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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11화 (111/187)

111화 : 나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타이탄스, 응원단 연습실.

치어리더들은 아직 친해지지 못해서 세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선, 여자농구팀 부산 씽에서 이적해온 RT 엔터 소속의 박민희, 최혜선.

그리고 타이탄스 응원단 원년 멤버이자 템페스트 엔터 소속인 박진주, 윤혜미.

마지막으로 타이탄스 응원단 원년 멤버 나대교와 그녀의 친구인 태권도 사범 손미나였다.

손미나는 나대교가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혼자 연습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먼저 와있던 다른 팀원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 멀찍이 떨어져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힐끔 입구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대교 얘는 화장실에서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어색해 죽겠네.’

사실 손미나는 팀원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전부 불발이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우선, 박진주와 윤혜미가 타이탄스 응원단에서 방출된 소속사 선배들의 협박 때문에 새로운 팀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팀원들 사이가 더 어색해졌다.

다음 문제는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치어리더를 이끌어갈 팀장의 부재다.

박민희가 임시 팀장을 맡고 있지만···.

그녀는 최혜선 말고 다른 팀원을 신경 쓰지 않는다.

손미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인가···.’

그때 나대교가 연습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다른 팀원들에게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모두 안녕하세요···.”

그러더니 손미나를 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미나야, 대박 사건이야···!”

손미나는 심드렁하게 물었다.

“왜? 숙변이라도 나왔어?”

나대교는 얼굴을 붉히며,

“뭐, 뭔 소리야! 그, 그런 거 아니거든!”

“그럼 뭔데?”

“프런트 직원들이 얘기하는 거 들었는데, 유빈 오빠가 타이탄스로 온대!”

“김유빈? 걔가 여길 왜 와?”

“다른 선수랑 트레이드됐대! 구단주님이 직접 뽑았다던데···. 어, 어떻게 하지?”

손미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 인간이 오든, 말든 뭔 상관이야.”

“어? 진짜?”

“응.”

애초에 야구팀에서 일하게 됐을 때, 어쩌면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예상을 했다.

물론 같은 팀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고, 그의 마음이 어떤지 다 알고 있으니,

‘행운을 빌어. 유빈 오빠.’

그녀는 전 남친 김유빈을 응원했다.

그때였다.

응원단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포수 마스크를 쓴 한수가 들어오더니,

“미나씨, 나 좀 봅시다.”

치어리더들은 한수를 보고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왜냐면 이 시간에 구단주가 연습실에 찾아올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을 불린 손미나마저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한수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미나씨, 제 말 못 들었어요?”

“아! 저, 그게···.”

손미나가 당황하는 사이, 뒤늦게 다른 치어리더들도 꾸벅 인사했다.

그때 최혜선이 조심스럽게 한수에게 다가갔다.

“구, 구단주님, 안녕하세요.”

최혜선은 평범한 단발머리였는데, 며칠 전에 큰마음 먹고 C컬펌과 인기 드라마 ‘대학로 클라쓰’에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여주인공 윤이서처럼 투톤 염색까지 했다.

이렇게 스타일의 변화를 준 건, 한수가 그녀한테 본인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스타일···. 다들 잘 어울린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한수는 담담하게,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고 끝이었다.

그리곤 최혜선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미나씨, 따라와요. 그럼, 응원단 여러분 오늘 하루도 파이팅!”

곧바로 연습실 밖으로 향했다.

최혜선은 풀이 죽은 얼굴로 한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궜다.

그런 최혜선 곁으로 박민희가 다가가 위로했다.

손미나는 생각했다.

‘쟤 설마 구단주를 좋아하는 거야?’

한수는 분명 잘생겼지만···.

‘너무 부담스럽지 않나. 성격도 그렇고, 배경도···.’

그때 나대교가 눈치 없이 말했다.

“미나야, 구단주님이 너한테 데이트 신청한 거야?”

손미나는 인상을 쓰며,

“헛소리 좀 하지 마, 이년아!”

“이, 이년이라니···. 말이 심하잖아. 난 그냥···.”

“눈치 좀 챙겨라. 눈치 좀! 지금 그런 말을 하면···.”

박민희의 위로를 받던 최혜선이 손미나를 보며 부러운 눈빛을 했다.

그리고 박진주와 윤혜미는 손미나를 묘한 눈빛으로 보며 뭐라고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손미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생각했다.

‘식빵···. 태권도장으로 돌아가고 싶네.’

그녀는 나대교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째려봤다.

나대교도 상황을 파악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손미나는 어깨를 늘어트리고 연습실에서 나왔다.

그러자 멀찍이 걸어가고 있는 한수가 보였다.

‘뭐야, 저 똥매너는···.’

그녀는 후다닥 좇아가더니 볼멘소리를 냈다.

“불러놓고 혼자 가면 어떻게요?”

“계속 기다리는데 하도 안 나와서요. 부르면 바로바로 좀 나와요.”

“내가 댁 부하예요? 부르면 나오게.”

“쓸데없는 입씨름으로 에너지 소모하고 싶지 않으니까. 적당히 해요.”

“······.”

손미나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단장실에 도착했다.

한수는 냉장고에서 캔 커피를 하나 꺼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땡큐. 그런데 무슨 일로 불렀어요?”

“부탁할 게 있어요. 미나씨 남친을 타자로 전향시킬 생각인데···.”

“잠깐, 잠깐, 잠깐.”

“······?”

“남친이라뇨? 저 남친 없는데요?”

한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벌처스 김유빈 투수랑 사귀는 거 아닙니까?”

“옛날에 헤어졌거든요!”

“아···.”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덕수 이 자식···. 최신 정보를 가져올 것이지. 어쩔 수 없네.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자.’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이만 가보세요.”

“네? 그냥 가라고요?”

한수는 일어나서 책상으로 향하며 되물었다.

“왜요? 저한테 볼일 있습니까?”

손미나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한수를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없는데요. 가볼게요.”

“네, 오늘 하루도 파이팅하세요.”

손미나는 단장실에서 나와 연습실로 향했다.

그러다가 좀 전에 한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미나씨 남친을 타자로 전향시킬 생각인데···.]

‘유빈 오빠를 타자로···.’

불현듯, 오래전에 김유빈과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김유빈이 벌처스에 막 입단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

.

어느 날, 김유빈은 손미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나야, 나 타자로 전향할까?”

“왜?”

“코치님이 배트컨트롤이 나쁘지 않고 좀만 연습하면 타격력도 좋아질 거 같다고 하더라고···.”

“음~ 그 코치님 능력 있는 분이야?”

“응, 유명한 분이셔.”

“그럼 한 번 고민해봐. 투수만 정답은 아니잖아. 물론 오빠가 원하는 걸 하는 게 가장 좋지만.”

“······.”

김유빈이 하고 싶은 건 당연히 투수다.

동산 보육원의 맡겨지기 전···.

희뿌연 안개가 낀 것만 같은 과거의 기억 속에···.

아빠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았던 희미한 추억이 종종 떠오른다.

아빠는 굉장히 무뚝뚝한 분이었는데···.

응원하던 팀의 투수가 상대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낼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그를 꼬옥 껴안아 줬다.

그 품이 너무 따뜻해서···.

그 미소가 너무 좋아서···.

김유빈은 투수가 되고 싶었다.

‘아빠를 웃게 해주는···.’

비록 지금은 아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아버지가 어디선가 보고 계실지 모르니까. 투수를 포기할 순 없어.’

그렇게 김유빈은 타자 전향을 포기했다.

.

.

.

손미나는 추억에서 빠져나왔다.

어느새 연습실 앞에 도착해있었다.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유빈 오빠가 타자 재능이 뛰어나긴 한 거 같은데···.”

하지만 그녀는 김유빈이 어째서 투수를 고집하는지 알고 있다.

오른팔을 다치면 왼팔로라도 던질 사람인데···.

‘부디 오빠가 후회 없는 선택을 했으면 좋겠네.’

그때 연습실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손미나는 팀원들이 연습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며 얼른 연습실로 들어갔다.

= = = = = = =

한영 벌처스 2군.

흔히, 서산 벌처스라고도 불리는데, 이 팀은 예전에는 고교야구팀한테도 연습 경기에서 패배할 정도로 참담한 실력을 자랑했다.

└이러다가 중학교 야구팀에도 지겠음.

└분명 최고의 유망주들이 모였을 터인데···. 도대체 감독들은 2군에 뭔 짓을 한 거지?

└그냥 벌처스 유니폼 입으면 병X 되는 거 같음.

└벌처스는 해체가 답이다.

└한영 그룹 야구단 왜 차렸냐? 그냥 접어라.

└진짜 쪽팔려서 어디 가서 벌처스 팬이라고 말도 못 하겠네.

심지어는 코치진 중에 일본인 코치가 있는데, 통역사를 고용하지 않아서 선수와 코치가 대화도 나누지 못하는 일까지 있었다.

물론 이제 많은 부분에서 개선됐고, 올해는 9위를 한 1군과 달리 북부 리그에서 우승까지 차지했다.

벌처스 팬들은 2군 우승 주역을 데려다가 1군에서 뛰게 하면 성적이 좋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여튼!

서산 벌처스에서 캐리어를 끌며 벗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유빈이다.

그는 트레이드돼서 타이탄스로 떠나는 길이었다.

‘이렇게 벌처스에서 떠날 줄은 몰랐네.’

여러 가지 추억들이 떠올랐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오빠, 벌처스 입단 축하해!]

[고마워. 미나, 다 네 덕분이야.]

[에이~ 내가 뭘 했다고.]

[아냐, 부상 때, 네가 재활도 도와주고···.]

[됐어~ 그런 건 성공해서 두고두고 갚아. 알았지?]

[···물론이지. 반드시 성공해서 행복하게 해줄게.]

[오케이. 약속한 거다?]

···벌처스에 입단했을 때 전(前) 여자친구 손미나와 했던 약속이었다.

김유빈은 쓸쓸한 얼굴을 하며 중얼거렸다.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

이때 불현듯, 입단 초기에 벌처스 2군 타격 메인 코치였던 이종규가 했던 제안이 떠올랐다.

[너···. 투수 관두고 타자해라. 양손잡이니까 좌타자를 노려도 괜찮을 거 같은데. 내야 수비해본 적 있어?]

[네? 예전에 잠깐 삼루를 봤는데···.]

[그럼, 오늘 잠깐 삼루 수비해볼까?]

[···네···.]

그렇게 연습 경기에서 수비와 타격에서 가능성을 보였고, 이종규 코치는 그에게 타자로 전향하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너 말이야. 스위치히터라고 들어봤냐? 미키 맨틀 알아?]

[미키 맨틀이요? 메이저리거 아닌가요?]

[인마. 너 잘만 훈련하면 그 양반처럼 될 수 있어!]

[제가요···?]

믿기지 않는 말.

고민이 많이 됐다.

하지만 손미나의 조언을 듣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투수만이 그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종규 코치에게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나중에라도 생각 바뀌면 말해. 언제든 도와줄 테니까.]

[···아닙니다. 저는 투수를 할 거라···.]

[사람 일 모르는 거야. 악담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데···. 네가 당장 내일 어깨가 다쳐서 마운드에 오를 수 없게 되면 어쩔 건데? 야구 포기할 거야?]

[그건···.]

[인마, 나라고 시간이 많아서 이러겠냐? 그냥 네 재능이 아까워서 이러는 거야. 아까워서. 너는 마운드에서 빌빌거릴 놈이 아닌데···. 쯧.]

[······.]

김유빈이 다시 고민에 빠져서 복잡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이종규는 광양대 야구팀 감독 제의를 받아서 벌처스를 떠났다.

그리고 김유빈은 1군으로 콜업···.

패전처리투수가 됐다.

김유빈은 요즘 들어 그때 이종규가 했던 제안이 자주 떠오른다.

‘만약 그때 이 코치님 뜻에 따랐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그는 오른팔을 바라봤다.

망가져 버린 팔꿈치.

병원에서는 전처럼 많은 공을 던질 수 없을 거라고 했다.

선발 투수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특출난 제구력이나 뛰어난 구위를 가진 것도 아니기에 불펜투수로서 활약도 쉽지 않은 상황···.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좌완투수나 타자로 전향하는 거다.

양손잡이라 좌완투수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다만, 구속이 너무 떨어진다.

‘제구력은 오른팔과 비슷하지만, 구속은 6할 정도···.’

반면에 타자는···.

“······.”

감이 안 잡혔다.

‘이종규 코치님···. 지금 타이탄스 1군 타격 메인 코치를 하고 계신댔지.’

그는 생각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이 코치님께서 아직도 나를 도와주신다고 하면···.’

“그러면···.”

그는 결의에 찬 눈빛을 하며 타이탄스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각.

타이탄스 단장실.

한수는 김유빈의 자료를 살피던 도중 이종규 코치와 김유빈의 관계도 알게 됐다.

그런 뒤, 김유빈의 팔꿈치 상태나 두 사람의 정보창 내용을 확인한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뭐야, 이거 어쩌면 아주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한수는 이종규 코치한테 전화를 걸었다.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이 코치, 훈련으로 바쁠 텐데, 연락해서 미안해요.”

[아닙니다.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아~ 별다른 건 아니고. 차나 한잔할까 해서요. 지금 단장실로 좀 올래요?”

[···알겠습니다.]

한수는 통화를 끝내고 커피 물을 올리며 이종규 코치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이종규 코치가 왔고···.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며 김유빈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종규는 말했다.

“유빈이 마음이 중요합니다. 본인이 하기 싫다는 데 억지로 타자를 시켜도 성적은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럼 김유빈이 마음만 먹으면 이 코치가 전담해서 훈련 시키겠다는 말인 거죠?”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오케이. 김유빈은 내가 설득할게요. 이 코치는 코리안 미키 맨틀을 만들 준비를 철저히 하세요!”

그리고 이틀 뒤···.

한병도와 김유빈의 입단식 날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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