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 웰컴, 타이탄스!
타이탄스 2차 스프링캠프 숙소, 한수의 방.
한수는 주현우에게 군웅할거 시즌에서 살아남을 ‘KBO 이분지계(二分之計)’라는 재밌는 얘기를 듣고 숙소로 돌아왔다.
‘주현우라···.’
삼인삼색(三人三色)이라더니, 이소희 팀장의 보고서는 뒤를 보지 않는 파격적인 행보로 팀을 성장시켜서 리그를 씹어 먹자는 내용이 주를 이뤘고, 양승진 사장은 긴 시간을 두고 농사를 짓듯 팀을 차근차근 성장시켜야 흔들리지 않는 거목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주현우는 팀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현재 가진 무기를 활용해서 난세를 이겨낼 방법을 찾는데 포커스를 맞춘 인재였다.
‘박동준 코치랑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지···.’
주현우는 팀 분석에 특화됐다면, 박동준은 선수 분석이 뛰어나다.
그래서 주현우의 재능 1순위 프런트의 전력분석팀이나 단장이고, 박동준은 QC 코치다.
어쨌든!
한수는 주현우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뒤, 제시한 조건에 대해 고민해보겠다고 말한 뒤 헤어졌다.
‘정확한 실력은 겪어봐야 알겠지만···. 말하는 투로 봐선 Diamond 등급 인재다운 거 같네.’
“일단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파악해볼까?”
한수는 강덕수에게 자람 빌런스 QC 코치 주현우를 조사해서 내일까지 보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강덕수가 주현우에 대한 자료를 메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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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우는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하던 중 데이터 야구와 관련된 헐리우드 영화 한 편을 보게 됐고, 세이버매트릭스를 공부했다.
자연스럽게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선수 출신도 아니고, 야구계에 인맥도 없는 그가 취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자람 빌런스 프런트 전력분석팀에 들어갔지만, 잘 적응하진 못했다.
자람 빌런스 전력분석팀 팀장은 선수 출신이었고, 비선수 출신을 대놓고 면박 줬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QC 코치가 된 건 우연이었다.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원래’ 빌런스 QC 코치 김민철이 교통사고로 입원했다.
생각보다 크게 다쳐서 장기 입원을 하게 됐고, 감독은 새로운 QC 코치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모기업 지원이 빈약한 자람 빌런스는 새로운 코치를 구하는 것보다는 돌려막기를 했다.
‘QC 코치는 데이터 분석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
‘데이터 분석은 무슨, QC 코치는 따지고 보면 감독 비서잖아. 비서. 운영팀이나 전력분석팀에서 인원 차출하라고 해.’
‘운영팀은 단장 직속이니까···. 전력분석팀에서 적당한 놈으로 보내. 어차피 김민철 코치 복귀하면···.’
그렇게 해서 주현우는 ‘임시’ QC 코치가 됐다.
주현우는 조금 기대했다.
전력분석팀에서는 어떤 의견을 내든 팀장에 의해서 짓밟혔지만···.
‘QC 코치가 되면 선수들에게 내가 분석한 데이터를 직접 사용하게 할 수 있어. 그래서 성과를 내면 분명···.’
하지만 그건 그의 바람에 불과했다.
그는 동료 코치진은 물론, 다른 선수들에게도 제대로 된 코치 대접을 받진 못했다.
새로운 코치를 구할 돈이 아까워서 프런트 직원 한 명을 땜빵으로 데려왔단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벤치에서 그의 역할은 감독의 심부름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운 좋게 인정을 받은 게···.
지난 포스트 시즌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몇몇 선수에게 해줬던 조언이···.
‘주 코치님 말대로 던졌더니 쉽던데요?’
‘주 코치가 상대 투수가 던질 코스를 훤히 파악하고 있더라고요.’
‘주 코치님이 지적한 부분을 고치니까 타율이 오르던데요?’
···그에게 호재가 됐다.
덕분에 한국 시리즈를 앞두고 감독에게 특별한 제안을 받았다.
[애들한테 도움을 많이 줬다며? 어디 신성 스페이스도 한 번 분석해봐.]
그동안 쌓아온 능력은 보여줄 아주 좋은 기회였다.
신성 스페이스가 분명 저력은 있었지만, 약점은 있었다.
포수 쪽이 약한 것도 문제였으며, 그 외에도 선수마다 약점이 하나둘 존재했다.
분명 시작은 좋았다.
그의 데이터에 따라 1차전을 압승했으니까.
2, 3차전도 그의 데이터에 따라 움직였지만, 선수들의 체력 부족으로 실책이 이어졌다.
이때까지도 주현우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니까. 난 다 예상했어. 선수들이 따라와 주지 못한 거야. 이래서 구단의 투자가 중요한데···. 모기업은 선수들로 장사나 할 생각이고···.’
4차전에선 반격을 했다.
유정호 타자가 선수들을 독려하며 필승의 각오를 다진 덕분이었다.
그의 데이터도 십분 활용했다.
하지만 5차전, 6차전에서 그의 데이터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무너졌다.
9회 말, 마지막 공격을 앞두고 대타로 나온 노장 김강준이 두 번이나 끝내기 홈런을 날린 거다.
이미 에이징커브가 와서 수비도 못 볼 정도라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던 그의 데이터가 틀린 거다.
주현우는 분명 포스트 시즌에 활약했지만, 이때 실수로 다른 코치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야구는 그깟 데이터로 하는 게 아니지.’
‘경험과 감이 얼마나 중요한데···.’
‘땜빵으로 온 주제에 나대더니···.’
‘뭐, 어느 정도 도움은 되지만, 데이터라는 건 결국 맹신할 게 못 돼. 중요한 건 경기장에서···.’
따지고 보면 주현우는 잘못한 게 없다.
그냥 스페이스의 김강준이 잘 친 거뿐이다.
주현우가 아니었으면 한국 시리즈까지 진출하는 게 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선수 출신도 아니고, 땜빵으로 데려온 전력분석팀 막내를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자신들보다 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나마 감독은 주현우의 능력을 알아보고 코치진들의 질투 섞인 비난을 적당한 선에서 끊었고, 몇몇 선수들도 주현우를 인정했다.
‘주 코치님, 다음 시즌에도 잘 부탁드려요.’
‘저희는 코치님만 믿을게요.’
‘다른 코치님들 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런 응원에 힘입어 스토브리그에 심기일전하려고 했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던 원래 QC 코치 김민철이 돌아온다는 소식이었다.
‘다시 프런트로 돌아가는 건가? 하지만 거기 팀장님은···.’
그때 감독은 주현우를 불러서,
‘민철이가 오면 자네는 민철이 보조로 둘 생각이네. 민철이와 함께 다음 시즌을···.’
그나마 희망적인 제안이었지만, 가슴이 꽉 막힌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다른 구단을 알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이 바닥이 워낙 좁아서 괜히 다른 팀을 기웃거리다가 빌런스에 소문이라도 돌면 정말 끝이니까.
처량하기 그지없는 신세였다.
그리고 스토브리그가 시작됐다.
한국 시리즈까지 진출했음에도 모기업의 소극적인 투자는 여전했고, 스페이스의 노장 김강준에게 제대로 당했음에도 나이가 찬 선수들은 다른 팀에 팔아버렸다.
답답하고, 답답한 행보···.
신성 스페이스가 왜 창단하자마자 통합우승을 했겠는가?
모기업의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경험 많고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우승할 수 없어.’
그때 타이탄스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새로운 구단주의 파격적인 행보와 과감한 투자.
단장 대행까지 맡으면서 잠재력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고, 이미 에이징커브가 왔다는 선수들을 부활시켰다.
특히나 관심을 끌었던 건 경력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재능있는 인재를 중용한다는 거다.
사장실 비서로 있던 여자를 운영팀장에 앉히고, 고집불통으로 유명해서 단장과 늘 충돌하던 팀장을 사장으로 임명하고, 고교 야구팀 코치를 하다가 은퇴하고 트럭 운전기사를 하던 사람을 스카우트 팀장으로 임명하고, 국밥집 사장을 육성팀 팀장으로, 골키퍼 출신에 장애인농구팀 감독까지 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외국인을 감독으로 영입하고, 야구 연습장 사장으로 있는 사람을 주루 겸 작전 코치로, 그리고 중학교 수학 교사를 QC 코치로 고용했다.
만화에서나 볼 법한 기이한 구단을 만들었다.
이게 될까 싶었는데···.
신성 스페이스, ST 위닝스, 트리플스와의 연습 경기에서 점점 강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이번 청백전에서는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주현우는 생각했다.
‘타이탄스 구단···. 이한수 구단주라면 혹시 내 가치를 알아봐 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헛된 꿈이지. 타이탄스 구단주가 뭐가 아쉬워서 경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을···.’
번민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어느덧 2차 스프링캠프였다.
평소에 홍진철 투수를 탐냈던 빌런스 감독은 주현우에게 청백전을 정탐하고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부탁이라···. 맨입으로요?]
[홍진철 선수의 전력을 보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세상만사 공짜가 어디 있겠습니까?]
꿈이···.
[주 코치를 원합니다.]
[타이탄스로 오세요. 빌런스에서 받는 연봉이 얼마인지 모르겠지만···. 두 배로 드리죠.]
···이뤄졌다.
주현우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 = = = = = =
한수는 소파에 앉아 강덕수가 메일로 보내준 주현우의 정보를 읽으며 피식 웃었다.
“이건 뭐···. 데려오기 너무 쉬운 상황이네. 빌런스도 멍청하네. 인재를 몰라보고···.”
몰라본 게 아니다.
그들도 주현우가 능력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프런트 전력분석팀 팀장을 비롯한 코치진들이 비선수 출신인 그가 자신들보다 주현우가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감독과 단장은 주현우의 재능을 파악했지만···.
팀의 단합이 깨질 게 우려돼서 주현우를 감싸지 못했다.
주현우가 생각보다 끈기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원만하게 해결될 거라고 판단한 거다.
선수 중에도 그를 따르는 이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주현우는 끈기뿐만 아니라, 야심도 있는 인물이다.
본인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구단이 있다면 바로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운 좋게 찾은 Diamond 등급 인재를 놓칠 수도 있었다.
‘그럴 순 없지. 우리 타이탄스에 뼈를 묻게 해야지.’
하지만 호구처럼 모든 조건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한수는 주현우에게 연락했다.
[여보세요···.]
“접니다.”
[네, 안녕하세요.]
“주 코치의 제안을 모두 받아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했던 조건들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권한 정도는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팀장들이나 감독, 코치들과 동등하게요.”
[그 말씀은···.]
“전력분석팀 팀장으로 오세요.”
[······!]
“그리고 당신의 가치를 증명한다면···. 차후에 단장으로 고용하는 것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 말씀···. 정말입니까?]
“물론이죠. 하지만 쉽진 않을 겁니다. 우리 팀에는 워낙 뛰어난 인재들이 많아서요. 흐흐.”
주현우는 생각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이 없는 빌런스보다는 낫다고.
그러니까···.
[···가겠습니다. 타이탄스로 가고 싶습니다!]
한수는 씨익 웃으며,
“오케이. 웰컴, 타이탄스!”
그렇게 주현우의 영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곧바로 그를 타이탄스로 데려오진 못했다.
스프링캠프 중이고 주변의 시선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현우가 며칠 뒤에 자람 빌런스 QC 코치직에서 사임하고 한국으로 귀국한 뒤, 부산으로 가서 양승진 사장과 간단한 면담 이후에 전력분석팀 팀장에 취임하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주현우에 대한 건 약속대로 진행됐고, 타이탄스 1군 선수들은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소희 팀장의 연락을 받았다.
[구단주님, 내일 스프링캠프 참관인 오십오 명이 오키나와로 출발합니다.]
스프링캠프 참관인은 몇몇 구단들이 매년 진행해온 팬들을 위한 이벤트인데, 일종의 여행 패키지다.
타이탄스 팬 중에서 1군 선수들의 스프링캠프 훈련을 참관하고, 선수들과 식사도 함께 하고 오키나와 여행까지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신청하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인원이 신청했다.
“그렇군요. 벌써 그렇게 됐나?”
[매년 단장이 공항으로 참관인들 마중 나왔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러면···.”
[······.]
“···내가 마중을 나가야겠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한수는 귀찮게 됐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혜선도 참관인으로 온다고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