 은퇴를 한 뒤, 수도 없이 후회했다.

‘조금 더 재활 치료에 힘쓸걸···.’

‘돈이 많이 들겠지만 그래도 방법을 찾아볼걸···.’

‘너무 쉽게 꿈을 포기한 건 아닐까?’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고, 그의 가슴 속엔 후회만 가득 남았다.

그때 만난 게 기용찬이었고···.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기용찬에게 재활을 강요했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그 결과···.

기용찬은 꿈이라는 족쇄에 사로잡혀···.

마이너리그 싱글 A팀에서 배팅볼 투수를 하며 홀로 고통스러운 재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나만 아니었어도 편한 인생을 살았을···.’

그때 기용찬이 고민수의 어깨를 잡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 멱살을 잡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시던 코치님께서 왜 이렇게 약한 표정이십니까?”

“······.”

“금방 나으실 겁니다. 응원하겠습니다.”

“고맙다. 기찬아···.”

“아닙니다. 코치님 덕분에 저는 계속 야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 은혜를 생각하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죠.”

고민수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기용찬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떨군 채 말했다.

“···기찬아, 혹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 내가 뭐든 도와줄게.”

“하하,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때 고민수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구단주님? 어쩐 일이시지?’

그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구단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고 팀장, 혹시 기용찬 씨랑 아직 같이 있나요?]

“용찬이요? 네, 그렇긴 한데···.”

[그럼 전화 좀 바꿔주세요.]

“······?”

갑작스러운 한수의 부탁에 고민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수가 이상하리만큼 기용찬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 같았다.

그는 기용찬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구단주님이신데 좀 바꿔 달라셔서···.”

“네? 저를요?”

기용찬은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한수가 조금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지만, 고민수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용찬 씨, 내일 뭐 합니까?]

“네? 딱히 할 일은 없는데···.”

기용찬은 생각 없이 대답하고 아차! 했다.

약속이 있다고 할걸···!

아니나 다를까, 한수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일 타이탄스 2군 경기장 가볼래요?]

“네? 2군 경기장이요? 거긴 왜···.”

[아까 식사 때 말했잖아요. 다시 마운드 위에 올라 타자들과 승부를 겨뤄보고 싶다고요.]

확실히 그런 말을 했었다.

하지만 트라이아웃이나 연습 경기가 아니고, 프로 경기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게 2군 경기장에 가는 거랑 무슨 상관···.’

그 순간, 한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청백전에서 선발 투수할래요?]

“···선발 투수요?”

왜?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어서 오늘 한수가 그에게 했던 말과 행동들이 떠올랐다.

‘이 사람, 설마···.’

한수가 재차 물었다.

[어떻습니까? 콜?]

기용찬은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 = = = = = =

타이탄스 프런트 오피스, 주차장.

한수는 기용찬과 통화를 끝내고 맞은편에 서 있는 이소희에게 말했다.

“용찬씨가 오케이 했어요. 장보형 감독한테 연락해서 내일 청백전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용병 카드를 쓰지 않고 기용찬을 타이탄스로 데려오는 방법이 있다고 했죠?”

“네.”

“일단 내일 경기를 보고 결정하죠.”

그녀는 한수가 왜 이렇게 기용찬을 원하는지 이해는 안 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한수는 빙긋 웃으며,

“내일도 염 선수가 던져야 하나?”

“아뇨. 오늘 연습 경기치곤 투구수가 많았습니다. 내일은 다른 선수를 선발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김효철 선수도 빼야 할 겁니다. 수비 실책이 너무 많아서 공정한 평가가 되지 않을 거예요.”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내일 청백전 출전 선수는 이 팀장이 장보형 감독이랑 상의해서 결정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정남 감독은 뭐라던가요?”

“···계약해지 통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순순히 말이다.

그녀는 ‘혹시···?’하는 눈빛으로 한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한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거 잘됐네. 고생했어요.”

분명 한수가 뭔가 조치를 한 거다.

하지만 남정남은 2군에서 평판도 안 좋고 쫓겨날 만하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2군 경기장에서 봅시다!”

“네, 조심히 가세요.”

그리고···.

다음 날이 됐다.

= = = = = = =

아침, 타이탄스 2군 상동 구장, 감독실.

장보형은 한숨을 내쉬며 감독실로 들어왔다.

그는 방금 짐을 챙겨 떠나는 남정남을 배웅했다.

‘정남 선배, 성격이 보통이 아닌데···.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줄이야.’

아쉬운 건 아니다.

남정남은 코치진이나 선수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팀을 운영해왔다.

아무리 감독이 최고 사령탑이라지만, 정도가 있는 법이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고개를 휘휘 젓고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프런트 육성팀 심상호 팀장 연락처를 찾았다.

심상호가 작성한 보고서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이었으며 열정이 느껴졌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그리고 연락하려는 순간, 수비 코치가 감독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선배! 왔습니다!”

그 말에 장보형은 긴장한 표정을 했다.

“···애들 몸은 다 풀었지?”

“네! 그런데 오늘 청팀 선발로 테스트한다는 마이너리그 투수가 누굽니까?”

“나도 몰라.”

“스카우트팀이 외국으로 나갔단 연락도 못 받았는데···. 선배, 마이너리그에서 코치 생활 오래 하셨잖아요. 혹시···.”

“마이너리거가 한 둘이냐? 누가 올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일단 가보면 알겠지.”

수비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보형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잠시 후, 경기장에 도착한 장보형은 한수 옆에 서 있는 큰 키에 금발로 염색한 남자를 발견하고 눈가를 움찔했다.

‘저 친구가 용병인가? 동양인 같은데···. 그런데 낯이 익네.’

하지만 생각은 나중이다.

그는 후다닥 뛰어가 한수에게 인사부터 했다.

“오셨습니까, 구단주님!”

“장 감독, 좋은 아침입니다. 아, 인사하시죠. 여기는 오늘 청팀 선발 기용찬 선수입니다.”

장보형은 기용찬이라는 이름이 낯이 익었지만 잘 생각나지 않았다.

기용찬은 웃으며 장보형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기용찬입니다.”

“반가워요. 타이탄스 2군 임시 감독인 장보형이에요. 오늘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보형은 기용찬과 악수를 나누며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본 친구인데···.’

한수는 웃으며 포수 마스크를 쓰더니 말했다.

“자, 그럼 더그아웃으로 갑시다.”

장보형은 몹시 부담스러운 표정을 했다.

‘또, 더그아웃으로···. 숨 막히겠네···.’

그러나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한수에게 관중석으로 가라고 할 용기는 없었다.

그때 이소희가 다가오더니 인사했다.

“장 감독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 팀장님.”

“‘그 선수’는 왔나요?”

“네, 이른 아침부터 와서 몸을 풀더군요. 역시 성실한 선수입니다.”

이소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행이네요.”

“그런데 저 용병이 누구길래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겁니까? 사실 기용찬이라는 선수는 들어본 기억이 없어서···.”

옆에 있던 수비 코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선배, 기용찬이면···. 광양중 기용찬 아닙니까?”

“광양중 기용찬? 그게 누군데?”

그때 이소희가 말했다.

“십이 년 전,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퍼펙트게임으로 팀을 승리로 이끈 천재 투수가 있었죠.”

그 순간, 장보형의 눈이 커졌다.

‘아···! 맞아!’

중학생이면서 평균 구속 143km/h의 포심을 미친 듯이 던져대던 천재 투수!

올해 최고 유망주라는 동산고 강대한도 당시 기용찬의 명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중학생인 기용찬의 경기를 직접 보러 올 정도였다.

장보형과 수비 코치는 기용찬의 상황을 떠올리며 이소희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알기로 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싱글 A 구단에서 배팅볼 투수를···.’

‘어깨 망가진 애를 어디에 쓰려고···.’

이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계속했다.

“두 분이 무슨 생각하는지 짐작돼요. 하지만 구단주님께서 기용찬 선수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기용찬은 제대로 공을 던질 수도 없을 텐데···.”

“이건 보나 마나 시간 낭비···.”

“괜한 말로 구단주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마세요. 이건 두 분을 위해 드리는 말씀이에요. 아셨죠?”

장보형과 수비 코치는 움찔하더니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희는 빙긋 웃으며,

“자, 그럼 갈까요? 구단주님께서 기다리시겠어요.”

= = = = = = =

더그아웃에 들어온 한수의 귀로 강렬한 배트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2군 선수들의 주목을 받으며 용 그림이 그려진 배트로 스윙 연습을 하는 선수를 발견했다.

다부진 체격, 잘생기고 순수한 느낌을 주는 외모.

바로, 타이탄스 1군 포수, 하민철이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오랜만이네.’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서 독고준한테 갈굼을 받던 하민철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디 정보창 좀 볼까?’

아직 1군 선수 중에 정보창을 확인하지 못한 선수도 있는데, 하민철도 그중 하나였다.

부산 갈매기의 삼륜안(三輪眼)이 발동했다.

하민철의 몸에서 찬란한 하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

그리고 Platinum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하민철】【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2%)

(타이탄스 코치진: 89%)

(타이탄스 프런트: 86%)

결론: 경기장의 육손(陸遜)입니다. 선수로서 피지컬, 지능 모든 게 뛰어난 선수입니다. 웬만한 코치진보다 상황판단이 뛰어납니다. 투수는 하민철의 리드만 따라도 타자와 승부에 이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자존심이 센 투수랑 잘 맞지 않습니다.

【포지션】

1순위: 포수

2순위: 지명 타자

【투타】

우투우타

【특기】

1. S급 안방마님

2. 거미손

3. 강철 수비

4. 황룡 타법.

5. 내 리드를 따라와! 넌 이길 수 있고!

6. 천사표 트래쉬토크

【호감도: + 15%】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제법 쓸만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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