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 기용찬으로 갑시다.
갑자기 등장한 ST 위닝스의 포수 문정준은 커다란 손을 뻗어 안민혁의 머리를 강하게 잡았다.
안민혁은 깜짝 놀라 염철수의 멱살을 놓더니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으악!”
문정준은 그대로 안민혁의 머리를 눌러서 한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게 만들더니,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다 이 미친놈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선배! 저 자식들이 먼저···! 으악!”
문정준은 안민혁의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안민혁, 감독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입 다물어라···!”
안민혁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세상 무서울 게 없는 양아치 안민혁도 ST 위닝스의 원종현 감독은 껄끄러웠다.
안민혁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저 건방진 안경 XX가 먼저 양아치라고 시비를 걸었는데···!’
그때 한수가 포수 마스크를 벗으며 말했다.
“사과는 됐고, 이번 일은 ST 위닝스에 정식으로 항의할 겁니다. 어디 감히 우리 선수들한테 폭력을···. 아! KBO 협회에도 징계 요청을 할 거고요.”
문정준은 한수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어쨌든 ‘X 됐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재차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이 자식이 사고뭉치인 거 잘 압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사람을 만들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협회로부터 또 징계를 받으면···. 부탁드립니다. 이 자식한테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한수는 팔짱을 끼더니 염철수에게 물었다.
“염 선수,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구단주님 뜻에 따를게요.”
“강 선수는요?”
“저는···.”
그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 하자, 한수는 혀를 찼다.
이미 뒷조사를 통해서 강민수가 안민혁한테 학창 시절에 가스라이팅을 당했단 건 알고 있었다.
강민수의 정보창에 언급된 열등감도 거기서부터 비롯됐다.
한수는 스토브리그 중에 강민수의 열등감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안민혁이 입단한 ST 위닝스와 협상해서 마무리 캠프 일정도 겹치게 짠 건데···.
‘이래서는 역효과만 나겠는데···.’
우선···.
‘강민수의 자존감을 좀 높여줘야겠네.’
한수는 강민수의 대답을 듣지 않고 말했다.
“강 선수는 이따 저랑 얘기 좀 하죠.”
“······.”
“문정준 선수의 뜻은 자~알 알겠습니다. 일단 협회 징계는 보류하도록 하죠.”
안민혁이 뭔가 불만인 듯 입을 열려고 했지만, 문정준은 그의 입까지 막아버렸다.
“읍! 읍! 읍!”
문정준이 한수에게 고개를 숙이며,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함을 알면 됐고.”
이때 안민혁은 너무 분해서 미칠 거 같았다.
근육 돼지 강민수 앞에서 이런 꼴을 당하다니!
‘젠장, 젠장···.’
그때 한수가 안민혁을 보며 말했다.
“어이, 금발 양아치.”
“······?”
“우리랑 연습 경기 붙는 거 알지?”
강민수와 염철수는 흠칫하며 놀랐다.
‘연습 경기···?’
‘위닝스랑 경기를 한다고?’
안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 어쩌라는 거야?’
그러자 한수가 말을 이어갔다.
“네가 선발 투수인 것 알아. 괜히 겁먹고 도망치지 말라고.”
안민혁은 인상을 팍! 썼다.
마음 같아서는 같잖은 도발을 하는 한수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그의 입을 막고 있는 문정준이 속삭였다.
“주둥이 놀리지 마. 간신히 징계 모면했어. 감독님이 알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안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정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숙소 체크인 때문에···.”
한수는 싱겁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가봐요.”
“네, 그리고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영상은···.”
“걱정 마요. 내가 한 말을 지키니까. 하지만 또 우리 선수들한테 개수작 부리면···.”
한수가 안민혁을 노려보자, 안민혁은 움찔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문정준이 말했다.
“하하, 그런 일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럼···!”
문정준은 꾸벅 인사를 하고 안민혁을 끌고 사라졌다.
그러자 한수는 염철수에게 말했다.
“염 선수, 가보세요. 훈련해야죠.”
“네? 하지만···.”
염철수는 강민수를 힐끔 쳐다봤다.
강민수는 애써 웃으며,
“가봐. 연습은···. 민철 선배한테 부탁해.”
“···네···.”
염철수가 투구 연습장으로 들어가자 강민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구단주님···. 안민혁과 저는···.”
“압니다. 두 사람 관계.”
“······!”
“훈련 중이니까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삼일 뒤에 ST 위닝스와 연습 경기가 있을 겁니다.”
“······.”
“참고로 위닝스의 선발 투수는 안민혁입니다.”
강민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좀 전의 한수와 안민혁의 대화로 예상은 했지만···.
‘···제길···.’
이때 한수가 강민수의 어깨를 잡으며,
“이 기회에 짓밟아 버리고 열등감 따위 떨쳐내요.”
“저, 저는···.”
자신 없는 표정을 짓는 강민수를 보며 한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강 선수, 당신은 당신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스페이스와의 첫 번째 연습 경기 기억 안 납니까? 당신은 그날 우리 팀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친 타자예요.”
“······.”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자신감을 얻고 다시 포수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하지만···.
[프레이밍이 왜 그래? 이러니까 투수들이 죽어나지. 스트라이크는 포수와 투수의 앙상블로 만들어지는 거라고~!]
[반응속도가 왜 그래? 그걸 패스드 볼로 만들면 어쩌자는 거야?]
[그만두라고 하세요. 그딴 근육 돼지 새끼 아니어도 제 공 받아줄 새끼 많습니다.]
[감독님 솔직히 말해봐요. 강민수 그 새끼가 포수 잘한다고 생각해요? 아니죠? 개고생하는 포수 포지션 하려는 애 없는데 알아서 한다고···.]
고등학교 때 악몽이 계속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제길···.’
안민혁은 본인의 실투로 퍼펙트게임을 놓쳤으면서 그 모든 책임을 강민수에게 돌렸고···.
지독하게 그를 괴롭혔다.
강민수도 본인 잘못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안민혁 앞에만 서면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그런데···.
‘연습 경기에서 짓밟아 버리라고?’
강민수는 자신이 없었다.
한수는 고개를 떨구는 강민수를 보며 혀를 찼다.
‘마음에 안 드네···.’
마치···.
‘옛날 내 모습 같아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버지.
다리를 다친 어머니.
아직 사리 분별 못하는 어린 여동생.
승냥이처럼 한수를 노리는 친척들.
그리고 교묘하게 그를 깎아내린···.
‘이재수···!’
한수는 강민수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시절···.
그 빌어먹을 상황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떠올렸다.
[한수야, 할아버지 숙제를 하나 내마. 만약에 네가 이걸 해내지 못하면···. 너랑 네 엄마, 네 여동생까지 호적에서 파내고 집에서 쫓아낼 거다.]
[······!?]
[추운 겨울에 몸도 성치 않은 네 엄마가 거리로 나가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 할아버지···!]
[그러니까 숙제를 해내라. 반드시.]
한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선수, 숙제를 내겠습니다.”
“······?”
“ST 위닝스와 경기에서 홈런을 치든, 안타를 치든, 홈 스틸을 하든! 배트로 안민혁 뚝배기를 깨든! 뭐가 됐든 간에!”
“······!”
“안민혁한테 엿을 먹이세요.”
“구, 구단주님···.”
“만약 실패하면 당신을 구단에서 쫓아낼 겁니다. 그리고 평생 야구를 못하게 만들 겁니다. 제 모든 걸 걸고!”
“구, 구단주님···!”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숙제를 해내요. 반드시!”
“······!”
혼란스러운 강민수의 얼굴을 보며, 한수는 생각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어뜯는 법이니까.’
어린 시절 그가 그랬던 거처럼···.
그렇지만 강민수를 맨몸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 생각은 없다.
‘나는 할배랑 다르니까.’
한수는 타격 연습장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안량을 짓밟으려면 그 사람이지.”
= = = = = = =
한수는 일이 있다며 떠났고, 홀로 남은 강민수는 벤치에 앉아 고민에 잠겨있었다.
‘ST 위닝스와의 연습 경기···.’
그는 시선을 내려 본인의 손을 쳐다봤다.
‘내가···.’
안민혁을···.
‘이길 수 있을까···?’
그때 그의 등 뒤로 누가 다가왔다.
무뚝뚝한 표정의 다부진 체격의 남자, 타이탄스의 4번 타자 이소호였다.
이소호는 강민수의 어깨를 툭! 치며,
“마!!!”
“네, 넷!?”
강민수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이소호를 보고 차렷 자세를 했다.
“서, 선배님···. 여긴 왜···.”
“여긴 왜? 이 자식! 1군에 콜업된지 얼마나 됐다고···! 마!!! 동료들 다 열심히 훈련하는 거 안 보여!? 어디서 농땡이를 부려! 부리길”
“그, 그게···.”
“입 다물고 따라와.”
강민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이소호의 뒤를 따라가며 물었다.
“선배님···. 지금 어디로···.”
“넌 오늘부터 나랑 특별훈련이다.”
“네!?”
“왜 그래? 싫어?”
“아, 아닙니다···.”
한수는 멀찍이서 두 사람을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
‘안량 잡을 땐 관우를 써야지!’
이소호는 한수가 윤진호를 영입하겠단 약속을 지킨 뒤로 무척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이번에 강민수 특훈도 흔쾌히 수락해준 거다.
그때였다.
-띠링!
손에 들고 있던 포수 마스크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임무 완료는 아직일 텐데?’
임무 16은 재야의 인재를 직접 영입하는 거다.
하지만 아직 영입한 인재는 없다.
‘그렇다면···.’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썼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17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임무 16이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강민수(Gold 등급, 마충, 재능: 80%)가 이소호(Diamond 등급, 관우, 재능: 98%)의 정보창의 영향을 받습니다.】
【비정상적인 경로로 업데이트가 시작됩니다.】
【‘Ver. 마충(馬忠) 안에 마충(馬忠) 있다.’ 업데이트가 시작됩니다.】
【업데이트 완료까지 72시간 남았습니다.】
“마충 안에 마충 있다? 이게 뭔 소리야?”
그러나 평소와 달리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는 대답이 없었다.
한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잠자코 기다리란 건가?’
그리고 이틀이 흘렀다.
애리조나 키노 스포츠 콤플렉스로 이번 시즌 6위를 한 ST 위닝스가 도착했다.
= = = = = = =
키노 스포츠 콤플렉스 다목적실.
페르난도 킴 감독과 코치진들이 모여서 내일 있을 ST 위닝스와의 연습 경기 작전 회의를 하고 있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쓴 채 의자에 앉아서 ‘실시간 노력 등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실시간 노력 등수】
└선수 전체 훈련 효과 상승 +10%
└상위 5명은 추가 버프 적용
└하위 3명은 디버프 적용
1등: 강민수(??? 등급)(포수) [훈련 효과 +5%]
└‘이소호 개XX···. 진짜···. 으으···.’
2등: 염철수(Diamond 등급)(투수) [훈련 효과 +4%]
└‘민수 형 이틀 째 안 보이는데 어디 간 거지···.’
3등: 기용찬(Platinum 등급)(투수) [훈련 효과 +3%]
└‘몸쪽 승부는 어렵네···.’
4등: 손재현(Platinum 등급)(타자) [훈련 효과 +2%]
└‘보인다···! 공이 보인다···! 공이!’
5등: 안종렬(Bronze 등급)(타자) [훈련 효과 +1%]
└‘난 블랙 스완이 될 거야···.’
···(중략)···
38위: 이소호(Diamond 등급)(타자) [훈련 효과 –1%]
└‘가르치는 건 영 어렵군. 대체 이게 뭐가 어렵다는 거지? 허진우, 그 꼬마는 잘만 하던데···. 에휴···.’
39위: 길우현(Silver 등급) [훈련 효과 –2%]
└‘오늘 아침밥 맛있었지···.’
40위: 박치수(Bronze 등급)(타자) [훈련 효과 –3%]
└‘끝났다···. 파산이야···. 난 끝이야···.’
한수는 매번 하위권에 속해 있는 길우현과 박치수를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이소호와 맨투맨 훈련을 시작하고 쭉 1위에 자리 잡은 강민수를 보고 있으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등급에 물음표가 되어 있는 걸 보면 분명 특별한 변화가 생기려는 걸 거야. 내일이 기대되네.’
그때 페르난도 킴 감독이 물었다.
“구단주님~?”
“······?”
“내일 연습 경기 선발로 누가 좋을 거 같아요~?”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감독이랑 코치진이 정해야죠.”
“하하~! 그냥 의견을 묻는 거예요~! 연습 경기니까 다양한 테스트를 해볼 거니까요.”
“그래요? 흠···.”
한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더니,
“기용찬으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