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 봉사활동은 다음에 따로 하세요.
장문원은 한수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군에서 훈련하라고···?’
“구단주님, 저기, 그 말씀은···.”
“아? 이해가 안 됐어요? 혹시 나도 모르게 외국어로 말했나?”
“아, 아뇨. 그게 아니고···. 이해는 했는데, 말씀의 의미가···.”
“아~ 그럼, 이렇게 말할까요? 장문원 선수, 1군 콜업입니다.”
“······!”
1군 콜업이라니!
장문원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2군에 입단한 당일에 1군이 되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다.
너무 기뻐서 춤이라고 추고 싶은 순간, 불현듯 나쁜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야구부 시절, 감독에게 후원금은 내지 못했지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인정받을 거라고 여겼지만···.
[너 주말리그 주전 나가는 거. 내가 감독한테 부탁한 거거든.]
[······!]
[그 양반이 우리 아빠한테 후원금을 좀 많이 가져갔냐? 이럴 때 좀 써먹어야···.]
···자존심이 산산조각이 났었다.
그리고 트리플스 육성 선수 입단 때도···.
[인마, 고지식하게 굴지 말고, 너희 어머니 생각도 좀 해라. 너 하나 잘 되길 그렇게 바라는데···. 하여튼 우리 아빠가 돈 좀 많잖냐? 그래서···.]
[지랄하지 마!!!]
[···야, 말이 좀 세네. 딱 까놓고 말해서 네 실력으로 합격 될 리가 없잖아. 애써 생각해서 도와줬더니···.]
···친구의 호의에 비참함을 느낀 자신이 너무도 싫었고,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관계는 친구에게도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연을 끊어버렸다.
물론 친구는 계속 그의 곁을 맴돌고 있지만···.
어쨌든!
장문원은 혹시 한수가 그를 1군으로 콜업하는 것도 여은포가 손을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럴 리 없어. 이한수 구단주님은 팀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치는 분인데···.’
믿고 싶지 않았지만, 불안은 눈밭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점점 커졌다.
‘만약 이번에도 내 노력이 아닌···.’
장문원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한수가 물었다.
“장 선수, 표정이 왜 그래요? 1군 콜업이 싫어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무척 기쁜데···. 그···. 제가 왜 1군이 된 건지 의문이라···.”
“생각이 너무 많네.”
“네?”
한수는 팔짱을 끼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 선수, 지금 내가 하는 제안은 당신 인생에 몇 없을 기회에요. 그런데 어째서 1군에 뽑힌 건지 의문이라 머뭇거린다고요?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거죠?”
“······!”
“아들 하나 야구 선수로 성공하길 바라면서 십 년 가까이 뒷바라지하시는 어머니 보기 민망하지도 않습니까?”
“······!?”
여은포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존심을 지킬 때마다 외면해왔던 현실이 비수처럼 장문원의 심장을 찔렀다.
장문원은 오늘 부산으로 오기 전에 했던 다짐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여은포를 신경 쓰면서 지낼 순 없어. 이건 나한테 좋지 않아. 엄마가 일을 그만두고 편하게 지내게 하려면···. 내가 빨리 성공하는 수밖에 없어. 타이탄스에서는 반드시 1군으로 갈 거야.’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서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한수가 재차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 할 시간에 배트를 한 번 더 휘둘러요. 내가 1군으로 콜업했다고 해서 1군에 붙박이가 됐다고 착각하면 아~주 큰 오산입니다. 오케이?”
“···네···.”
“이만 가보세요.”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문원이 단장실에서 나가려는 순간, 한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당신의 능력을 믿고 1군으로 콜업한 겁니다.”
“···제, 능력이요···?”
“네.”
장문원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수의 진지한 눈빛을 본 순간, 그의 말이 사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능력이 있다고···.’
“저는 노력하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맞아요. 노력만 한다고 1군이 되는 건 아니죠.”
“······.”
“하지만 1군이 된 선수 중에서 노력하지 않은 사람은 없죠. 그건 1군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죠.”
“······.”
장문원도 알고 있다.
노력만으론 성공할 순 없다.
노력은 성공을 위한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나한테는 노력만이 유일한···.’
그때 한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
“나한테는 보입니다. 노력 말고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나는 장문원 선수 재능이요.”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를 통해 보이는 Platinum 등급 정보창에 대해서 언급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모르는 장문원은 의문 가득한 얼굴을 했다.
‘눈부신 재능···? 나한테···?’
살면서 장난으로라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놀리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수의 진지한 눈빛을 보니, 왠지 모르게 심장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한테도 재능이···.’
“제 재능이 대체···.”
“그건 비밀입니다.”
“······.”
한수는 당황한 장문원을 보며 피식 웃더니,
“하여튼! 내 눈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란 말입니다. 오케이?”
정확히 모르겠지만, 한수의 말에 왠지 신뢰가 갔다.
그래서 장문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구단주님.”
장문원은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단장실에서 나갔다.
한수는 생각했다.
‘어디 정보창에 변화가 생겼나 확인해볼까?’
곧장 포수 마스크를 썼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550 Point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임무 19가 미완료 상태입니다.】
기본적인 알림창이 떠오른 이후에, 연달아 네 개의 창이 떠올랐다.
【‘구단주님이 보고 계셔!’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특기 영향으로 장문원의 네 번째 특기 ‘노력으로 빛나는 배트컨트롤’이 활성화됩니다.】
【‘구단주님이 보고 계셔!’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특기 영향으로 장문원의 다섯 번째 특기 ‘레이저 송구’가 ···(중략)···.】
【‘구단주님이 보고 계셔!’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특기 영향으로 장문원의 여섯 번째 특기 ‘한발 앞을 내다보는 ···(중략)···.】
【‘구단주님이 보고 계셔!’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특기 영향으로 장문원 일곱 번째 특기 ···(중략)···.】
장문원의 비활성화 특기들이 전부 활성화됐다.
한수는 입꼬리를 올렸다.
‘대박이네. 그러면 혹시···.’
곧바로 장문원의 잠재레벨 창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확인했을 때는 전부 물음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띠링!
【이름: 장문원】
【레벨: ?? / 90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5툴 플레이어 A】
‘역시!’
아주 좋은 잠재레벨 수치와 특성이었다.
5툴 플레이어는 타격 정확성, 장타력, 수비, 송구, 주루 능력을 동시에 올려주는 타자 계열 최상급 특성이다.
S등급부터 D등급까지 있는데, A등급은 다섯 가지 능력을 0.75만큼 올려준다.
‘어라? 현재 레벨은 왜 아직도 물음표지?’
그러자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가 대답했다.
-띠링!
【비활성화 상태였던 특기와 특성이 전부 활성화됐지만, 장문원은 아직 100% 전력을 낼 순 없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능력을 다듬어야 하고, 여은포에 대한 열등감과 죄책감이 남았습니다. 물론 후자(後者)는 무시해도 됩니다. 이미 재능의 봇물이 터진 상황, 장문원이 비상(飛上)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다만, 여은포의 문제까지 해결하기 위해선 지금이 적기(適期)입니다.】
한수는 알림창의 내용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여은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지금이 적기이지. 괜히 미룰 필요는 없어.’
원래 팁을 활용해서 장문원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각성시키고 나면 여은포를 자극해서 본래 실력을 내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장문원이 각성이 예상보다 빠르게 이뤄졌다.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흐흐.’
곧바로 여은포를 자극할 수 있다!
“일단 페르난도 감독한테 장문원 훈련 강도를 높이라고 해야겠어.”
목표는 스프링캠프 전까지 장문원을 진정한 5툴 플레이어로 만드는 거다.
한수는 페르난도 킴 감독에게 장문원의 훈련 강도 다른 이들보다 강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뒤 강덕수에게 전화했다.
“덕수야, 여은포 어딨는지 파악해서 잡아둬.”
[제가 직접이요? 삼십 분 뒤에 보육원 봉사활동은]
“나 혼자 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네!]
한수는 임무 19 완료를 위해 오늘과 내일, 모레까지 보육원 봉사활동을 잡아뒀다.
워낙 바빠서 오늘은 네 시간만 하고, 내일 네 시간을 이어서 하고, 이튿날 여덟 시간을 할 예정이다.
이 일정만 끝나면···.
『임무 19』
【구단주님,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가장 쉬운 길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템빨입니다! 그렇다면 포인트가 아주 많~이 필요하겠지요? 자! 이번 임무는 포인트를 모으는 보너스 임무입니다! 직접 수행하세요!】
└완료 조건
① 노인정 봉사 4시간 (2/2) [완료]
② 보육원 봉사 8시간 (0/2) [완료 시 200 Point]
③ 요양원 봉사 6시간 (2/2) [완료]
④ 거리 청소 4시간 (2/2) [완료]
⓹ 재능 기부 (2/2) [완료t]
【보상 : 전체 완료 시 1,000 Point】
임무 19는 완료된다.
그래서 1,200포인트를 보상으로 받으면 총 1,750포인트를 보유하게 된다.
물론 바로 쇼핑을 할 수 없을 거다.
Lv 5 상점으로 업그레이드가 사흘 뒤에나 끝나니까 말이다.
‘그래도 금방이야. 흐흐, 이번에는 어떤 아이템이 있을까? 새로운 Diamond 등급 아이템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한수는 단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동산 보육원으로 향했다.
= = = = = = =
동산 보육원에 도착한 한수는 예상외의 인물과 만났다.
바로, 정보창에서 프런트의 초선이라고 비유된, 단발머리의 미녀.
응원단의 치어리더 최혜선이었다.
그녀는 한수를 보더니 무척 따사로운 미소를 보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혜선씨가 왜 여깄습니까?”
“아, 그게···. 기부를 하려고···.”
“기부요? 혜선씨가요?”
최혜선을 무시해서가 아니고, 그녀가 어떤 상황인지 빤히 알기 때문에 의아해서 되묻는 거였다.
그녀는 공사 현장에서 떨어져서 크게 다친 아버지의 병원비와 의대를 다니는 큰오빠, 명문대를 가려고 몇 번째 수능에 도전하고 있는 작은오빠 뒷바라지를 도맡아서 하고 있다.
이번에 한수가 후하게 계약 연봉을 줬지만, 보육원에 기부할 정도로 여유롭진 않을 텐데···.
그때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저···. 이재수 사장한테 연락해서 돈···. 다시 달라고 했어요···.”
“이재수한테요? 무슨···.”
그러다가 일전에 이재수가 처남 김태한이 저지른 짓을 사과하겠다면서 최혜선에게 돈 봉투를 건넨 일이 떠올랐다.
그때 최혜선은 그 돈을 단호하게 거절했는데···.
“구단주님 말씀대로 돈 받아서···. 기부하려고···.”
한수는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래서 정말 이재수한테 돈을 다시 달라고 한 겁니까?”
최혜선은 쑥스럽다는 듯 살짝 볼을 붉히며,
“네···.”
“이야~ 이재수 표정이 아주 볼만 했겠네. 흐흐. 그래요, 혜선씨! 사람이 말입니다. 챙길 건 챙기면서 살아야죠. 그 돈으로 이렇게 좋은 일도 하고 얼마나 해피합니까? 그렇죠?”
“맞아요···! 저기 그런데 구단주님은 보육원에는 왜···.”
한수는 피식 웃으며,
“봉사 활동하러 왔습니다.”
“봉사활동이요? 어···. 혼자서요?”
“보면 몰라요?”
“······.”
최혜선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재벌들은 봉사활동 같은 걸 할 때 기자들을 끌고 다니며 포토타임으로 시간을 다 보낼 텐데···.
한수는 복장부터가 트레이닝복이었는데, 제대로 봉사활동을 하러 온 거 같았다.
한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그녀는 순간 고민하더니,
“···저도 보, 봉사 활동하고 싶어요!”
“왜요?”
“아, 저 그게···.”
그녀가 머뭇거리며 얼굴을 붉히자, 한수는 “흠···.”하더니 말했다.
“혜선씨, 저 좋아합니까?”
“네? 아, 저, 그게···.”
최혜선은 대답하지 못하고 뒷말을 흐렸다.
사실 그녀도 한수를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한수에게 도움을 받은 이후로 계속 그의 얼굴만 떠올랐고, 이재수한테 다시 돈을 요구한 일도 그렇게 행동하면 한수가 좋아할 거 같아서였다.
‘혹시 나 정말 구단주님을···.’
그때 한수는 냉정하게 말했다.
“포기해요.”
“···네?”
“혜선 씨가 무척 예쁘긴 한데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상처받지 말고 지금이라도 마음 접으세요.”
한수도 남자인지라 그녀의 외모에 조금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녀처럼 유약한 스타일은 한수의 이상형이 아니었다.
차라리 정말순처럼 마음에 상처 따윈 전혀 받지 않는 사차원 마이웨이가 더 취향에 맞았다.
왜냐면···.
[한수야···. 엄마는 이제 더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우리 함께···. 죽자···. 함께···. 누구도 슬프지 않게···. 알았지? 내 아들···. 소중한 우리 아가···.]
한수는 나쁜 기억이 떠올라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곧바로 표정을 풀더니 최혜선에게 말했다.
“함께 일하면서 괜히 불편해지지 말고요. 오케이?”
“······.”
“봉사활동은 다음에 따로 하세요. 그럼.”
한수는 몸을 휙 돌려 보육원으로 향했고, 최혜선은 허망한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날, 한수의 보육원 봉사활동이 끝날 때쯤, 강덕수한테 연락이 왔다.
[구단주님, 여은포 선수 찾았습니다. 지금 해운대 쪽에 있는 술집에 있는데요. 장소를 옮길 거 같지는 않아서 일단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주소 불러. 바로 출발할게.”
그렇게 한수는 여은포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