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타이탄스에 입단하겠습니다.
마운드에 선 기용찬은 심판의 볼 판정을 들으며 생각했다.
‘말도 안 돼···.’
멍하니 왼손을 바라봤다.
‘전력으로 던졌어···.’
불펜에서 투구할 때는 이렇게 안 됐다.
장보형의 도움으로 전보다는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실전에서 먹힐 공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선발 투수가 되고···.
마운드 위에 선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머릿속을 뒤덮고 있던 안개 같은 게 걷히는···.
“형, 괜찮으세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기용찬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홈플레이트에 있어야 할 강민수가 앞에 있다.
“어? 왜 여기···.”
“표정이 워낙 안 좋으셔서···.”
“아···. 그게···.”
그러자 강민수가 미트로 입을 가리며 물었다.
“전력투구 되시는 거예요?”
“···잘 모르겠어. 될 거 같은데···.”
강민수는 기용찬을 빤히 보더니,
“그럼, 시험해봐요. 맞을 거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운데로 던져요.”
“뭐? 하지만···.”
“어차피 연습경기잖아요. 이번에 형이 입스 완벽히 이겨내면 더 이득이에요.”
“······.”
“그리고···. 폭투 걱정하지 마요. 제가 다른 건 부족해도 포구는 자신 있어요. 오케이?”
기용찬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민수는 포수석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자신 있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초구도 간신히 잡았는데···.’
무려 157km/h 공이다.
단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구속.
무게감도 굉장했다.
‘철수 덕분에 무거운 공에 익숙해져서 다행이지. 잘못했으면 손목 나갈 뻔했네···.’
그는 포수석에 자리를 잡고 기용찬을 쳐다보며,
‘배팅볼일 땐 제구력이 A급인데, 구위를 올리면 제구력이 떨어지는 건가? 곤란한데···.’
그때 타석에 선 추인수가 물었다.
“너희 투수 뭔 문제 있냐?”
“···문제 전혀 없습니다.”
“인마, 정보 캐려는 게 아니고, 투수 컨디션에 문제 있으면 괜히 무리하지 말고 내려보내라는 거야.”
“걱정해주신 건 감사한데, 정말 괜찮습니다.”
“뭐, 그럼 다행이고···. 근데 쟤···.”
추인수가 몇 마디 더 하려는 순간, 심판이 경기 진행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추인수는 입맛을 다시며 자세를 잡았고, 강민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미트를 스트라이크존 정중앙에 가져갔다.
그 순간, 기용찬이 와인드업했다.
그리고···.
-휘이이이익!
어마어마하게 빠른 공이 바깥쪽을 노리고 날아왔다.
강민수는 재빨리 미트를 바깥쪽으로 댔다.
-퍼어어억!
‘휴···.’
이번에도 간신히 잡았다.
그러자 심판이 소리쳤다.
“스트라이크!”
“이게? 바깥으로 빠진 거 같은데···.”
추인수는 투덜거렸지만, 강하게 항의하진 않았다.
조금 애매하기도 했고, 몸풀기를 위한 연습경기니까.
그때 강민수는 구속을 확인했다.
'156km/h···. 가볍게 던지는 것 같은데, 구속이 어마어마하네. 팔이 길어서 그런가?'
이어지는 3구.
기용찬이 던진 공은 정중앙이 아닌, 바깥쪽 상단을 향해 날아갔다.
구속은 156km/h.
그리고···.
-따아아아악!
추인수는 우중간으로 빠지는 이루타를 쳤다.
= = = = = = =
선발 투수가 홍진철에서 배팅볼투수 출신 기용찬으로 바뀌자 타이탄스 TV 시청자 채팅방은 난리가 났다.
이소희와 윤가희는 성난 팬들을 진정시켜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홍보팀 직원은 방송을 종료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 순간,
-휘이이이이익!
-퍼어어억!
기용찬의 157km/h 포심이 강민수의 미트에 꽂혔다.
└어···?
└뭐야···?
└157? 진짜 157?
└구속 잘못 찍힌 거 아냐?
└공이 XX 날카로운데?
두 번째 와인드업.
바깥쪽 156km/h 포심.
└와···. 미친···.
└좌완 파이러볼러? 와···.
└추인수가 반응도 못 한다. 대박!
└볼로 거른 같은데?
└애매한데 꽂히긴 했음. 투수가 노린 거면 완전 칼날 제구력인데···.
└실투 같음. 포수는 가운데 요구한 거 같은데···.
그리고 세 번째 와인드업.
바깥쪽 상단 156km/h 포심.
동시에,
-따아아아악!
추인수가 우중간을 가르는 이루타를 쳤다.
└이건 추인수가 잘 쳤네.
└아깝네···.
└추인수 상대로 긴장하지 않고 잘 던졌네!
└투구폼 보니까 가볍게 던지는 거 같은데···. 전력투구하면 160km/h 넘기는 거 아님?
└160이 애들 이름이냐?
└저 투수 이름이 뭐랬지?
윤가희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타이탄스의 비밀병기! 우리 멋진 구단주님께서 지옥에서 주워온 좌완 파이어볼러! 기! 용! 찬! 선수입니다!”
이소희는 ‘박수!’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고, 타이탄스 TV 채팅창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다.
= = = = = = =
기용찬은 2번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구는 여전히 엉망이다.
가운데를 노리고 던졌지만, 계속 바깥쪽에 꽂혔다.
기용찬은 2루 근처에 서 있는 추인수를 힐끗 살폈다.
‘이러다가 민수가 포구에 실패하면···.’
바로, 실점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었다.
기용찬은 전력투구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타석에 스페이스의 3번 타자 최적이 섰다.
마그넷 적, 청년 장사 등으로 불리는 400홈런을 쳐낸 원클럽맨이자, 스페이스 최초의 영구 결번될 확률이 유력한 프랜차이즈 스타다.
기용찬은 최적을 보며 긴장한 표정을 했다.
‘역시 구속을 줄이고 제구를···.’
그때 강민수의 미트가 가운데로 향했다.
기용찬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강민수가 재차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제구가···.’
‘신경 쓰지 말고 던져요. 오늘 포구 잘 되니까요.’
‘이러다가 큰 거 맞으면···.’
‘어차피 연습경기에요. 그냥 던져요. 오케이?’
‘오케이···.’
기용찬은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했다.
‘그래, 망설이지 말고···. 전력을 다해서···!’
-휘이이이익!
오랜만에 긁힌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으로 제구도 제대로 됐다.
가운데를 노리고 빠르게 날아가는 157km/h의 포심.
그 순간, 최적이 날카로운 눈빛을 하더니 배트를 풀스윙했다.
-따아아아악!
기용찬은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최적이 양팔을 만세 하듯 뻗는 팔로스루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제대로 맞았다···.’
그의 예상대로 최적은 홈런을 쳤고, 기용찬은 고개를 떨궜다.
= = = = = = =
스페이스 경기장, VIP 관중석.
한수는 기용찬이 홈런을 맞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쉽네···.’
그러면서 업그레이드된 기용찬의 정보창을 살폈다.
【기용찬】【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4%)
(타이탄스 코치진: 10%)
(타이탄스 프런트: 18%)
결론: 경기장의 하후돈 원양(元讓)입니다. 고교 시절 초특급 유망주였습니다. 하지만 사고로 오른쪽 어깨를 다쳤습니다만, 고민수와 손재현의 도움으로 좌완투수로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사고 후 생긴 왼쪽 눈 난시는 시력교정술로 완치했습니다. 손재현의 얼굴에 공을 맞힌 사건으로 생긴 입스를 재활과 아이템의 힘으로 이겨냈습니다. 【갱신】
└팁①: 전력투구가 가능하지만, 몸쪽 승부는 어렵습니다. 재활 훈련이 꾸준히 병행되어야 합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투타】
좌투우타
【특기】
1. 의지의 끝판왕
2. 강철 좌완
3. 고속 슬라이더
4. 지독한 훈련 중독자
5. D급 영점 조절 【개발 중】
6. 전력투구(全力投球)
7. 내 사전엔 삼진(三振)밖에 없다!
【호감도: 0%】
다 좋았다.
다만 아쉬운 건 'D급 영점 조절'이라는 특기다.
‘제구력에 문제가 있다는 거겠지? 개발 중이라고 표시된 거 봐서는 더 올라갈 거 같은데···.’
이어서 잠재 레벨도 확인했다.
【이름: 기용찬】
【레벨: 51 / 89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양날의 에이스 S】
【양날의 에이스 S : 6이닝까지 투구 능력과 탈삼진 능력, 수비 능력이 대폭 올라갑니다. 하지만 7이닝부터 버프가 사라지고 체력 소모가 상승합니다.】
한수는 턱을 쓰다듬었다.
나쁘지 않은데, 양날의 검과 같다.
‘체력 아이템으로 도배라도 해야 하나? 음···.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정보창이나 특성 얘기를 할 순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직접적으로 말고 돌려서 물어봐야겠네.’
그때 기용찬이 4번 타자로 나온 스페이스의 주장 한무섬을 삼진으로 잡았다.
제구는 여전히 잘 안 되는 거 같았지만···.
한수는 강민수 포수가 잘 잡을 거라고 믿었다.
왜냐면 아이템을 착용시켰기 때문이다!
[조잡하고 낡은 거지왕의 미트]
└종류 : 포수 전용 아이템
└등급 : 브론즈
└설명
① 포구력 + 1
예전에 권순민 시장 때문에 4 Point를 주고 샀던 아이템이다.
등급은 Bronze였지만, 포수 능력치가 뛰어난 강민수니까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좋아~ 한시름 덜었고, 여유롭게 임무 12를 확인해 볼까?’
한수는 임무 메뉴를 선택했다.
『임무 12』
【구단주님!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는데 노력하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프런트도 뛰어난 인재가 늘고 있군요! 점점 최고의 구단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코치진에는 인재가 부족하네요! 페르난도 킴 감독을 보좌할 인재를 확보하세요!】
└완료 조건
① Diamond 등급 코치진 영입 (0/1)
② Platinum 등급 코치진 영입 (0/1)
③ Gold 등급 코치진 영입 (0/2)
【보상 : 50 Point】
Diamond 등급 인재를 확보하라는 조건은 무척 까다롭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코치진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한국 시리즈가 끝나면 구단들의 코치 영입 전쟁이 벌어진다.
이소희와 양승진은 그때를 대비하며 미리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골드 등급 1명은 신병우를 투수 코치로 받는다고 치고···. 나머지는 양 사장과 이 팀장을 믿어봐야지.’
그 순간 기용찬이 스페이스의 5번 타자를 157km/h 포심으로 잡아냈다.
그렇게 1이닝이 끝났다.
그때 문자가 왔다.
└장보형 2군 감독: 구단주님, 용찬이가 바깥쪽으로만 던지고 있습니다. 완벽히 회복된 거 같지 않아서···. 2회부터는 진철이를 마운드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수: 오케이~ 그렇게 하세요.
2회부터는 누가 올라가든 상관없었다.
‘왜냐면···.’
한수는 고개를 돌려 손재현을 쳐다봤다.
손재현은 주먹을 꽉 쥔 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기용찬을 응시하고 있었다.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생각했다.
‘기용찬을 선발로 올린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그는 손재현에게 물었다.
“어때요?”
“네?”
“우리 타이탄스 재활 실력이요.”
손재현은 기용찬이 던졌던 평균 97마일의 포심을 떠올렸다.
제구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의 얼굴을 강타했던 폭투를 떠올리면 떡상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겨우 한 달 남짓한 시간인데···.’
“···정말 대단하군요.”
“손재현씨도 회복할 수 있습니다.”
“······.”
한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 제 손을 잡는다면요.”
손재현은 그 손을 빤히 쳐다봤다.
머릿속으로 스페이스 구단 임정태 단장이 했던 제안과 기용찬과의 승부가 스쳐 지나갔다.
‘어쩌지···.’
한수는 그가 기용찬과 승부 때문에 결정을 망설인다고 생각했다.
‘이럴 땐 강하게 밀어붙여야지.’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거절하면 더는 영입 제안하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인생은 타이밍입니다. 기회는 두 번 오지 않아요.”
“······.”
손재현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한참을 고민하더니,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한수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타이탄스에 입단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그때였다.
【영웅 도감 ‘복수와 형주 공략의 교두보(橋頭堡)!’를 완성했습니다.】
【영웅 도감을 확인하고 보상을 획득하세요!】
한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생각했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