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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90화 (90/187)

90화 : 악당이 되기로 했다.

12월 11일, 아침.

이창호는 고급 세단 뒷좌석에 앉아 출근하고 있었다.

그는 옆에 앉은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한수는?”

“···죄송합니다. 어제 한 번 더 얘기해봤는데, 역시나 뵙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납골당에 함께 가는 것도 말해봤는데···. 올해도 가지 않을 생각인 거 같습니다.”

“······.”

“그래도 부회장님과 기자 회견에 참석하는 건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알겠어. 다른 보고 사항은?”

“신영 패션에서 J&J 스프링 시즌 제품 제작과 함께 패션쇼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음···. 재수한테 차질 없이 준비하라고 해.”

“네, 그런데···. 요즘 이재수 사장이 오정숙 이사장을 자주 만나는 거 같습니다.”

“형수님을? 왜?”

“그것까지는 아직···. 조사해볼까요?”

이창호는 얼마 전 찾아왔던 오정숙의 매서운 눈빛을 떠올리더니,

‘재수를 이용해서 날 흔들 셈이군.’

그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그냥 놔둬.”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정호 선수···. 아, 죄송합니다. 부회장님 형님분 지인들을 찾아뵙고 기자들이 찾아와도 무시하라고 부탁드려뒀습니다. 타이탄스 구단에 속해 있는 이들은 이한수 구단주가 알아서 입단속을 할 거 같아서···.”

“그래. 수고했어.”

비서실장은 태블릿 PC를 넘기며 말했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미래 엔터 차은수 대표가 주최하는 크리스마스 기념 기부 파티에···.”

이창호는 비서실장의 보고를 받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났건만, 12월 12일만 가까워지면 컨디션이 좋지 않다.

무뚝뚝한 얼굴로 감추고는 있지만···.

그가 처음으로 한 생일 선물로 인해 죽은 형, 남편과 다리를 잃은 형수, 한창 어리광부릴 나이에 아빠를 잃고 아픈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 한수, 아빠의 얼굴도 알지 못하는 희수, 사랑하는 큰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진 부모님···.

죄책감이 이창호의 목을 졸라왔다.

그는 넥타이를 살짝 풀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비서실장이 보고를 멈추고 조심스레 물었다.

“부회장님, 괜찮으십니까? 혹시 또 가슴이···.”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보고 계속해.”

비서실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를 이어갔다.

그때 그들이 탄 차가 신호에 걸려 멈췄다.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휠체어에 탄 여자가 보였다.

동시에 오정숙과 있었던 ‘그날 일’이 떠올랐다.

.

.

.

이정호는 이창호에게 오정숙을 이렇게 표현했다.

[무척 밝고 강한 여자야. 마치 태양처럼···.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웃으면서 이겨낼 거야.]

그러나 이정호가 사고로 죽고, 다리까지 잃은 오정숙은 무너졌다.

물론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견디기 어려운 사건이긴 하지만···.

오정숙은 정도가 심했다.

[그래···. 다 내 곁을 떠나···.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정호씨도···. 소중한 사람들은 다 날 떠나···. 더는 혼자 남고 싶지 않아···. 그럴 바에는···.]

그녀는 어린 한수를 안고 병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의료진들이 발견해서 간신히 막았지만···.

가족들의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특히, 한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받았다.

결국 이태백 회장은 한수와 그녀를 떼어놓았다.

그러나 오정숙의 자살 시도를 막을 방도는 없었고···. 그녀는 점점 죽음의 늪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연히 이태백과 이창호의 대화를 그녀가 엿들었다.

[서방님이 정말 정호씨를 죽인 건가요!? 아버님! 이게 사실이에요!?]

[아가, 그게···.]

회장 자리를 노리고 형을 죽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창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형이 죽은 건 사고입니다. 그럼.]

[잠깐, 잠깐만요!]

[아가, 내 말 좀 들어보거라. 방금 그 얘기는···.]

이창호는 아버지가 잘 얘기를 할 거라 믿고 자리를 피했다.

며칠 뒤, 좋은 소식이 들렸다.

오정숙이 자살 시도를 멈췄고, 조금씩이지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창호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찾아갔다.

그리고···.

[당장 나가요! 당장! 나가라고요!!!]

[······!?]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아버지, 형수에게 대체 뭔 소리를 한 겁니까?!’

한달음에 이태백을 찾아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그가 면목이 없다는 듯 말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지를 않더구나. 네가 정호를 죽였다고 확신하는 거 같아. 덩달아 나까지 너를 감싸기 위해 사고를 덮었다고 의심받고···.]

[그러니까!! 왜 괜히 저를 의심하셔서···! 제가 뭐가 아쉽다고 형을 죽입니까!? 왜 기자랑 경찰한테까지 손을 쓰셔서 더 의심받게···!]

[···미안하구나.]

[아버지, 왜 이렇게 제 앞길을 방해하십니까···. 형수를 대체 어떻게 하라고···.]

[···일단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네 형수가 조금만 더 안정되면 그때 사실을 말하는 게···.]

이창호는 이건 아닌 거 같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닌 거 같았다고···.

하지만···.

[으윽···. 끄윽···.]

[힘내세요. 한 발만 더!]

[으으···!]

복수를 위해 이를 악물고 재활에 힘쓰는 오정숙과···.

[엄마! 힘내요!]

그런 엄마를 응원하는 한수를 보며···.

그는···.

[형수님, 뭘 그렇게 애쓰십니까? 그냥 조용히 사세요. 형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저는 경고했습니다. 흐흐.]

···악당이 되기로 했다.

.

.

.

“부회장님, 부회장님···.”

비서실장의 목소리에 이창호는 눈을 떴다.

“아···. 깜박 졸았군···. 회사에 도착한 건가?”

“거의 다 왔습니다. 또, 밤잠을 설치신 겁니까?”

“···이맘때면 늘 그렇지. 신경 쓰지 마.”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비서실장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창호 회장은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물었다.

“그보다 어디까지 들었지?”

“정확하진 않은데···. 타이탄스 구단을 인수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아, 그랬지. 그건 일단 보류하지. 지금 매각하려고 하면 한수도 그렇지만 박 상무도 난리를 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으로···.”

그렇게 그들이 탄 차는 신영 그룹 본사로 향했다.

= = = = = = =

신영 타이탄스 단장실.

한수는 업무를 처리하다가 포수 마스크 위로 느낌표가 나타나자 생각했다.

‘임무 17, 드디어 완료된 건가?’

임무 17은 타이탄스의 어떤 문제든 세 가지를 해결하는 거다.

첫 번째 문제는 페르난도 킴 감독이 박치수 선수를 방출하면서 해결됐고, 나머지는 이소희 팀장한테 맡겨뒀다.

이소희는 여러 문제점을 찾아서 개선 방안을 내놓았고 차근차근 해결해나갔고, 마침내 임무 17도 완료된 거다.

한수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임무 17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100 Point를 받았습니다.】

【현재 23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임무 18이 생성되었습니다.】

‘좋아. 또 포인트가 많이 쌓였네.’

한수는 힐끗 책상 위의 달력을 확인했다.

그는 12월 12일 쳐진 동그라미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12월 25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니까 그걸 사야겠네.’

한수는 Lv. 2 상점에 접속했다.

그리고 관심 상품 목록에서 하나의 스킬을 찾았다.

[산타 구단주의 착한 선수를 위한 선물]

└종류 : 구단주 전용 스킬

└등급 : Platinum

└설명

① 한 시즌 동안 사건, 사고를 일으키지 않은 착한 선수는 크리스마스에 산타 구단주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산타 구단주는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선물(현재 부족한 능력)을 줍니다.

③ 크리스마스에만 쓸 수 있습니다.

④ 사건, 사고는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가 임의로 평가합니다.

⑤ 선수 전원이 착하게 한 시즌을 보냈다면 모두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필요 포인트: 50

‘착한 선수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겠군!’

한수는 곧바로 스킬을 구매했다.

남은 포인트는 이제 180 Point다.

‘당분간 아이템을 더 살 건 없을 거 같고···.’

“상점 업그레이드를 하자.”

【최강 구단 Lv 2 상점】

└상점 Lv UP을 위해서 6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한수는 상점 업그레이드를 선택했다.

【60 Point를 소모해서 ‘최강 구단 Lv 2 상점’을 ‘무적 구단 Lv 3 상점’으로 업그레이드를 시작합니다.】

【업그레이드 완료까지 72시간이 걸립니다.】

【현재 120 Point가 남았습니다.】

‘삼 일? 오래도 걸리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었다.

그때 미친개 스튜디오 윤하얀 이사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주에 인터뷰한 뒤로 연락이 없었는데···.

‘추가 인터뷰가 필요한가?’

전화를 받자 윤하얀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구단주님···.]

“윤 이사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십니까?”

[아뇨···. 그냥 한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다큐멘터리 때문이군요. 이거 우리 이사님께 보약이라도 지어드려야겠습니다.”

[마음만 받을게요···. 그보다 가편집본이 완성돼서요···. 가편시사를 하려고 하는데···.]

“뭐라고요? 벌써 가편집본이 나왔다고요?”

한수는 어이가 없었다.

다큐멘터리가 무슨 즉석요리도 아니고 이렇게 빨리 만들어진단 말인가!?

[저희 사장님께서 구단주님 사정을 들으시더니 열성적으로 도와주셔서요···.]

“강 사장님이요. 이거 어떻게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한수도 미친개 스튜디오 사장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에미상까지 받은 예능계에서 손꼽히는 천재 PD니까 말이다.

[저희 사장님도 타이탄스 팬이어서요···. 내년에 꼴찌 탈출하는 걸로 보답해달라고 하시던데요···.]

“하하, 이거 더 열심히 해야겠군요.”

[네에···. 힘내세요···.]

한수는 피곤함에 잠긴 그녀의 목소리에 역시 보약을 지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녀가 재차 말했다.

[하여튼···. 내일 가편시사를 할 건데요···. 저희 스튜디오로 와주실 수 있으세요···?]

한수는 밝은 목소리로,

“네, 알겠습니다!”

= = = = = = = =

12월 12일.

한수는 미친개 스튜디오에서 ‘타이탄스 40년’ 가편시사를 했다.

다큐멘터리는 2부작으로 구성됐다.

1부는 타이탄스의 역사와 영구결번인 최종권 선수에 대해서 다루고, 2부에서는 팬들이 그리워하는 타이탄스 선수의 근황이다.

바로 2부에서 이정호에 대해서 다룬다.

한수는 다큐멘터리를 전부 시청하고 무척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네.’

짧은 시간에 만들어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성도였다.

예능과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미친개 스튜디오가 최고인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도 있었는데···.

‘윤형식 코치가 경기에서 아버지를 다치게 했던 선수였구나. 왜 그렇게 나만 보면 죄인처럼 구나 했더니···.’

한수는 윤형식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아주 어릴 때면 원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그냥 불행한 사고였어.’

만약에 이랬으면 아버지가 살았을지도···.

혹시 저랬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 수도···.

어쩌면 이렇게 했더라며 우리 가족은 아직도 함께···.

이런 가정을 하다 보면 끝이 없다.

과거로 돌아가서 불행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튼!

‘윤 코치한테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고 코치 역할에만 집중하라고 해야겠네.’

그때 윤하얀이 한수에게 말했다.

“아직 완성본은 아니에요.”

“그래요? 이걸로 충분한 거 같은데···.”

“이소희 팀장한테 재밌는 얘기를 들어서요.”

“재밌는 얘기요?”

“이정호 선수한테 사인볼을 받은 사람이 세 분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들 인터뷰를 아직 못 따서요. 그래서 구단주님께 부탁을···.”

“세 명이요? 한 명 아닌가요?”

한수가 알기로 아버지의 사인볼은 어머니만 가지고 있다.

윤하얀은 고개를 갸웃하며,

“아뇨. 세 명이랬어요. 세 번째로 받은 분은 알려주지 않았는데, 다른 두 분은 이 구단주님 어머님이랑···.”

“······.”

“이창호 부회장님이라고···.”

“······!?”

한수는 눈가를 움찔하며 손을 파르르 떨었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진정이 잘 안 된다.

‘아버지한테 사인볼을 받았다고···?’

역시···.

‘작은아버지는 뭔가 숨기는 게 있었군.’

한수가 어렸을 때, 오정숙은 무서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네 아빠는 이창호가 죽였어. 우리는 복수를 해야 해. 하지만 이를 드러내면 안 돼. 그 사람이 우리를 죽일지도 몰라. 조용히···. 조용히 힘을 키워서···. 단숨에 물어뜯어야 해. 알겠지? 한수야? 우리가 아빠 복수를 하는 거야.]

한수는 엄마 말을 믿고 이창호를 증오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금 의아했다.

‘왜 작은아버지는 엄마와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보는 거지?’

‘왜 할아버지는 작은아버지를 가만히 놔두는 거지?’

‘왜 할머니는 작은아버지를 미워하지 말라는 거지?’

‘왜 고모는 작은아버지를 맨날 병X 호구라고 부르는 거지?’

‘왜? 왜? 대체 왜···?’

그러던 어느 날, 이재수가 한수한테 ‘아빠도 없는 XX’라며 욕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이창호가 그 욕을 듣자마자···.

-철썩! 철썩! 철썩···.

이재수를 미친 듯이 팼다.

그때 한수는 생각했다.

어쩌면···.

‘엄마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상념에 잠겨 있는 한수의 귀로 윤하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구단주님···.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이창호 부회장님이랑 구단주님 어머님을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한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어머니는 조금 힘들 거 같고, 부회장님께는 말씀드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수는 생각했다.

‘오늘 만날 걸 그랬나?’

하지만 만나자고 한 장소가 하필 아버지의 납골당이었다.

한수는 아버지 장례식 이후로 단한번도 납골당에 찾아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어쨌든.

하여튼.

누가 뭐라고 해도 납골당만큼은 가지 않았다.

‘작은아버지랑은 다음에 따로 약속을 잡아야지.’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타이탄스 40년’은 이창호 부회장의 인터뷰 내용까지 추가되면서 완성됐고, 국내 여러 OTT 플랫폼을 통해서 방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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