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저건 또 뭔 시츄에이션?
타이탄스 주전 포수 윤창근.
그는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는 괜찮은 선수였다.
하민철이 백업 포수가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윤창근은 하민철의 빛나는 재능에 열등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더 열심히 노력했지만···. 결국 무너졌다.
그 뒤로 윤창근은 훈련의 열의도 사라졌고, 팀에서도 겉돌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치질을 핑계로 틈만 나면 병원 신세를 졌다.
그래서 팬들은 그를 치질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재계약을 했던 건, 포수라는 자원이 무척 귀한데다가 윤창근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고, 코치진들이 그를 감쌌다.
‘창근이가 원래 저런 놈이 아닙니다. 요즘 몸이 아파서···.’
‘창근이 쟤가 KBO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포수였어요. 투지도 창근이 실력을 인정···.’
‘창근이가 프레이밍 하나는 죽여줬어요. 볼도 스트라이크로 만드는 능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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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스 단장실.
한수는 읽던 서류를 팔랑이며 맞은 편에 선 덩치가 아주 큰 남자, 윤창근에게 말했다.
“코치들의 말을 믿고 재계약을 추진했는데···. 꾀병을 부리고 팀 분위기를 흐리면 안 되죠~?”
“그래서 저를 트레이드하시는 겁니까?”
“트레이드가 애들 장난입니까? 당신보다 팀에 도움 되는 선수를 얻기 위해 트레이드하는 겁니다.”
그렇게 말한 한수는 윤창근의 정보창을 떠올렸다.
【윤창근】【Silver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65%)
···(중략)···
결론: 촉망받던 포수였습니다만, 하민철 포수가 입단하고 열등감에 빠졌습니다. 비교당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렸고, 독고준 일당에게 하민철이 괴롭힘을 당해도 모른 척 ···(이하 생략)···.
‘열등감이라···.’
그때 윤창근이 자조의 빛을 띄며 말했다.
“하긴 민철이가 있으니, 저 같은 건 팀에 도움이 안 될 테니···.”
한수는 혀를 차며 생각했다.
‘꼴불견이군.’
“알겠습니다. 마산이면 집도 더 가깝고 좋네요. 용식이랑 같이 가는 겁니까?”
“맞아요.”
SNS 중독자 신용식.
그도 이번 트레이드 대상이다.
【신용식】【Iron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24%)
···(중략)···
결론: SNS에 중독된 발은 빠른 ···(이하 생략)···.
신용식은 사실 2군으로 보내서 투수들 연습 상대라도 시킬 생각이었는데···.
티라노스 한수혁 단장이 2:2 트레이드를 제안했다.
그래서 쓸모없는 신용식을 보내기로 한 거다.
한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한 건 이소희 팀장한테 들어요. 나가보세요.”
“···알겠습니다.”
윤창근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장실에서 나갔다.
왠지 쓸쓸해 보였지만, 해줄 말은 없었다.
‘프로라면 트레이드쯤은 감수해야지. 싫으면 야구를 그만두든가.’
한수는 윤창근에게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티라노스에서 데려오기로 한 선수들 정보창을 확인했다.
우선, 길우현 투수.
【길우현】【Silver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79%)
···(중략)···
【포지션】
1순위: 투수(원 포인트 릴리프)
【투타】
좌투좌타
【특기】
1. 1이닝 무쌍
2. 저질 체력
···(이하 생략)···
1이닝 무쌍이라는 특기 때문이다.
‘이 팀장 말처럼 퀵 후크 전략에 활용할 수도 있을 거야.’
다음은 티라노스의 마무리 투수였던 양창진이다.
【양창진】【Gol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85%)
(타이탄스 코치진: 65%)
(타이탄스 프런트: 60%)
결론: 경기장의 하후패(夏侯覇)입니다. 문무가 뛰어난 인물로 통솔력이 준수합니다. 티라노스의 창단 팀원으로 최초의 영구 결번을 꿈꾸고 있습니다. 만약 라이벌 구단(타이탄스, 트리플스, 위닝스)으로 팀을 옮기면 새로운 특기가···.
【포지션】
1순위: 투수
【투타】
우언우타
【특기】
1. 직구도 마구
2. A급 완급조절
3. 흔들리지 않는 베테랑 마인드
4. 뛰어난 구위
5. ??? [타이탄스, 트리플스, 위닝스로 가면 활성화]
【호감도: 0%】
양창진은 Gold 등급인데, 타이탄스로 오면 특기 하나가 활성화된다.
‘어떤 특기일지 궁금하네.’
하여튼 Silver와 Iron 등급 선수 둘을 내주고, Gold와 Silver 등급 선수를 데려오는 아주 좋은 거래다.
한수는 씨익 웃었다.
“이번 마무리 캠프부터 손발을 맞추면 딱이겠네.”
그는 단장실에서 나가며 중얼거렸다.
“페르난도 감독한테 빨리 양창진이랑 길우현도 마무리 캠프에 참가시키라고 해야지.”
= = = = = = = = =
창원, 티라노스 단장실.
한수혁 소파에 앉아서 옆에 서 있는 길우현과 양창진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팀의 사정상···.”
베테랑 투수 양창진은 한수혁의 뜻을 이해했다.
양투지가 그리즐리스로 떠났으니, 팀에 시급한 건 주전급 포수다.
그런 와중에 타이탄스가 윤창근으로 트레이드 제안을 했다.
티라노스 입장에서 거절할 수 없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렇지만 무척 서운했다.
‘내가 티라노스를 소중히 생각하는 걸 빤히 아시면서···. 어떻게···.’
그때 길우현이 버럭 소리쳤다.
“단장님! 무슨 타이탄스에요! 저는 못가요! 안 가요!”
“······.”
“저 체력 훈련 들어갔어요! 내년에는 더 펄펄 날 거라고요! 저는 티라노스의 수호신이···!”
양창진은 한숨을 내쉬며 길우현의 어깨를 잡았다.
“길우현, 너, 인마 단장님께···.”
“선배님은 서운하지도 않으세요! 아니, 다른 팀도 아니고 우리를 어떻게 타이탄스로 보내요! 쪽팔려서 투수 생활···.”
“길우현!”
양창진의 외침에 길우현은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단장님을 곤란하게 하지 말자. 팀을 위한 일이다. 따라야지.”
“하지만···.”
“···우리는 프로다. 아마추어처럼 굴지 마.”
“······.”
길우현은 말없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한수혁을 노려보더니, 단장실에서 뛰쳐나갔다.
한수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양창진이 담담히 말했다.
“우현이는 제가 잘 다독이겠습니다.”
“부탁한다···.”
“···단장님, 결정···. 서운하지만···. 이해합니다.”
“······.”
“가보겠습니다.”
“···잘 지내라.”
양창진도 단장실에서 나가고 한수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남용민 팀장이 들어왔다.
“얘기는 잘하셨습니까?”
“···그래.”
“그럼, 바로 홍보팀에 기사를 내라고 하겠습니다.”
“······.”
남용민은 한수혁의 표정이 좋지 않자 조심스레 말했다.
“창진이한테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마땅한 마무리가 없는 타이탄스로 가서 주전으로 자리 잡는 게 창진이한텐 더 좋을 수도···.”
“···그런 게 아냐.”
“네?”
한수혁은 깍지를 끼며 생각했다.
구속은 빠르지만, 체력이 너무 약한 길우현.
에이징 커브가 올 거로 예측되는 양창진.
그 둘을 보내고 주전급 포수와 타자 한 명을 데려오는 거다.
분명 이득이다.
이득인데···.
‘왜 이렇게 손해보는 거 같지?’
한수혁은 무척 속이 쓰렸다.
= = = = = = =
타이탄스 구장 근처 카페.
문동신은 카페로 들어와서 두리번거리다가 한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윤창근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그리고 맞은 편에 앉으며 물었다.
“치질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들다더니 어쩐 일이야?”
“코치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뭐야? 너 이 XX 설마 또 꾀병을···!”
윤창근은 흠칫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정말 수술한 데가 터졌어요. 지금도 간신히···.”
“한두 번 속냐? 인마, 넌 독고준보다 더 나쁜 놈이야. 독고준 걔는 그냥 대놓고 놀았지! 너는 입만 열면 거짓말을···.”
“······.”
“미친 X, 한참 후배한테 열등감이나 느끼고···. 민철이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윤창근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정혁이 형이 2군 가면서 네 걱정을 오지게 했어!”
최정혁은 전임 1군 배터리 코치로 윤창근이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놨던 사람이다.
지금은 2군 배터리 코치를 맡고 있다.
문동신은 혀를 차며 말했다.
“정혁이 형이 사람이 좋아서 너를 감싸줬지. 나한테 걸렸으면 아주 그냥···.”
“···죄송합니다···.”
“죄송한 줄 알면 똑바로 좀 해라.”
“네···?”
“앞으로는 민철이 아껴주고 선배로서 본을 보이라고! 이번 마무리 캠프도 참가하고!”
윤창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코치님···. 혹시 모르세요?”
“뭘?”
“저 오늘부로 티라노스로 가게 됐습니다.”
문동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트레이드라니? 그게 뭔 소리야?”
“구단주님이랑 감독님이 티라노스 양창진 투수랑 저를 트레이드···.”
“뭐!? 누구 마음대로!? 나한테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문동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윤창근은 당황하며 그를 불렀지만, 그는 들은 채도 안하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 = = = = = =
타이탄스 구장, 어느 회의실.
타이탄스 1군 주전 포수인 하민철과 백업 포수 강민수가 새로 부임한 장 줄리앙 배터리 코치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프랑스 사람인 장 줄리앙 코치는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만, 하민철이 불어를 무척 잘해서 대화는 무척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강민수는 하민철을 힐끗 쳐다보며 생각했다.
‘얼굴도 잘생기고, 포수도 잘하고, 외국어까지···.’
고등학교 때 ‘그 녀석’이 떠올랐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하민철은 그 녀석과 달리 무척 온화하고 착하다.
그 녀석은 입이 험하고 무척 더러운 성격을 가졌으니까.
‘제길···.’
그 녀석을 떠올리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고, 다시 열등감이 밀려왔다.
문득, 신이고 야구부 감독과 나눴던 대화 내용이 떠올랐다.
[■■■, 민수 좀 적당히 잡아. 그러다가 걔 포수 그만두면 어쩌려고···.]
[그만두라고 하세요. 그딴 근육 돼지 새끼 아니어도 제 공 받아줄 새끼 많습니다.]
[민수가 그래도 중학교 최고···.]
[최고? 그딴 놈이? 이래서 KBO가 허접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인마, 너 말이···.]
[감독님 솔직히 말해봐요. 강민수 그 새끼가 포수 잘한다고 생각해요? 아니죠? 개고생하는 포수 포지션 하려는 애 없는데 알아서 한다고···.]
그걸 엿듣고 강민수는 포수를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지켜왔던 자존심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때를 떠올리자 강민수는 또 나락으로 빠질 거 같았지만···.
‘정신 차려···!’
지난번 신성 스페이스와의 연습 경기 이후 팬들의 응원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했다.
강민수는 주먹을 꽉 쥐며 생각했다.
‘나도 이제 타이탄스 1군이잖아. 그 녀석한테 뒤처지지 않아. 그러니까···.’
그때 하민철이 말했다.
“줄리앙 코치님이 마무리 캠프 훈련 일정을 함께 검토하겠냐고 하는데, 민수 너는 어쩔래?”
“죄송합니다. 철수 훈련을 도와주기로 해서···.”
“괜찮아. 연습 잘 도와줘.”
“네!”
하민철은 장 줄리앙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민수는 한숨을 내쉬고 짐을 챙겨 회의실에서 나가며 중얼거렸다.
“민철 선배 같은 사람을 천재라고 하는 거겠지. 그 자식처럼···.”
그때 어디선가 고함이 들렸다.
“네가 감독이면 다야!?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여!?”
강민수는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난처한 표정의 페르난도 킴 감독과 무척한 흥분한 걸로 보이는 문동신 수석 코치가 서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이때 복도를 지나가던 한수도 문동신과 페르난도 킴을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저건 또 뭔 시츄에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