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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42화 (42/187)

42화 : 난 네가 뜰 거라고 믿는다, 반드시!

하민철은 더그아웃이 소란스러워진 걸 듣고 스윙 연습을 멈췄다.

2군 선수들이 군기가 바짝 든 모습으로 얼굴에 포수 마스크를 쓴 정장 남자에게 인사를 하는 게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구단주님!”

“구단주님,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구단주님!”

하민철은 깊은 눈빛을 하며 생각했다.

‘이한수 구단주···.’

시즌 마지막 날, 라커룸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1군 선수들한테 똥 덩어리라고 하며 막말을 했던···.

그때는 그냥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이어진 한수의 행보는 상상을 초월했다.

박종철 사장, 김종문 단장, 타이탄스 삼재(三災), 염규식 감독, 남정남 2군 감독, 프랜차이즈 스타 독고준까지···.

거슬리는 건 전부 처리해버렸다.

이와 같은 상황에 1군 선수들은 생각했다.

‘우리도 방출될 수 있어.’

‘트레이드되면 X 되는 거야. 타이탄스니까 우리가 1군으로 뛸 수 있지···.’

‘구단주면 구단주답게 돈이나 줄 것이지. 지가 단장이야? 젠장···.’

‘프런트에 구단주실을 만든다는 거 같은데···.’

‘곧 연봉 협상인데···. 방출되는 건 아니겠지?’

물론 모두가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 본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하민철은 한수의 결정을 지지했다.

‘구단주의 선택은 전부 타이탄스에 이득이 되는 행동이야. 물론 방법은 조금 과격하지만···.’

무엇보다 편 가르기를 하며 팀을 분열시키고 자기 입맛에 맞는 유망주들만 밀어주는 독고준을 트레이드한 건 최고의 결정이었다.

한수 옆에 서 있는 금발의 장한, 기용찬이 눈에 들어왔다.

‘저 사람이 외국인 용병인가? 체격이 좋긴 하지만···. 한국 사람 같은데?’

그때 한수가 기용찬과 함께 하민철에게 다가왔다.

하민철은 배트를 내려놓고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구단주님.”

“오랜만이네요. 라커룸에서 보고 처음이죠?”

“네.”

“1군 선수들하고도 정식으로 인사를 나눠야 하는데···.”

“저를 비롯한 1군 선수들 모두 구단주님과 만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1군 선수들이 하민철의 말을 들었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을 거다.

한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참 고맙네요. 언제 한 번 1군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도 마련해보죠.”

“무척 기대됩니다!”

하민철을 보고 있자니, 강덕수가 떠올랐다.

‘둘이 비슷한 느낌이야. 내 말을 아주 잘 들을 것 같은···. 그나저나 덕수 이 녀석 중간 보고 할 때가 됐는데···.’

강덕수는 히어로 메이커 프로젝트를 위해 한수가 지시한 일을 하고 있다.

‘오늘내일 중으로 연락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하민철에게 기용찬을 소개했다.

“이분은 기용찬 선수입니다. 오늘 청팀 선발 투수죠! 미국인으로 귀화한 분이죠.”

하민철은 눈가를 움찔했다.

기용찬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어봤지?’

기용찬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기용찬입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하민철입니다.”

그때 한수가 말했다.

“기용찬 선수도 몸 좀 풀어야죠?”

“네.”

“경기장 내부에 불펜이 있다고 합니다. 거기서 투구 연습 어때요?”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때 하민철이 물었다.

“마이너리그에서 활동 중이신가요?”

“네, 싱글 A 레이크 엘진노어 스톰 구단에서 배팅볼 투수를 하고 있습니다.”

“아, 네···. 응? 배, 배팅볼 투수요?”

그러자 한수가 웃으며 말했다.

“배팅볼이면 어떻고, 머니볼이면 어떻습니까? 잘만 던지면 그만이지!”

하민철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지만···.

기용찬은 어색한 표정으로,

“···전 그럼 준비하러 가보겠습니다.”

= = = = = = = =

타이탄스 2군 경기장 홈팀 라커룸.

기용찬은 레이크 엘진노어 스톰 선수복을 입고 안경을 쓰며 라커룸에서 나갔다.

‘선수복을 한국에서 입을 줄 몰랐네. 챙겨와서 다행인가?’

그는 투구 연습을 하러 불펜으로 향했다.

그때 강렬한 미트 소리가 들렸다.

포수 미트에 강속구가 꽂히는 소리가 분명했다.

‘다른 투수가 투구 연습 중인가?’

잠시 후, 깔끔하게 지어진 불펜이 보였다.

상동 경기장의 불펜은 원래 야외에 있었지만, 내부 리모델링을 하면서 안으로 옮겨졌다.

거기선 금테안경을 쓴 앳된 청년, 염철수가 투구를 하고 있었다.

역동적인 와인드업, 내리꽂히듯 뻗어지는 팔.

그리고···.

-휘이이이이익!

강한 파공음과 함께 쏘아지는 공.

강렬한 소리와 함께 포수 미트에 잡혔다.

기용찬은 눈을 반짝였다.

‘무브먼트가 굉장해. 공 끝이 살아 있는 거 같아. 구속만 더 높이면 훨씬···!’

그때 강민수가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몇 구만 더요. 조금만 더하면 뭔가···.”

“인마, 쉴 땐 쉬어야지. 그리고 내일부터는 나 말고 세준이한테 부탁해! 난 외야수라고! 외야수!”

“하지만···. 어?”

염철수는 기용찬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강민수도 뒤를 돌아보고 낯선 유니폼을 입은 기용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세요?”

“저는 기용찬입니다. 오늘 테스트 경기 선발을 하러 온···.”

“그러시구나. 혹시 투구 연습하러 오셨어요?”

“뭐, 그렇죠···.”

그때 염철수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물었다.

“외국인 용병이시면 어디서 오신 건가요?”

“마이너리그 싱글 A에서 배팅···.”

배팅볼 투수라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염철수가 흥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마이너리그면 미국이죠!? 와! 대단해요! 그렇죠?”

강민수는 미국이라는 말에 눈가를 움찔했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그렇지···.”

그러자 기용찬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아뇨. 아뇨. 주전 선수는 아닙니다. 그냥···. 배팅볼 투수예요.”

강민수는 미간을 좁히며,

“용병 테스트하러 오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도 왜 저를 테스트하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강민수는 김이 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염철수가 말했다.

“저기···. 투구 연습하는 모습 지켜봐도 될까요? 어떤 공을 던지시는지 궁금해서요. 부탁드립니다!”

열의에 찬 밝은 눈빛.

거절하기 힘들었다.

어차피 투구 연습을 하려고 했고, 사실 본다고 닳는 것도 아니다.

“편할 대로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포수는···. 민수 선배가···?”

강민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야, 난 외야수···.”

그때 기용찬이 말했다.

“포수는 괜찮습니다.”

“······?”

“······?”

의문스러운 표정을 하는 두 사람.

기용찬은 불펜으로 들어오더니 야구공이 잔뜩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 투구 위치로 걸어갔다.

혼자 던지는 게 무척 익숙해 보였다.

염철수와 강민수는 자연스럽게 불펜에서 나왔다.

“왜 포수가 필요 없다는 걸까요?”

“글쎄, 혼자가 편한가 보지.”

그때 기용찬은 공을 하나 잡더니 와인드업했다.

흔치 않은 좌완투수였다.

인상 깊은 점은 그의 투구폼이 무척이나 빠르고 간결하다는 거다.

-휘이이이익! 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타석을 향해 공이 날아갔다.

“······.”

“······.”

빠르지만 무브먼트가 거의 없다.

타자가 치기 좋은 무척이나 가벼운 공이다.

강민수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배팅볼 투수다운 공이네.’

염철수가 조심스레 말했다.

“구속은 엄청 빠른 거 같은데요···.”

그때 기용찬이 새로운 공을 잡고 와인드업했다.

그리고 다시 공을 던졌다.

-휘이이이익!

구속은 좀 더 올랐다.

하지만 역시나 평범했다.

강민수는 담담히 말했다.

“150km/h 가까이 나올 거 같긴 한데···. 이래선 그냥 홈런 맞을 공이야.”

“음···.”

“구속보다 중요한 건 제구력과 무브먼트야. 빠르기만 한 공은 타이밍만 잘 잡으면 끝이야.”

“네···.”

그러면서 염철수는 의아한 눈으로 기용찬을 쳐다봤다.

‘···왜 전력투구를 안 하는 거지?’

이어지는 세 번째 공.

이번에도 타자한테 쳐달라는 거나 다름없는 공이었다.

기용찬은 무표정하게 공을 계속 던졌다.

강민수는 더는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철수야, 그만 보고 벤치로 가자.”

“네? 하지만···.”

염철수는 기용찬의 투구를 더 보고 싶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뭔가 계속···.

“인마, 나 오늘 백팀 외야수로 출전한다고.”

“네···.”

염철수는 아쉬운 눈빛으로 기용찬을 한 번 더 바라보더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파이팅하세요!”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갔다.

기용찬은 멀어지는 염철수를 보며 피식 웃더니,

“재밌는 아이네.”

홀로 남은 기용찬은 손에 든 공을 바라보다가 왼쪽 어깨를 바라봤다.

두근거리는 어깨는 미쳐 날뛰고 싶어 하는 거 같았지만, 그는 한숨을 내쉬고 안경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괜한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그는 다시 투구를 시작했다.

= = = = = = =

타이탄스 2군 경기장.

기용찬은 마운드에 오르자 기분이 묘했다.

고민수를 만나러 부산에 올 때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곤 꿈도 꾸지 못했는데···.

그때 하민철 포수가 다가왔다.

“기용찬 선배님, 바로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네···?”

“저, 광양중, 광양고 출신입니다.”

“아···.”

기용찬의 동문 후배였다.

인연이라면 인연.

기용찬은 웃으며 말했다.

“이런 몰랐네요. 잘 부탁해요.”

“아닙니다. 제가 먼저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응.”

하민철은 빙긋 웃더니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좌완이시죠?”

“응.”

“제구력은···.”

“원하는 코스로 다 던질 수 있어.”

“정말이요?”

“···응.”

하민철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완에서 좌완으로 바꿨는데 제구력에 문제가 없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고···.

그때 기용찬이 작게 말했다.

“···배팅볼 수준에선 말이지.”

“네?”

“아냐. 아무것도.”

“던질 수 있는 구종은 어떻게 되세요?”

“포심, 슬라이더가 주무기. 나머진 그냥 그래···.”

“그럼 구종은 둘로 하고, 코스 사인은···.”

하민철의 설명을 들은 기용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민철은 홈플레이트로 돌아가려다가 멈칫했다.

기용찬이 했던 말이 걸렸기 때문이다.

‘배팅볼 수준에선···?’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기용찬을 보며 말했다.

“선배님, 폭투하셔도 괜찮습니다.”

“뭐?”

“제가 잡는 건 자신 있거든요. 그러니까 마음껏 던지세요.”

하민철의 포구 능력은 KBO에서도 한 손에 꼽힌다.

이소희가 하민철을 부른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혹시라도 좌완으로 투구를 바꾼 기용찬이 폭투를 하면 안 되니까.

기용찬은 하민철을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든든하네. 고마워.”

“그럼, 파이팅입니다!”

하민철이 포수석으로 향하자, 기용찬은 공을 꽉 쥐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사용하는 공보다 조금 더 거친 느낌.

그래서일까?

그립감은 더 좋았다.

왠지 모르게 제구가 더 잘 될 거 같은 기분.

‘전력투구해볼까?’

하지만 망설여졌다.

그때 타석에 타자가 들어섰다.

공교롭게도 아까 만났던 강민수였다.

기용찬은 의외라는 눈빛을 했다.

‘포수인데 1번? 뭐지?’

하지만 연습 경기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는 하민철을 바라봤다.

사인이 왔다.

포심, 몸쪽 상단.

초구부터 위협적인 공이다.

‘기선 제압을 하려는 건가? 보기와 달리···.’

공을 쥐었다.

‘어떻게 할까?’

도전해볼까?

아니면, 안전하게···.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며 와인드업했다.

타자의 타이밍을 뺏기 위해 만든 간결하고 빠른 투구 자세.

이대로 어깨에 전력을 다하면···.

그 순간, 강민수와 다른 사람 얼굴이 겹쳐졌고, 어떤 남자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아악···!]

동시에 기용찬의 어깨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휘이이이익!

빠르지만 가벼운 배팅볼이 날아갔다.

포수를 보던 하민철은 미간을 찡그렸다.

‘안 돼···!’

그 순간, 강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을 하던 배트를 가볍게 휘둘렀다.

-따아아아악!

제대로 맞은 타구.

공은 쭉쭉 뻗더니 좌익수 쪽 펜스를 넘겼다.

“흠···!”

강민수는 근육질 팔을 번쩍 들어 보이며 출루했고, 기용찬은 모자를 눌러쓰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민철은 그런 기용찬을 보며,

‘선배님의 와인드업이 갑자기 뚝 끊어진 기분이 들었는데···. 뭔가 문제가 있으신가?’

가서 얘기해볼까 했지만···.

일단 기용찬을 더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기용찬은 2회 7실점을 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 = = = = = =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한수는 라커룸으로 향하는 기용찬을 힐끗 보더니, 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바라봤다.

-띠링!

【기용찬(Platinum 등급)의 정보창이 업데이트됐습니다. 팁 ②가 개방됩니다!】

‘업데이트···. 팁 ②···.’

【기용찬】【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4%)

(타이탄스 코치진: 10%)

(타이탄스 프런트: 18%)

결론: 경기장의 하후돈 원양(元讓)입니다. 고교 시절 초특급 유망주였습니다.

···(중략)···

└팁①: 안경보다 시력교정술을 받는 걸 추천합니다!

└팁②: 기용찬은 좌완 훈련을 도와주던 소중한 사람의 머리에 폭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전력투구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즉, 입스입니다!

···(중략)···

【특기】

1. 의지의 끝판왕

2. 강철 좌완

3. ??? 【개발 중】

4. 지독한 훈련 중독자

5. ?급 영점 조절 【개발 중】

6. 전력투구(全力投球) 【비활성화】

7. 내 사전엔 삼진(三振)밖에 없다!

【호감도: 1%】

한수는 중얼거렸다.

“또 입스냐?”

그때 옆에 있던 이소희가 물었다.

“구단주님, 어떻게 할까요?”

“계약서 준비하세요.”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육성 선수 계약 준비하세요.”

“현명한 선택이세요. 어차피 기용찬 선수는 바로 활용이 어려우니까 재활에 힘쓰고, 용병 카드는 뛰어난 투수로 찾아봐요!”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기용찬 코인···. 난 네가 뜰 거라고 믿는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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