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 타이탄스 단장이 되고 싶은 겁니까?
‘타이탄스 TV’로 타이탄스 청백전 3차전을 시청하던 팬들은 7회 초가 시작했을 때부터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뉴비꼴빠’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뉴비꼴빠: 경기 어떻게 되고 있음? 이번에도 백팀이 이기고 있음? 외인 용병 강속구 쩔던데?
└뉴비꼴빠: 뭐임? 진철이 왜 아직도 던짐? 청백전인데 XX 혹사하네?
└고인물꼴빠: 마! 입 다물라.
└뉴비꼴빠: 왜 시비임?
└고인물꼴빠: 그냥 입 다물고 경기 지켜봐라!
└뉴비꼴빠: ······?
그때 고인물꼴빠가 뉴비꼴빠한테 DM을 보냈다.
[고인물꼴빠: 지금 퍼펙트게임 각이다. 나대지 마라.]
[뉴비꼴빠: 헐?!]
퍼펙트게임.
운과 실력이 모두 따라줘도 달성하기 힘든 대기록.
홍진철은 지금 그 기록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겨우 청백전인데 유난을 떤다는 시청자도 있었다.
짜고 치는 경기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경기를 처음부터 본 사람이라면···.
홍진철이라는 투수를 조금이라도 아는 팬이라면···.
절대 그런 소리를 할 수 없었다.
노련하고 영리하게 완급조절을 하며 타자를 농락하던 홍진철이 땀을 뻘뻘 흘리며 전력투구해서 타자를 하나하나 아웃시키고···.
백팀 타자들은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두르며 안타를 치려고 하고 있다.
8회 초에는 안타가 될뻔한 타구가 나왔지만, 중견수를 보고 있던 오재근이 온 힘을 다해 슬라이딩 캐치를 해서 플라이아웃으로 만들었다.
└이걸 어떻게 짜고 친다고 하냐?
└홍진철 땀 흘리는 거 봐라. 난 쟤가 저렇게 힘들게 공 던지는 거 처음 봄.
└고교 야구에서 XX 얄밉게 던지던 놈인데, 바닷바람 좀 맞더니 변했네···.
└노련미 넘치는 플레이가 성적에는 좋지만···. 역시 이런 게 보는 맛은 있네.
└진철이! 마! 쏴라있네!
└타이탄스야···. 정규시즌에 지금의 경기력의 반만 보여다오···. 제발···!
그리고 9회 초.
홍진철은 백팀 하위타선을 상대하게 됐다.
타석에는 7번 타자 김효철이 섰다.
이때 홍진철은 생각했다.
‘효철이 형은 조심해야 해. 궁지에 몰렸을 때마다 꼭 한 건씩 터뜨리니까.’
김효철이 보유한 특성 ‘위기 본능 A’ 덕분이다.
홍진철을 특성에 대한 건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김효철이 위기 순간에 강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강타가 나오지 못하는 코스를 노리고 공을 던졌지만···.
“파울!”
“파울!”
“파울!”
김효철은 귀신처럼 공을 커트해내며 기회를 잡기 위해 애썼다.
그때부터 제구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볼!”
결국 볼 네 개를 던졌고, 김효철은 출루했다.
타이탄스 TV로 시청하던 팬들은 탄식했다.
└아~ 효철아···. 그걸 그렇게 악착같이···.
└효철이가 자비를 숨김···.
└나 혼자 베이스 밟음···.
└진철이 불쌍해서 어쩌냐···.
└퍼펙트게임을 코앞에 두고···!
└진짜 XX 힘빠지게 하네···.
└효철이랑 진철이 사이 안 좋나?
└효철이한테 뭐라고 하지 마라. 저게 프로다. 연습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함.
└김효철 덕분에 홍진철이 피칭이 더 빛남.
홍진철은 무척 아쉬웠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구단주님께서 보고 계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야!’
그는 의지를 불태우며 8번 타자 이삼수와 9번 타자 고대현 그리고 1번 타자 최민준까지 연속해서 삼진 아웃시켰다.
그렇게 홍진철은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덕분에 홍진철의 주가는 수직상승 했다.
[타이탄스 3차 청백전! 청팀 선발 투수 홍진철 ]
[타이탄스의 선택은 옳았다! KBO 최고의 유망주 홍진철! 노히트노런···.]
[연타석 홈런, 사이클링히트, 노히트노런까지···! 올해 타이탄스는 다르다!]
[청백전임에도 손에 땀을 쥐는 경기력을 보여준···.]
[홍진철,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노히트노런!]
커뮤니티에서도 난리였다.
└홍진철 20승 가즈아···!
└올해 신인왕이랑 골든글러브는 홍진철 몫이다.
└대박이다. 홍진철이 이런 식으로도 던지네.
└갓단주 이한수가 홍진철을 데려온 건 신의 한수다.
└갓단주 찬양해!
└홍진철 진짜 날아오르네!
└타이탄스 이번 시즌 우승 가즈아!!!
이때 노히트노런의 주인공 홍진철은 어깨에 아이싱을 하며 장보형 코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사용한 투구폼은 금지다. 이유는 말 안 해도 알지?”
홍진철은 힐끔 욱신거리는 어깨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습할 때는 괜찮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실전에서 써보니 그와는 맞지 않았다.
‘강철처럼 튼튼한 어깨를 가진 투수면 모르겠지만···.’
홍진철은 그런 투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심적으로도 불편했다.
이렇게 뒤도 안 보고 던지는 건 그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이번에는 구단주님께 전력을 보여드리기 위한 거였으니까.’
그는 아이싱 중인 어깨를 힐끔 보며,
‘당분간은 회복에만 집중하자.’
장보형 코치는 홍진철의 표정을 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자기 관리가 뛰어난 놈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오늘은 이만 숙소로 가서 쉬어. 감독님이 이틀 동안은 회복에 집중하라고 하더라.”
“알겠습니다.”
홍진철은 장보형 코치와 헤어져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는 그의 룸메이트인 타이탄스 전(前) 주장 장재우가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었다.
홍진철은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다녀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하긴···. 장 코치님이랑은 얘기 잘했어?”
“네.”
“···오늘 고생했다. 아주 멋진 피칭이던데?”
“감사합니다.”
홍진철은 쇼핑백은 본인 침대에 올려둔 뒤, 빨래 바구니를 확인했다.
‘어제 애매해서 안 했더니, 많이 쌓였네. 하고 와야겠다.’
“세탁하고 오겠습니다.”
그러자 장재우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아~! 아냐, 아냐. 쉬어. 오늘은 내가 할게.”
“아닙니다. 제가···.”
“인마, 선발 선 날은 그냥 푹 쉬어야 해. 무리하면 나중에 개고생해.”
“···하지만···.”
“괜찮아. 괜찮아. 세탁기가 세탁하지 내가 하냐?”
“···감사합니다.”
장재우는 빨래 바구니를 들고 나가려다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홍진철을 바라봤다.
장재우는 홍진철의 피칭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십수 년 넘게 마운드에 오르며 단 한 번도 노히트노런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노히트노런은커녕, 1승을 올리기도 버거운 처지다.
특히, 눈여겨본 건 9회 초였다.
김효철을 출루시켜서 퍼펙트게임 달성에 실패했을 때···.
홍진철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8번, 9번, 1번 타자를 연달아 삼진으로 잡아냈다.
그는 1실점만 해도 멘탈이 흔들려서 경기를 말아먹는데···.
‘진철이 얘는 어떻게···.’
홍진철은 장재우가 빤히 쳐다보자 움찔하더니,
“···저 선배님, 역시 제가 빨래를···.”
“아냐. 이건 내가 할게. 그보다···.”
“······?”
“···질문 하나 해도 될까?”
“네.”
장재우는 9회 초에 퍼펙트게임에 실패하고도 어떻게 멀쩡하게 던질 수 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질문을 허락받고도 그는 망설였다.
‘선배가 돼서 후배한테 조언은 못 해줄망정···.’
체면, 자존심 등등···.
쓸데없는 것들이 족쇄처럼 그를 막았다.
결국 장재우는 한숨을 내쉬더니···.
“···아니다. 그냥···. 쉬어.”
“네···.”
홍진철은 방에서 나가는 장재우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으신가?’
한 번 물어볼까 고민하다가, 괜한 오지랖이란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접었다.
옷을 갈아입고 폰을 꺼내 보니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타이탄스 TV로 경기를 본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 및 응원 메시지였다.
그러다가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이한수 구단주님: 홍 선수, 멋진 피칭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힘내주세요. 한국 가면 한턱 쏘겠습니다. 기대하세요.
홍진철은 피식 웃으며,
‘구단주님께서 좋아하신 거 같네. 다행이다.’
그는 곧바로 한수에게 답장을 보냈다.
= = = = = = = =
한수는 자람 빌런스 주현우 코치와 유명한 초밥 전문점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홍진철의 답장을 확인하고 피식 웃었다.
└홍진철: 앞으로도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통합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맞은편에 앉은 주현우가 물었다.
“좋은 소식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그보다 식사는 입맛에 맞나요?”
“네~ 아주 좋습니다. 이거 제가 좋은 데를 알아보고 대접을 해야 했는데···.”
“다음에는 주 코치님이 맛집을 알아보면 되죠.”
“하하, 알겠습니다.”
“그때는 이소희 팀장도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거···. 기대되네요.”
주현우는 찻잔을 들어 따뜻한 녹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 아까 낮에 하신 말씀···.”
“아~ 영입 제안이요?”
“···네.”
“왜요? 관심 있으세요?”
주현우는 잠시 고민하더니,
“···네, 관심 있습니다.”
“이야~ 그래요? 하하, 언제든 말씀만 하세요. 연봉도 만족할 만큼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주현우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
“연봉보다는···. 다른 걸 주실 수 있습니까?”
한수는 피식 웃으며,
“뭡니까? 말해봐요.”
“그게···.”
Diamond 등급 인재이자, 정보창에 주유로 비유되는 주현우 코치가 한수에게 요구한 조건은 이러했다.
벤치 전략에 의견을 낼 수 있고, 신인 지명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선수 재계약, 트레이드, FA 계약 결정에 한 축이 되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강한 권력.
한수는 낮에 순진한 면모를 보여주던 주현우가 이런 요구를 하자 의외였다.
그는 유심히 주현우의 얼굴을 살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 연기는 아니야. 다만, 보기보다 권력욕이 많다는 건데···.’
한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런 자리면···. 구단주가 되고 싶은 겁니까?”
“아뇨! 아뇨!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타이탄스 단장이 되고 싶은 겁니까?”
그 말에 주현우는 눈에 힘을 주며,
“······네.”
한수는 팔짱을 낀 채 그를 가만히 살피더니,
“주 코치님···. 몇 살이십니까?”
“···서른둘입니다.”
“선출은 아니시죠?”
“네,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고···.”
주현우는 나름대로 자신의 경력을 설명했고, 본인의 가치를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중에 흥미를 끄는 건 새로운 시즌에 대한 견해였다.
감독과 코치진을 물갈이하고 FA 최고액을 경신하며 양투지를 재영입해 왕조 재건을 꿈꾸는 ‘두성 그리즐리스’.
2회 연속 통합우승을 노리는 신흥 강자 ‘신성 스페이스’.
타격왕 유정호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다시 한번 우승을 노리는 ‘자람 빌런스’.
제갈량으로 불리는 감독을 영입하고 불펜진까지 강화하며 상위권 도약 노리는 ‘엔젤 트리플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면 이를 가는 ‘신아 재규어스’.
윤진호, 양투지를 잃었지만 젊은 피를 수혈하며 새 시즌을 준비 중인 ‘대명 티라노스’.
원종혁 감독의 지휘를 따라 다시 한번 통합 우승을 노리는 ‘ST 위닝스’.
감독과 코치진을 싹 갈아엎으며 전통 강호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대운 드래곤스’.
10개 구단 중 8개 구단이 타이탄스 못지않게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으며, 2군에서 숨죽이며 칼을 갈아왔던 뛰어난 선수들도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거다.
“올해는 이례 없는 난세(亂世)이자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즌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런가요? 흠···. 그렇다면 내년의 우승은 누가 할 거 같습니까?”
주현우는 잠시 이래도 되나 주저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세이긴 하지만, 두 팀 중 하나일 겁니다.”
“하나는 우리 타이탄스죠?”
주현우는 말없이 긍정의 미소를 지었다.
한수는 물었다.
“그러면 다른 한팀은 어딥니까? 우리랑 비벼 볼 수 있다는 염병할 팀이요.”
“남쪽에는 갈매기가 날아오를 거고, 북쪽은 외계인이 강세를 보일 거 같습니다.”
“신성 스페이스···.”
올 시즌 통합우승의 주인공이자, 모기업의 어마어마한 투자를 받으며 올해도 만반의 준비 중인 신흥 강호.
주현우는 진지한 눈빛으로,
“올해 KBO는 타이탄스와 스페이스 두 팀이 양분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건방진 말씀이지만···.”
“······.”
“저를 영입하시면 승자는 타이탄스가 될 겁니다.”
한수는 씨익 웃으며,
“그거참···. 흥미로운 말이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