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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07화 (107/187)

107화 : 탈젤 효과는 과학입니다.

한수는 ‘내기 하나 할까?’라고 물은 뒤, 자연스럽게 테이블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앉아서 얘기할까?”

여은포는 인상을 찡그린 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수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리에 앉았다.

그런 뒤 여은포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오색찬란한 빛과 함께 Diamond 등급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여은포】【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100%)

(타이탄스 코치진: 13%)

(타이탄스 프런트: 10%)

결론: 경기장의 천하무쌍 여포(呂布)입니다. 선수로서 재능 하나만큼은 KBO 최고입니다. 투수로서 재능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재능도 뛰어나서 투타 겸업할 수 있습니다.

└팁①: 사그라든 열정 깨워주세요. 장문원, 최혜선이 핵심 키워드입니다.

└팁②: 최혜선을 활용하는 건 단기적으론 좋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악수(惡手)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예 활용하지 않는 게 호수(好手)일지도 모릅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지명타자

···(중략)···

【특기】

1. 해바라기

2. 방천화극 타법 [타격력, 장타력]

···(중략)···

8. 봉선화(鳳仙花) 스크루 볼(Screw Ball)

9. 경기장의 비장(飛將) [호타준족]

10.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 같은 성격

11. 자존심보다 보신(保身)

【호감도: + 5%】 [- 45% ↓]

정보창을 확인한 한수는 눈가를 움찔했다.

‘팁 내용이 변했어.’

팁에는 원래 장문원만 언급됐었는데, 최혜선이 추가됐다.

한수는 아까 여은포가 최혜선한테 적극적으로 들이대던 걸 떠올리며···.

‘얘 설마, 혜선씨한테 반한 건가?’

순간 머릿속에 최혜선을 활용할 계책이 떠올랐지만, 팁 ② 내용을 보고 접었다.

‘악수가 될지도 모르는 방법을 쓸 필요는 없지.’

이어서 활성화된 해바라기 특기를 확인했다.

【해바라기】

└이 특기를 보유한 인재는 애모(愛慕)하는 대상(인물, 단체, 물건, 사상 등···)을 위해서 아주아주 가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놀라운 기적? 모호한 표현이네···. 없는 거보다는 낫겠지만···.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대상이라···.’

한수는 보육원에서 자신을 향해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최혜선을 떠올렸다.

‘하필···.’

작게 혀를 차고 마지막 호감도 수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 호감도가 + 50%여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45%나 깎이다니···.

‘이 자식 뭐야?’

그때 여은포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당신이랑 왜 내기를 합니까?”

“무슨 내기인지 들으면 하게 될걸?”

“······.”

“무슨 내기인지 들어볼래?”

여은포는 입가를 실룩였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내기 내용이 궁금하긴 했다.

‘아마 문원이랑 연관이 된 거 같은데···.’

하지만 좀 전에 최혜선을 돌려보낸 한수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일까?

내기 내용을 알려달라고 하는 게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문원이를 생각하면···. 으음···. 어쩌지···.’

한수는 시시각각 변하는 여은포의 표정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얼굴로 다 드러나네. 투수면 포커페이스 정도는 해야지.’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대답 기다리다가 숨넘어가겠네~.”

“···문원이를 왜 1군으로 승격시킨 겁니까?”

“그건 내기를 받아들이면 말해줄게~.”

“그 녀석···. 고지식한 놈입니다. 1군으로 가면 어떻게든 1군에 남으려고 본인을 채찍질···.”

“우리 지금 대화하는 나누는 거 맞나? 티키타카가 전혀 안 되는 거 같은데···.”

한수의 말에도 여은포는 본인이 할 말을 이어갔다.

“제가 다시 마운드에 오르게 하려고 문원이를 이용하시는 거면···. 소용없습니다.”

“에이~ 장문원은 시작에 불과해. 난 너를 다시 마운드에 올리기 위해서라면 행복 건설도 이용할 거야. 흐흐.”

“······!”

행복 건설은 여은포의 부모님이 사채업을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한 회사다.

여은포는 한수를 노려보며,

“···그런다고 전 야구를 진지하게 할 생각이 없어요. 그냥···.”

“진지하게 하지 마.”

“네···?”

“네가 야구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안 해. 내가 원하는 건 하나뿐이야. 돈 줄게. 받은 만큼 던지고! 쳐! 타이탄스의 승리를 위해서!”

여은포는 한수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며 움찔했다.

그도 다큐멘터리 ‘타이탄스 40년’을 봤기 때문에 한수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부와 명예를 다 던져버리고 타이탄스로 온 남자···.’

솔직히 조금 멋졌지만, 어느 정도 과장됐다고 생각했다.

방송 매체를 통한 미화 같은 건 흔한 일이니까.

하지만 지금 한수의 눈빛을 보니, 다큐멘터리에서 순화돼서 나온 거란 걸 깨달았다.

‘이 사람···. 정말 타이탄스 우승에 미쳤구나. 아버지 꿈을 이루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이때 한수는 생각했다.

타이탄스 통합 우승을 위해서 재능 100% 인재를 절대 놓칠 수 없다고···.

그래야만···. 그래야만···.

‘할배의 유산을 상속받아 갑질하면서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어!’

그러니까···.

“너 나랑 내기하자.”

여은포는 마지못해 물었다.

“···무슨 내기인데요?”

한수는 씨익 웃으며,

“다음 주에 트리플스와 연습 경기가 있어. 그리고 그날 장문원은 4번 타자로 출전할 거야.”

트리플스와 연습 경기는 이기혁 단장과 친해진 고민수 팀장이 잡은 거다.

각 팀에 새로 입단한 선수들의 실력을 점검해보자는 취지다.

그래서 트리플스 선발은 불꽃 투수 독고준이고, 중계 투수로는 길우현 등이 출전할 예정이다.

타이탄스는 양기주가 선발이고, 중계 투수로는 ST 위닝에서 온 전예준과 티라노스에서 온 양창진 등이 출전할 거다.

타자도 주력 멤버가 아닌 새로 입단한 선수나 신인들이 출전할 거다.

여은포는 눈가를 움찔했다.

‘문원이가 4번···?’

말도 안 된다고 생각됐다.

장문원은 고등학교 때 주전으로 경기에 뛴 적은 없지만, 팀 자체 청백전은 참가했다.

그러나 한 번도 안타를 친 적이 없었다.

타석에 서면 잔뜩 긴장하는 버릇 때문이다.

트리플스 육성 선수가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수비 능력은 보통이라 퓨처스리그에서 종종 뛰었지만, 역시나 무안타···.

여은포가 장문원한테 재능이 없다고 하는 이유도 무안타 행진 때문이다.

그런 장문원이 4번 타자라고?

‘말도 안 돼···!’

그때 한수가 말했다.

“그 경기에서 장문원이 몇 타점을 올릴지 내기를 하는 거야. 업 앤 다운 알지?”

“업 앤 다운···?”

“몇 점 이상으로 타점을 올린다. 몇 점 이하로 타점을 올린다. 뭐 이런 거 말이야.”

“아···.”

“나는 3타점 이상 올리는 걸로 할게. 너는?”

“전···.”

여은포는 대답하려다가 흠칫했다.

‘뭐야? 그냥 무슨 내기인지 설명을 듣는 거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내기 안 해?”

“···어떤 조건인지도 안 듣고···.”

“간단해. 내가 이기면 너는 1년 동안 내가 시키는 대로 경기를 뛰어야 해. 물론, 난 양아치가 아니니까. 합당한 계약 연봉도 줄 거야. 오케이?”

“당신이 지면···.”

“네 소중한 친구 장문원 말이야.”

“······.”

“내가 타이탄스 구단주로 있는 동안은 1군 붙박이가 될 거야.”

“······!”

한수는 흠칫 놀라는 여은포를 보며 이런 말을 떠올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여은포는 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후원금으로 협박해서 장문원을 주전 선수로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 돈을 빌린 트리플스 이기혁 단장을 협박해서 장문원을 육성 선수로 만들었다.

소중한 친구인 장문원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로 인해서 장문원과 멀어졌지만···.

‘이번 트레이드 때도 비슷한 짓을 해서 장문원을 따라왔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 말 진심이죠?”

‘빙고!’

당연히 진심이다.

장문원은 Platinum 등급이다.

재능이 94%나 되고 잠재력도 높은 최상급 인재!

한수가 구단주로 있는 한, 1군에서 벗어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론이지.”

“···알겠습니다. 내기해요.”

“오케이! 그러면 몇 타점을 낼지 결정해야지?”

여은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1타점 이하로 할게요.”

장문원이 안타를 칠 리가 없으니까.

혹여 운 좋게 치더라도···.

‘1타점 이상을 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좋아. 그러면 계약서는···. 술 한잔 나누는 걸로 대신할까?”

“······.”

“아! 혹시 구두로만 계약했다고 나중에 딴말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난 비즈니스를 개떡같이 여기는 놈은 사람 취급 안 하거든.”

여은포는 한수는 서늘한 눈빛에 움찔했지만, 이내 이를 악물며,

“···당신이야말로 나중에 딴소리하지 말아요.”

그러자 한수는 피식 웃으며,

“물론이지. 자, 그럼···. 사장님! 여기 두루치기 2인분에 소주 한 병 주세요!”

“···두루치기는 왜 시켜요?”

“난 안주 없이 술 못 마시거든.”

“······.”

잠시 후, 두루치기와 술이 나왔다.

한수는 술병을 잡으며 말했다.

“자~ 자~ 한 잔 받아. 이야~ 두루치기 오랜만이네. 이 가게 1호점은 술이 술~ 술~ 들어가던데···. 여기는 어떠려나?”

여은포는 술잔을 들며 생각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네.’

그런데···.

‘뭔가 중요한 걸 놓친 거 같은데···. 뭐지?’

그때 한수가 말했다.

“아! 건배사를 외쳐볼까? 내가 타이탄스라고 하면 네가 통합우승! 이라고 외치는 거야!”

“무, 무슨···.”

“계약서에 서명한다고 생각해. 오케이? 자, 타이탄스!”

“······.”

“어허~ 계약 안 해? 타이탄스!”

“토, 통합우승···!”

“자! 원샷!”

그렇게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눴고···.

여은포는 한수의 페이스에 휘말려 어느샌가 아주 즐겁게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여은포가 최혜선에 대해 떠올린 건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을 때였다.

‘젠장, 구단주한테 그 사람이랑 어떤 사이인지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어!’

여은포는 최혜선의 얼굴이 아른거려 밤잠까지 설치고 말았다.

= = = = = = =

다음 날, 한수는 아침부터 동산 보육원으로 가서 봉사활동을 했다.

김진만과 김종호에게 약속한 선물을 주고, 네 시간 동안 열심히 봉사활동을 했다.

‘좋아. 이제 보육원 봉사활동 8시간만 더하면 임무 19도 완료야!’

하지만 당분간은 바빠서 봉사활동을 하기 힘들 거 같았다.

‘어쩔 수 없지. 여유가 생기면 바로 봉사활동을 마무리 짓자.’

한수는 오후에 타이탄스 프런트로 출근했다.

그리고 페르난도 킴 감독을 불러서 트리플스와 연습 경기 때 장문원을 4번 타자로 세우라고 지시했다.

장문원을 1군으로 콜업하라고 할 때도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던 페르난도 킴이었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구단주님, 장문원 선수는 타격력이 제로입니다. 퓨처스리그는 물론, 트리플스 시절 청백전에서도 무안타였습니다. 그런데 4번 타자라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지시를 하시는 건가요?”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레벨을 제외한 비활성화 상태였던 특성과 특기가 전부 활성화됐으니까.

하지만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적당한 이유를 생각해뒀다.

“페르난도 감독, 혹시 탈젤 효과라고 알아요?”

“탈젤 효과···? 음···. 들어본 거 같습니다만···.”

“엔젤 트리플스 소속으로 부진했던 선수들이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되면 잠재되어 있던 능력이 발휘되며 엄청난 성적을 보여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페르난도 킴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건 미신 같습니다···. 현대 야구에 그런 미신은 조금···.”

“아뇨. 이미 많은 데이터가 있습니다. 탈젤 효과는 과학입니다.”

페르난도 킴은 묘한 눈빛으로 한수를 쳐다봤다.

‘탈젤 효과는 핑계고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 같은데···. 말해줄 거 같지는 않고···. 흠···. 일단 따를 수밖에 없겠네.’

“알겠습니다. 장문원 선수를 4번 타자로 세우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페르난도 킴 감독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장문원이 아무리 신체 조건이 뛰어나고, 성실해도···.

실전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선수는 필요 없다.

‘장문원을 4번 타자로 세우는 건 이번 연습 경기가 마지막입니다. 다음번에는 아무리 구단주님의 지시라도···.’

그리고 시간이 흘렀고···.

트리플스와 연습 경기가 시작됐다.

타이탄스 선발 투수 양기주는 트리플스의 상위 타선을 상대로 맞혀 잡기로 쓰리아웃을 따냈다.

그리고 타이탄스의 공격···.

1번 타자 오재근은 독고준의 초구를 노렸지만, 플라이 아웃을 당했다.

2번 타자 최민준은 안타를 쳐서 1루로 나갔고···.

3번 타자 안종렬은 풀카운트까지 가서 삼진 아웃을 당했다.

그리고 마침내 4번 타자 장문원이 타석에 섰고···.

-따아아아악!

···홈런을 쳤다.

그 순간, 가장 놀란 건 홈런은 맞은 독고준도, 홈런을 친 장문원도 아닌···.

벤치에서 지켜보던 페르난도 킴 감독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담장을 넘어가는 공을 보며···.

“이게 바로 탈젤 효과···. 언빌리버블···!”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한수는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1점 남았군. 기다려라, 여은포. 너도 이제 곧 타이탄스 1군에 뼈를 묻게 될 거야.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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