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88화 (88/187)

88화 : 전부 고소할 겁니다.

이소희는 딱딱하게 굳은 한수의 표정을 살피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그녀는 처음에 설문조사에서 이정호 선수가 언급됐을 때는 그냥 빼버릴 생각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해서 한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때 야구 커뮤니티의 고인물 부러진황금깃발이 이정호 선수에 대한 기록과 정보가 구단 홈페이지에서 말소되어 있고, 그의 기사 또한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는 걸 문제 삼았다.

그리고 이정호 선수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했다.

└부러진황금깃발: 지난번에 타이탄스 원년멤버 이정호 선수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요. 최근에 좋은 정보를 하나 더 입수했습니다. 이정호 선수는 자주 부상을 당했는데, 단 한 번도 신영 의료원에서 치료도 받지 못했습니다. 타이탄스 소속 선수들은 모두 신영 의료원에서 의료 혜택을 ···(중략)··· 이건 성적이 나쁜 선수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는 걸 반증합니다. 그뿐만이 아니고 이정호 선수는 ···(이하 생량)···

이정호에 대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타이탄스 초창기에 의료 혜택 같은 게 있었나?

└주작이네. 신영 의료원 설립일이 IMF 이후임.

└ㄴㄴ 그건 서울이고, 부산은 89년임.

└우리 아버지도 타이탄스 40년 팬인데 이정호 선수 기억함. 그런데 구단 홈페이지나 인터넷에 기록이 전혀 없네.

└뭐냐? 뭐냐? 타이탄스 정말 이정호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거임?

└타이탄스 프런트랑 뭔가 문제가 있었나?

└프런트 정도가 아니고 모기업이랑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님?

└그런데 이정호란 사람은 왜 가만히 있는 거지?

└협박당하는 건 아닐까?

심지어 구단 설문조사 이벤트에 이정호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이정호 선수 근황을 알려주세요.

└타이탄스 구단은 원년 멤버 이정호 선수에 사태에 대해서 명명백백히 밝혀주세요.

└타이탄스야, 야구는 못해도 진실해야 한다.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부산 시내 달리는 체력 훈련을 하던 선수 중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팬들에게 인사를 해주던···.

└이정호 선수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타이탄스 원년 멤버들 뭐하냐? 동료 기록이 말소됐는데도 가만히 있냐?

└이정호 근황 밝혀.

└이정호 선수 인터뷰 잡아라.

└선수협은 뭐하냐?

└선수협 아무 힘도 없음 ㅋ

└이정호!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소희도 한수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한수는 커뮤니티와 설문조사 이벤트에 달린 댓글들을 살펴보며 생각했다.

‘아버지의 근황이라···. 이거 잘만하면 재밌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겠는데? 여러모로 이득도 되고···.’

이소희는 한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를 걱정하기 바빴다.

‘아무리 구단주라도 이정호 선수 얘기가 이렇게 나오면 마음의 상처를···.’

그렇지만 뭐라고 위로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수는 아버지의 포수 마스크를 쳐다봤다.

‘···저것도 이용할 수 있겠어. 이거 판을 잘 짜봐야 할 거 같네. 우선 윤하얀 이사와도 상의를 좀 하고···.’

그때였다.

-띠링!

포수 마스크 위로 느낌표가 나타났다.

임무 17은 아직 완료 전일 텐데···.

‘뭐지?’

한수는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를 먼저 확인하기로 했다.

그는 포수 마스크를 잡으며 말했다.

“···이정호 선수에 대한 건 알겠어요. 제가 미친개 스튜디오랑 얘기를 나눠볼게요.”

“······.”

이소희는 그가 이정호 선수의 포수 마스크를 잡는 걸 보며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복잡한 눈빛을 했다.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더 보고 할 거 있어요?”

“···아닙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오늘도 수고해요.”

이소희는 꾸벅 인사하고 단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한수는 곧바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임무 17을 진행 중입니다.】

【현재 10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완성된 영웅 도감이 있습니다. 보상을 받으세요.】

‘영웅 도감···?’

갑자기 무슨 영웅 도감인가 싶었다.

곧바로 영웅 도감 메뉴에 접속했다.

스크롤 제일 위에 도감이 반짝이고 있었다.

【영웅 도감 ‘백마장사(白馬壯士)와 두 명장(名將)’을 완성했습니다.】

‘백마장사와 두 명장···?’

【백마장사(白馬壯士)와 두 명장(名將)】

① 염철수 [조운, Diamond 등급, 선수]

② 전예준 [전예, Gold 등급, 선수]

③ 공형찬 [공손찬, Gold 등급, 선수]

【완성도 : 100% (완성 시 보상 30 Point)】

【완성 효과】

└소속 팀 연고지보다 북쪽에 연고지를 둔 팀과 경기 시 수비력 +1

└주력 +1

부산에 연고지를 둔 타이탄스보다 남쪽에 있는 구단은 없다.

그 말은 모든 팀과 경기에서 수비력이 +1 오른다는 말인데···.

‘투수가 두 명이라 아쉽네. 주력이 오르는 것도 타자였으면···.’

뭐, 그래도 없는 거보다는 나았다.

한수는 보상을 받았다.

【‘백마장사(白馬壯士)와 두 명장(名將)’ 완성 보상으로 30 Point를 받았습니다.】

【현재 13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수는 포인트를 확인하고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영웅 도감이 완성된 걸로 봐선 공형찬이 2군에 합류했나 보네. 좋아, 좋아. 타격 코치한테 제대로 트레이닝하라고 지시해둬야지.’

이제 다음은···.

“윤하얀 이사와 만나야겠네.”

한수는 강덕수한테 지시해서 다큐멘터리 ‘타이탄스 40년’ 제작을 맡은 미친개 스튜디오의 윤하얀 이사와 약속을 잡았다.

= = = = = = =

이소희는 단장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며 단장실에서 나오기 직전에 봤던 한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우수에 찬 눈빛으로 포수 마스크를 쓰려고 하던···.

‘역시 이정호 선수 때문에 많이 심란한가 보네.’

문득, 그녀의 삼촌 심상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수가 포수 마스크를 자주 쓰고 다니는 건···. 아마 이정호 선수 때문일 거다. 이정호 선수의 꿈이 타이탄스 왕조를 만드는 거였거든. 그렇게라도 해서 아버지가 꿈을 이루길···.]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정말 울보 꼬맹이라고 부를 수 없겠네.”

그러더니 주먹을 꽉 쥐며,

‘어떻게든 구단주님을 도와주자. 이정호 선수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아주 어렸지만, 그녀는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억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손꼽히는 전환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날은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

.

.

이소희는 심상호한테 이정호 선수가 은퇴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타이탄스 구장으로 뛰어갔다.

때마침 구단에서 나오던 이정호와 마주쳤다.

[소희야, 여긴 웬일이야? 부모님이랑 온 거야?]

[왜 은퇴하시는 거예요!?]

[···상호한테 들었구나.]

[재활 치료받으면 되잖아요! 이정호 선수가 떠나면 타이탄스는···.]

[타이탄스를 위해서 떠나는 거야.]

[그런···.]

[소희야···.]

[타이탄스가 통합 우승하는 게 꿈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꿈을 위해서 떠나는 거란다.]

[네?]

이정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프런트에서 일할 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고···. 조금 공부를 한 뒤에 돌아올 거야.]

[프런트···. 하지만···. 저랑 약속했잖아요···. 제가 나중에 투수가 되면 제 공은 아저씨가···.]

그녀의 꿈은 투수였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존경하는 이정호 선수와 배터리를 짜고 싶었다.

이정호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

[···대신 이렇게 하자. 네가 정말 선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아저씨가 타이탄스에 영입할게!]

[···거짓말. 엄마가 야구 선수는 남자만 될 수 있다고···.]

[무슨 소리! 자신의 한계를 단정 짓지 마!]

[······.]

이소희는 이정호가 떠난다고 하니 투수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사실 그녀는 이정호와 배터리를 짜고 싶어서 투수가 되고 싶은 거였는데···.

그때 이정호가 그녀에게 야구공을 내밀었다.

[이건···.]

야구공에는 이정호의 사인이 적혀 있었다.

이정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내 세 번째 사인볼이야. 네 꿈을 응원한다는 의미로 주는 선물.]

[······.]

[너무 초라한가? 그래도 세상에 단 세 개밖에 없는 거야.]

[···다른 두 개는 누구한테 줬어요? 한수요?]

[아냐. 한수는 안 줬어. 아내랑 내 소중한···.]

그렇게 이정호는 떠났다.

이소희는 그와의 약속을 마음속에 새기고 최선을 다해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워갔다.

하지만 이정호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투수의 꿈을 포기했다.

.

.

.

이소희는 추억에서 빠져나오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복도를 지나던 윤가희가 그녀에게 다가오더니,

“팀장님, 운영 2팀에서 연락 왔는데, 공형찬 선수가 오늘 2군에 합류했대요!”

“그래요? 사정이 있다더니 잘 해결됐나 보네요. 육성팀에 말해서 바로 테스트 진행하라고 하세요.”

“네! 구단주님께 보고는 어떻게 할까요?”

이소희는 힐끗 단장실을 돌아보더니,

“···지금 말고, 이따가 제가 할게요.”

= = = = = = =

부산 해운대구, 어느 고급 식당.

한수는 윤하얀과 만나서 이정호 선수가 그의 아버지임을 밝혔다.

윤하얀은 깜짝 놀라며,

“저, 정말이요? 그러면 이정호 선수는 신영 그룹의···.”

“맞습니다. 신영 그룹의 장남이시죠.”

“아···.”

윤하얀은 침을 꼴깍 삼켰다.

만년 꼴찌팀 무명 포수가 사실은 재벌집 첫째 아들이라니!?

‘뭐, 이런 판타지가 다 있어?’

한수는 조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무척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어려서부터 야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조부님께서는 아버지가 회사를 잇길 바라셨고 결국 큰 갈등 끝에 아버지께서는 집에서 쫓겨나셨고···.”

“저런···.”

윤하얀은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지금 한수가 하는 이야기와 사실을 조금 다르다.

이태백 회장과 이정호가 갈등이 있었던 건 맞지만, 집은 나간 건 이정호의 선택이었다.

이태백은 아들이 현실을 깨닫고 돌아오길 바라며 잡지 않았지만···.

한수는 아버지를 꿈과 낭만의 사나이로 만들기 위해 과거사를 조금 각색했다.

‘MSG를 살짝 뿌리는 거지.’

대충···.

『제목: 삼류 포수가 재벌을 숨김.

남주: 재벌 2세 포수 이정호

여주: 달동네 미녀 오정숙

악역: 신영 그룹 회장 이태백 』

···이런 느낌이다.

윤하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그럼 이정호 선수님은···.”

한수는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어두운 얼굴을 하며,

“···돌아가셨습니다. 은퇴하고 얼마 뒤에 교통사고로···.”

“아···.”

윤하얀은 몹시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그런데 의문스러운 게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기사 한 줄 나지 않은 건가요? 무명이라도 타이탄스 선수면···.”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기사는 나왔습니다. 그저···. 야구 선수였다는 내용이 없을 뿐이죠.”

“어째서···.”

“저도 조부님의 깊은 속내를 다 파악할 순 없지만···. 신영 그룹 장남이 신영 타이탄스의 포수로 활동했다는 기사가 나가면 온갖 찌라시들이 난무할 테니, 사전에 방지하시려고 그러신 거겠죠.”

그렇게 말한 한수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생각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 이유를 말할 필요는 없다.

윤하얀은 아무리 그래도 야구 선수인 게 그렇게까지 숨길 사실인가 싶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구단주님께서 이렇게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언론에 모든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인가요?”

“아뇨.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기 전까진 입을 다물 생각입니다.”

“논란을 키워서 다큐를 홍보할 생각이시군요.”

“빙고.”

윤하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방에서 공격당할지 몰라요. 팬들은 물론, 언론과 스타튜버들도 나서서 타이탄스를 물어뜯을 거예요. 그런데도···.”

“괜찮습니다. 그 끝에 얻는 달콤한 열매를 생각하면 전혀 힘들지 않으니까요.”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언론에 까이는 건 익숙하니까요. 그리고 헛소리 지껄이며 아버지나 타이탄스를 모욕하는 놈들은 다큐멘터리만 방영되고 나면···. 전부 고소할 겁니다.”

윤하얀은 한숨을 포옥 내쉬며,

“···알겠습니다. 저희도 다큐 완성을 최대한 빨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족분들이나 지인들 인터뷰 일정은···.”

“제가 시간 약속을 잡은 뒤,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타이탄스 40년’ 성공을 위해 건배하죠!”

“네!”

두 사람은 건배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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