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89화 (89/187)

89화 : 프런트에서 꿈을 이어갈 거야.

일주일 동안, ‘이정호 선수 사건’은 소문에 소문을 더해서 점점 더 해괴망측하게 변해갔다.

이정호가 모기업 스폰을 거절해서 말소처리 된 거다.

이정호가 당시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이정호가 프런트의 갑질에 대항하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들···.

하지만 타이탄스 구단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생각했다.

‘뭔가 켕기는 게 있으니까 가만히 있는 거야.’

‘구린 걸 들킬까 봐 이러는 게 분명해.’

‘KBO는 답이 없어. 선수들을 무슨 도구 취급해.’

‘KBO가 아니고 타이탄스가 문제임. 선수 혹사의 아이콘이잖아?’

‘최종권, 용정식···. 그때 타이탄스가 망친 인재가 한둘이야?’

‘이건 타이탄스가 선수 한 명 제대로 보내버린 게 분명해!’

심지어 최근에 있었던 박치수 방출 및 윤창근 트레이드와도 연결 지었다.

└박치수 방출된 것도 프런트 갑질 아니냐?

└박치수 나이랑 성적에 방출은 말도 안 되지.

└윤창근은 어떻고, 아무리 불펜 투수가 필요해도 윤창근을 보내면 안 되지.

└안방마님 보내고 잘 된 팀 못 봤다. 그리즐리스를 봐라. 이번 FA 때 안간힘을 써서 양투지 다시 데려왔잖아.

└소문으로는 박치수가 감독한테 협박을 당했다던데?

이때 스포츠 기자 출신의 유명 스타튜버가 한 영상을 업로드했다.

[이정호 선수는 무척 뛰어난 포수였지만 프런트와 마찰이 있어서 출전을 못 했고, 부상 직후 방출 처리됐다. - by. 스타튜버 ‘스포츠앞통령’]

유리 몸이었던 무명 포수 이정호는 천재 포수로 둔갑했고, 스스로 은퇴를 선택했던 건 프런트의 방출로 날조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이탄스는 침묵했고···.

야구팬들은 난리가 났다.

└이건 타이탄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KBO 모든 구단이 이래. 완전 쓰레기 운영임.

└타이탄스는 그냥 해체가 답임.

└이러니까 팔 년이나 꼴찌를 하지.

└선수들을 돈벌이용으로만 생각하는 거.

└X나게 굴리다가 나이 들거나 다치면 버리지.

└더럽다 타이탄스.

└삼십 년째 타이탄스 팬인데, 이건 선 넘었다.

└타이탄스 프런트는 왜 입 다물고 있는거임?

소문은 점점 커져서···.

└프런트가 입 다물고 있는 건 모기업 지시라던데?

└신영 그룹이 이정호 포수한테 갑질한 게 진짠가?

└이정호 선수 결혼도 했다는 거 같던데, 가족들은 뭐 하고 있는 거지?

└신영 그룹에 협박당하고 있는 거 아닐까?

└신영 그룹 XX 양아치네.

사람들은 신영 그룹을 욕하기 시작했다.

= = = = = = =

타이탄스 구단 단장실.

한수는 소파에 앉아 태블릿 PC로 타이탄스 구단에 대한 인터넷 반응을 살펴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아주 활활 타오르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정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라니까!”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강덕수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구단주님, SNS 반응이 너무 과격해요. 다큐멘터리 완성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버티기만 해선 안 되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수는 씨익 웃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정뿐만 아니라 경쟁심도 강해서 말이야. 싸움 상대가 있으면 더 타오르잖아.”

“설마···.”

“이새롬 기자랑 박편복 기자한테 타이탄스 옹호 기사 내라고 해. 악의적 기사들에 대해 반박하는 형태로 말이야.”

“저, 구단주님···. 이러다간 그룹에서도 얘기가 나올 거 같은데요···.”

그룹에서 얘기가 나온다고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이창호 부회장을 언급하는 거다.

한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노우~ 노우~ 그룹의 문제가 될 거였으면 진작에 나를 부르거나, 그룹 홍보팀이 나섰겠지.”

“그런가요···?”

“당연하지. 작은아버지가 바보도 아니고···. 상황을 전부 알고 있는데 말이야.”

한수는 무뚝뚝한 얼굴에 냉정한 눈빛을 한 이창호 부회장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렸다.

“상황이 반전될 걸 알고 가만히 있는 거야. 아마 모든 게 밝혀지면 눈물의 기자 회견을 열고 악의적인 기사에 상처를 받았지만, 형님의 아들에게 모든 걸 맡겼다는 식으로 대중의 동정을 사려고 할걸?”

“그, 그럴까요?”

“물론이지. 그러니까 그룹에서 지랄할 거란 걱정은 하지 말고 악플 다는 놈들이랑 제대로 파이트해봐. 오케이?”

강덕수는 ‘역시 구단주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구나!’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 = = = = = =

신영 그룹 본사, 부회장실.

이창호 부회장은 소파에 앉아서 비서실장에게 ‘이정호 선수 사건’에 대한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한수가 조커 카드를 내는 순간, 홍보팀도 곧장 옹호 기사를 내라고 해.”

“기자 회견도 그때 맞춰서 준비할까요?”

“그건 추이를 지켜보지. 나 혼자 나서면 그림이 좋지 않고···.”

“오 이사장과 함께 나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이창호는 순간 눈가를 움찔했지만, 이내 담담히 말했다.

“형수님은 설득하기 어려울 거야. 나간다고 해도 쓸데없는 말을 할 수 있어서···. 차라리 한수와 함께 나가는 걸로 하지.”

“이한수 구단주가 나설까요?”

“영악한 녀석이니 대가를 요구하겠지. 무리한 게 아니라면 들어주고 함께 기자 회견을 하는 게 이득이야.”

“네···.”

이창호는 소파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며 말했다.

“한수가 J&J 디자인을 가지고 협박해서 재수의 비자금을 받아냈댔지?”

“네, 그렇습니다. 최근에 투자 중인 영화 제작비로 사용한 거 같습니다.”

“재수 그놈은 어릴 때부터 한수한테 상대가 안 되는군.”

비서실장은 눈가를 움찔하더니,

“···재수 도련님도 충분히 뛰어납니다. 다만, 이한수 구단주가 워낙 잔머리를···.”

“내 아들이라고 애써 감싸려고 하지 마.”

“······.”

“한수 그놈은 생긴 건 형님을 쏙 빼닮았으면서 하는 짓는 나를 많이 닮았어.”

비서실장은 눈가를 움찔했다.

‘왕자병 말기의 망나니랑 얼음덩어리 부회장님이 닮았고?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때 이창호가 말했다.

“···한수랑 약속을 잡아봐.”

“언제로 할까요?”

이창호는 책상 위의 달력을 쳐다봤다.

그리고 12월 12일에 동그라미 되어 있는 걸 보더니,

“12월 12일이 좋겠군.”

“그날은···.”

“···‘거기’는 오전 일찍 다녀오는 걸로 하지.”

“···알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창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실장은 부회장실 밖으로 나갔다.

혼자 남은 이창호는 천천히 책상 앞에 앉았다.

그는 묘한 눈빛으로 달력을 보다가 서랍을 열었다.

그러더니 서랍 안쪽에서 낡은 야구공을 하나 꺼냈다.

야구공에는 예쁜 글씨체로 사인이 되어 있었다.

[No. 9 이정호]

[소중한 내 동생 창호에게···.]

이창호는 야구공을 잡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내 성격을 닮았다고 했는데···. 야구를 좋아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형을 쏙 빼닮은 거 같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비서실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사장님, 잠시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비키세요. 계속 그러면 휠체어로 밀고 갈 거예요.”

“아니, 그런 일단 잠시 기다려주세요···!”

이창호는 미소를 지우며 생각했다.

‘올 게 왔군.’

문이 열렸고, 비서실장이 난감한 얼굴로 들어오더니,

“부회장님, 그게 오정숙 이사장이···.”

비서실장 뒤에서 오정숙이 휠체어를 밀고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시간 좀 내주세요.”

“이사장님! 좀 기다리시라니까···.”

그러자 이창호가 말했다.

“김 실장, 됐어. 나가봐.”

“···알겠습니다. 부회장님.”

비서실장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부회장실에서 나갔다.

이창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형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시다니, 이거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군요.”

오정숙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형수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이거 참, 형수를 형수라고 부르지···.”

“당신이 사람이면 그렇게 못 부르죠.”

“······.”

“오늘 찾아온 건 경고하기 위해서예요.”

“경고라···. 무섭군요.”

오정숙은 여유로운 이창호를 보며 이를 뿌득 갈더니,

“정호씨를 이용할 생각···. 버려요.”

“······.”

“정호씨와 관련된 논란에 당신이 조금이라도 개수작을 부리면···. 절대 가만있지 않아.”

“···형수님,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 형을 이용하려고 하는 건 한수입니다. 저는···.”

이창호는 말을 멈췄다.

휠체어에 앉은 오정숙에게 뭐라고 말하든 통하지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가만있지 않으면요? 형수님이 뭘 할 수 있습니까?”

“뭐라고요?”

“이십 년 넘게 가만히 계셨으면···. 그냥 계속 그렇게 사세요.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이창호는 말을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오정숙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으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죽습니다. 형처럼 말이죠.”

“······!?”

오정숙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 당신···.”

이창호는 ‘여기까지만 할까?’라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큰 소리로 말했다.

“김 실장! 형수님 댁까지 모셔다드려!”

그러자 문이 열리고 비서실장이 들어와서 오정숙의 휠체어를 밀고 나가기 시작했다.

“자, 잠깐! 멈춰요!”

“부회장님은 바쁘십니다. 이만 나가시죠.”

“당신! 정호씨를 이용하면 절대···!”

문이 닫히고 오정숙은 목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이창호는 책상으로 돌아와 이정호의 사인이 적힌 야구공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다 형 탓이야.”

그는 천천히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집을 나갔던 이정호가 어느 날 돌아왔다.

아내와 어린 아들, 갓난쟁이 딸과 함께.

이태백 회장은 겉으론 무척 못마땅했지만 내심 반겼다.

하지만 이창호의 심정은 복잡했다.

야구만 있으면 된다고 떠날 땐 언제고, 몸이 망가졌다고 돌아오다니···.

‘내가 그동안 쌓아온 걸 뺏으려고 하면···.’

이창호를 지지하던 이들 중에도 어디에 붙는 게 이득인지 고민하는 무리가 생겼다.

욕심 많은 여동생은 이런 제안을 하기도 했다.

[작은오빠, 우리 둘이 힘을 합쳐야 해. 이러다가 큰오빠가 그룹을 상속받으면···.]

물론 여동생의 제안은 거절했다.

지나가는 개를 믿지, 여동생은 믿을 수 없다.

그때 이정호가 찾아왔다.

[인마, 왜 이렇게 날 피하는 거야?]

[몰라서 물어? 우린···.]

[난 회장엔 관심 없어. 내가 되고 싶은 건 타이탄스 사장이야.]

[뭐?]

[잊었어? 내가 프로 데뷔했을 때 너한테 첫 번째 사인볼 주면서 했던 말.]

[···타이탄스 통합 우승이 꿈이라고···?]

[맞아. 선수로선 실패했지만, 프런트에서 꿈을 이어갈 거야.]

이창호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깟 야구가 뭐라고 신영 그룹을 포기하지?’

이해는 안 됐지만, 그로선 고마운 일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큰형이 그룹 상속을 포기하면···.

‘그룹은 내 거야.’

이정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룹은 네가 이어받아.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대신···.]

[타이탄스는 형한테 달라고?]

[맞아. 더불어서 운영 자금도 빵빵하게 지원해주고.]

이창호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형 바보야? 그럴 바에는 그냥 회장이 돼서 구단을 운영하는 게 훨씬 이득···.]

[내 꿈은 타이탄스 통합 우승이지만, 네 꿈은 그룹 회장이잖아.]

[······.]

[내 꿈을 이루자고 동생의 꿈을 뺏을 순 없지.]

‘내 꿈을 뺏을 순 없다고? 정말 바보 같네···.’

꿈은 이기적인 거다.

본인의 꿈을 이루려면 다른 사람의 꿈을 짓밟을 수밖에 없다.

이창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정호는···.

[······.]

이창호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스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여튼 이정호와 이창호는 거래했다.

그리고 이정호는 본사에서 경영에 대한 기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지만, 이창호는 이정호의 뜻을 알기에 그냥 무시했다.

그리고 12월 12일···.

이정호의 생일이 가까워졌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신경을 쓴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하필 그때는 왜···.

[부산에 있는 호텔 예약권이야. 온천도 있대.]

[이걸 왜···.]

[곧 생일이잖아. 형수랑 다녀오라고. 저번에 들어보니까 신혼여행도 못 갔다며.]

[창호야···.]

[···공짜로 얻은 거니까. 별로 기대는···.]

[고맙다. 정말 고마워.]

[······.]

이창호가 처음으로 이정호에게 준 선물.

그 선물로 인해···.

-끼이이이익! 쾅!

······이정호는 죽었다.

.

.

.

이창호는 악몽 같은 기억에서 벗어나며 야구공을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12월 11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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