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 어디 한번 말해보세요.
부산 영도구 남항동.
어느 허름한 건물 이 층에는 백부 태권도라는 낡은 간판이 붙어 있었고, 창문을 통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건물 앞에 포수 마스크를 쓴 한수와 롱패딩, 털모자, 목도리, 장갑으로 완전무장 한 나대교가 나타났다.
한수는 백부 태권도 간판을 보며 나대교에게 물었다.
“여기가 손미나 씨가 일하는 태권도장입니까?”
“네. 미나네 아빠가 관장님이세요.”
“오케이! 들어가 보죠.”
나대교는 조금 머뭇거렸다.
연락도 없이 이렇게 무턱대고 찾아와도 되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수가 말했다.
“앞장 안 섭니까?”
“네? 아, 네···.”
그녀는 한숨을 살짝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 건물 입구가 소란스러워지더니 도복을 입은 아이들이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야!!! 죽을래!? 계단에서 누가 뛰어!! 야! 야! 야! 차에 멋대로 타지 마! 정렬해 있어! 알겠어!?”
나대교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아~ 미나예요···!”
“어디요?”
“저기요!”
한수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봤다.
태권도 도복을 무척 사나운 인상의 여자, 손미나가 꼬마들을 데리고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너희들 집으로 바로 안 가고 딴 데로 새면 죽는다!”
“안 샐게요~ 사범님!”
“집으로 바로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오냐! 내일 보자!”
사나운 인상과 달리 털털하고 밝은 느낌 여자였다.
한수는 생각했다.
‘목소리 한번 우렁차네. 응원단장 시켜도 되겠는데?’
그러면 부산 갈매기의 삼륜안으로 그녀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손미나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졌다.
‘오오···!’
그리고 Platinum 등급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손미나】【Platinum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17%)
(타이탄스 코치진: 53%)
(타이탄스 프런트: 90%)
결론: 프런트의 손부인(孫夫人) 손상향(孫尙香)입니다. 정사에 따르면 손상향은 재주가 뛰어나며 성품이 굳세고 사나워서 손책, 손권과 같은 풍모를 갖췄다고 합니다. 손미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털털해 보이지만, 뒤끝이 무척 강해서 적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고양이처럼 무척 잽싼 몸놀림을 지녔습니다.
···(중략)···
【적성】
1순위: 치어리더 / 응원단장 [프런트]
2순위: 재활 코치 [코치진]
3순위: 배팅 포수 [선수]
【특기】
1. 예술적인 품새 국가대표
2. 환상적인 K팝 태권무
3. 화려한 격파 기술
4. 종합 격투기
5. IFT 태권도
6. 고양이보다 날렵하게···!
7. 평범한 투수 재활 치료
8. 수준 미달 포구
【호감도 : 0%】
정보창을 확인한 한수는 조금 당황했다.
‘1순위 적성은 치어리더인데 특기들이 전부 왜 이래? 그리고 재활 치료랑 포구 특기는 또 뭐야?’
한수가 손미나의 정보창을 보며 고민에 잠긴 사이, 손미나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더니 운전석에 앉아서 출발했다.
나대교가 “아···.”하며 물었다.
“구단주님, 미나가 가버리는데···.”
한수는 멀어지는 차를 힐끔 보더니,
“애들 바래다주는 걸 잡을 순 없죠. 조금 기다리죠.”
“네···.”
“친구분한테 기다린다고 문자 해두시고요.”
“네···!”
나대교는 폰을 꺼내 손미나한테 톡을 보냈다.
└대교: 미나야. 소개해줄 분이 있어. 태권도장 근처에서 기다릴게.
운전 중인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
“문자 해뒀어요···.”
“그리고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손미나씨요. 치어리더 경험은 있는 겁니까?”
“아뇨, 치어리더를 해본 적은 없어요···. 그래도 아까도 말했다시피 운동신경이 좋아서···.”
“음···.”
나대교는 고민하는 한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저기 이거···.”
“······?”
영상이 재생됐다.
태권도 도복을 입은 남녀 일곱 명이 최근 유행하는 K팝에 맞춰서 멋진 안무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들 중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바로, 손미나였다.
한수는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
“호오···.”
“자, 잘하죠? 태권무라는 건데요. 응원가에 맞춰서 안무를 추는 것도 비슷한 거라···.”
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실력이면 특기에 태권무나 품새, 격투기로 도배가 되어 있어도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좋아. 색다른 경력의 치어리더라서 팬들의 관심을 더 받을지도···.’
“손미나씨가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네···.”
나대교는 대답한 뒤에 한수를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구단주님이 갑자기 미나를 만나러 가자고 해서 오긴 왔지만···. 아직 미나한테 치어리더를 해달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때 한수가 말했다.
“한참 기다려야 할 거 같은데, 카페라도 가 있죠.”
“네···.”
그렇게 두 사람은 근처 카페로 향했다.
= = = = = = =
손미나는 마지막 아이를 아파트 단지 내 스쿨버스 존에 내려준 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생각했다.
‘퇴근하고 뭐하지? 대교쓰 불러서 술 마실까?’
그렇게 생각하며 잠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나대교한테 온 문자를 확인했다.
└대교: 미나야. 소개해줄 분이 있어. 태권도장 근처에서 기다릴게.
‘소개해줄 분?’
얼마 전에 나대교가 술에 잔뜩 취해서 한 말이 떠올렸다.
[미나야아아~! 유빈 그 나, 나, 나쁜 멍게 같은 오빠 잊어! 나, 나, 나이도 많으면서어어~! 우리 미나를 감히···!]
[대교야, 워~ 워~ 난 괜찮으니까. 진정하고···.]
[내, 내, 내가 어, 어떻게 진정해! 기, 기, 기다려! 유, 유, 유빈 오빠보다 조, 조, 좋은 남자 소개해줄게!]
[네가? 나한테? 남자를? 아하하하···.]
[우, 우, 웃지 마! 나, 나 이, 인기 마, 많아···.]
나대교는 치어리더인데도 쑥스러움이 오지게 많아서 남자 앞에만 서면 아무런 말도 못 하는 순둥이다.
그런데 남자 소개라니···.
술에 취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남자 소개를 해준다고? 얘가?’
반신반의하며 답장을 보냈다.
└미나: 남자?
└대교: 응! 남자분이야^^
└미나: 오~ 오~ 오~ 대교쓰~! 진짜 남자 소개해주는 거야?
└대교: 남자 맞아!
└미나: 잘생겼어?
└대교: ??? 그건 왜???
손미나는 답장으로 ‘소개팅하려면 당연히 얼굴을 봐야지!’라고 쓰다가 멈칫했다.
그녀가 아는 나대교는 수줍음이 많아서 남자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한다.
오죽하면 관중 앞에서 자신감 있게 춤을 추는 치어리더의 모습을 동경해서 치어리더가 됐다.
그런 나대교가 친구를 위해서 데려온 남자···.
‘얼굴이 무슨 상관이겠어.’
손미나는 피식 웃으며,
└미나: 오케이~! 집에서 옷 갈아입고 갈게~!
└대교: 그냥 와도 되는데···.
└미나: 에이~ 예의가 아니지. 이 언니가 힘 빡! 주고 나갈 테니까 기다려~!
└대교: 응···.
“어떤 남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대교 얼굴을 봐서 내가 아주 찐~ 한 추억을 남겨줘야겠네. 흐흐.”
.
.
.
손미나는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화장까지 완벽하게 한 뒤에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눈부시게 잘생긴 남자, 한수를 만났다.
그녀는 침을 꼴깍 삼키며 생각했다.
‘대~ 박~! 유빈 그 XX보다 훨씬 잘 생겼잖아?!’
손미나는 한수 옆에서 순진하게 방글방글 웃고 있는 나대교를 힐끗 쳐다보며,
‘대교쓰···. 어, 언니가 겨, 격하게 싸랑한데이~!’
나대교가 웃으며 말했다.
“미나야, 인사드려. 타이탄스 이한수 구단주님이야.”
“···누, 누구? 그 호구 아, 아니···.”
나대교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러지···?’
손미나는 나대교의 반응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이거 설마···.’
그때 한수가 명함을 내밀며,
“처음 뵙겠습니다. 타이탄스 구단주 이한수입니다. 먼발치에 도복을 입은 모습을 보고 참 예쁜 분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역시 제 눈이 틀리지 않은 거 같습니다.”
달콤한 목소리로 가식적인 멘트를 했고, 손미나는 확실히 알았다.
‘···이거 소개팅 자리가 아니구나.’
그녀는 한숨을 내쉰 뒤, 명함을 받으며 말했다.
“···손미나예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그러자 나대교가 우물쭈물 말문을 열었다.
“아~ 그게···. 사실은···.”
한수는 나대교가 본론을 꺼내기 기다리다가 밤이 될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곧장 본론을 얘기했다.
“손미나씨를 우리 타이탄스 응원팀 치어리더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빨갛게 물든 얼굴로 소리쳤다.
“뭐, 뭐라고요!? 저, 저를 치, 치어리더로요? 무슨 말도 안 되는···! 누, 누구 쪽팔려서 죽는 꼴 보고 싶어요?!”
“어라? 대교씨한테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습니까?”
“얘기요? 그게 무슨···.”
그러자 나대교가 말했다.
“구, 구단주님이 치어리더로 추천할 친구가 있냐고 여쭤보셔서···. 너, 너를 추천···.”
“야, 이 미친X아! 날 왜 추천해!”
“그, 그게···.”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나대교를 대신해서 한수가 입을 열었다.
“미나씨가 태권무를 하는 영상을 봤습니다. 치어리더도 충분히 잘하실 거 같습니다.”
“아, 아니···. 그거랑 치어리더랑은 다르죠. 그, 그리고 저는···.”
“자~ 자~ 너무 그러지 마시고 우선 앉아 보세요.”
“···아니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치어리더에 대한 건 못 들은 걸로···.”
그렇게 냉정하게 돌아서려는 순간, 한수가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미나씨가 간절히 필요한 건 아닙니다.”
“······.”
“대교씨가 당신하고 함께하면 팀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온 겁니다.”
그 말에 손미나는 풀이 죽은 얼굴의 나대교를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에휴···. 저 바보···.’
“친구분을 생각해서 일단 조건이라도 한 번 들어 보시는 게 어떠신가요?”
“···오케이.”
그녀는 한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며 말을 이어갔다.
“어디 한번 말해보세요.”
한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고 잠시 후···.
손미나는 한수가 말한 조건을 전부 듣고 입을 쩍 벌리며 되물었다.
“계, 계약금을 그렇게 많이 줘도 되나요? 겨, 겨우 치어리더인데···.”
심지어 태권도장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손미나를 배려해서 타이탄스 홈구장(부산)과 티라노스 홈구장(창원)에서 경기할 때만 응원 무대에 올라도 된다는 조건도 언급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처음 제시한 계약금에서 25%만 받지만, 그것도 무척 많았다.
‘너무 조건이 좋은데? 이거 사기는 아니야?’
한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겨우 라뇨. 치어리더가 얼마나 중요한 데요. 경기보다 응원 무대를 보러 오는 팬들도 무척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경력도 없는데···.”
“경력보다 미나씨의 능력과 제 촉을 믿습니다. 미나씨는 분명 좋은 치어리더가 될 겁니다.”
“으음···.”
“대교 씨한테도 큰 도움이 될 거고요.”
“음···.”
손미나는 고민했다.
그녀가 타이탄스 치어리더가 되면 걸리는 게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전 남친과 또 엮일 수 있고,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도 문제고, 태권도장 제자들의 반응도 걱정됐다.
‘하지만 조건이 너무 좋은데···. 특히, 계약금이···. 으···. 눈 딱 감고 버티면···.’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일단 아버지랑 상의해보고, 내일 중으로 답변을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 네···. 안녕히 가세요.”
“구, 구단주님, 조심히 가세요···!”
한수가 카페 밖으로 나가자 손미나가 나대교를 째려보며 말했다.
“야! 넌 상의도 없이···.”
“미, 미안. 구단주님께서 갑자기 오자고 하실 줄은 몰랐어···.”
“에휴, 됐다. 말해서 뭐 하냐···.”
나대교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치어리더 할 거야···?”
손미나는 한수가 나간 문을 힐끔 보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몰라, 이년아!”
.
.
.
그리고 다음 날.
-띠링!
『임무 18』
【구단주님, 최고의 구단은 응원도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응원단을 새롭게 개편하세요.】
└완료 조건
① 응원단 Diamond 등급 단원 (1/1) [완료]
② 응원단 Platinum 등급 단원 (2/2) [완료]
③ 응원단 Gold 등급 단원 (3/3) [완료]
【보상 : 200 Point,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
임무 18이 완료됐다.
아쉽게도 영웅 도감은 완성된 게 없었지만, 보상을 받아서 380포인트가 됐고···.
‘흐흐,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다!’
찾을 대상은 정해뒀다.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예를 선택하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위치를 확인할 대상을 말씀해주세요.】
한수는 주문을 외웠다.
“여포 같은 인재야~! 어딨니?”
천하무쌍의 장수에 비견되는 인재를 찾기 위해!
그 순간, 눈앞에 창이 나타났다.
-띠링!
【여포는 현재···.】
한수는 내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하필 여기에 여포가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