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26화 (126/187)

126화 :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라.

장보형 코치는 홍진철에게 전력투구하라는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그러자 한수 앞에 알림창이 나타났다.

-띠링!

[특기 ‘구단주님이 보고 계셔!’가 발동합니다. 홍진철 투수에게 ‘투지(鬪志)’ 효과가 적용됩니다.]

‘구단주님이 보고 계셔? 이건 분명 영웅 도감 ‘오자양장(五子良將)’을 완성하고 장착된 특기인데···.’

구단주가 직관 왔을 때 낮은 확률로 무작위 버프를 받는 특기다.

한수는 생각했다.

‘이게 발동되다니···. 운이 좋은데?’

한수는 ‘투지(鬪志)’라는 버프를 확인했다.

‘이건 함구구가 발동되면 적용되는 거잖아.’

투지는 정신력과 승부 근성을 소폭 상승시켜서 경기에 대한 열의를 높이는 버프다.

비록 정규 시즌이 아니고 청백전에서 발동된 건 아쉬웠지만, 버프를 받은 홍진철이 얼마나 던질 수 있을지 파악할 좋은 기회였다.

‘정규 시즌에도 자주 발동되면 좋겠네.’

그때 옆에 앉은 주현우가 생각에 잠긴 한수를 살피더니 물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아뇨. 전혀요~! 불편해 보이십니까?”

주현우는 한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이 무척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타이탄스 40년’ 다큐멘터리를 통해 포수 마스크에 얽힌 사연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하하.”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위로 살짝 올리며 모바일 게임 중인 박은우에게 물었다.

“박 선수는 청백전에 왜 온 겁니까?”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박은우는 그렇게 말하곤 힐끔 백팀 더그아웃을 살폈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아~ 그래요?”

박은우의 정보창에 적힌 내용으로 판단했을 때, 그는 여은포를 신경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수는 생각했다.

‘아쉽게 됐네. 여은포는 오늘 청백전에 참가 안 하는데···.’

여은포는 타격 훈련 중에 딴짓하다가 이종규 코치한테 들켜서 크게 혼났고, 아침부터 지옥의 특타 훈련을 받고 있다.

한수는 속으로 혀를 찼다.

‘2차 스프링캠프 때는 스스로 정신을 차리길 바랐는데···.’

한수는 ‘구단주가 캠프 훈련을 보우하사···.’ 스킬을 사용해서 실시간 노력 등수 창을 오픈했다.

【2차 스프링캠프 실시간 노력 등수】

1등: 염철수(Diamond 등급)(투수)

└좀 더 많은 경기를 뛰고 싶어. 더 열심히 훈련하자. 그러면 분명 기회가 올 거야.

2등: 장문원(Platinum 등급)(타자)

└지금까지 청백전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어. 사이클링히트는 운이었던 거야. 자만하지 말자.

3등: 손재현(Platinum 등급)(타자)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

4등: 안종렬(Gold 등급)(타자)

└수비만 잘해도 밥값은 한댔지. 타격은 감이 안 잡혀서···.

···(중략)···

36등: 이소호(Diamond 등급)(타자)

└허벅지 느낌이 안 좋군. 이번 주는 무리하지 말아야겠어.

37등: 오재근(Diamond 등급)(타자)

└나도 늙었나. 안 걸리던 감기에 걸리고···. 후배들 보기 민망하네.

38등: 박철(Silver 등급)(타자)

└초밥에 사케 한잔 땡기고 싶네. 어휴~ 스프링캠프는 언제 끝나는 거야?

39등: 장재우(Bronze 등급)(투수)

└4차 청백전···. 겨우 청백전인데 왜 이렇게 긴장되는 거지···. 젠장···. 별거 아닌데···.

40등: 여은포(Diamond 등급)(타자 겸 투수)

└혜선씨한테 어떻게 고백하는 게 좋을까? 아니, 일단 번호부터 받아야지. 스포츠카 타고 찾아가서 드라이브하자고···.

여은포는 머릿속에는 최혜선에 대한 걸로 가득했다.

한수의 입장에선 짜증이 났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아직 생각해둔 방법들을 쓰고 싶진 않고···.

‘페르난도 감독한테 여은포를 더 강하게 굴리라고 해야겠어.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그때 심판의 플레이볼 신호가 들렸다.

주현우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마운드에 선 홍진철을 주시했고, 박은우도 모바일 게임을 멈추고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수도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홍진철이 와인드업했다.

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평소랑 투구폼이 다른 거 같은데?’

= = = = = = =

홍진철은 타석에 선 백팀 1번 타자 최민준을 보며 생각했다.

‘고등학교 땐 바깥쪽 낮은 공을 어려워했지만, 요즘은 6할 확률로 치고 있어. 다만 빠른 공에는 아직 반 박자 정도 반응이 늦어.’

타자들의 데이터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

투수로서 효율적인 체력관리를 위해서는 데이터를 통해서 타자의 약점을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하나, 하나 전력을 다해 던질 필요는 없다.

그건 체력 소모에 불과하니까.

그거 전력을 다해 던지는 건 결정구면 충분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공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한다!’

일전에 장보형 코치에게 상의한 적이 있었다.

커브의 구속을 높이기 위해 투구폼을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때 장보형 코치는 반대했다.

홍진철의 장점은 빠른 구속이 아닌, 다양한 구종을 활용한 완급조절과 뛰어난 체력관리라고 말이다.

그때는 홍진철도 동의했지만, 혹시 몰라서 새로운 투구폼을 연습했다.

참고한 선수는 바로···.

타이탄스의 영구결번이자 전설적인 투수인···.

‘철인(鐵人) 최종권.’

최종권의 투구폼을 참고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초고속 폭포수 커브를 던지던 당대 최고의 투수였고, 두 번째는 그의 라이벌이던 강대한도 최종권의 투구폼을 따라 했었으니까.

‘부상 위험도도 있고, 효율적이진 않지만···. 무리하지 않고 관리만 잘한다면···.’

홍진철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와인드업했다.

무척이나 역동적이고 와일드하게···.

-휘이이익!

공을 던졌다.

코스는 바깥쪽 낮은 곳.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이다.

최민준은 움찔하며 바로 배트를 휘두르려고 했지만···.

-퍼어어억!

공이 이미 강민수 포수의 미트에 꽂힌 뒤였다.

최민준은 힐끔 전광판을 쳐다봤고, 구속이 91마일(146km/h)이 찍힌 걸 보고 생각했다.

‘초구부터 최대 구속···?’

“진철이 쟤 오늘 장어라도 먹었나? 왜 이래?”

그는 마운드로 송구하는 강민수 포수에게 물었다.

“형, 진철이 왜 저래요?”

“뭐가?”

“너무 힘주고 던지는 거 같아서요···. 뭔 일 있나 해서···.”

그러자 강민수는 피식 웃으며,

“인마,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라.”

“······.”

맞는 말이다.

홍진철은 자기 관리 하나만큼은 정말 철저하니까.

‘괜한 걱정인가?’

그때 강민수가 말했다.

“야, 진철이 걱정할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해.”

“네?”

강민수는 포구 자세를 잡으며,

“너 1차, 2차 청백전에서 성적 별로였잖아. 이번에도 시원치 않으면···. 감독님이 좋게 보겠어?”

“······.”

이번에도 맞는 말이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할 때인가 싶었다.

홍진철은 이미 선발로 낙점된 투수다.

그에 반해 최민준은 치열한 주전 경쟁 중이다.

‘그래···. 남 걱정할 때가 아니야.’

최민준은 타석에 들어서며 배트를 강하게 잡았다.

그리고 마운드에 선 홍진철을 보며 생각했다.

‘네가 무슨 생각인지는 신경 안 쓸게. 이제 내 성적만 생각할 거야. 그래야만···.’

“···뒤처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서 박동준 코치가 말해준 정보를 떠올렸다.

‘진철이는 초구에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면, 이구에는 무조건 변화구야. 그리고 상위 타선일 경우엔 유인구를 던질 확률은 71% 정도···.’

야구는 확률 게임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최민준은 안전하게 확률이 높은 데 베팅을 했다.

‘이번 공은 거르자!’

그 순간, 홍진철이 와인드업했다.

역시나 평소의 부드러운 투구폼이 아닌, 와일드한 피칭이다.

-휘이이익!

대기를 가르면 화살처럼 쏘아지는 공.

최민준은 뛰어난 선구안을 가진 덕분에 그 공이 향하는 방향을 정확히 파악했다.

‘초구와 같은 코스!’

심지어 또 포심 패스트볼이다.

움찔하며 배트를 움직이려고 했지만,

-퍼어어억!

미트에 이미 공이 꽂혔다.

구속은 92마일(148km/h).

홍진철은 최대 구속을 갱신했고···.

“스트라이크!”

최민준은 투 스트라이크가 됐다.

그의 머릿속에 박동준이 말해준 내용이 떠올랐다.

[홍 선수의 데이터는 아직 충분하지 않으니까. 너무 맹신하지는 말아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플레이하세요.]

‘젠장···.’

제대로 한 방 먹었다.

설마 너구리 홍진철이 포심 패스트볼로 똑같은 코스를 두 번이나 공략할 줄은 몰랐다.

‘아니야. 어쩌면 내가 본인을 잘 알고 있단 점을 노리고 일부러 평소와 다른 코스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 심판이 말했다.

“아직 준비 덜 됐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최민준은 복잡한 표정으로 타석에 섰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랬지. 그러면···.’

홍진철이 놀릴 수 있는 코스는 스트라이크 존 전체.

유인구 코스도 셀 수 없이 많다.

무엇보다 던질 수 있는 구종도 다양했다.

‘···미치겠네.’

평소의 그였다면 복잡한 생각은 접고 선구안을 믿고 커트하며 실투를 노리자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강민수가 했던 성적이 나쁘면 감독님이 좋게 보겠냐는 말과 믿었던 박동준 코치의 데이터와 전혀 다른 홍진철의 와일드한 투구로 인해서 최민준은 딜레마에 빠졌고, 본인의 가장 큰 무기가 뭔지도 잊고 말았다.

경험이 부족해서 생긴 실수···.

하지만 실전에서 이런 실수는···.

-휘이이이익!

-퍼어어억!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아웃으로 이어진다.

코스는 똑같은 바깥쪽 낮은 곳.

구종도 역시나 포심 패스트볼.

구속은 92마일이었다.

그렇게 최민준은 홍진철의 삼연벙 전략에 배트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홍진철은 친구 최민준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 마음이 아팠지만···.

‘구단주님께 최고의 피칭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니까. 어쩔 수 없어!’

그리고 2번 타자 로빈 애플이 올라왔다.

평소라면 가볍게 유인구를 던지며 승부의 추를 유리하게 이끈 뒤에 결정구를 던졌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홍진철은 간 따위는 보지 않을 생각이다.

삼연벙 전략은 이미 노출됐기 때문에 통하지 않을 테니, 다른 약점을 노리기로 했다.

‘로빈 애플···. 예전에 타구에 발목을 다친 적이 있어서, 몸쪽 낮은 곳으로 날아오는 공을 어려워하지.’

홍진철은 공을 강하게 쥐고···.

역동적으로 와인드업했다.

‘로빈 애플도 삼진으로 잡을 거야!’

= = = = = = =

관중석 일각.

이창호 회장은 2번 타자 로빈 애플이 풀카운트 상황에서 헛스윙하며 아웃을 당해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옆자리에 앉은 비서에게 물었다.

“홍진철이라는 친구···. 여우처럼 영리하게 공을 던지며 타자를 농락하는 투수라고 하지 않았나?”

“네, 그렇습니다만···.”

“저게 여우인가? 내가 봤을 땐 마운드에서 포효하는 사자 같군. 아주 와일드하게 공을 던지는군.”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투수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하긴. 오히려···.”

“······?”

비서는 이창호가 뒷말을 흐리자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창호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비서는 생각했다.

‘생각보다 경기를 집중해서 보시네···.’

이때 타석에는 3번 타자 손재현이 들어섰다.

홍진철은 초구부터 한가운데를 노리고 93마일(150km/h)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손재현은 아차하며 헛스윙을 했다.

이창호는 생각했다.

‘시원시원하게 던지니 좋군. 야구라는 거 생각보다 볼만하군.’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며 경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느덧 3차 청백전은 6회 말이 됐다.

점수는 0대 0.

백팀은 투수 교체를 두 번 해서 양기주가 마운드에 올랐고, 6회 말을 잘 지켜냈다.

그리고 7회 초.

청팀의 투수, 홍진철이 마운드에 올랐다.

청팀은 투수 교체를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홍진철이 지금까지 단 하나의 안타도 맞지 않았고, 단 한 명의 주자도 출루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홍진철은 마운드에 올라 공을 쥐며 생각했다.

‘어깨에 무겁네. 이런 느낌 얼마 만이지···.’

평소라면 교체 사인을 보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조금만 더 하면 퍼펙트게임···.’

비록, 청백전일지라도···.

그는 한수가 앉아 있는 관중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단주님께 최고의 피칭을 보여드리자.’

홍진철에게 의미 있는 퍼펙트게임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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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홍진철은 퍼펙트게임에 실패했다.

9회에 제구가 흔들려서 볼넷을 던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노히트노런을 달성했고, 3차 청백전을 시청한 야구팬들은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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