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 연습 경기를 제안했습니다.
페르난도 킴의 몸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졌고, 한수의 앞에 Diamond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한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보창을 확인했다.
【페르난도 킴】【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6%)
(타이탄스 코치진: 95%)
(타이탄스 프런트: 89%)
결론: 더그아웃의 가후(賈詡)입니다. 그는 작전을 짤 때 스스로 의견을 내세우기보다는 코치진과 선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여러 의견을 종합해서 전술, 전략을 짭니다. 줏대가 없는 게 아니고, 팀을 하나로 뭉치기 위한 그의 처세술입니다.
굉장히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 같지만, 사실 사람을 대하는 처세술입니다. 그는 집에서 혼자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보면서 지내는 걸 좋아합니다.
회식이 잦으면 컨디션이 나빠집니다! 주의해주세요!
【적성】
1순위: 감독
2순위: 수석 코치
3순위: 타격, 투수, 수비, 도루 코치
【특기】
1. SSS 급 처세술
2. 데이터 반, 믿음 반 절묘한 팀 운용.
3. 귀를 기울이면···.
4. 안목 [포수, 투수, 수비 코치, 배터리 코치]]
5. 회의의 마에스트로
6. 선수 육성 [포수, 내야수, 외야수]
7. 온화한 카리스마
8. 선수 응원의 달인
【호감도: 0%】
아주아주 마음에 드는 정보창이었다.
‘흐흐, 이렇게 다이아몬드가 제 발로 찾아오다니···!’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으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페르난도 킴을 응시했다.
그러자 양승진과 이소희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시지?’
‘설마, 페르난도 킴 감독이 마음에 드신 건가?’
아니나 다를까 다른 후보자에겐 전혀 질문을 하지 않았던 한수가 입을 열었다.
심지어 스페인어였다.
“한국어 할 줄 압니까?” (스페인어)
“······!”
페르난도 킴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한수를 보더니, 이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할 줄 압니다.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가르쳐줬어요. 어머니도 K 드라마 좋아해요. 저도 K 드라마 아주 좋아해요.”
말투는 조금 어색했지만, 의사소통하기엔 충분했다.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좋아요. 의사소통 문제도 해결됐고···. 몇 가지 질문을 할게요. 축구 선수를 하다가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뭔가요?”
“킥을 못해서 팀에서 쫓겨났어요. 친구가 제가 공 잡는 거 잘하니까 야구를 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야구 선수 됐어요!”
황당한 이유였지만, 한수는 페르난도 킴의 친구한테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덕분에 페르난도 킴을 만났으니까.
“오케이. 그러면 휠체어 농구팀 코치는 왜 한 겁니까?”
페르난도 킴의 이력 중 가장 특이한 게 이거였다.
야구 지도자로 커리어를 쌓던 중 갑자기 농구팀 코치라니? 그것도 휠체어 농구팀 말이다.
페르난도 킴은 이 질문이 나올 거라고 예상한 듯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일하다가 다리를 다쳤어요. 아버지는 무척 밝은 분이었어요. 그런데 다치고 변했어요. 매일 술을 마시고 울었어요. 아버지를 가만히 둘 수 없었어요.”
한수는 눈가를 움찔했다.
왜냐면 한수 어머니도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물론 그의 어머니는 술도 안 마셨고, 울지도 않았다.
그저 웃지 않게 됐을 뿐이다.
그 어떤 일에도···.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깃들어요. 아버지는 휠체어 농구를 시작하고 다시 밝아졌어요. 어머니도 기뻐해요. 전 아버지를 돕기 위해 농구 공부를 했어요.”
한수는 생각했다.
‘이 사람···. 나보다 낫네.’
그는 어머니가 다리를 다치고 떼를 쓰기 바빴다.
물론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페르난도 킴은 한수를 살피며 생각했다.
‘사연이 있는 눈빛이네. 면접관 중에서 제일 입김이 센 거 같긴 한데···. 운영 팀장? 아니, 단장인가?’
그때 한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 잘 들었어요. 그럼 마지막 질문. 타이탄스가 팔 년 연속 꼴찌를 하는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죠?”
“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전에 질문 하나 할게요!”
“말해봐요.”
페르난도 킴이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능숙한 한국어로 물었다.
“당신의 목표는 타이탄스의 꼴찌 탈출인가요?”
“······.”
“아니면···.”
페르난도 킴은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우승입니까?”
한수는 피식 웃더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우승.”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어떻게 하면 타이탄스가 우승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 어때요?”
페르난도 킴을 바라보는 이소희와 양승진의 눈빛도 변했다.
좀 전에 면접을 보고 나간 두성 그리즐리스 왕조를 세운 임태현 감독도 감히 타이탄스의 우승을 논하지 못했다.
그저 최선을 다해 포스트 시즌을 노려보자고 했다.
타이탄스는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악명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신감 넘치게 타이탄스 우승을 논하는 사람은···.
‘이 사람 설마···.’
‘이 사람 역시···.’
단 하나밖에 없다.
‘타이탄스 팬인가?’
‘부산 갈매기인가 보네···.’
두 사람은 속으로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한수는 페르난도 킴의 정보창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했다.
‘자신 있다는 거겠지? 흐흐.’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좋아요. 그럼, 당신 말대로 질문을 바꿔보죠. 우리 타이탄스가 내년에 통합 우승을 할 수 있을까요?”
페르난도 킴은 살짝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 하나를 펼치며 말했다.
“La cooperación es el primer requisito para la victoria. (승리의 첫 번째 조건은 협동입니다.)”
양승진과 이소희는 갑작스러운 스페인어에 당황해서 눈을 끔벅였지만, 한수는 담담하게 물었다.
“첫 번째가 협동이면···. 두 번째, 세 번째도 있다는 말이죠?”
페르난도 킴은 대답했다.
“네, 그래요. 협동은 기본이죠. 하지만 타이탄스는 기본이 안 됐어요. 감독 따로~ 코치 따로~ 선수들도 따로~ 따로~ 야구는요. 팀 스포츠에요.”
이소희는 눈가를 움찔했다.
페르난도 킴의 말대로 타이탄스가 코치진과 선수들 간의 묘한 알력도 있지만···.
‘기본이 안 됐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데···. 그 사람들도 우승을 바라며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한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협동이 필요하다는 교과서 같은 얘기는 됐고, 실질적인 방법을 듣고 싶네. 타이탄스 우승, 어떻게 이룰 겁니까?”
페르난도 킴은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 합격입니까?”
“······?”
“합격도 안 했는데, 제 밑천을 내보일 수 없어서요.”
한수는 ‘이놈 봐라?’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양승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합격, 불합격이 결정될 겁니다. 하지만 입을 다물면···. 당연히 불합격이죠.”
페르난도 킴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면~ 두 가지만 얘기하겠습니다.”
“오케이. 말해봐요.”
페르난도 킴은 손가락을 하나 펼치며 말했다.
“첫 번째, 타이탄스에는 호타준족(好打俊足)의 선수가 부족해요. 잘 치는 선수는 거북이~ 잘 뛰는 선수는 선풍기~.”
이소희는 눈가를 움찔했다.
‘이 사람···.’
그때 한수가 대답했다.
“22시즌 평균 도루 순위와 도루 성공률 순위가 평균 7.8위···. 즉, 8위라는 소리죠?”
“오~ 맞아요! 물론 잘 치긴 해요~ 팀 타율은···.”
“10시즌 평균 3.9위. 4위죠. 그런데도 팀 순위는 계속 최하위권인 건···. 적은 점수 차로 패배한 경기가 참 많았기 때문이죠.”
페르난도 킴은 박수를 치며,
“오! 맞아요! 정확히 파악하고 있네요. 타이탄스는 호타준족 선수를 육성해서 도루 플레이를 해야 해요~! 그렇게 해서 적은 점수 차를 채우는 거죠~! 그리고 이것과 연결돼서 두 번째로···.”
한수는 팔짱을 끼더니,
“10승 투수와 노련한 클로저의 부재.”
“오···.”
올 시즌 타이탄스 선발 투수 중에서 10승을 넘은 건 1선발 찰스 스팅(14승, ERA: 3.01)뿐이다.
불꽃 투수 독고준도 재작년까지는 10승을 해줬지만, 작년부터 폼이 떨어지더니 두 시즌 연속 9승, 8승을 기록했다.
그 외에 다른 선발은 말할 필요도 없고···.
즉, 선발 투수가 엉망이라는 소리다.
그리고 문희동이라는 뛰어난 셋업맨이 있음에도 마무리 투수가 늘 아쉬운 상황인 것도 맞았다.
페르난도 킴은 한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누굽니까? 혹시 전략팀 팀장입니까?”
한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구단주입니다.”
“구단주···?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팀 사정을 잘 아냐고 물으려다가 한수는 힐끗 옆에 앉은 이소희를 쳐다봤다.
지금 말한 내용은 이소희가 처음 제출했던 보고서에 적혔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주 뛰어난 직원 덕분이죠.”
페르난도 킴도 슬쩍 이소희를 쳐다봤다.
‘혹시 저 여자가···.’
그때 한수가 말했다.
“양 사장, 이 팀장 혹시 질문할 거 더 있나요?”
“···없습니다.”
“저도 없습니다.”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페르난도 킴에게 말했다.
“얘기 잘 들었어요. 결과는 나중에 통보하도록 하죠. 수고했어요.”
페르난도 킴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양승진이 입을 열었다.
“구단주님, 혹시···.”
한수는 담담히 말했다.
“페르난도 킴으로 하죠. 두 사람은 어떻게 생각해요?”
양승진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했다.
‘능력은 있는 거 같지만···.’
그는 페르난도 킴이 조금 꺼림칙했다.
가식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팀 성적만 올려준다면야 괜찮지만···.
양승진은 힐끔 이소희를 쳐다봤다.
‘이 팀장은 어떻게 생각하지?’
그때 이소희가 말했다.
“···감독을 맡겨보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요?”
“다만, 계약서에 성적이 좋지 못하면 시즌 중이라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음을 명시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호오~ 그런 계약서에 서명을 할까요?”
이소희는 페르난도 킴이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인 능력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 같아요. 자존심을 조금 건드리면 서명할 겁니다.”
“양 사장 생각은 어때요?”
“···저도 페르난도 킴이 능력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자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페르난도 킴과 계약을 진행하죠. 연봉은···.”
“2년 계약으로 계약금 포함 9억이 적당할 거 같습니다.”
“오케이. 이 팀장이 페르난도 킴과 계약 전담하세요.”
“네!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이소희는 한수와 양승진에게 꾸벅 인사하더니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양승진이 한수에게 말했다.
“감독이 정해지면 선수 연봉 협상도 진행해야 하는데···. 내년도 운영 자금 인상은···.”
한수는 담담히 말했다.
“인상 안 됐습니다.”
“아···. 그렇군요.”
양승진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단장이 공석이니까. 선수 연봉 협상은 양 사장이 이 팀장과 협력해서 진행해요. 중간중간 저한테 진행 상황 보고하고요.”
“알겠습니다.”
한수는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짬밥대로 연봉 정하지 말고, 데이터에 근거해서 계약하세요. 아셨죠?”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사장실 전화가 울렸다.
양승진이 말하기 전에 한수가 입을 열었다.
“전화 받으세요.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네, 고생하셨습니다.”
“양 사장도 수고했어요.”
양승진은 책상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윤가희 사원? 무슨 일이야?”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챙겨서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였다.
“뭐? 신성 스페이스에서?”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양승진을 돌아봤다.
‘신성 스페이스?’
“알겠어. 일단 기다려봐. 일단 코치진이랑도 상의해봐야지. 그래, 수고해.”
양승진이 전화 통화를 끝내자, 한수가 물었다.
“신성 스페이스에서 연락이 왔나요?”
“네.”
“설마 트레이드···.”
“아뇨, 그게 아니고, 연습 경기를 제안했습니다.”
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올 시즌 1위로 한국 시리즈에 직행한 신성 스페이스가 우리한테 연습 경기를 제안했다고!?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