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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21화 (121/187)

121화 : 두 번은 없어.

하민철 포수는 심판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운드로 다가가며 말했다.

“안타 하나 맞았다고 세상이 무너지냐?”

여은포는 김유빈을 노려보고 있다가 하민철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

“인마, 뭐는 반말이고.”

“······.”

“유빈 선배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네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거 같은데···.”

하민철은 홈플레이트로 고갯짓을 했다.

거기엔 이소호가 서 있었다.

여은포는 움찔했다.

확실히 김유빈한테 정신이 팔려있을 때가 아니었다.

잘못했다간 실점으로 이어질 상황···.

그때 하민철이 미트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이 경기 라이브로 스타튜브에 방송되고 있어. 똑바로 안 던지면 팬들한테 찍혀. 우린 팬들 여러모로 화끈한 거 알지?”

“······.”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던져.”

“···알겠어요.”

“그리고···.”

“······?”

하민철은 ‘사인 좀 무시하지 마.’라고 말하려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오늘은 여기까지만···.’

“소호 선배, 허벅지 부상 이후로 몸쪽 낮은 공에 약하니까. 참고해.”

“네.”

여은포는 생각했다.

하민철의 말대로 안타 하나 맞았다고 세상이 무너진 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단 한 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고 청백전에서 이기면···.

‘김유빈, 저 인간도 여자 만날 시간 따윈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 틈에 어떻게든 최혜선과 가까워져야 한다.

하여튼!

여은포는 이소호를 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최종 보스 먼저 잡자.”

그는 이소호를 상대로 8개의 공을 던졌고 삼진을 잡았다.

그렇게 청팀의 공격이 끝났고, 1회 말이 됐다.

마운드로 염철수가 올라갔다.

염철수는 길게 숨을 들여 마시며 싱긋 웃었다.

‘오랜만이네.’

심장은 두근거렸지만, 긴장이 되진 않았다

오히려 집에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편했다.

그는 맑은 하늘을 보며 페르난도 감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슬라이더는 던지지 마세요. 그건 시즌 개막 때까지 숨길 겁니다.]

용정식 교수한테 배운 슬라이더를 던지고 싶은 마음을 굴뚝 같았지만···.

꾹 참기로 했다.

‘청백전에서 전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지.’

더군다나 지금 경기는 스타튜브로 실시간 방송되고 있어서 다른 구단 전력분석팀도 시청하고 있을 거다.

‘비장의 무기를 내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때 심판이 플레이볼을 외쳤다.

염철수는 진지한 눈빛으로 홈플레이트를 쳐다봤다.

타석에는 백팀 1번 타자 최민준이 보였다.

입단 동기이자 고교 최고의 배드볼히터다.

2군 때부터 함께 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상대하기 무척 어려운 타자다.

그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겼던 말씀이 떠올랐다.

[철수야, 어려울 때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다.]

그 말이 가슴 깊이 남아 그는 어려운 상대를 앞에 두고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관중석을 한쪽을 쳐다봤다.

저 멀리 포수마스크를 쓴 채 앉아 있는 한수가 보였다.

‘구단주님···!’

한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없을 수도 있어요. 염 선수는 지금까지 야구로 뭔가 이룬 게 없으니까.]

[그러면 말입니다. 염 선수 본인을 믿지 말고, 염 선수 재능을 알아본 저를 믿어보세요.]

[신영 그룹 황태자인 제가 장담하는데, 염 선수는 누구보다 재능이 있습니다. 저를 믿으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유일하게 그를 믿고 지지해준 고마운 사람.

그런 한수가 지켜보고 있는 한···.

“지지 않아. 절대로.”

염철수는 역동적으로 와인드업했다.

.

.

.

염철수는 1회 말을 공 세 개로 막았다.

백팀 상위 타선은 먹음직스러운 코스로 날아오는 그의 투심 패스트볼을 쳤지만, 구위에 밀려서 아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2회 초···.

여은포는 빠른 포심과 투심 그리고 변화구를 적절히 활용하며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는 김유빈 이후로 단 하나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았으며 4회 초까지 완벽한 피칭을 했고, 총 일곱 명을 삼진으로 잡았다.

염철수는 윤진호에게 이루타를 허용했지만, 실점은 하지 않았다.

그는 4회 말까지 던졌고, 삼진으로 잡은 타자는 한 명뿐이었다.

퍼포먼스로 따지면 일곱 명을 삼진으로 잡았으며, 장착한 구종도 다양하고, 구속까지 빠른 여은포가 더 좋아 보였지만···.

4회까지 여은포는 60구를 던졌고, 염철수는 37구를 던졌다.

염철수의 투구는 무척이나 효율적이었다.

‘타이탄스 TV’를 시청한 다른 구단 사람들은 생각했다.

‘타자가 칠 수밖에 없는 코스로 공을 던져서 구위로 눌러버리다니···. 물건이네. 물건.’

‘타자들이 전부 손목을 잡네···. 공이 얼마나 무거운 거야?’

‘여은포, 염철수 둘 다 보석이야. 타이탄스 부럽다, 부러워···.’

‘내년 신인왕은 이들 중에서 나오려나···.’

청백전은 계속 이어졌다.

이후는 불펜 운용이 승부를 갈랐다.

백팀은 중계 투수로 현(現) 주장 문희동을, 청팀의 중계 투수로 전(前) 주장 장재우를 선택했다.

문희동은 8회 초까지 1실점을 하며 호투했고, 마무리 투수 양창진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반면에 장재우는 6회 말까지 성공적으로 막았지만, 7회 말에 안타를 맞더니 또 급격히 무너졌고···.

무려 4실점을 했다.

소방수로 양기주가 마운드에 올랐지만, 승부의 추는 이미 기울어졌다.

9회 초 공격에서 안종렬이 깜짝 홈런을 터뜨렸지만···

승부는 4:2로 백팀의 승리였다.

‘타이탄스 TV’로 시청하던 팬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우선, 선발 투수였던 두 사람에 대한 반응은 무척 좋았다.

└염철수 잘 던지네.

└샛별까진 모르겠는데, 제법 하네.

└괜찮은 투수 하나 발굴한 느낌.

└안경 쓴 우완이라 더 마음에 듬.

└여은포는 여전하네.

└구속은 더 빨라짐.

└93마일···. 캬~ 멋지네.

└그런데 염철수랑 여은포랑 조금 비슷한 거 같은데···.

└둘 다 주무기가 패스트볼이라 그런 듯.

└여은포는 커브랑 슬라이더도 던지긴 했음.

└야알못이네. 뭐가 비슷함? 염철수는 무브먼트가 XX 더러운 공을 던지는 투수고, 여은포는 빠른 구속으로 승부하는 투수임.

└맞아. 대충 비교하면···. 매덕스랑 페드로랄까.

└매덕스 ㅋㅋㅋ 페드로 ㅋㅋㅋ 크보 따위에 그 둘의 이름이 가당키나 하냐?

└메이저리그 빠돌이는 빠지고~!

다음으로 주목을 받은 건 김유빈이었다.

└김유빈 제법 괜찮았지?

└여은포 상대로 유일하게 안타를 쳤잖아.

└타격은 반쯤 운이었는데···. 주력이 개 빠름.

└아웃당하기 싫어서 죽도록 달리던데.

└보기와 달리 근성이 있는 거 같았음.

└열에 아홉은 아웃 되는 상황인데···. 잘했음.

└그런데 너무 잘생겨서 재수없음.

└ㅇㅈ

마지막으로 질타를 받은 건···.

전(前) 주장 장재우였다.

└얘는 진짜 맛이 갔나?

└안타만 맞으면 대가리에 깨진 놈처럼 던지네.

└장재우! 마! 정신 못 차리나!?

└이러니까 주장 자리에서도 쫓겨났지.

└쫓겨난 게 아니고, 스스로 물러난 거라던데?

└이 구단주한테 찍혀서 쫓겨난 거임.

└주장이고 나발이고···. 얘는 중계 투수로 답이 없다.

└이럴 거면 그냥 원 포인트 릴리프로 돌려.

└그냥 2군으로 보내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장재우 방출 ㄱㄱ

장재우는 타이탄스 팬들에게 아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털렸다.

그는 팀원들 앞에서 내색은 안 했지만, 팬들의 반응을 보고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어했다.

페르난도 킴 감독은 불펜 코치와 트레이너에게 장재우를 잘 케어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연습 경기가 끝났다.

그리고···.

한수는 여은포를 호출했다.

= = = = = = =

키노스포츠콤플렉스, 소회의실.

한수는 팔짱을 낀 채 맞은편에 앉은 여은포를 빤히 보다가 대뜸 입을 열었다.

“팀에 불만 있어?”

“없는데요.”

“······.”

“······.”

“김유빈한테 시비를 건 이유는?”

“그건···. 그냥 심심해서···.”

“심심해서라···.”

한수는 차가운 눈빛으로 여은포를 쏘아보며,

“야구에 진심이 아닌 건 뭐라고 안 하는데···. 다른 선수 피해는 주지 마. 이건 경고야. 두 번은 없어. 또 팀워크를 망치는 행동을 하면···.”

“······.”

“재벌집 망나니가 얼마나 개XX인지 알려줄게.”

여은포는 움찔하더니 침을 꼴깍 삼키며 생각했다.

‘역시 이 인간은 상대하기 거북해···.’

“대답은?”

“···알겠어요.”

“그럼 가봐.”

여은포는 인사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한수는 여은포의 호감도가 30% 떨어졌다는 알림창을 보며 중얼거렸다.

‘뭔 놈의 호감도가 이렇게 들쭉날쭉해? 여은포 이놈은 영 믿음직스럽지 못해.’

하지만 일단 경고는 해뒀으니, 더는 김유빈한테 시비 걸지는 않을 거다.

‘뭐가 문제인지는 알고 있지만···.’

그러나 한수도 이번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최혜선 치어리더: 구단주님, 저···.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참관인 신청했어요. 순수한 타이탄스 팬으로 가는 거예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최혜선 치어리더: 그럼, 그때 뵐게요. 바쁘실 텐데 식사 거르지 마시고, 건강하세요.

└최혜선 치어리더: (❀╹◡╹)

한수는 중얼거렸다.

“김유빈이 최혜선이랑 광고 하나 찍은 걸로 꼴값을 떤 놈인데···. 최혜선이 날 좋아하는 걸 알면···.”

물론 그는 최혜선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이 없지만, 그렇다고 여은포가 최혜선을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수는 최혜선에게 ‘ㅇ’라고 답장을 보낸 뒤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철벽 수비다.

최혜선에게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으면···.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겠지.’

물론 이런 상황을 여은포가 알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가서 생각하자.’

한수는 여은포, 최혜선에 대한 문제를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그는 포수마스크를 벗은 뒤 휴대폰으로 일정을 체크하며 중얼거렸다.

“내일은 빌런스랑 위닝스의 연습 경기네. 이 팀장이랑 구경하러 가볼까?”

= = = = = = =

애리조나 키노스포츠콤플렉스에는 타이탄스 말고도 KBO 리그 소속 두 개 구단이 1차 스프링캠프를 하고 있었다.

바로, ST 위닝스와 자람 빌런스였다.

연습 경기를 안 하겠다고 선언한 타이탄스와 달리 두 팀은 1차 스프링캠프 동안 두 번의 연습 경기를 했다.

1차전은 타격 5관왕 유정호의 맹타(猛打) 덕분에 7대 3으로 자람 빌런스가 승리했다.

└유정호가 올해도 멱살 캐리 하나요?

└김현성도 잘 치더라.

└박은우 투수도 강속구 시원시원하게 던지던데요? 신인왕답네.

└자람 빌런스 이번에 FA 시장에서도 나름 힘 좀 썼던데?

└포스트 시즌에 개고생하더니 정신 차린 듯.

└이번 시즌 빌런스 통합 우승 가자.

└그건 타이탄스 거임.

└꼴빠는 ㄲㅈ

하지만 2차전은 달랐다.

6회까지 이어진 1 대 1로 접전을 펼쳤지만, 불펜 투수로 승부가 갈렸다.

마무리 캠프 때 타이탄스 타선을 침묵시킨 너클볼러.

혼혈 투수 라이언 킴이 마운드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타이탄스와의 경기 때보다 노련해진 너클볼을 결정구로 사용해서 유정호를 잡아냈다.

경기는 2:1로 ST 위닝스 승리.

└라이언 킴, 진짜 괴물이네.

└저거 어떻게 치냐?

└너클볼 성공률 미치네. 회전수도 전부 2회 이하인 듯.

└ST 위닝스 다시 통합 우승 가나요?

└선발로 나온 안민혁도 꽤 던지네.

└타이탄스 타자들한테 두들겨 맞아서 병X인줄 알았는데···.

└안민혁인 인성이 X 같긴 해도 신이고 에이스였음.

└구속 하나는 빠르던데.

그렇게 ST 위닝스와 자람 빌런스의 두 번째 연습 경기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시간은 흘렀다.

어느새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내일은 타이탄스 청백전 2차전이네.

└타자는 저번이랑 똑같다고 했지?

└ㅇㅇ 타순도 같음.

└그럼 투수만 바뀌나 보네. 선발 누구지?

└백팀은 찰스 형임!

└청팀은?

└좌완 파이어볼러!

└기! 용! 찬!

└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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