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 걔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한수가 장은수를 쳐다보고 있자, 제인 정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뭘 보는 거예요?”
“중요한 사람.”
“저보다?”
“물론.”
단호한 대답에 제인 정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한수를 좋아하는 건 이런 솔직한 면 때문이니까.
그나저나···.
‘중요한 사람이 누구지?’
혹시 여자인가 싶어서 시선을 돌리니, 훤칠한 키와 장발의 남자, 장은수가 보였다.
‘남자인데 예쁘게 생겼네.’
체구만 작았으면 여자로 착각할 뻔했다.
그런데···.
‘왠지 낯이 익네. 어디서 봤지?’
하지만 떠오르진 않았다.
‘여기 학생 같은데···. 그냥 오다가다 본 건가?’
한수는 그녀가 잡은 팔을 빼며 장은수에게 다가갔다.
그는 빙긋 웃으며,
“장은수씨, 반갑습니다. 여기서 또 만나네요.”
“···네. 안녕하세요.”
장은수는 마지못해 인사하더니, 묘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한수는 그의 태도가 평소와 조금 다르단 걸 느꼈다.
어제 경기를 같이 관람할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그때 제인 정이 다가와 다시 한수의 팔짱을 끼며 물었다.
“한수, 이 학생은 누구예요?”
한수는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장은수가 존경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제인 정을 소개해주면 분위기가 조금 부드럽게···.
그 순간, 장은수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누··· 구냐고요?”
“······?”
“······?”
한수와 제인 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반응이 왜 이래?’
‘왜 울려고 하지?’
그때 장은수는 몸을 휙! 돌리더니,
-후다다닥!
도망치듯 뛰어가기 시작했다.
한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왜 저래?”
그때 제인 정이 말했다.
“한수, 나 배고픈데~ 저녁 안 먹어요?”
“···기다려 봐. 지금 밥이 문제가 아니야.”
제인 정은 볼을 부풀렸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한수는 장은수가 왜 도망쳤는지 고민하기 바빴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데···.’
장은수는 무려 다이아몬드 등급은 인재다.
그를 영입해야지만 임무 16도 최고로 좋은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최상급 영웅 도감인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 촉(蜀)의 다섯 명장’도 완성할 수 있다.
한수는 좀 전에 장은수가 보였던 행동과 말을 떠올렸다.
‘나를 보고 무척 불편한 표정을 지었고···. 제인 정이 다가와서 소개해주려고 하니까···.’
[누··· 구냐고요?]
···라고 했었다.
‘잠깐만 설마···.’
한수는 제인 정에게 물었다.
“너 혹시 방금 본 남자 알아?”
“음~ 잘 모르겠는데요.”
“이름은 장은수야. 여기 애리조나 대학교 디자인 전공 학생이고.”
제인 정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에이~ 여기 학생이 한둘이에요? 제가 어떻게 다 알아요? 몰라요. 몰라. 그보다 밥이나 먹으러 가요!”
“······.”
한수가 조사한 정보에도 장은수가 제인 정을 존경해서 애리조나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것 외에 접점은 없다.
한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좀 전에 반응은 대체 뭐야?’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렸다.
“다이아몬드 등급 인재들 영입은 골치 아프네.”
“뭐가 골치 아픈데요?”
“···몰라도 돼. 그보다 너 정말 장은수 몰라?”
제인 정은 빙긋 웃으며,
“맛있는 저녁을 먹으면 생각날 거 같기도 한데요~.”
한수는 여우 같은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장은수 때문이 아니어도, J&J 디자인에 대한 것도 얘기해야 하니···.’
“···뭐 먹고 싶은데?”
= = = = = = =
염철수는 자유 시간에도 근력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너클볼에 대해서 검색했다.
어제 ST 위닝스의 마무리 투수 라이언 킴이 던진 너클볼이 무척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변화구를 던져야 하는데···.’
커브는 장보형 코치한테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실전에서 던지기에는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 팜볼은···.
‘전혀 감을 못 잡겠어···.’
그러던 와중에 너클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상위 타선 타자들이 맥도 못 추고 삼진을 당하다니!
‘너클볼···. 3대 마구 중 하나라···. 3대 마구···.’
자이로 볼, 스크류 볼, 너클볼.
자이로 볼은 회전하는 공이라는 뜻으로 패스트볼과 같은 빠른 속도로 슬라이더처럼 휘어져 나가는 볼인데, 아직 100% 구사한 사람이 없는 이론상의 마구다.
스크류 볼은 역회전을 주는 공으로, 우완투수가 던진 공은 왼쪽으로 휘어져 날아가는데, 이 공은 던진 손의 방향으로 뻗어지기 때문에,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하기 좋다.
다만, 손목과 팔꿈치 부상 위험이 커서 점점 사장되고 있는 공이다.
그리고 마지막 너클볼은···.
‘투수는 제구할 수 없고, 타자는 칠 수 없고, 포수는 잡을 수 없다. 코치들은 가르칠 수 없고, 대다수의 투수들은 배울 수 없다. 그야말로···.’
“완벽한 구종···. 우와···.”
염철수는 눈을 반짝였다.
‘나도 너클볼을 던질 수 있을까?’
조금 더 너클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려고 검색하다가 묘령 작가의 ‘호프집 너클볼’이라는 웹소설을 발견했다.
‘읽어 볼까?’
그리고···.
‘우오오···!’
너클볼에 대한 뽕이 차올랐다.
당장 너클볼을 연습해보고 싶었다.
‘민수 형한테 부탁해보자!’
그러나 강민수는 방에 없었고, 미국인 여친 사귀기에 실패한 박종구랑 안종렬 둘이서 영화 ‘캡틴 아이언’을 보면서 치킨을 뜯고 있었다.
“종구 형, 민수 형 어디 갔어요?”
“몰라! 영화 보는 데 방해하지 마!”
“여~ 샛별이~! 같이 치킨 한입 할래?”
“아닙니다, 종렬 선배님!”
“선배가 뭐냐, 선배가 그냥 행님이라고 불러!”
“네!”
그리고 복도를 두리번거리는데, 이소호를 발견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음, 그래.”
“혹시 민수 형 보셨나요?”
“민수? 못 봤는데. 왜?”
“연습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려고요.”
“연습? 무슨 연습?”
염철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구(魔球)요!”
= = = = = = =
장은수는 정신없이 달렸다.
그러면서 머릿속에 제인 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수, 이 학생은 누구예요?]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다.
비록 통성명은 안 했지만···.
장은수 인생에서 그녀와의 짧은 추억은 무척 소중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바람이었다.
제인 정은 장은수를 만났던 순간이 전혀 특별하지 않았던···.
“젠장!”
크게 소리친 장은수는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왠지 기분이 더 울적해졌다.
그때였다.
발아래로 야구공이 굴러왔다.
‘이건···.’
조명이 켜진 공원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쏘리! 쏘리! 플리즈 볼!”
담장 너머로 금테 안경을 쓴 동양인 남자, 염철수가 보였다.
장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가 멈칫하고 야구공을 빤히 바라보는데···.
“······.”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제인 정이고, 부모님이고···.
모든 게 사라지고 그와 공밖에 없는 느낌···.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그랬다.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축구나 야구를 하면 기분이 개운해졌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진 친구들과 축구나 풋살도 하고, 야구가 취미인 친구들하고는 캐치볼도 했었다.
그렇지만 부모님 때문에 더는 축구나 야구를 못하게 됐고···.
‘그때부터 입시 스트레스가 더 심해졌지···.’
야구를 다시 시작한 건 필 할아버지 덕분이다.
야구공에 손이 닿자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공을 잡았다.
‘오랜만이네···.’
필 할아버지가 이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야구공을 잡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떠올라 무척 슬펐기 때문이다.
[아쉽구나. 네가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차라리 그때···.
‘할아버지 말대로 야구를 했다면···.’
[한수, 이 학생은 누구예요?]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텐데···.
공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꽈과과곽!
굳은살 가득한 손과 실밥이 긁히며 섬뜩한 소리가 났다.
그때였다.
“헤이~!”
“······!”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염철수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플리즈 볼~!”
그 옆에 글러브를 낀 덩치 큰 남자 이소호도 보였다.
장은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사람···. 낯이 익은데···.’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장은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죄송해요! 바로 던져줄게요!”
“땡큐! 어? 한국인···?”
염철수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장은수는···.
-스으윽!
자신도 모르게 와인드업했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휘이이이익!
공이 손을 떠난 뒤였다!
‘으악···! 안 돼···!’
무회전 공은 난류를 찢으며 날아갔다.
마치 나비가 날 듯 불규칙하게 흔들리며···.
-휘이이이익!
벌처럼 쏘아졌다!
염철수의 얼굴을 향해···!
장은수는 크게 소리쳤다!
“피해요!”
= = = = = = =
날아오는 공을 보며 염철수는 생각했다.
‘피해야 해!’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겁을 먹어서가 아니다.
‘이 공···. 특이하네···.’
공의 회전수가 반 바퀴도 안 됐고, 춤을 추듯 흔들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우와···!’
염철수는 가만히 서서 구경했다!
공이 얼굴로 날아오는데···!
그때 장은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해요!”
“······!”
염철수는 아차! 하며 피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이소호가 들고 있던 글러브를 파리채처럼 휘둘렀다.
글러브는 공을 정확하게···.
-파아악!
쳐냈다!
공은 바닥을 튕겨 담벼락을 향해 날아갔다.
염철수는 꾸벅 인사했다.
“선배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이소호는 바닥을 구르는 공을 보며 생각했다.
‘공의 움직임이 전혀 예측되지 않았어.’
그래서 포구할 생각하지 못하고 파리채처럼 휘두른 거다.
‘운이 좋았어.’
그때 장은수가 담장을 뛰어넘어 달려왔다.
이소호는 생각했다.
‘구속이 조금만 더 빨랐으면 쳐내지도 못했을 거야.’
장은수는 두 사람한테 허리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의가 아니고, 저도 모르게 그만···!”
염철수는 웃으며 말했다.
“아녜요. 괜찮아요. 아무도 안 다쳤는걸요. 애초에 여기서 연습한 제 잘못도 있으니까요. 하하!”
그러자 이소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운이 좋았던 거야.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칠 뻔했어.”
“선배님, 하지만···.”
이소호는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염철수를 쳐다봤다.
염철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장은수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이소호는 장은수에게 물었다.
“특이한 공을 던지시던데, 투수이십니까? 혹시 마이너리그에서···.”
“아, 아뇨. 전 야구선수가 아니에요.”
이소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와인드업이 무척 노련했어. 전문적으로 배운 거 같았는데···.’
그때 장은수가 주머니를 뒤져서 수첩과 펜을 꺼내더니 연락처를 적었다.
그리고는 종이를 쭉 찢어서 내밀었다.
“제가 폰을 두고 와서요···. 제 번호예요. 혹시 어디 아프시거나 불편하시면 바로 연락해주세요!”
염철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녜요 괜찮···.”
그러자 이소호가 종이를 낚아채며 물었다.
“이름이 뭡니까?”
“네? 장은수인데요···.”
“알겠습니다. 이상 있으면 연락하겠습니다. 가자, 철수야.”
“네! 은수씨,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아, 네···.”
장은수는 한숨을 푹 쉬며 생각했다.
‘사람한테 너클볼을 던지다니 내가 미쳤지···.’
제인 정, 한수, 너클볼···.
“오늘 일진 최악이네···.”
= = = = = = =
한수는 제인 정과 J&J 디자인에 대해서 어떻게 할지 논의했고···.
[알겠어요. 앞으로 J&J의 신상 디자인은 무조건 한수를 통해서만 신영 패션에 전달할게요.]
···이재수를 제대로 엿 먹이기로 했다.
그리고 장은수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겠어요. 한수도 알잖아요~. 전 중요한 사람이 아니면, 잘 기억 못 한다고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한수는 호텔 방의 소파에 앉으며 생각했다.
‘장은수를 어떻게 하지?’
연습 경기를 보러 오는 조건으로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답답해도 연락을 못 한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보며 중얼거렸다.
“임무 16 완료는 보류하고, 아이템을 구매할까?”
그는 고민하다가 포수 마스크를 썼다.
【현재 25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포인트를 확인하고 곧장 Lv. 2 상점에 접속했다.
그리고 관심 상품 목록을 확인했다.
[20-20 포수 PKO의 눈부신 황금 배트] (Platinum)
└포수 전용 아이템
└장타력 +2 / 순발력 +2 / 포구 +1
└90 Point
[등번호 6번 신바람 풋워크 수비] (Platinum)
└유격수 전용 아이템
└내야 수비 +2 / 순발력 +2
└80 Point
[고독한 황태자의 찬란한 글러브] (Platinum)
└우완투수 전용 아이템
└체력 +3 / 제구 +1 / 구속 +1
└100 Point
[포기를 모르는 위대한 금테 안경] (Platinum)
└우완투수 전용 아이템
└체력 +2 / 구속 +2 / 커브 낙차 +2
└120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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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주님도 나메크인 최고 장로처럼···.] (Platinum)
└구단주 전용 소모 아이템
└설명
① 선수의 특성과 잠재 레벨을 상승. (중복 사용 X)
② 특성은 무조건 한 단계 상승.
③ 잠재 레벨은 1~2 랜덤 상승.
④ 호감도 + 30 이상의 선수한테만 사용 가능.
└250 Point
한수가 구매하려는 건 ‘구단주님도 나메크인 최고 장로처럼···.’이란 스킬이다.
‘호감도 + 30% 이상 선수만 쓸 수 있다고?’
그는 호감도가 30%가 넘은 선수를 확인했다.
【염철수(Diamond 등급): + 82%】
【홍진철(Platinum 등급): + 79%】
【기용찬(Platinum 등급): + 50%】
【하민철(Platinum 등급): + 39%】
【강민수(Platinum 등급): + 31%】
‘다섯 명뿐인가? 호감도를 많이 올려야겠는걸···.’
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구매하자!”
-띠링!
【250 Point를 사용해서 ‘구단주님도 나메크인 최고 장로처럼···.’ 스킬을 구매했습니다.】
【현재 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포인트제로라니···.’
왠지 마음속이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띠링!
알림창이 나타났다.
【업적 ‘첫 명품 구매!’를 달성했습니다.】
└200 Point 이상의 물건을 처음 구매했을 때.
└업적 보상: 모든 제품 50% 할인권 1 EA
“오오···! 이런 것도 있구나.”
50% 할인이라니!
정말 좋은 아이템이다.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이소호 선수? 무슨 일이지?’
한수는 전화를 받았다.
"이소호 선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에요?"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부탁이요? 말해보세요.”
[···영입하고 싶은 선수가 있습니다.]
“흠···. FA 시장 괜찮은 선수는 이미 전부···.”
[FA 선수가 아닙니다.]
“······?”
[장은수라는 사람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장···. 은수요···?”
[네!]
한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걔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