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 이긴 사람이 형님이 되는 걸로 하죠.
키노 스포츠 콤플렉스, 실내 투구 연습장.
연습장 안에는 포수 장비와 평균보다 넓은 미트를 낀 하민철과 보호장비를 착용한 장보형 코치가 있었다.
장은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그때 이소호가 물었다.
“이틀 전에 던진 공, 전력투구였습니까?”
“네···? 갑자기 무슨···.”
“아닌 걸로 알겠습니다.”
“······.”
이소호는 공과 글러브를 내밀었다.
“몸 푸세요.”
“몸을 풀라뇨···?”
“당신이 던졌던···. 너클볼과 승부를 겨뤄보고 싶습니다.”
“······!”
‘이게 뜬금없이 무슨···.’
너무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다.
그때 갑자기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 짝! 짝!
고개를 돌려보니 포수 마스크를 쓴 한수가 보였다.
그는 엄지 척을 하며 말했다.
“아주 재밌겠네요! 근데 그냥 하는 승부는 재미없죠. 내기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
이소호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물었다.
“어떤 내기가 좋을까요?”
“이소호 선수가 이기면~ 장은수 씨가 타이탄스에 들어오는 걸로 하죠!”
장은수는 발끈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대신 장은수 씨가 이기면! 십만 달러를 드리죠.”
“······!”
십만 달러면 대략 일억 이천만 원이다.
장은수는 학비를 제외한 모든 생활비를 직접 일해서 벌고 있다.
십만 달러면 당분간 일하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해도 된다.
물론 제인 정이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디자이너에 대한 꿈에 회의감이 들었지만···.
어쨌든 타자 한 명을 삼진 아웃시키면 십만 달러를 버는 거다.
무척 구미가 당겼지만···.
한수의 웃는 얼굴을 보니···.
“싫어요! 분명 말했죠! 저는 야구를···.”
한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겁납니까?”
장은수는 얼굴을 찡그렸다.
“뭐라고요···?”
천천히 앞으로 다가온 한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무려 타이탄스의 심장! 부산의 아들! 대한민국 4번 타자! 우리 이소호 선수와 승부를 겨루다니···. 무~ 척 두렵겠죠. 암요!”
장은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자식···! 더럽게 얄밉게 말하네···.’
그 순간,
【만인지적(萬人之敵) 승부욕이 활성화됩니다.】
【장은수의 현재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장은수의 현재 레벨이 25가 됩니다.】
장은수의 레벨이 또 올랐다.
한수는 더는 놀라지 않았다.
어떤 상황인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장은수의 기술이나 신체 능력은 이미 수준급일 거야. 다만, 야구를 하겠다는 마음가짐 부족해. 그래서 승부욕이 활성화될 때마다 레벨이 오르는 거야.’
한 마디로, 야구를 하겠다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레벨이 오른다는 소리였다.
한수는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자극해볼까?’
그 순간···.
-띠링!
【장은수의 다섯 번째 특기 ‘견제를 낭중취물(囊中取物)처럼···.’이 개화합니다.】
‘응···?’
갑자기 특기가 개화되더니 이어서···.
-띠링! 띠링! 띠링···.
【만인지적(萬人之敵) 승부욕이 활성화됩니다.】
【장은수의 현재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장은수의 현재 레벨이 1 상승합니다.】
【장은수의 현재 레벨이 1 상승합니다.】
.
.
.
【장은수의 현재 레벨이 35가 됩니다.】
‘어···?’
레벨이 10이나 올랐다!
그때 장은수가 소리쳤다.
“좋아요! 내기해요!”
한수는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그의 의도대로 장은수가 넘어왔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확실히 하기 위해 계약서 한 장 작성할까요?”
= = = = = = =
장은수는 마운드에 오르며 생각했다.
‘흥분했어. 그런 내기를 받아들이면 안 됐는데···.’
하지만 한수의 비아냥거림을 듣자, 엊그제 제인 정이 한수의 팔짱을 끼며,
[한수, 이 학생은 누구예요?]
···라고 묻는 게 떠올라서 참을 수 없었다.
‘저 사람한테만은 지고 싶지 않아···.’
어쨌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사실 조금 자신도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공을 쥐는 게 더 편안해진 거 같았다.
타이탄스의 이름 모를 포수(하민철)와 연습구를 던져보면서 더욱 확신했다.
지금이라면···.
‘누구도 이길 수 있어!’
타석에 선 이소호를 쳐다봤다.
그는 무뚝뚝한 얼굴로 장은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부산의 심장···. 타이탄스의 4번 타자···.’
어려운 상대일 거다.
하지만 필 할아버지는 말했다.
[완벽하게만 던진다면 네 공을 노리고 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 자신감을 가지자.’
그때 심판을 보고 있는 장보형 코치가 소리쳤다.
“플레이볼!”
장은수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조금도 떨리지 않는 게 이상했다.
오히려 더운 날카롭게 집중이 되는 거 같았다.
‘좋아!’
그는 천천히 와인드업했다.
필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자세 그대로···.
그리고 전력을 다해서···.
“흡!”
공을 던졌다.
-휘이이익!
무회전 공은 난류를 찢으며 불규칙하게 흔들리며 이소호의 몸쪽 가운데를 향해 날아갔다.
‘제대로 들어갔어. 코스도···.’
그 순간, 이소호가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아악!
“말도 안 돼!”
쭉쭉 뻗는 타구는 실내 연습장 천장을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은수는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구르는 공과 이소호를 번갈아 봤다.
그때 이소호가 다가오며 말했다.
“제가 이겼습니다.”
“···어떻게 친 건가요? 분명 제대로···.”
이소호는 말했다.
“그냥 휘둘렀습니다.”
“뭐, 뭐라고요···?”
“어차피 어디로 날아올지 예상이 안 되니까. 그냥 감을 믿고 스윙을 한 겁니다.”
“······.”
한 마디로 운이 좋았다는 말이다.
장은수는 어이가 없었다.
문득, 필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네가 생각하기 최고의 공을 던졌는데도 상대가 쳤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네 연습이 부족했기 때문이야. 연습하고 또 연습해라. 이 정도면 됐겠지 할 때, 더 연습해야 한다. 알겠지?]
‘그래, 운 때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이룬 노력의 성과야.’
장은수는 필 할아버지가 죽고 나서 제대로 된 연습을 한 적이 없다.
재능을 썩혔던 거다.
돌아가신 필 할아버지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젠장···.’
참으로 이상했다.
왜 이렇게 분한 건지 모르겠다.
분명 야구 선수가 될 생각은···.
“······.”
그때 한수가 다가오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하하! 내기는 이소호 선수의 승리군요!”
장은수는 분함에 고개를 떨궜다.
“······.”
한수는 계약서를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자아~ 그럼, 약속대로 오늘부터 타이탄스의 육성 선수로···.”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이소호가 한수가 든 계약서를 낚아챘다.
“이소호 선수···?”
한수가 당황하며 고개를 갸웃한 순간,
-찌이익!
이소호는 계약서를 찢어버렸다.
“이게 무슨···!”
“······!”
한수는 물론 장은수도 놀라서 이소호를 쳐다봤다.
그러자 이소호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구단주님.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승부는 공정하지 못한 거 같습니다.”
“이 선수 하지만···.”
한수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소호의 진지한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나가리인데···.’
임무 16과 영웅 도감 완성이 눈앞이었는데!
그때 이소호가 장은수에게 말했다.
“승부를 삼 판 이 선승으로 합시다.”
“···왜···.”
“그때는 제대로 몸을 만들어서 승부를 겨뤄봅시다.”
“······.”
이소호는 배트를 어깨에 걸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내기 조건도 바꾸죠. 사나이 승부에 돈 따위가 끼는 건 아니죠.”
“······.”
“이긴 사람이 형님이 되는 걸로 하죠. 어떻습니까?”
그렇게 말한 이소호는 씨익 웃었다.
장은수는 생각했다.
이 사람 참···.
‘···멋지구나.’
왠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뜨거워졌다.
제인 정을 그리워하며 애리조나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보다도 더···!
장은수는 바닥에 떨어진 공을 잡으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몸을 만들고···. 찾아갈게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러더니 이소호는 몸을 돌렸고, 장은수는 반짝이는 눈으로 멀어지는 이소호를 바라봤다.
이때 포수를 보던 하민철이 이소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길 자신 있어요?”
“···아니.”
ST 위닝스의 라이언 킴 투수가 던진 너클볼은 대충 눈에 보였다.
구속은 빨랐지만, 회전수가 대충 3~4회 많았기 때문이다.
아마 한 타석만 더 있었다면 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장은수가 던진 공은 1회도 회전하지 않는 거의 완벽한 무회전 공이었다.
공의 궤적이 전혀 예상되지 않았으니까.
아마 구속만 더 빨랐으면···.
‘초구에 절대 못 쳤을 거야.’
하민철은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저 사람을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 거예요?”
“마! 그럴 리가 있겠냐?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러면···.”
이소호는 배트를 꽉 쥐며···.
“어떻게든 쳐야지.”
“···대책이 없단 말이네요. 어휴~ 제발, 이기세요. 만약 저 사람이 형한테 이기고 타이탄스에 입단하면 족보가 꼬여버리잖아요.”
“···나도 알아.”
이때 한수는 장은수에게 다가갔다.
“승부를 겨루러 오실 때, 제가 드린 명함으로 연락을 주세요. 비행기 표는···.”
“됐어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한수는 차갑게 돌아서는 장은수를 불렀다.
“혹시 말입니다.”
“······?”
“저한테 갑자기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거···. 제인 정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
“장은수씨, 혹시 제인 정을···.”
장은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제인 정 때문이에요. 그 사람을 좋아해서 당신한테 질투가 났어요.”
한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괜히 제인 정을 끌어들였네. 젠장···.’
“하지만···.”
“······?”
“지금은 상관없어요.”
“네? 그게 무슨···.”
장은수는 손에 든 야구공을 쳐다보며,
“···아무래도 제가 착각을 한 거 같아요.”
힘들었던 시기.
누구 하나 그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았고, 계속 원치 않는 길로 내몰기만 했다.
그때 만난 게 제인 정이다.
부모님의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그와 달리,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당하게 나아가는 그녀가 너무도 빛나 보였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면···.
마치 그녀처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가 떠나갔을 땐···.
그녀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면···.
더는 부모님의 꼭두각시로 살지 않을 거라고···.
제인 정은 그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야.’
그림을 그리며, 디자인을 공부하며 즐거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필 할아버지를 만나 너클볼을 배우면서···.
‘즐거웠어.’
살아있음을 느꼈다.
필 할아버지는 그걸 눈치채고 계속 그에게 야구를 하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문득, 필 할아버지가 했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아쉽구나. 네가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필 할아버지···.’
야구공을 강하게 쥐었다.
-꽈드드득···.
섬뜩한 소리에 한수는 흠칫했다.
‘뭐야, 왜 저래?’
그때 장은수가 말했다.
“괜히 쌀쌀맞게 대한 거···. 사과할게요.”
“···괜찮습니다.”
“그리고···.”
“······?”
“···아뇨, 이건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그럼···.”
장은수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이소호한테 다가가서 휴대폰을 내밀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수는 뭔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
-띠링!
알림창이 떠올랐다.
【임무 16을 완료했습니다.】
【재야에 있는 Diamond 등급 인재 영입에 성공했습니다.】
【임무 완료 보상으로 100 Point를 지급합니다.】
【현재 10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임무 17이 생성됐습니다.】
‘어라?’
【영웅 도감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 - 촉(蜀)의 다섯 명장’을 완성했습니다.】
【영웅 도감 ‘장판파(長阪坡)를 호령한 두 장군’을 완성했습니다.】
···(중략)···
한수는 떠오르는 알림창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이스···.”
어쩌다 장은수 영입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