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 여기는 재능 꽃밭인가!?
마산시, 경의 중학교.
후줄근한 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는 창백한 인상의 사십 대 남자, 수학 교사 박동준은 교장실에서 나오더니 까치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새로운 감독을 영입해주는 걸로 만족하라고? 염병···. 그건 당연한 거잖아! 대회 우승하면 선수 전용 기숙사 세워주겠다고 페르난도랑 약속했으면서···. 개자식···!’
“하다못해 훈련 시설이라도 좀 제대로 갖춰주던가···. 언제까지 광양대에 신세를 질 순 없는데···. 거리도 멀어서 애들 컨디션 관리도 힘들고···.”
박동준은 교장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기자한테는 야구 명문 중학교로 성장시킬 거라며 이빨이란 이빨은 다 털어놓고···. 젠장···!”
‘이러다가 내년에 다시 성적이 곤두박질치면···.’
생각만 해도 다시 한숨을 나올 거 같았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중얼거렸다.
“교장 구워삶는 건 페르난도가 잘했는데···.”
박동준은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며 떠나간 페르난도 킴을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타이탄스 감독이 될 줄은 몰랐는데···.’
페르난도 킴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KBO는 능력만으로 인정받는 무대가 아니다.
능력, 경력, 인맥이라는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
하지만 페르난도 킴은 경력은 KBO 구단이 보기엔 형편없고, 인맥은 전무.
‘타이탄스는 무슨 생각으로 페르난도를 뽑은 거지? 혹시 내년에도 꼴찌를 할 것 같아서 욕받이나 방패막이로 쓰려고···.’
그러나 고개를 휘휘 저었다.
박동준도 귀가 있으니 소문은 들었다.
타이탄스가 내년을 위해 리빌딩 중이라는 사실을.
‘누군가 페르난도의 능력을 꿰뚫어 보고 계약한 건가···?’
박동준은 콜록콜록 잔기침하더니 주머니에서 홍삼 젤리를 꺼내서 씹으며 중얼거렸다.
“덕분에 나만 죽어나네. 젠장···. 이놈의 임시 코치직을 그만두든가 해야지···.”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운동장에서 우렁찬 구령 소리가 들렸다.
박동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봤다.
운동장엔 먼지투성이의 야구복을 입은 학생들이 구령에 맞춰서 뛰고 있었다.
박동준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쯧, 오늘은 미세먼지 심하니까 뛰지 말래도 말을 안 들어···.”
하지만 말투와 달리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오늘 저녁엔 저 녀석들 고기라도 사줘야겠네.’
그는 콜록콜록 기침하며 운동장으로 향했다.
= = = = = = =
경의 중학교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고급스러운 세단.
한수는 뒷좌석에 앉아 박동준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며 강덕수에게 물었다.
“박동준에 대한 자료, 이게 전부야?”
“시간이 부족해서 페르난도 킴 감독한테 얻은 정보와 대외적으로 알려진 자료만 보내드린 겁니다. 오늘 저녁까지 추가로···.”
“아냐. 됐어. 직접 보면 되지.”
대략적인 정보는 파악했다.
박동준은 영천중, 영천고에서 야구부를 했다.
주전 선수는 아니었다.
몸이 너무 허약했기 때문이다.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배트를 휘두르다가 손목이나 허리를 삐끗하는 건 일상다반사였음.】
【어깨가 너무 약해서 투구 자체가 어려움.】
【반사신경은 평균 이상이지만, 하드웨어 너무 약함. 일반 학생보다 주력도 뒤처짐.】
【체력이 극도로 약함. 체력을 키우기 위해 훈련 강도를 조금이라도 높이며 거품을 물고 쓰러짐.】
【체력 훈련은 박동준의 체력을 늘리는 게 아니고 깎는 느낌.】
【편식이 무척 심해서 고기만 먹음. 그런데도 체중은 평균 이하.】
처참하기 그지없는 평가다.
그렇지만···.
【경기의 흐름을 잘 파악했음.】
【상대 투수의 볼 배합을 파악하는데 재능이···.】
【상대 선수의 버릇, 습관 등을 빠르게 파악···】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박동준은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그만뒀다.
자세한 상황은 모르지만···.
훈련 중에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됐고···.
얼마 후, 그는 영천고를 떠났고···.
‘착실하게 공부해서 사범대에 진학했고 수학 교사가 됐다는 거군.’
그러다가 경의 중학교로 부임 왔고, 페르난도 킴 감독과 만난 거다.
‘자아~ 과연 어떤 등급일까?’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쓰고 차 문을 열며 말했다.
“혼자 다녀올 테니까 대기하고 있어.”
“네!”
차에서 내린 한수가 향한 곳은 교무실이었다.
방과 후긴 하지만 교직원들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때 우렁찬 구령 소리가 들렸다.
‘이건···.’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한수는 운동장과 교무실을 번갈아서 바라보더니, 운동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운동장을 뛰고 있는 야구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한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경의중 야구부···.’
등번호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부산 갈매기의 삼륜안(三輪眼)’과 ‘안경 D 레전드의 투지’ 스킬이 발동되면 학생들의 능력치가 보였다.
【양동원: ??? 등급, 재능 ??%, 레벨 17/85】
【최준혁: ??? 등급, 재능 ??%, 레벨 15/77】
【이동렬: ??? 등급, 재능 ??%, 레벨 17/85】
【선종범: ??? 등급, 재능 ??%, 레벨 15/77】
.
.
.
아직 등급이 결정되지 않아서인지, 아이들 몸에서는 아무런 빛도 나지 않았다.
한수는 눈을 크게 떴다.
학생들의 잠재 레벨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연 올해 통합 우승을 한 팀답네. 페르난도 킴 감독이 키운 선수들이란 말이지···.’
그런데···.
“쟤들 왜 저렇게 꼬질꼬질하냐? 유니폼도 낡은 거 같고···.”
심지어 운동장에 제대로 된 훈련 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왜 이런 곳에서 훈련하는 거지?’
그때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체구는 작은데 가장 앞에서 달리는 소년이었다.
무척 귀여운 외모였지만,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등번호 37번.
‘허진우···?’
-띠링!
【허진우】【???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
(타이탄스 코치진: ??%)
(타이탄스 프런트: ??%)
결론: ???
【포지션】
1순위: 타자
【투타】
우투좌타
【특기】
1. 타고난 슬러거
2. ??? [개발 중]
3. ??? [개발 중]
4. ??? [개발 중]
5. ??? [개발 중]
6. ??? [개발 중]
7. ??? [개발 중]
【호감도: 0%】
한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대부분 물음표 표시였지만, 첫 번째 특기와 정보창의 느낌만 봐도 각이 나왔다.
‘얘는 뭔가 있어.’
이어서 잠재 레벨을 확인했다.
【이름: 허진우】
【레벨: 20 / 96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장타력 S】
한수는 눈을 크게 떴다.
‘잠재 레벨 96!?’
경기장의 조운이라고 비유된 염철수의 잠재 레벨이 96이다.
그런데 그와 동급의 잠재 레벨이라니···!
‘쟤는 분명 Diamond 등급이야!’
그때 뒤에서 콜록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신데 우리 애들을 보고 계십니까?”
한수는 움찔하며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후줄근한 복장의 까치머리 남자, 박동준이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박동준···!’
한수는 덕수가 조사해온 자료 덕분에 그가 박동준이라는 걸 바로 알아봤다.
그 순간!
박동준의 몸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졌고, 한수의 앞에 Diamond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Diamond 등급···! 여기는 재능 꽃밭인가!?’
한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정보창을 확인했다.
【박동준】【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0.01%)
(타이탄스 코치진: 98%)
(타이탄스 프런트: 94%)
결론: 더그아웃의 곽가 봉효(奉孝)입니다. 상대 팀이나 선수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분석한 데이터를 통해서 상대의 작전, 패턴, 행동 등을 예측하는 신출귀몰한 능력을 보유했습니다. 다만, 성격에 모난 부분이 있어서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한번 마음을 연 상대에게는 잘해줍니다. 암중 모략을 좋아합니다.
다만, 몸이 너무 허약합니다. 고기와 술을 무척 좋아하는데 편식도 심하고 불규칙한 생활을 이어가며 건강은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무리하면 단명(短命)할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일을 시킬 땐 무리하지 않을 만큼만 시키세요.
뛰어난 영양사가 옆에서 관리해주면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박동준을 등용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팁: 그를 붙잡고 있는 족쇄를 끊어야 합니다.
【적성】
1순위: [코치진] 퀄리트 컨트롤 코치
2순위: [프런트] 전략분석팀 팀장
【특기】
1. 신화급 세이버매트릭스
2. 신출귀몰한 예측
3. 병약한 천재
4. 안목 [타자, 투수]
5. 저 투수의 볼 배합 보여!
6. 내 눈에는 너의 버릇이 보여!!
7. 너에게 딱 맞는 훈련 비법!
8. 감독(단장) 보좌의 달인
【호감도: 0%】
코치진 재능 98%.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수치다.
프런트 재능도 94%로 이소희랑 동급이다.
한수는 눈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무조건 잡아야 해!’
페르난도 킴의 부탁이 아니어도, 타이탄스에 꼭 필요한 인재다.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그를 붙잡고 있는 ‘족쇄’라는 건데···.
‘그건 차근차근 해결해야지.’
이때 박동준은 미간을 찡그렸다.
‘뭐야? 혼자 실실 웃고···. 포수 마스크는 왜 쓰고 있는 거야? 미친놈 같은데···. 쫓아내야 하나?’
그때 한수가 활짝 웃더니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이한수입니다.”
박동준은 한수가 내민 손을 힐끗 볼뿐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리고는 경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전 박동준이라고 합니다. 이 학교 선생입니다만···.”
한수는 내민 손을 자연스럽게 안쪽 주머니로 넣더니 명함을 한 장 꺼냈다.
“자기 소개를 다시 해야겠군요. 저는 타이탄스 구단주 겸 단장 이한수입니다.”
박동준은 흠칫하더니.
‘타이탄스? 설마···.’
“페르난도한테 얘기를 듣고 오신 겁니까? 저를 영입하기 위해서?”
“네, 맞습니다.”
“하아···.”
박동준은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갑자기 확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문득, 페르난도 킴이 경의중 야구 감독을 그만둘 때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동준, 자리 잡으면 연락할게.]
[그냥 애들이나 육성하자니까···.]
[아버지가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거든.]
[···알아서 해라. 하여튼 자리 잡으면 술 사.]
[술 말고. 연락할게.]
[······?]
‘혹시나 했는데···. 페르난도 그 자식, 내 사정을 뻔히 알면서···.’
그때 한수가 말했다.
“시간 괜찮으시면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아뇨. 제가 바빠서요. 아이들 훈련도 봐줘야 하고···.”
그는 운동장을 뛰고 있는 야구부 학생들을 가리켰다.
“아~! 그러면 훈련이 끝나길 기다리겠습니다.”
“그냥 가세요.”
“······.”
입을 다문 한수를 보며 박동준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타이탄스 구단에 들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얘기도 듣지 않고 거절하는 걸 보니 뭔가 사정이 있는 거 같지만···. 어쩌지?”
한수는 팔짱을 끼며 피식 웃더니,
“난 당신을 반드시 타이탄스 코치로 영입할 건데?”
“뭐라고요?”
박동준은 어이가 없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그때 한수가 몸을 휙 돌리더니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늘은 일단 가볼게요. 애들 훈련 잘 시켜요.”
박동준은 멀어지는 한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거 완전 미친놈이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박동준은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때 방송이 들렸다.
[교내에 계신 박동준 선생님은 지금 즉시 이사장실로 와주세요. 다시 안내 말씀드립니다. 교내에 계신 박동준 선생님은 지금 즉시 이사장실로···.]
‘이사장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