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06화 (106/187)

106화 : 우리 내기 하나 할까?

동산 보육원 정문.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멀어지는 한수의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둘은 오늘 한수를 무척 따랐다.

바가지 머리를 한 소년, 김진만이 말했다.

“아저씨 정말 내일도 올까?”

까까머리 남자아이, 김종호가 대답했다.

“배트 선물해준다고 했어. 올 거야.”

“난 글러브 준댔어. 송구하는 거 알려준댔어.”

“나도 준다고 했어. 포구하는 거 알려준댔어.”

“난 야구공도 준댔어!”

“나도 준댔어.”

“······.”

“······.”

두 아이는 서로는 노려보며 볼을 부풀렸다.

그러다가 다시 멀어지는 한수의 차로 시선을 돌리며,

“아저씨 오겠지?”

“···오겠지.”

이 둘은 삼 년 전 부모님에 의해 보육원에 맡겨졌다.

부모님들은 곧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그건 두 아이에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어쩌면 한수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수가 안 올 리가 없다.

임무 19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열두 시간 동안 보육원 봉사활동을 더해야 하고···.

【이름: 김진만】

【레벨: 02 / 85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수비 S】

【이름: 김종호】

【레벨: 02 / 83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스위치히터 A】

뛰어난 잠재능력을 보유한 두 천재를 찜해두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김진만과 김종호는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다.

그때 모자를 눌러 쓴 남자가 보육원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두 아이를 발견하고 밝은 목소리로 불렀다.

“진만아, 종호야. 추운데 거기서 뭐 해?”

“빈이 아저씨!”

“빈이 아저씨!”

아이들의 부름에 김유빈은 모자챙을 오려 무척 잘생긴 얼굴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저씨가 아니고, 형이라고 해야지.”

“아저씨, 여긴 왜 왔어요!?”

“아저씨, 팔 다 나았어요?”

“엄마 보러 왔어. 팔은···.”

김유빈은 눈가를 움찔했지만, 곧 씨익 웃으며 오른팔을 살짝 들었다.

“당연히 다 나았지.”

“오, 그럼 이제 TV 나와요?”

“선발 투수해요?”

“어···. 그게···.”

김유빈은 대전에 연고지를 둔 한영 벌처스의 투수다.

그러나 유명한 투수는 아니다.

그는 어려서 양친과 사별하고 동산 보육원으로 왔다.

보육원 원장은 김유빈이 야구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그는 고교 졸업 후 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신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로 진학했고, 대학 리그에서 불펜 투수로 활약하다가 군 복무를 위해 경찰청 야구팀으로 들어가 퓨처스리그에서 활약했다.

거기서 한영 벌처스 스카우트의 눈에 들었고, 제대 후 벌처스로 입단하게 됐다.

2군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재작년에는 1군에 올랐지만, 당시 감독은 그를 패전처리투수로 활용했다.

그러다 팔꿈치 부상으로 다시 2군으로 가게 됐고···.

이젠 2군에서도 퇴물 취급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런 그가 TV에 나오고, 선발 투수라니···.

김유빈은 뭐라고 대답하기가 어려워서 얼른 말을 돌렸다.

“너희 저녁은 먹었어?”

“네!”

“네~!”

“어우, 형은 아직 저녁 전인데. 메뉴 뭐야?”

“카레요!”

“잘생긴 아저씨 만들어줬어요!”

김유빈은 고개를 갸웃했다.

“잘생긴 아저씨? 그게 누구야?”

“그게요~!”

김진만이 대답하려는데, 뒤편에서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동산 보육원 안숙희 원장이었다.

“진만아, 종호야. 추운데 빨리 들어와야지.”

“네!”

“네!”

두 아이는 쪼르르 보육원으로 들어갔다.

김유빈은 피식 웃더니, 안숙희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엄마, 잘 지내셨어요?”

“물론이지. 아주 잘 지냈어.”

그렇게 대답하는 안숙희의 표정은 정말 밝아 보였다.

괜히 김유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하는 말 같지 않았다.

김유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보육원을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식당 건물이 조금 바뀐 거 같은데···.”

“아~ 말 안 했었나? 타이탄스 구단에서 리모델링을 해줬어.”

“후원금만 준 거 아니에요?”

“아냐~. 건물 리모델링도 해주고, 아이들 겨울옷이랑 침구류도 싹 다 새로 해줬어.”

“진짜요?”

“응~ 구단주님이 참 좋은 분 같아. 오늘은 혼자 봉사활동도 오셨는데, 어찌나 열심히 하시는지···. 진만이랑 종호한테 야구도 가르쳐주셨어. 내일은 야구 장비도 선물해주신다더라~. 두 아이 모두 재능이 뛰어나다고 야구를 전문적으로 배우면 크게 될 거라고 하시지 뭐니?”

“그래요···?”

김유빈의 눈빛이 깊어졌다.

김종호는 잘 모르겠지만, 김진만과는 캐치볼을 몇 번 같이 하면서, 공 받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나중에 야구를 해보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타이탄스 구단주···. 진만이 재능을 알아본 건가?’

그때 안숙희가 물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애랑 같이 안 왔어?”

“누구···. 아, 미나요?”

“응! 매번 같이 왔었잖아~.”

김유빈은 어색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헤어졌어요.”

“뭐? 왜?”

“그냥···. 성격 차이죠, 뭐···. 그보다 배고파요! 카레 있다면서요? 빨리 가서 먹어야지!”

김유빈은 말을 돌리며 식당으로 향했고, 안숙희는 그런 김유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둘이 성격 잘 맞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김유빈은 전 여자친구 손미나 얘기를 하기가 무척 껄끄러웠다.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진 게 아니고, 그의 상황이 너무 좋지 못해서···.

늘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그녀에게 미안해서 헤어지자고 한 거다.

바보 같은 선택.

후회되는 선택.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김유빈은 한숨을 내쉬며 마인드 컨트롤 했다.

그때 멀리서 뛰놀고 있는 김진만과 김종호가 눈에 들어왔다.

‘타이탄스 이한수 구단주···.’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기회가 된다면 한번 만나고 싶네.’

= = = = = = =

한수는 강덕수가 알려준 술집 근처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며 귀를 긁적였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귀에서 손을 떼고 포수 마스크를 쓰는데, 강덕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여은포가 술집에서 나가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왜? 벌써 술집에서 나왔어?”

[네, 잠깐 밖에서 바람을 쐬는 거 같더니 갑자기 맞은편 술집으로 향했어요!]

“맞은편 술집? 거긴 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따라가 볼까요?]

“아냐. 내가 갈게. 술집 이름이 뭐야?”

[두루치기 셰익스피어 2호점입니다!]

한수는 이름 한번 참 특이하다고 생각한 뒤 말했다.

“오케이. 너는 근처에 야구 장비 가게 열린 데 있는지 찾아서 초등학생이 쓸만한 야구 장비 두 세트만 사놔. 기왕이면 예쁘게 포장도 하고.”

[알겠습니다.]

전화 통화를 끝낸 한수는 두루치기 셰익스피어 2호점으로 향했다.

가게로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는데 낯익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바로, 최혜선과 여은포였다.

‘저 둘이 왜···.’

그런데 상황이 조금 묘해 보였다.

최혜선은 몹시 싸늘한 표정으로 여은포를 바라보고 있고, 여은포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에게 뭔가 말하고 있었다.

한수는 두 사람에게 접근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여은포가 하는 말이 들렸다.

“그러지 말고~ 같이 한잔 어때요? 네?”

한수는 생각했다.

‘···쟤 설마, 헌팅하고 있는 거야?’

정보창에서 여포로 비유되는 여은포가 초선으로 비유되는 최혜선을 유혹하다니, 뭔가 상황이 역전된 거 같지만···.

하여튼!

‘내가 기다려줄 필요는 없지.’

한수는 두 사람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 = = = = = =

저녁, 해운대 해변 인근.

여은포는 입단식에서 빠져나와 해변을 걷고 있었다.

기자들과의 인터뷰, 포토타임, 구단 관계자들과 인사, 뒤풀이···.

생각만 해도 답답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2군에서만 지낼 건데···. 이 정도면 충분히 장단 맞춰준 거지.’

팀 관계자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기사가 개떡 같이 나오든 신경 안 썼다.

야구에 큰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욕심이 없는 이유는···.

아무리 실력을 보여줘도 돌아오는 건 동료들이 질투와 원망만 보내오니 질려버린 거다.

물론 야구가 시시한 이유도 있었다.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든, 타자로 뛰든 너무 쉬웠다.

지금까지는 야구에서 마음만 먹으면 다 해낼 수 있었다.

야구를 그만두고 싶단 생각도 자주 한다.

야구를 안 하고 놀고먹어도 될 만큼 부자니까.

하지만 장문원 어머니의 부탁이 눈에 밟혔다.

[은포야, 우리 문원이 좀 잘 부탁해. 문원이가 워낙 고지식한 면이 있잖니···. 아휴~ 어째 저런 부분은 제 아빠를 꼭 빼닮아서···.]

그리고 친구의 말도 마음에 걸렸다.

[넌 날 끝까지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그래서 어쩌다 보니 타이탄스까지 오게 됐다.

여은포는 해변 바닥을 강하게 걷어찼다.

모래가 허공에 흩날리는 걸 보며, 그는 생각했다.

‘궁상 그만 떨고 술이나 마시자.’

여은포는 술집이 있는 거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서울이었으면 아는 지인들을 불러서 밤을 새워서 마시고 놀았을 테지만, 부산에는 친분 있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마실 수밖에 없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어디가 혼자 마시기 좋을 데를 찾다가 적당한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는데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바다 구경이나 더 할까?’

그래서 계산하고 나와서 바람을 쐬는데···.

우연히 맞은편 가게로 시선이 향했다.

‘두루치기 셰익스피어···. 이름 참 특이하네.’

그리고 그때···.

창가에 앉아 있는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한 단발머리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여은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

하늘의 떠오르던 달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태양이 떠오르기라도 한 듯···.

그는 단발머리 여자로부터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세상이 환하게 밝아진 거 같은 착각에 빠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두루치기 셰익스피어 2호점으로 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단숨에 단발머리 여자, 최혜선의 테이블로 다가가···.

“저기요. 합석하실래요?”

= = = = = = =

최혜선은 홀로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빈 술잔을 바라보며 아까 보육원에서 들었던 한수의 말을 떠올렸다.

[포기해요. 혜선 씨가 무척 예쁘긴 한데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상처받지 말고 지금이라도 마음 접으세요.]

순정이 꽃 피워보기도 전에 싹을 쳐내버리는 냉정한 말이었지만···.

왜일까?

최혜선은 마음의 상처를 받기는커녕, 도리어 한수가 그녀를 배려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상처받지 말라고 신경 써주신 건가···.’

그녀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수다.

아파서 몸져누워 매일 미안하다고만 하는 아빠, 자나 깨나 오빠들 걱정만 하는 엄마, 본인 아쉬울 땐 도와달라고 하면서 은연중에 그녀를 무시하는 큰오빠, 그리고 그녀를 ATM기로 생각하는 작은오빠까지···.

‘아무리 봐도 구단주님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한수는 신영 그룹 황태자다.

어마어마한 부와 명예를 가진···.

심지어 외모도 연예인보다 화려하고 멋지다.

최혜선은 한숨을 포옥 내쉬며 술잔을 채우는데, 한수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제 스타일은 아닙니다.]

살면서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고백도 셀 수 없이 받았지만, 부담스러워서 받아준 적은 없었다.

하여튼.

김태한 실장 같은 발발이가 들이댈 정도로 그녀의 외모는 뛰어났다.

그런데 한수는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궁금했다.

‘구단주님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거지?’

혹시···.

‘나도 스타일을 바꾸면···.’

그때 누군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최혜선은 같은 팀 선배 박민희가 왔다고 생각했다.

약속이 있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온 건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모히칸 스타일의 덩치 큰 남자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혜선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며,

‘뭐, 뭐지?’

그때 남자, 여은포가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요. 합석하실래요?”

최혜선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친구가 오기로 해서···.”

“아~ 그러면 친구분 오실 때까지···. 콜?”

“···죄송하지만···.”

“그러지 말고~ 같이 한잔 어때요? 네?”

최혜선은 건들거리는 여은포를 보고 있자니, 김태한 실장이 떠올라서 괜히 짜증이 났다.

괜찮다는데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친구가 곧 올 거예요. 그러니까···.”

“하하,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그냥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그래요. 그러니까···.”

“······.”

김태한이 처음에 이런 식으로 말했다.

최혜선은 왠지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박민희가 빨리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우리 타이탄스의 뉴페이스들을 여기서 만나네요~?”

“······!”

“······!”

최혜선과 여은포는 깜짝 놀라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포수 마스크를 쓴 한수가 서 있었다.

여은포는 고개를 갸웃하며,

‘누구지? 낯이 익은데···.’

그때 최혜선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구, 구단주님! 여긴 어떻게?”

“구단주? 설마···.”

여은포도 놀란 눈으로 한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한수는 씨익 웃으며,

“혜선씨, 시간이 늦었는데 집에 들어가요. 제가 비서한테 바래다주라고 말해놓겠습니다.”

“네? 아, 아뇨···. 저는···.”

‘민희 언니랑 약속이 있는데요···.’라고 하려고 했지만, 한수가 진지한 눈빛으로,

“아셨죠?”

···라고 말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네···.”

그녀가 짐을 챙겨서 가게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여은포도 따라나서려고 했지만,

-탁!

한수가 그의 팔을 잡았다.

여은포는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뭡니까? 놓으시죠?”

“얘기 좀 하죠.”

“할 얘기 없습니다만?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여은포는 최혜선의 번호라도 얻고 싶었다.

그래서 한수의 손을 뿌리치려는 순간,

“장문원 선수 1군으로 승격했습니다.”

“······뭐라고요···?”

“네가 무시하는 소중한 친구···. 장문원을 1군으로 승격시켰다고.”

“뭔 소리입니까. 걔는···.”

“그리고 다음 주에 있을 연습 경기에 선발로 출전할 거야.”

“······!”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그래서 말인데···. 우리 내기 하나 할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