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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80화 (80/187)

80화 : 쟤 왜 저러지?

늦은 오후, 애리조나 대학교, 기숙사.

장은수는 방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어제 타이탄스와 위닝스의 연습 경기를 보고 난 이후로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특히, 8회 초, 위닝스에서 내보낸 라이언 킴이라는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를 보고 난 이후···.

‘저런 것도 너클볼이라고? 필 할아버지가 봤으면···. 아냐, 그냥 신경 쓰지 말자. 너클볼이든 너구리볼이든 나랑은 상관없잖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장은수는 지금 필 할아버지의 꿈을 꾸고 있었다.

집에서 도망치듯 나와 애리조나로 왔을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던 중 필 할아버지와 만났다.

그는 장은수의 보더니 대뜸 재밌는 걸 배워보지 않겠냐며 몇 날, 며칠을 찾아왔고···.

[산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은 늙은이의 소원 좀 들어주게나. 부탁이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노인공경을 뼛속 깊이 배운 장은수는 어쩔 수 없이 필 할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게 됐다.

그리고···.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이래서 무서운 거구나.]

[···이제 다 배운 거 맞죠?]

[그런 생각이 든다면 조금 더 연습해라.]

[또요? 네모 안에 다 들어오게 던지면 연습 끝이라면서요!]

[연습에 끝은 없어. 네가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이 될 때도 더 연습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할 수 있다.]

[···전 야구로 성공할 생각 없는데요.]

[뭐야~?! 나한테 공을 배웠으면 당장 MLB로 진출해서 400승은 찍어야지!]

[뭔 소리예요. 전 디자이너가 꿈이라고요.]

[아직도 그 소리야! 그러면 나한테 너클볼은 왜 배운 거냐!?]

[누가 가르쳐달랬어요!? 할아버지가 죽기 전 소원이라며 사정사정했잖아요!]

[죽긴 누가 죽어!]

[왜 자꾸 소리는 질러요!]

[디자이너 그만둬!]

[아직 디자이너 되지도 못했어요!]

[야구 해!]

[싫어요!]

···야구를 어릴 때 잠깐 배웠던 게 전부인 장은수는 필 할아버지에게 너클볼을 배웠다.

필 할아버지는 장은수를 어떻게든 선수로 만들고 싶었다.

[은수야, 정말 야구를 해볼 생각 없어? 원한다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추천을 해주 마. 바로 빅리그에서 뛰는 건 힘들어도 더블 A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올라갈 수 있을 거야.]

[······.]

[내 눈은 못 속여. 나한테 너클볼을 배울 때···. 넌 무척 즐거워 보였어. 왜 자신을 속이는 거냐?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정말? 그런 놈이 손이 그 지경 될 때까지 공을 던져?]

[할아버지, 저는···.]

[은수야, 너클볼을 던질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했지?]

강한 악력, 강철 같은 어깨, 뛰어난 체력···.

다 중요하지만···.

[용기다.]

[······.]

[네가 던진 공이 어떻게 될 진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건 공을 던질 용기다.]

[······.]

[망설이지 말고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필 할아버지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운동은 하고 싶지 않아요.]

[······.]

[디자이너 공부도 간신히 허락받은걸요. 그러니까···.]

필 할아버지는 무척 아쉬웠지만···.

[···알았다. 그래도 야구를 할 생각 있으면 언제든 말해.]

[···신경 써주셨는데 죄송해요.]

[괜찮다. 그보다 인생 선배로서 조언 하나만 하마.]

[······?]

[···부모는 말이다. 언제나 자식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러니까 은수야,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장은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안 그럴걸요.]

필 할아버지와의 꿈이 끝났다.

하지만 장은수는 아직 꿈에서 깨지 않았다.

그리고···.

꿈속 시곗바늘을 역행하기 시작했고···.

장은수의 어린 시절로 향했다.

장은수의 부모님은 교육자였고, 자식도 교육자의 길을 걷길 원했다.

장은수의 형과 누나도 그랬으니까.

그렇다고 무작정 공부만 시킨 건 아니었다.

[공부하려면 체력은 기본이다.]

[몸이 건강해야 공부도 더 잘 되는 거야.]

공부를 위해 운동을 시켰다.

처음에는 축구 클럽을 보냈다.

그랬더니 얼마 뒤 감독이 집에 찾아왔다.

[은수는 눈부신 재능을 가졌습니다. 제가 아는 선배가 중학교 축구부 감독으로 있는데···.]

장은수의 부모님은 곧바로 축구를 그만두게 했다.

그냥 다른 운동이라고 하라고 했지만···.

어느 날, 야구 경기를 보던 장은수가 말했다.

[엄마, 나 야구하고 싶어. 취미로만···. 응?]

아버지 친구 중에 유소년 야구 클럽을 운영하는 사람이 있었다.

장은수는 그곳을 한 달간 다녔고···.

어느 날 아버지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시키자. 얘는 엄청난 재능을 가졌어. 타고난 악력부터 강한 어깨···.]

그날 아버지는 친구 한 명을 잃었다.

장은수는 야구도 그만두게 됐다.

[체력은 런닝 같은 걸로 길러도 되니까.]

[형이랑 같이 헬스장에 다니는 건 어떠니?]

장은수는 운동이 좋았다.

그래서 그냥 취미로만 하겠다고 부탁했지만···.

[중학교 3년이 네 평생을 좌우하게 될 거다.]

[조금만 참자. 고등학교 진학하면 그때 생각해 보자. 알겠지?]

장은수는 알겠다고 했다.

공부···.

공부···.

공부···.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장은수는 부모님이 원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무척 실망했다.

[누나처럼만 하면 될 텐데···.]

[형만큼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러나···.

[고등학교 3년이 네 평생을 좌우하게 될 거다.]

[조금만 더 힘내자. 대학교만 진학하면 돼. 알겠지?]

부모님은 장은수를 다시 내몰았다.

장은수는 힘들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종종 친구들과 축구나 캐치볼을 했는데···.

[네 형을 봐라. 대학생인데도 저렇게 열심히 하잖아! 그런데 네가 이딴 공놀이나 할···.]

[엄마가 늘 말하잖니. 대학교까지만 참자고···.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모르니?]

장은수는 무척 힘들었다.

[다 포기하고 싶어···.]

그때 그녀를 만났다.

시립 도서관 벤치에 앉아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던 괴상한 옷을 입은 누나.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얘~, 너 참 예쁘게 생겼다~! 언니 모델 해줄래?]

[···저 남자인데요.]

[정말~? 쏘리~! 그래도 모델 해줄 거지?]

[공부해야 하는데요···.]

[공부는 내일 해도 되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 제인 정의 첫 번째 모델이 될 기회는 지금뿐이라고!]

[제인 정?]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물론 디자이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때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후후후, 기대하라고. 곧 온 세상이 나의 판타스틱하고 엘레강스한 재능에 취하는 날이 올 테니까.]

[···지금은 무명이라는 거네요?]

[준비된 인재인 거지! 아하핫!]

황당한 누나였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모델을 하게 됐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는 그냥 앉아서 공부했고, 제인 정은 그를 보고 그림을 그렸으니까.

종종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별거 아닌 대화였지만···.

장은수한테는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은수! 너! 대체 성적이 왜 이 모양이야! 네 형은 단 한 번도 1등을···.]

[은수야, 아무래도 이번 방학에는 기숙사 학원으로···.]

장은수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문득 제인 정이 보고 싶었지만···.

그녀는 도서관에 더는 나타나지 않았다.

연락처는 물론,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

제인 정이라는 이름이 본명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남은 거라고는 그녀가 그려준 초상화 하나···.

[답답해···. 답답해···. 답답해···.]

시간이 흐를수록 성적은 떨어졌다.

입시 스트레스가 절정에 도달했지만···.

장은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형, 누나와 비교하며 늘 한숨만 쉬는 아빠.

조금만 참으라며 점점 더 공부를 시키는 엄마.

그때···.

【Art Of fashion foundation 20XX에서 한국인 유학생 ‘제인 정(본명: 정말순)’이 최우수상을 받으며···.】

【Masion Lesage(파리) 인터쉽에서 찬사를 받은··· 한국인 디자이너 제인 정···.】

【박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천재 디자이너 제인 정의 호쾌한 입담···.】

···무척 그리워하던 사람이 나타났다.

황당하다고 여겼던 꿈을 이룬 채 말이다.

장은수는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다시 예전처럼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무작정 찾아가면 될까?

[안 만나줄 거 같은데···.]

어떻게 하면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저 공부 포기할래요.]

···아주 좋은 방법을 찾았다.

물론 장은수의 발언에 부모님은 노발대발했다.

[너 또 야구부 스카우트 제의받은 거니!? 엄마가 운동은 안 된다고 했지! 넌 운동이 쉬워 보이니!? 걔들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데! 그리고 얼마나 부조리가 심한 줄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네가 야구나 축구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 거냐? 너 정도 재능은 차고 넘쳐! 그러니까 운동은 포기해. 네가 나중에 대학교에 들어가면 다 이해할···.]

그놈의 운동, 운동, 운동···.

장은수는 답답했다.

[누가 운동을 한다고 했어요? 운동 안 해요! 아빠, 엄마가 등 떠밀어도 절대 안 해요! 저는!]

[······.]

[······.]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요. 미국에서요···. 학비만 내주세요. 생활비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장은수를 돕지 않았던 형과 누나가 나섰다.

[아버지, 은수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세요. 안 되는 공부를 계속 시키는 것도 비효율적인 거 같습니다.]

[엄마, 내 친구 중에 파리에서 디자인 전공한 친구가 있는데, 요즘 대학교 강의도 다니고 하나 봐. 은수도 손재주가 있으니까. 시켜보자~ 응?]

하여튼!

그는 그렇게 애리조나 대학교에 오게 됐고···.

필 할아버지를 만나서 너클볼을 배웠고···.

그리고···.

[안녕하세요. 장은수씨 맞으시죠? 그림이 참 멋지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신영 타이탄스의 구단주 이한수라고 합니다.]

[전 당신을 선수로 스카우트하러 왔습니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괴짜.

이한수를 만났다.

.

.

.

눈을 뜨자 익숙한 기숙사 천장이 보였다.

장은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잔 거지···.’

힐끔 시계를 쳐다봤다.

그리고 저녁 7시인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

‘제인 정 특별 강연!’

저녁 6시에 시작인데!

“으아아! 알람은 왜 안 울린 거야!?”

울렸지만, 그가 못 들은 거다.

장은수는 후다닥 옷을 갈아입고 대강당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운동 재능을 타고나서 달리기도 무척 빨랐다.

그러나 대강당에 도착했을 땐 이미 강연이 끝나 있었다.

학생들이 대강당에서 우르르 빠져나오는 걸 보며 장은수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이게 다 어제 야구 경기를 봐서···.”

그때였다.

“헬로우~ 하아아안~ 수우우우!”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화려한 무늬의 코트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가 긴 검은 머리를 휘날리며 포수 마스크를 쓴 남자의 품에 안기고 있었다.

바로, 제인 정과 한수였다.

장은수는 둘을 바로 알아봤고···.

심장에 쿵! 하고 돌덩이가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 둘이 왜···.’

= = = = = = =

한수는 대강당에서 나오면 인상을 썼다.

‘뭐야, 장은수는 어딨는 거야? 제인 정을 존경한다더니···. 정보가 잘못된 건가?’

그때였다.

“헬로우~ 하아아안~ 수우우우!”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돌리자, 제인 정이 달려와 품에 안겼다.

한수는 짜증 난다는 듯 말했다.

“···떨어져. 더워.”

“한겨울에 뭐가 덥다는 거예요? 그런데 얼굴에 그 마스크는 뭐예요? 못 본 사이에 패션 감각이 최악이 된 건가요?”

“신경 쓰지 마.”

한수는 그녀를 밀어낸 뒤 정보창을 확인했다.

그녀의 몸에서 황금색 빛이 흘러나왔고···.

-띠링!

【정말순(제인 정)】【Gol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0.1%)

(타이탄스 코치진: 3%)

(타이탄스 프런트: 85%)

결론: 프런트의 하후씨입니다. 마케팅팀으로 오면 굉장한 재능을···.

···(중략)···

【호감도: + 88%】

‘마케팅팀이라···.’

욕심이 나기는 하지만···.

‘연봉을 어마어마하게 부를 거 같은데···.’

FA 선수 하나 영입하는 게 싸게 먹힐 수도 있었다.

그때 제인 정이 물었다.

“한수, 그런데 오늘은 왜 보자고 한 거예요?”

“그게···.”

그 순간,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한수는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거기에는···.

‘찾았다!’

장은수가 서 있었다.

그런데 나사 하나가 빠진 듯 넋을 놓고 있는데···.

상태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쟤 왜 저러지? 어디 아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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