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우승시킬 겁니다. 반드시!
창원, 티라노스 구단 단장실.
한수혁은 책상에 태블릿 PC를 던지듯 내려놓고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이런 미친!?”
태블릿 PC 화면에는 윤진호와 관련된 스포츠 기사 제목이 보였다.
[진호야~! FA를 부탁하노라~! 아버지~! 타이탄스 가면 될까요~?] - 동백 스포츠, by. 박편복 기자
[FA 시장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1호 계약 선수는 윤진호!?] - 달피아 일보, by. 은강 기자
[효자로 유명한 윤진호, 이번 FA 계약도···.] - 레이버 스포츠, by 김나인 기자
[최근 두 시즌 부진했던 윤진호! 타이탄스에서 부활의 날갯짓을···.] - 중원 일보, by 차은우 기자
“이 쓰레기 기사들 전부 내리라고 해! 당장!”
맞은편에 서 있던 운영팀 팀장 남용민이 쓰고 있던 안경을 살짝 치켜올리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미 홍보팀에서 신문사마다 연락을 돌리고 있습니다. 윤진호가 우리랑 재계약한다는 기사도 곧 나올 겁니다.”
한수혁은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짓더니,
“윤형식 그 자식은 정말 타이탄스 코치가 된 거야?”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구단 홈페이지에서 1루 작전 겸 주루 코치로 등록됐습니다.”
“하! 타이탄스 프런트 미친 거 아냐? 배팅 연습장 사장 XX를 뭐 볼 게 있다고···. 선수 때도 빌빌거린 XX를···.”
남용민은 윤형식의 뒷담을 늘어놓는 한수혁을 보며 생각했다.
‘윤 선수 앞에서는 절친한 의형제처럼 지껄였으면서 잘도 이렇게 말하네. 정말 뱀 같은 인간이야···.’
그렇지만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이런 한수혁 덕분에 윤진호라는 대어도 물어왔고, 티라노스는 통합 우승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남용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마 윤 선수를 데려가려는 타이탄스의 작전 같습니다.”
“맞아. 내 생각도 그래. 멍청한 윤형식 XX는 코치시켜준다니까 병신같이 좋다고 간 거고···. 어휴, 한심한 XX···. 예전에도 올스타에서 주전으로 붙박이 시켜준다니까 좋다고 가서 쓰레기 취급받았으면서···.”
남용민은 생각했다.
‘좋다고 간 게 아니고 윤형식씨 집안 사정이 어렵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빠른 프로 데뷔를 원해서 그렇게 된 거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윤형식씨가 타이탄스 프런트의 개수작에 놀아났다는 거지.’
야구팬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아무 경력도 없는 윤진호 아버지를 1루 작전 겸 주루 코치로 영입했다고? 이거 타이탄스 XX들이 개수작 부리는 거 아님?
└빼박이지. 윤진호가 효자인 거 이용한 거임.
└벌처스에서 잘 지내던 윤진호가 뜬금없이 티라노스로 간 것도 한수혁 단장이 아버지 친구라고···.
└타이탄스 존X 야비하네. 이래놓고 윤진호 아버지는 허수아비 코치로 만드는 거 아님?
└근데 윤진호 타이탄스로 안 갈 것 같은데···. 꼴데 새끼들이 윤진호 윤X밥이라면서 얼마나 조롱을···.
└꼴데 새끼들 태세전환했음. 금쪽같은 윤진호라면서 존X 빨고 있음.
└ㄹㅇ?
└꼴데 새끼들 우디르급이네.
남용민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단장님께서 윤 선수 아버님을 한번 만나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그래야지. 윤형식 그 멍청한 개XX 정신 차리게···.”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무뚝뚝한 표정의 윤진호가 들어왔다.
“단장님, 실례하겠습니다. 남 팀장님도 계셨군요. 안녕하십니까.”
한수혁과 남용민은 흠칫하며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 얘기 들은 건 아니겠지?’
‘단장실 방음 잘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오케이.’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윤 선수, 잘 부탁드립니다.’
‘인마, 나만 믿어.’
남용민은 말했다.
“윤 선수, 안녕하세요.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단장님과 대화를···.”
“잠깐.”
“······?”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수혁과 남용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둘한테···?’
‘무슨 얘기지···?’
잠시 말을 멈춘 윤진호는 통합 우승을 기념하며 찍었던 단체 사진을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한수혁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단장님께서 절 스카우트하실 때 말씀하셨죠? 티라노스를 우승시키는 게 소원이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한수혁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침을 꼴깍 삼키며 대답했다.
“그, 그랬지.”
“우승하셨으니, 소원은 푸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진호야, 너···.”
윤진호는 눈에 힘을 주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타이탄스로 가겠습니다.”
“······!?”
“······!”
= = = = = = =
다음날, 타이탄스 단장실.
한수는 휴대폰으로 윤진호, 윤형식과 관련된 기사들을 확인하며 피식 웃었다.
‘이래서 기자들이 좋다니까? 소재거리 하나만 던져주면 알아서 스토리텔링을 해주고···. 좋아, 좋아. 이 정도면 티라노스 프런트도 흔들렸겠지.’
“이제 윤진호를 흔들어야지.”
흔들 방법은 이미 좋은 선례가 있다.
바로, 한수혁이 했던 깐부 작전이다.
한수는 윤형식을 빌미로 윤진호와 접근할 거다.
동시에 윤진호가 타이탄스로 향하는 게 확실하다는 혼란성 기사를 낼 생각이다.
하지만···.
‘윤진호를 얻기 위해서는 확실한 뭔가가 필요한데···.’
아직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양승진 사장이 들어왔다.
“구단주님, 시간 됐습니다. 가실까요?”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한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런 뒤, 머리 스타일을 체크하고 포수 마스크까지 챙겨서 단장실 밖으로 나갔다.
양승진이 뒤따라오며 말했다.
“기자들은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놨습니다. 그리고 오재근 선수도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본인 입단식인데 용케 허락했군요.”
오늘은 국가대표 2번 타자 오재근의 입단식이다.
오재근은 시즌 마지막에 부상으로 치료를 받다가 얼마 전에 완치했고, 오늘부로 타이탄스 선수가 되는 거다.
양승진은 웃으며 말했다.
“오 선수도 윤진호 선수가 타이탄스에 꼭 와주길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하긴 클린업트리오가 막강해지면 오 선수 부담도 줄 테니까요.”
“그런 것도 있는데···. 윤 선수와 오 선수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꽤 친했던 거 같습니다.”
“오~ 그래요? 그럼, 윤 선수만 우리 팀으로 오면 오 선수도 적응하기도 쉽겠네. 윤 선수도 덜 어색할 거 같네요.”
“맞습니다.”
한수는 오재근의 정보창이 궁금했다.
‘혹시 윤진호랑 뭔가 관련이 있는 정보창인가? 영웅 도감을 채울 수 있는···.’
Diamond 등급의 선수들의 영웅 도감의 핵심 인물들이다.
오재근이 만약 Gold 등급 이상이고, 윤진호랑 연관이 있다면···.
‘정말 좋겠는데~.’
그때 양승진이 물었다.
“윤 선수 영입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한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직 반반이긴 한데···. 노력해봐야죠.”
“도와드릴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오케이~!”
그렇게 두 사람은 인터뷰 현장에 도착했다.
오재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수와 악수한 뒤, 타이탄스 유니폼을 건네받았다.
등번호는 독고준이 사용하던 18번이다.
오재근은 기자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타이탄스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수는 흐뭇한 얼굴로 오재근은 바라보며 생각했다.
‘국가대표 2번 타자답네. Platinum 등급이라니···.’
【오재근】【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92%)
(타이탄스 코치진: 60%)
(타이탄스 프런트: 40%)
결론: 경기장의 방덕 영명(令明)입니다. 뛰어난 타격력을 보유했습니다. 테이블세터 재능이 뛰어나지만, 사실 어느 타순에서든 활약할 수 있습니다. ···(중략)···
【포지션】
1순위: 외야수
2순위: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특기】
1. S급 배드볼히터
···(이하 생략)···
특성은 ‘수비대장 A’로, 수비 실책을 낮추는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웅 도감 ‘번성(樊城) 공방전의 절개(節槪)와 회개(悔改) - 죽인 놈, 죽은 놈, 산 놈’을 완성했습니다.】
【영웅 도감을 확인하고 보상을 획득하세요!】
오재근을 영입하는 순간, 새로운 영웅 도감을 완성했다.
한수는 어떤 선수들이 버프를 받고,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입단식 때문에 이따 확인하기로 했다.
입단식은 빠르게 진행됐다.
그리고 오재근의 인터뷰가 시작됐고···.
동백 스포츠 박편복 기자가 재빨리 손을 들며 질문했다.
“오재근 선수! 평소 윤진호 선수와 친분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윤진호 선수의 거취에 대해 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인터뷰 현장에 모인 기자들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오재근은 웃으면서 약속된 멘트를 했다.
“요즘 바빠서 진호 형이랑 얘기를 못 했지만···. 진호 형이 워낙 효자잖아요. 아마 아버지 손에 우승 반지 끼워드리려고 타이탄스로 오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하하!”
이 개인적인 의견은 윤진호가 아버지 손에 반지를 끼워드리기 위해 타이탄스로 이적할 거란 기사로 부풀려져 나가게 될 거다.
한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좋아···. 흐흐.’
그렇게 오재근 선수의 입단식이 끝났다.
한수는 양승진과 단장실로 가고 있었다.
그때 복도 저편에서 고민수 팀장이 무척 흥분한 표정으로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구단주님!”
“······?”
한수가 왜 부르나 싶어서 고개를 갸웃한 순간, 고민수가 소리쳤다.
“윤진호가 우리 타이탄스로 오겠다고 합니다!”
“···네?”
너무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수는 당황했다.
아직 윤진호 흔들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리고 그 순간!
-띠링!
포수 마스크 위로 느낌표가 나타났다!
이건 아마도···.
‘새로운 영웅 도감이 완성된 건가!?’
= = = = = = =
마산, 진호네 배팅 연습장.
윤진호는 타석에 서서 스윙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무척 서늘한데도 땀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오랜 시간 스윙을 한 것 같았다.
그때 윤형식이 연습장에 나타났다.
그는 연습 중인 아들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수혁이 놈한테 전화 왔어.”
“······.”
“나 때문에 네가 타이탄스로 가게 생겼다고 지X을 하더라.”
윤진호는 스윙을 계속 이어가며,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타이탄스로···.”
“아버지 때문이 아닙니다.”
“······?”
“타이탄스로 가려는 건 제 의지입니다.”
“······.”
윤형식은 그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타이탄스 팬들이 그동안 윤진호를 얼마나 조롱했는데, 뭐가 좋다고 타이탄스로 간단 말인가?
‘내가 코치를 괜히 한다고 해서···.’
윤진호는 최근 두 시즌 타율이 2할대로 떨어졌다.
프로 데뷔 이래 처음으로 겪는 일.
그렇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듯, 중요한 순간에는 한방을 터뜨려준다.
그래서 티라노스에서 대체 불가 4번 타자다.
하지만 타이탄스엔···.
‘이소호가 있어···.’
타이탄스의 심장.
한국의 4번 타자.
역대급 천재 타자.
타이탄스라는 팀에는 너무도 과분한···.
하여튼!
이소호가 있는 한 윤진호는 4번 타자는 꿈도 꾸지 못할 거다.
윤형식은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코치를 그만둔다고 해야 하나?’
페르난도 킴 감독과 대화가 잘 통하는 거 같아서 아쉬웠지만, 아들을 위해서···.
그때 이정호 포수의 아들인 한수가 떠올랐다.
타이탄스 통합 우승이라는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대견함···.
그의 무리한 플레이 때문에 이정호가 다쳐서 은퇴하지만 않았어도 한수가 아버지를 잃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윤형식은 고개를 떨궜다.
‘멍청하고 한심한 놈···. 내 죄책감 때문에···. 아들 발목이나 잡고···.’
윤진호는 스윙을 멈추고 윤형식을 바라봤다.
자책하는 아버지를 보며, 뭐라고 말하면 좋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왜냐면 타이탄스로 가는 건 사실···.
‘아버지 때문이니까.’
.
.
.
윤진호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2020년 통합 우승을 했을 때···.
한수혁 단장이 시즌 우승 트로피와 한국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고 윤형식을 찾았다.
[네 아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통합 우승도 했어! 으하하! 고맙다! 고마워! 저런 아들을 둔 네가 정말 부럽다!]
평소의 아버지라면 무척 기뻐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날 윤형식은···.
[······.]
무척이나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저러시나 궁금해했는데···.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윤형식과 한수혁이 친구가 아니고, 고교 시절부터 앙숙이자 라이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제야 아버지의 마음이 이해됐다.
‘···부러우신 거구나.’
팀으로부터 방출까지 당한 삼류 선수였던 아버지.
인맥이 없어서 지도자로 성공도 못했고···.
결국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랑하는 야구를 그만뒀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아들이 야구를 하고 싶다고 하자···.
그는 열과 성을 다해 아들의 훈련을 도왔다.
너한텐 재능이 없다고 모두가 무시할 때도···.
[재능이 없으면 더 뛰어! 노력해! 불가능은 없어!]
···라며 힘이 되어줬다.
윤진호가 뛰어난 타자가 된 건 윤형식 덕분이었다.
그런 아버지한테···.
윤진호는 뭔가 선물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배팅 연습장도 차려드린 건데···.
그냥 윤진호의 개인 연습장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마음이 복잡해서 경기에 집중을 못 했고 성적도 점점 떨어졌다.
‘이런 게 아니야. 이런 게 아니고···.’
나는···.
‘···아버지도 우승 반지를 껴드리게 하고 싶어.’
팀의 일원으로서···.
그래서 이번 티라노스와 계약 때 옵션으로 아버지를 코치로 받아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진호야~! FA를 부탁하노라~! 아버지~! 타이탄스 가면 될까요~?] - 동백 스포츠, by. 박편복 기자
윤형식이 타이탄스 1루 작전 겸 주루 코치가 됐다.
그래서···.
.
.
.
생각을 마친 윤진호는 다시 배트 스윙을 시작하며 윤형식에게 말했다.
“아버지.”
“응?”
“타이탄스에 우승 반지 끼게 해드릴게요.”
“하하···. 인마, 아무리 너라도 그건 어려워. 타이탄스는 안 돼. 그건 진짜 불가능해. 타이탄스는···.”
“아니요.”
“뭐?”
윤진호는 매서운 눈빛으로 강하게 배트를 휘두르며,
“우승시킬 겁니다. 반드시!”
‘아버지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