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49화 (49/187)

49화 : 짐 싸라.

한수는 선수단 식당이 맛집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염 선수 어머니가 영양사로 왔지.’

염철수의 어머니 김명숙은 무려 Platinum 등급의 인재다.

정보창에는 프런트의 황충(黃忠)이라며 어떤 사람의 입맛도 저격할 수 있는 백발백중의 요리사라고 적혀 있었다.

보통 영양사는 조리까지 직접 하진 않지만···.

김명숙은 요리를 무척 즐기는지라, 영양사 업무뿐만이 아니고 조리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다.

덕분에 선수단 식당 음식 맛은 무척 좋아졌다.

프런트 직원, 코치진, 선수들 모두 선수단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말이다.

강덕수는 기대하며 물었다.

[오늘 선수단 식당에서 점심 어떠십니까?]

“오케이. 그럼 식당 앞에서 보자.”

[네!]

이소희가 가져온 계약 및 방출 명단 보고서를 챙겨서 일어났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심상호가 들어왔다.

“구단주님, 실례하겠습니다.”

“아저씨, 거참~ 말 편히 하시라니까요.”

심상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업무 시간인걸요.”

그렇지 않아도 낙하산이라며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듣고 있다.

그런데 구단주한테 반말까지 하면···.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없을 거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알겠어요. 편할 대로 하세요. 그보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 팀장한테 물어보니 구단주님께서 말씀드려보라고 해서요.”

“뭔데요?”

“강민수 선수 때문입니다.”

“······.”

“민수는 야수로서 수준 이하입니다. 하지만 포수는 다릅니다. 지금 당장 1군 백업 포수로 와도 충분합니다. 철수도 민수와 배터리를 하면 커맨드가 더욱 안정됩니다. 그런데···.”

한수는 팔짱을 끼며 물었다.

“아저씨, TMI는 그만. 본론만 말씀해주세요.”

“···민수는 본인 재능에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1군 선수의 튜터링과 멘탈 강화 훈련을 받게 하는 겁니다.”

“누구한테요?”

“하민철 포수입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타이탄스는 비록 꼴찌 팀이지만, 하민철은 KBO에서 한 손에 꼽히는 포수다.

한수는 하민철과 강민수의 정보창을 비교했다.

【하민철】【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2%)

(타이탄스 코치진: 89%)

(타이탄스 프런트: 86%)

결론: 경기장의 육손(陸遜)입니다. 선수로서 피지컬, 지능 모든 게 뛰어난 선수입니다. 웬만한 코치진보다 상황판단이 뛰어납니다. 투수는 하민철의 리드만 따라도 타자와 승부에 이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자존심이 센 투수랑 잘 맞지 않습니다.

···(중략)···

【특기】

1. S급 안방마님

2. 거미손

3. 강철 수비

4. 황룡 타법.

5. 내 리드를 따라와! 넌 이길 수 있고!

6. 천사표 트래쉬토크

【호감도: + 25%】

【강민수】【Gol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80%)

(타이탄스 코치진: 39%)

(타이탄스 프런트: 41%)

결론: 경기장의 마충(馬忠) 덕신(德信)입니다. 도량이 크고 다른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핵인싸입니다. 팀의 분위기메이커로도 활약할 수 있습니다. 준수한 능력치를 가졌지만,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열등감입니다.

···(중략)···

【특기】

1. 투수의 요람

2. 안방마님의 트래시 토크

3. 포수 리드의 정석

4. 근육 송구

5. 기대 안 했을 때 터뜨리는···.

【호감도: 7%】

‘육손과 마충이라···.’

오래전에 봤던 삼국지에서 이릉 대전에서 두 장수의 이름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마충이 육손의 화공에서 유비를 구해줬었지?’

물론, 이건 중요한 건 아니다.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하민철 포수의 튜터링과 멘탈 강화 훈련을 받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는데···.”

“말씀해보세요.”

심상호는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목요일에 있을 스페이스와의 연습 경기 때 민수가 포수로 출전할 수 있을까요? 이게 극약 처방이기는 한데···.”

“그렇게 하세요.”

“정말요?”

“네, 페르난도 감독한테 제 지시라고 하세요. 아! 페르난도 감독은 내일부터 출근이랬나? 그러면 문동신 코치한테 말해두세요.”

문동신은 내야 코치이지만, 곧 수석 코치도 겸할 예정이다.

심상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바로 연락해보겠습니다.”

“아저씨, 점심은···.”

“괜찮습니다. 그럼!”

심상호는 휴대폰을 꺼내며 단장실에서 나갔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아저씨, 즐거워 보이네.’

왠지 그도 기분이 좋아져서 콧노래를 부르며 선수단 식당으로 향했다.

= = = = = = =

점심시간, 선수단 식당.

타이탄스 프런트 직원과 코치진들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다

종종 선수들도 보였다.

그때 사십 대 초반에 험상궂게 생긴 남자, 문동신이 통화를 끝내고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젠 선수 선발까지 이래라저래라하냐···. 염병.”

그러자 옆에 있던 인자한 인상의 오십 대로 보이는 남자, 불펜 코치 임형민이 물었다.

“왜 그래?”

“프런트에서 스페이스랑 연습경기 때 2군 강민수를 포수로 쓰래요.”

“강민수? 걔 외야수 아냐?”

“옛날에 잠깐 포수로 반짝했는데···. 몇 년도 더 된 일을 가지고···.”

“뭐···. 프런트도 생각이 있어서 그러겠지.”

문동신은 식판을 잡으며 말했다.

“형님, 이건 생각이 있는 게 아니고 선 넘는 거라고요. 그리고 민철이보고 튜터링도 하랍니다. 이건 은근슬쩍 강민수를 마무리 캠프에도 끼게 하려는 거라고요.”

“재능 있는 유망주가 마무리 캠프에 끼는 게 뭐 어때서? 늘 있던 일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강민수는 원래 12월 방출 예정이에요.”

“그건 야수일 때지. 포수로선 한 번 봐야지.”

“···형님은 참 속도 좋습니다.”

임형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불평불만 갖지 마. 그래선 타이탄스에서 코치 오래 못해.”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 타이탄스 선수 생활 18년을 했습니다. 코치는 이십 년도 문제없습니다.”

“하긴 네가 멘탈은 강하지. 나는 팬들한테 너처럼 욕먹었으면 야구를 접었을 거야.”

“···칭찬입니까? 까는 겁니까?”

“칭찬이야, 칭찬.”

그때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하얀 가운을 입은 김명숙 영양사였다.

그녀의 등장에 문동신은 움찔하더니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차렷 자세를 했다.

김명숙은 부드러운 미소로 물었다.

“코치님들 오늘도 오셨네요?”

임형민은 넉살 좋게 웃으며,

“영양사님 오신 뒤로 여기 밥이 너무 맛있어져서요. 매일 오게 되네요.”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이네요.”

“특히 엊그제 나왔던 짜장밥은 최고였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드려요.”

“말뿐이 아닙니다. 저희 부모님이 중식당을 운영하셔서 제가 짜장에 대한 입맛은 확실하거든요. 혹시 나중에 영양사 그만두시면 말씀해주세요. 저희 식당에 소개시켜 드릴게요!”

“어머···.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별말씀을요.”

“그럼, 임 코치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네, 영양사님도 수고하세요.”

김명숙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입을 꾹 다물고 서 있는 문동신한테도 말했다.

“문 코치님도 식사 맛있게 하세요.”

“······.”

문동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김명숙은 무뚝뚝한 그의 모습에도 빙긋 웃더니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문동신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어깨 힘을 풀었다.

임형민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얘기 좀 해라. 얘기 좀. 영양사님 민망하게···.”

“······.”

“넌 어떻게 어릴 때랑 변한 게 없냐? 좋아하는 여자 앞에만 서면···.”

“누, 누가 누굴 좋아한다고···!?”

“오리발 내밀지 말고.”

“······.”

“비밀은 지켜줄 건데···. 너 옛날처럼 표현도 안 하고 끙끙거리다간 뺏긴다.”

임형민은 프런트 직원들과 정답게 대화를 나누는 김명숙을 가리켰다.

그러자 문동신은 움찔했지만 이내 콧방귀를 끼며,

“아, 안 좋아한다니까···. 형님, 약주했어요?”

임형민은 어리석은 후배의 모습에 혀를 찼다.

그때 문동신이 말했다.

“하여튼! 저는 요즘 프런트가 정~말 마음에 안 듭니다. 신인 드래프트 때도 강대한을 버리고 염뭐시기를 지명하고···.”

“염철수.”

“그래요. 그놈이요. 그놈. 공도 제대로 못 던진다던데···.”

“보형이한테 들었는데 입스는 극복했대. 제법 던진다던데?”

“제법 던져서 됩니까? 대한이 커브 잊었습니까? 걔를 데려와서 몇 년만 육성하면···.”

“지난 일로 너무 그러지 마. 사람 일 모르니까.”

“후우···.”

문동신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반찬을 받기 시작했다.

그때 식당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구를 바라봤다.

그곳에 화려한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한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식당에 줄을 선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며 인사했다.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구단주님, 식사 맛있게 하세요!”

“구단주님, 좋은 오후입니다!”

“구단주님, 제 앞으로 서세요!”

한수는 빙긋 웃으며,

“모두 좋은 오후네요. 저도 줄 서서 기다릴 겁니다. 저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식사해요.”

그러나 누구 하나 편하게 식사를 하진 못했다.

‘으으···. 밥도 편하게 못 먹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지만···.’

‘구단주도 매일 여기서 식사하려는 건가? 안 돼···.’

‘점심만이라도 마음 편히 먹고 싶은데···.’

문동신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직원들 다 체하게 하려고 작정을 했네···.”

그때 임형민이 물었다.

“구단주도 밥 먹으러 온 거잖아. 너무 그러지 마.”

“형님은 대체 누구 편이오?”

“난 타이탄스 편이지.”

“······.”

“그래서 연습경기 때 강민수 포수로 세울 거야?”

문동신은 줄을 서 있는 한수를 힐끔 보더니,

“어쩌겠습니까? 구단주 지시라는데···. 세워야죠.”

“오케이. 그럼 내가 보형이한테 말해둘게.”

“네···.”

= = = = = = =

타이탄스 2군 구장, 실내 투수연습장.

염철수는 공을 쥔 손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팔이 가벼워진 거 같은데···.’

그때 포수석에 있던 강민수가 소리쳤다.

“왜 그래? 팔 아파?”

“아뇨! 괜찮아요!”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알았지?”

“네!”

염철수는 힘차게 대답한 뒤 생각했다.

‘민수 형이 애써 시간 내서 훈련 도와주고 있잖아. 정신 집중하자.’

공을 강하게 쥔 그는 자세를 잡았다.

역동적인 와인드업과 함께 내리꽂듯 팔을 휘둘렀다.

-휘이이이이익!

그러자 공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

-퍼어억!

강민수의 미트에 꽂혔다.

강민수는 미트를 낀 손에서 저릿함을 느끼며,

‘갑자기 구위가 살아났어. 오전 훈련으로 녹초가 됐을 텐데···. 설마, 벌써 체력이 회복된 건가? 그럴 리가···.’

그뿐만이 아니다.

강민수는 염철수에게 공을 던져주며 생각했다.

‘어제보다 구속이 더 빨라진 거 같아···.’

성장 속도가 정말 어마어마하다.

연습경기의 페드로라 불리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박종구도 염철수한테,

‘이 XX, 약 빤 거 아니야?’

···라고 말하며 질린 표정을 지을 정도로.

강민수는 팔에 힘을 꽉 주고 포구 자세를 잡으며 중얼거렸다.

“쟤도 천재인가···.”

염철수가 와인드업과 함께 공을 강하게 던졌다.

-휘이이이익!

-퍼어억!

미트에서 느껴지는 저릿함이 아까보다 강했다.

강민수는 씁쓸한 얼굴을 했다.

알고는 있지만···. 천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

운동이라는 건 본래 노력보다 재능이 중요하다.

그는 고등학교 때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중학생 리그 최고의 포수 유망주라는 자부심을 품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선배, 동기, 코치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어느 날, 미국에서 한 소년이 전학을 왔다.

그리고···.

[네 리드는 너~무 재미없어. 하품만 나와.]

[프레이밍이 왜 그래? 이러니까 투수들이 죽어나지. 스트라이크는 포수와 투수의 앙상블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근력을 높인다고 강속구를 쉽게 잡나? 노우~ 노우~ 넌 뇌도 근육으로 되어 있냐? 중요한 건 캐치 타이밍이야. 타이밍~!]

[반응속도가 왜 그래? 그걸 패스드 볼로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강민수는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포수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야구까진 그만둘 수 없어서 외야수로 전향했다.

‘괜한 생각하지 말자.’

-퍼어어어억!

공이 미트에 꽂혔다.

구위가 또 올라간 느낌···.

‘커맨드도 완벽하고···. 조금만 더 있으면 1군으로 가도···.’

그때 투수연습장으로 장보형 감독이 들어왔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강민수!”

“······?”

“······?”

장보형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짐 싸라. 1군 콜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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