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꼭 영입하겠습니다.
박동준은 이사장실로 향하며 생각했다.
‘대체 나를 왜 부르는 걸까?’
이사장은 박동준을 무척 껄끄러워한다.
왜냐면 페르난도 킴과 했던 약속 때문이다.
작년 말 페르난도 킴은 박동준의 부탁을 받고 경의중 야구 감독이 됐다.
그리고 이사장에게 세 가지 약속을 받아냈다.
① 대통령기 중학 야구 대회에서 우승하면 야구부 선수를 위한 전용 경기장을 지어준다.
② 전국 중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면 야구부 선수를 위한 실내 연습장을 지어준다.
③ 통합 우승을 달성하면 야구부 선수를 위한 기숙사를 지어준다.
도대체 어떻게 받아낸 건진 모르겠지만···.
페르난도 킴이 사람을 다루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여튼!
페르난도 킴은 박동준과 힘을 합쳐 중학교 리그를 제패했다.
심지어 유망주들도 여럿 육성했는데···.
가장 큰 성과는 천재 타자 허진우다.
[사이클링 히트 허진우! 미래의 국가대표 4번 타자의 등장!]
[연타석 홈런으로 상대 팀을 압살한 허진우!]
[작은 거인 허진우! 무명의 경의중을 통합 우승으로 이끌다!]
[야구 경력 1년 만에 중학교 최고의 강타자로 성장한 허진우! 프로 구단도 벌써 눈독을 들이는···.]
이사장은 통합 우승 덕분에 학교도 유명해져서 좋았지만, 페르난도 킴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진 않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돈이 아까우니까.’
그래서 이사장은 껄끄러웠던 페르난도 킴이 통합 우승을 이루고 홀연히 떠나자, 약속을 모른 척했다.
박동준이 몇 번이나 항의했지만···.
이제는 만나주지도 않고, 어제는 교장한테 시켜서 새로운 감독 영입하는 걸로 먹고 떨어지라는 식의 통보까지 받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사장실 앞에 도착한 박동준은 노크하려고 했다.
그때 안에서 들려오는 이사장의 웃음소리에 멈칫했다.
‘왜 웃는 거지?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그를 부를 리가 없는데···.
의문이었지만 일단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박동준입니다. 찾으셨다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사장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박 선생, 어서 와요!”
민머리에 배불뚝이 이사장은 그에게 달려왔다.
박동준은 흠칫 뒤로 물러났다.
‘뭐야? 왜 이래?’
그가 당황하든 말든 이사장은 몹시 행복한 얼굴로 박동준의 팔을 잡더니 책상으로 끌고 갔다.
거기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사장의 휘황찬란한 의자에 거만하게 앉아 책상에 길쭉한 다리까지 떡하니 걸친···.
타이탄스의 이한수 구단주가···!
‘이,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이사장은 박동준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인사드리세요~! 이분은 이한수 구단주님이세요! 타이탄스의 구단주세요!”
“아, 그···. 아, 안녕하십니까···.”
박동준이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자 이사장은 눈가를 움찔하며 생각했다.
‘이 자식 왜 이래? 굴러들어온 복덩이가 심기라도 불편해지면 어쩌려고···. 설마 약속을 안 지킨 거 때문에···.’
뭐라고 할까 하려는데, 한수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 이분이 박동준 선생님이군요~! 페르난도 감독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정말 뛰어난 퀄리티 컨트롤 코치시라고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박동준은 대답은 하지 않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만나서 통성명하고 서로 속내까지 파악해놓고 왜 이런···.
그때 이사장이 말했다.
“네~! 맞습니다! 박 선생이 퀄리티···. 코치가 맞습니다! 허진우 아시죠? 천재 타자 허진우요! 그 아이도 박 선생이 키웠습니다! 페르난도 감독은 사실 박 선생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린···.”
“아~ 오케이. 오케이. 이사장님, 그 얘긴 아까도 했잖아요. 저 바보 아닙니다~?”
이사장은 움찔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하하···. 그랬죠, 참. 저도 모르게 그만···.”
박동준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저를 왜 부르신 겁니까?”
“박 선생~! 이한수 구단주님께서 글쎄~ 우리 야구부에 기부를 약속하셨어요~!”
“네···?”
한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전국 중학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고 나서 허진우 선수가 했던 인터뷰 기사를 봤습니다. 제대로 된 연습 시설도 없어서 광양대학교까지 가서 연습하고···. 인솔 버스도 없어서 박동준 선생님께서 사비를 털어서 버스까지 빌리고···.”
그러자 이사장이 민망한 듯 말했다.
“재, 재단 사정이 조금 어려웠던 지라···. 야구부 지원이 원활하지 못했는데, 여기 있는 박 선생이 솔선수범해서···.”
“네~ 네~ 그러시겠죠. 하여튼! 척박한 환경에서도 중학교 리그를 제패한 경의중 야구부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기부를 하려고 합니다.”
이사장은 박동준의 귀에 속삭였다.
“기숙사, 실내 연습장, 야외 경기장 그 외에 훈련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지원해주시겠다고 해요. 무상으로요. 무상으로!”
“······!”
박동준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한수는 책상에서 다리를 내리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회지도층의 윤리라고 봐도 좋고, 돈 잘쓰는 게 취미인 재벌 3세의 선행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가정교육을 워낙 멋지게 받고 자랐거든요.”
이사장은 엄지척을 했다.
“대단하십니다. 제 아들들도 이한수 구단주님을 닮았으면 여한이···.”
“아~ 그건 힘들걸요?”
“네?”
한수는 검지로 본인의 얼굴을 가리키며,
“나처럼 잘생기고 도덕적인 사람이 또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이사장은 기분이 참 더러웠지만···.
“맞습니다! 제가 실언을 했네요! 하하!”
돈 때문에 참았다.
박동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한수의 노림수가 뭔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를 타이탄스로 영입하려는 걸 거다.
‘전력분석팀 아니며, QC 코치···. 아마도 페르난도의 요청이겠지.’
하지만···.
‘······.’
박동준은 한수의 제안을 수락할 수 없다.
소중한 사람과 한 ‘약속’ 때문에···.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면 안 된다.
사실 지금 야구부를 가르치는 것도 대외적으로 비밀이다.
‘사실 이것도 하면 안 됐지만···.’
[선생님! 선생님! 야구 동아리 만들려면 담당 교사가 필요하대요! 선생님이 해주세요! 부탁드려요!]
눈부신 재능을 가진 작은 꼬마, 허진우 때문이었다.
허진우를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허진우의 재능을 알아본 페르난도 킴이 감독으로 오면서 일이 커진 건데···.
어쨌든!
‘진우가 곧 졸업하니까 야구부에서 물러나려고 했는데···.’
남은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감독과 연습 시설을 만들어주고···.
박동준은 한수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영입 제안을 거절하면 기부를 없던 일로 하겠지. 어쩌지···.’
그때 한수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박동준 선생님, 앞으로도 야구 유망주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네? 네···.”
“이사장님, 기부에 대한 건 제 비서가 연락할 겁니다. 전 급한 약속이 있어서 이만.”
“네~! 알겠습니다~! 제가 배웅을···.”
“괜찮습니다. 번거로운 건 질색이라···.”
“주차장까지만 배웅하겠습니다! 박 선생, 뭐해?!”
“아, 네···.”
이사장의 부름에 박동준은 걸음을 옮기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렇게 간다고? 그냥 기부만 하고?’
아니라고 생각했다.
떠나기 전엔 뭔가를 할 줄 알았는데···.
-부르르릉!
한수가 탄 고급스러운 세단은 저 멀리 사라졌다.
박동준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정말 그냥 기부할 생각으로 온 거였다고?’
그때 이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어요~! 좋아요! 아주 좋아! 우리 학교가 야구 명문 중학교로 거듭날 기회네요! 박 선생~ 앞으로도 수고해요~!”
“네···.”
박동준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한 뒤 교무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교무실 앞에 야구부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박동준은 고개를 갸웃하며,
“너희들, 여기서 뭐해?”
“아! 선생님!”
“선생님, 어디 계셨어요?”
“선생님 찾았다고요!”
“날? 왜?”
그러자 허진우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야구 배트를 내밀었다.
“선생님! 이거 보세요!”
“······?”
그건 ‘타이탄스 4번 타자 이소호가 허진우에게···.’라고 적힌 사인 배트였다.
“너, 이게···.”
“선생님! 야구부실에 이소호 선수가 왔었어요!”
“뭐? 이소호가···?”
“맞아요! 진우 스윙도 봐줬어요!”
“저희 전부 타이탄스 구장으로 초대했어요!”
“훈련 구경시켜준대요!”
“선생님! 대박이죠!?”
박동준은 깨달았다.
‘이한수 그 사람···. 내가 영입 제안을 거절할 걸 알고···.’
그때 허진우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타이탄스에서 우리 야구부 훈련 시설도 지어준대요!”
박동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러게. 잘 됐구나.”
‘···약점을 공략하다니···. 보통내기가 아니네···.’
= = = = = = =
부산으로 향하는 어느 도로, 차 안.
한수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단단한 체격을 가진 남자, 한국의 4번 타자 이소호를 쳐다봤다.
그를 데려온 건 박동준의 약점인 허진우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허진우가 존경하는 야구 선수가 바로, 이소호니까!
한수는 이소호의 정보창을 떠올렸다.
【이소호】【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8%)
(타이탄스 코치진: 70%)
(타이탄스 프런트: 40%)
결론: 경기장의 만부부당(萬夫不當) 관우(關羽)입니다. 뛰어난 선구안과 정교한 타격력을 가진 고타율 컨택형 중장거리 타자이지만, 타고난 힘이 워낙 좋고 무척 유연해서 홈런도 잘 치는 완벽한 타자입니다.
한국의 4번 타자, 타이탄스의 심장, 부산의 아들···.
여러 수식어로 불리는 명실상부 최고 수준의 선수입니다. 그에게 약점이 있다면 타이탄스 소속이라는 거뿐일 겁니다.
KBO, 일본 리그, 메이저리그에서 모두 절정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KBO로 돌아온 이유는 한국 시리즈 우승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포지션】
1순위: 1루수
2순위: 3루수
3순위: 지명 타자
【투타】
우투우타
【특기】
1. 부산의 심장
2. 강력하고 유연하며 완벽한 타법
3. 괴력
4. 고무 인간
5. 레전드 배드볼히터
6. 레전드 갈매기 선구안
7. 실수 없는 수비 능력
8. 한국의 4번 타자 [국가대표로 출전 시 능력치↑]
9. 내 사전엔 도루는 없다!
【호감도: 10%】
이소호는 한수의 예상대로 Diamond 등급 선수였다.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선수답게 재능도 무려 98%나 됐고···.
【이름: 이소호】
【레벨: 86 / 95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조선의 4번 타자 S】
레벨도 말할 필요도 없이 뛰어났다.
놀라운 건 그가 아직도 발전할 잠재 레벨이 남았단 사실이다.
‘대단한 선수야.’
한수는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 선수, 오늘 고마워요.”
이소호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거래였으니까요.”
“아~ 그렇죠. 그렇죠. 정당한 거래였죠. 그러니까 마지막까지 잘 부탁해요. 아이들한테 팬 서비스 확실히 해주시라고요~!”
이소호는 팬 서비스가 좋은 선수는 아니다.
그렇지만 한수가 거래 약속만 잘 지켜준다면야···.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약속은 지킵니다. 저도 팀 전력이 강화되는 건 오케이니까요~! 더군다나 이소호 선수가 보장하는 타자라면···. 당연히 모셔와야죠.”
이소호가 부탁한 선수는 바로,
“윤진호 선수, 꼭 영입하겠습니다.”
트리플스로 트레이드된 불꽃 투수 독고준의 라이벌, 대명 티라노스 4번 타자, 윤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