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 이놈을 어떻게 정신 차리게 하지?
아침, 타이탄스 프런트 사무실.
한수는 출근하자마자 사무실을 찾았다.
모닝커피를 마시러 가려던 직원들은 그를 발견하고 움찔했지만, 전처럼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갖다 드릴까요?”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멋지십니다!”
직원들이 이렇게 호의적으로 변한 건 한수가 문제를 일으키는 직원이나 선수를 냉정하게 쫓아버린 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두 OTT 플랫폼에서 방영 중인 다큐멘터리 ‘타이탄스 40년’의 덕분이다.
이뿐만 아니라, 직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출처를 알 수 없는 소문도 퍼지고 있었다.
‘일가친척도 없는 홀어머니 모시면서 재벌가에서 고생이란 고생은 전부···.’
‘돌아가진 이태백 회장을 제외하곤 아무도 가족으로 생각해주지 않았고···.’
‘구단주님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요~. 고모와 사촌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한수는 직원들에게 적당히 인사를 하고 이소희 팀장에게 다가갔다.
이소희는 홍보팀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따 오후에 있을 양기주 투수 입단식 때문이다.
공식 인터뷰는 양기주 투수만 참여하지만, 사진 촬영에 참석하는 인원은 더 있었다.
양기주와 함께 트리플스에서 타이탄스로 온 2군 선수 장문원, 여은포 그리고 ST 위닝스에서 트레이드돼서 온 전예준과 공형찬이다.
이소희는 한수를 발견하자마자 인사했다.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굿모닝, 이 팀장. 저번에 페르난도 감독이 보고한 예상 1군 라인업 있죠? 그것 좀 다시 보내줘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메일 보내겠습니다.”
“오케이~! 오늘도 수고!”
“네.”
한수는 단장실로 들어와서 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23시즌 타이탄스 1군 예상 라인업’이라고 된 보고서가 도착해 있었다.
이건 페르난도 킴 감독과 박동준 코치가 12월 23일까지 분석한 선수들 기량을 토대로 작성한 내년 시즌 예상 라인업이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라인업 보고서와 정보창을 한 번에 살펴봤다.
【23시즌 타이탄스 1군 예상 라인업】
① 선발 투수
1 선발: 염철수(Diamond 등급)
2 선발: 찰스 스팅(Silver 등급)
3 선발: 홍진철(Platinum 등급)
4 선발: 카를로스 디아즈(Gold 등급)
5 선발: 기용찬(Platinum 등급)
우선, 선발 투수는 신인이 무려 3명이나 되는 놀라운 라인업이다.
물론, 홍진철과 기용찬은 연습 경기에서 활약하면서 실력을 입증해서 선발로 뽑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염철수는 제대로 된 경기를 뛴 적이 없는데도 이름을 올렸다.
아무리 팀 내 청백전에서 성적이 좋다곤 하지만, 작년과 재작년 타이탄스 에이스 투수였던 찰스 스팅을 밀어내고 1선발이 된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수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혹시 내가 염 선수를 아끼는 걸 알고 일부러 이런 건 아니겠지?’
그 순간, 박동준 코치했던 말이 떠올랐다.
[염 선수는 정말 대단하네요. 성실할 뿐만 아니라 성장 속도도 놀랍고, 풀카운트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승부수를 던지는 건 물론, 홈런을 맞고 나서도 웃으면서 다시 한가운데를 노리는 담력까지···. 데이터뿐만 아니라, 느낌도 좋아요. 정말, 정말 크게 될 선수 같아요.]
데이터 귀신인 박동준이 ‘느낌’까지 좋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 내 눈치를 보고 염 선수를 1선발로 한 건 아닐 거야. 그리고 이번에 염라대왕 슬라이더 특기도 추가됐으니···. 좋아. 염 선수라면 이대로 1선발로 확정이 돼도 좋을 거 같아!’
한수는 보고서 다음 포지션을 확인했다.
②불펜 투수
문희동(Platinum 등급), 전예준(Gold 등급), 양창진(Gold 등급), 장재우(Bronze 등급), 김태규(??? 등급), 장은수(Diamond 등급) [이하 미확정]
불펜 투수에서 주목할 점은 주장 장재우가 선발에서 밀려나 불펜으로 갔다는 점이다.
장재우는 지난 시즌부터 최근 연습 경기까지 잘 던지다가 급격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적시타를 맞으면 마음을 다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시즌에는 선발과 중간계투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주는 스윙맨으로 뛸 예정이다.
‘선발에서 밀려나서 실망이 크다는 거 같은데···. 주장인 만큼 정신을 빨리 차렸으면 좋겠네.’
다음으로 주목할 점은 김태규다.
그는 우언 투수로 한때는 팀을 주목을 받던 마무리투수였지만, 팔 년 전 플레이오프에서 결정적인 실투를 해서 팀이 패배했고···.
그 후로 손목 수술을 했는데, 잘못된 재활 치료로 인해 기량이 떨어졌다.
지난 시즌에는 0승 15패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하며 KBO 최다 연패와 타이기록을 했다.
이소희는 김태규를 방출하자고 했지만,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는 그를 버리면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한수는 김태규와 최저 연봉으로 계약해서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리고 재활의 요술사 장보형 코치에게 김태규의 재활을 지시했다.
그 결과, ‘Bronze 등급’으로 표기되던 정보창이 ‘??? 등급’으로 업데이트됐다.
한수는 김태규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띠링!
【김태규】【???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
(타이탄스 코치진: 40%) [+1 ↑]
(타이탄스 프런트: 18%) [-1 ↓]
결론: 재활의 요술사 장보형 코치와 데이터 귀신 박동준 코치 덕분에 급속도로 회복 중입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투타】
우언우타
【특기】
1. A급 완급조절
2. S급 승부 근성
3. 뛰어난 체력
4. 회복한 내가 언더스로인데 강속구라고? [New]
5. ??? [비활성화]
6. ??? [비활성화]
【호감도: 15%】
한수는 김태규의 네 번째 특기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언더핸드스로 투수는 거의 다 구속이 느리다.
김태규가 잘나갈 때 평균 구속이 85마일(137km/h) 정도였고, 손목 부상 이후에 잘못된 재활로 인해서 망했을 때는 75마일(122km/h)까지 떨어졌다.
그런데 한 달 남짓 장보형과 박동준에게 재활을 받고···. 평균 구속이 88마일(143km/h)까지 올랐다.
전성기가 지났고, 손목 수술까지 한 투수가 구속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다니!
정말 요술이나 다름없었다.
‘장 코치가 90마일까지는 오를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는데···.’
한수는 언더스로 강속구 투수의 탄생을 기대했다.
그리고 불펜 투수 포지션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한 선수는···.
‘장은수···.’
너클볼을 던지는 Diamond 등급 투수.
이소호와는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아직 언제쯤 한국에 온다는 얘기가 없다.
그래서 아직 계약서도 작성하지 못했는데···.
박동준 코치는 이미 장은수를 타이탄스 선수로 생각하고 있는지 라인업에 추가했다.
한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연락해보긴 해야겠어. 무슨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
그렇게 생각한 뒤 보고서에 적힌 나머지 포지션 라인업도 살폈다.
③포수
하민철(Platinum 등급), 강민수(Platinum 등급) [이하 미확정]
④내야수
이소호(Diamond 등급, 일루수), 윤진호(Diamond 등급, 이루수), 손재현(Platinum 등급, 삼루수), 김효철(Gold 등급, 유격수), 공형찬(Gold 등급, 일루수) [이하 미확정]
⓹외야수
오재근(Platinum 등급, 중견수), 박종구(Gold 등급, 좌익수), 최민준(Gold 등급, 우익수), 로빈 애플(Gold 등급) [이하 미확정]
⓺ 지명타자
[미확정]
1군 선수는 최대 28명까지 등록할 수 있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는 26명이다.
하지만 보고서에 적힌 선수는 22명이다.
남은 여섯 자리를 어떻게 채울지는 코치진과 의논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명타자에 들어갈 선수는 생각해뒀다.
‘이 포지션에는 어울리는 선수···.’
“곧 만나게 되겠군. 흐흐.”
한수는 무척 즐거워 보였다.
= = = = = = = =
타이탄스 구장 주차장.
여은포는 스포츠카에서 내리더니 주머니에 손을 꽂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시시한 동네네···.”
여은포가 여기까지 온 건 입단식 때문이다.
사실 입단식 같은 번거로운 건 빠지고 싶었지만, 같이 트레이드된 대선배 양기주가 산도적같이 눈을 부릅뜨며 ‘여은포! 너 입단식에 빠지면 알아서 해!’라고 엄포를 놨다.
양기주가 무서운 건 아니다.
그저 또 다른 트레이드 선수 장문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젠장, 그놈이랑 전생에 뭔 원수를 져서···.’
여은포는 한숨을 푹 쉬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때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여은포만큼은 아니지만,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 ST 위닝스에서 트레이드돼서 타이탄스로 온 백마고 출신의 타자 공형찬이었다.
여은포는 눈을 끔벅였다.
‘공형찬 쟤가 왜 여깄어? ST 위닝스에 있는 거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전예준도 트레이드됐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걔들은 세트 메뉴도 아니고···.’
“쟤랑 하는 승부도 꽤 재밌었는데···.”
여은포와 공형찬은 동갑으로 같은 시기에 고교 야구에서 활약했다.
물론, 여은포는 1학년 이후로 제대로 경기를 뛰진 않았지만, 어쨌든 공형찬은 1학년 때 그를 곤란하게 했던 타자 중 하나였다.
물론 이긴 건 여은포였지만···.
‘쟤 보니까, 미국에서 왔다고 거들먹거리던 놈이 떠오르네.’
ST 위닝스 안민혁.
타이탄스 포수 강민수와 같은 신이고 출신으로, 정보창에는 삼국지 무장 안량에 비유되는 강속구 투수다.
팀 동료를 배려하지 않는 건 물론, 상대 팀 타자가 마음에 안 들면 위협구까지 던질 정도로 질이 나쁘다.
여은포와는 트리플스에 함께 지명을 받았지만, 안민혁은 충고하는 선배를 두들겨 패고 방출됐다.
그리고 작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ST 위닝스로 가게 된 거다.
‘실력도 없는 놈이 자존심은 XX 강해서···. 쯧쯧.’
그때 공형찬이 경기장 안으로 사라졌다.
여은포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타이탄스엔 나랑 비슷한 시기에 고교 리그에서 활동한 놈들이 많네.’
두 살 많은 꽃미남 천재 포수 하민철.
한 살 많은 새가슴 투수 출신 외야수 박종구.
동갑인 신이고 출신 포수 강민수.
동갑인 백마고 출신 타자 공형찬.
한 살 어린 백마고 출신 투수 전예준.
그리고···.
‘장문원도···.’
왠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야구에 불타올랐던 그때처럼···.
그 순간, 여은포는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더니,
“지랄.”
‘불타오르긴···.’
불현듯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야구 명문인 동산고를 상대로 13연속 삼진을 잡으며 괴물 투수라고 불리기 시작할 무렵의 악몽이···.
= = = = = = =
적토고 감독은 야구에 대한 어마어마한 재능과 막대한 후원금을 줄 수 있는 부모님을 동시에 가진 여은포를 몹시 아끼고 편애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은 그를 시기했다.
[여은포 저 XX도 집에 돈만 없었으면 XX 아닌가?]
[XX, 이렇게 야구 해야 하나? 존X 서럽네. 언제까지 여은포 주인공 만들기 해야 하는 거냐?]
[XX! 나도 여은포처럼 부잣집 아들이었으면 야구 존X 열심히 했을 텐데···.]
[야, 그거 아냐? 여은포네 부모님 사채업자야?]
[존X 나쁜 놈들 아니냐?]
[여은포 은근히 돈 자랑할 때부터 알아봤음. 졸부 티 존X 내고···.]
[장문원이랑 싸운 것도 돈 때문이라던데?]
[여은포 그 XX가 장문원 존X 거지라고 무시···.]
애초에 잘못한 건 후원금이란 명목으로 뒷돈을 요구한 건 적토고 감독인데, 욕을 먹는 건 여은포였다.
여은포는 그런 상황이 짜증 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더 압도적인 재능을 보여주면 쟤들이 입을 다물지 않을까?
그래서···.
[타자할래요.]
[뭔 소리야? 너 타자해본 적도 없잖아! 정신 차려! 지금 MLB에서도 너한테 관심을···.]
[됐어요. 내일 경기부터 타자로 서게 해주세요.]
[이, 이···.]
어려서부터 어깨가 좋고 악력이 세서 마운드에 올랐고, 천부적인 재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래서 여은포는 고등학교까지 투수 말고 다른 포지션은 해본 적이 없다.
감독은 끝까지 반대했지만, 여은포는 배 째라는 식으로 나갔다.
[아~ 됐고. 타자 안 시켜주면 야구 그만둘 겁니다.]
결국 그는 지명타자로 하위 타선에 배치됐다.
여은포는 배트를 잡는 순간 생각했다.
‘왠지 잘 될 거 같은데?’
[신이고 안민혁 초구 와인드업!]
여은포와 마찬가지로 고교 유망주로 불리는 신이고 안민혁이 던진 포심 패스트볼은 무려 150km/h로 몸쪽을 노리고 날아왔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여은포가 배트도 휘둘러보지 못하고 스트라이크를 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여은포는···.
‘이렇게 느린 공을 왜 다 못치는 거야? 눈깔이 다들···.’
“삐었나!!”
홈런.
가볍게 안민혁이 던진 공을 씹어먹었다!
중계진도 감탄했다.
[홈런! 타자로 전향한 첫 경기에서 홈런을 만들어낸 여은포 선수!]
[이야~ 아주 부드러운 스윙이었어요. 저건 손목 힘이 아주 좋다는 건데···.]
[안민혁 선수 표정이 일그러집니다. 이번 리그에서 첫 홈런을···.]
여은포는 생각했다.
투수로서도, 타자로서도 이런 압도적인 재능을 보여줬으니, 더는 돈으로 주전을 따냈다는 헛소리를 듣진 않겠지.
그랬는데···.
‘저 XX는 투수나 할 것이지···.’
‘진짜, 사람 존X 비참하게 만드네···.’
‘세상 참 불공평하네.’
‘부모들이 번 더러운 돈으로 놀고먹기나 하지 왜 야구 선수는 한다고···.’
···더욱 외톨이가 됐다.
그 뒤로···.
여은포는 야구에 흥미를 잃었다.
.
.
.
한수는 강덕수가 조사해온 여은포에 대한 자료를 보며 혀를 찼다.
“이거 참, 왜 덜떨어진 선수처럼 행동하나 했더니···. 한심한 이유였네.”
‘이놈을 어떻게 정신 차리게 하지?’
힌트는 있다.
장문원을 어떻게든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또 활용할 만한 게···.’
그때 강덕수가 말했다.
“구단주님, 곧 입단식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오케이. 가자.”
그렇게 새로운 선수들을 환영하는 입단식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