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 난리가 났다.
한수에게 도발을 당한 뒤 여은포는 씩씩거리며 숙소로 향했다.
‘구단주···. 빌어먹을···. 젠장···. 한 대 칠 수도 없고···!’
“XX!”
여은포가 욕설을 내뱉으며 거칠게 문을 여는 바람에 룸메이트 안종렬은 침대에 누워있다가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뭐야···. 인마, 살살 좀 들어와라.”
“······.”
여은포도 죄송한 걸 아는지라 안종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곤 본인 침대로 가서 누웠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으로 최혜선 치어리더의 사진들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혜선씨···. 정말 그 악마 같은 구단주는 좋아하는 겁니까? 아니죠···. 그 인간이 그냥 헛소리를 지껄인 거죠?’
그때 술집에서 최혜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한수를 보던 눈빛이 떠올랐다.
“젠장···.”
안종렬은 침대에 누워 꼼지락거리며 훌쩍이는 소리를 내는 여은포를 보고 인상을 썼다.
‘치어리더 영상보고 실실 쪼개는 모습도 꼴불견이긴 했지만···. 덩치는 산 만 한 놈이 질질 짜는 건 진짜···.’
안종렬은 2차 스프링캠프를 시작할 때, 숙소를 배정하며 페르난도 킴 감독이 했던 부탁을 떠올렸다.
[박종구 선수가 1군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안 선수가 많이 도와줬다고 들었습니다. 염 선수도 초반에 안 선수가 많이 챙겨줬고요.]
[그냥 같이 노가리 깐 건데요···.]
[그러면 여은포 선수랑도 노가리 좀 까주세요.]
[엑? 걔는 좀···.]
[안 선수가 김유빈 선수와 친한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은포 선수가 탐탁지 않을 수 있지만···. 여은포 선수도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팀에 적응을···.]
안종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감독님 부탁만 아니었어도···.’
그는 뒷짐을 지고 여은포에게 다가갔다.
“야.”
“······.”
“야! 선배가 부르면 대답 좀 해라.”
여은포는 뒤돌아 누운 채로 대답했다.
“···네···.”
“인마, 사람이 말이야. 예쁘게 행동하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지는 법이야. 철수 봐라. 훈련 XX 열심히 하니까 구단주랑 감독이 물고 빨고 난리잖아.”
여은포는 ‘구단주’라는 단어에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안종렬에게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눈깔 힘 안 푸냐?”
“······.”
“너 말이야. 그 맨날 보는 치어리더···. 부산 씽 농구팀 소속이었던 최혜선 치어리더 맞지? 얼마 전에 우리 구단에 합류한···.”
“네? 어···. 그걸 어떻게···.”
“흐흐, 새끼야. 형이 말이야. 박민희 치어리더 팬클럽 부회장이야.”
“···그게 누굽니까?”
“인마, 최혜선 팬 맞아? 박민희는 최혜선이랑 의자매로 통하는 환상의 듀오라고! 이번에 최혜선이랑 같이 우리 타이탄스 응원단으로 합류했다고!”
“그, 그렇습니까? 몰랐는데···.”
“이놈이 아직 레전드 영상을 못 봤네.”
여은포는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레전드요···?”
안종렬은 입꼬리를 올리며,
“인마, 형이 신세계를 보여주마. 드루와, 드루와.”
“오···. 오···!”
“어때? 죽이지?”
“안 선배님! 영상을 더 보고 싶습니다!”
그날 여은포는 안종렬을 진정한 선배로 인정했다.
그리고 안종렬의 전도에 따라 최혜선 팬클럽 가입해서 입덕했다.
= = = = = = = =
여은포가 최혜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자극해서 야구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작전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여은포】【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100%) [+ 1% ↑]
(타이탄스 코치진: 13%)
(타이탄스 프런트: 10%)
결론: 경기장의 천하무쌍 여포(呂布)입니다. 선수로서 재능 하나만큼은 KBO 최고입니다. 투수로서 재능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재능도 뛰어나서 투타 겸업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성공을 탐(貪)하는 괴물이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지명타자
2순위: 내야수
3순위: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특기】
1. 해바라기 [활성화]
2. 방천화극 타법 [타격력, 장타력]
···(중략)···
10.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 같은 성격
11. 자존심보다 보신(保身)
12. 명예욕의 화신 [New!]
【호감도: -1 %】
타이탄스 선수로서 재능이 다시 100%로 올라갔고, 사랑하는 여자를 얻기 위해 성공을 탐하는 괴물이 되기로 했다는 점과 ‘명예욕의 화신’이란 특기가 추가됐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호감도가 –1%가 됐다는 거다.
들쭉날쭉했어도 0%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워낙 단순한 놈이니까. 적당히 당근을 던지면 다시 플러스가 되겠지.’
오죽하면 ‘단무지 같은 성격’이란 특기가 있겠는가?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여은포 문제는 대충 정리된 거 같은데···.”
그때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뒤쪽에 박동준 코치가 컵라면과 과자를 품에 안고 서 있었다.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습니까?”
“구단주님이 김유빈 선수랑 최혜선 씨에게 가보라고 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기척 좀 내고 다녀요. 행보관도 아니고···.”
“딱히 숨을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다들 저를 신경을 안 쓰는 거 같아서···. 그보다···.”
박동준은 묘한 눈빛으로 한수를 빤히 쳐다봤다.
한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할 말 있습니까?”
“구단주님의 방법이 여은포 선수 컨디션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몰라서 조금 걱정이 되네요.”
이미 정보창을 통해서 확인했기 때문에 문제없었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성난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날뛰는 놈한테 고삐를 채워서 앞으로 달리게 한 거뿐입니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흠···.”
“대충 상황 파악을 한 거 같은데···.”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요. 모르면 바보죠.”
“그러면 박 코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가 쓴 방법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나요?”
박동준은 콜록콜록 기침한 뒤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패스하죠. 천 개의 야구 데이터보다 사람 한 명 마음을 파악하는 게 더 어렵거든요. 다만, 굳이 악역을 자처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
“흐흐, 악역이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네.”
“···취향하고는···. 어쨌든 이런 문제는 제 전공이 아닙니다. 차라리 페르난도랑 얘기해보시던가요.”
“아~ 확실히 그게 더 낫겠네요.”
박동준은 전략을 수립하고, 정보를 분석하는데 특화됐지만, 페르난도 킴은 처세술의 달인이자, 사람을 구슬리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유했다.
닳고 닳은 노련한 정치가라고나 할까?
하여튼!
한수는 박동준이 들고 있는 컵라면과 과자 봉투를 보더니,
-휙!
낚아챘다.
박동준은 깜짝 놀라며,
“뭐 하시는 겁니까?”
“이십층 레스토랑으로 가죠. 좋은 음식 놔두고 컵라면이 뭡니까? 컵라면이···.”
“방에서 데이터 분석하면서 먹으려고 했습니다.”
“식사할 때는 식사에만 집중하십쇼. 진짜 애들도 아니고···.”
박동준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한수는 단호했다.
“페르난도 감독한테 말해서 식단 관리에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잘하세요. 스스로.”
“···알겠습니다.”
박동준은 한숨을 푹 쉬며 한수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십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 = = = = = =
참관단과 1군 선수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행사에서 인기 스타는 이소호와 김유빈이었다
이소호는 타이탄스의 심장이자 부산의 아들로 불리는 선수이고, 김유빈은 벌처스에서부터 따라온 충성스러운 팬클럽 회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 말고 예상외의 인기를 끈 선수가 있었다.
바로, 홍진철이었다.
홍진철은 중장년층 남자 팬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홍 선수! 자갈치 시장 함 오이소!’
‘바다낚시 하고 싶으면 연락하세요!’
‘정규 시즌에서도 딱! 연습 경기만큼만 던져줘요!’
‘강대한 보다 홍 선수가 참 투수지! 암!’
홍진철도 이런 관심이 싫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한수는 박동준, 윤가희와 한 테이블에서 식사하고 있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둔 포수 마스크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상점 업그레이드가 된 건가?’
그건 아니었다.
며칠 전에 Lv 12 상점으로 업그레이드가 완료돼서 곧바로 330 Point를 소모해 Lv 13 상점 업그레이드를 시작했으니까.
업그레이드가 끝나려면 열흘은 더 지나야 한다.
임무 20을 달성한 것도 아니다.
영화 ‘타이탄스 1984’ 시사회는 성공적으로 끝냈지만, 개봉일은 아직 보름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다.
‘영웅 도감···.’
정보창에 주유로 비유되는 인재인 주현우가 자람 빌런스 QC 코치직에서 사임하고 한국으로 간 지 일주일이 지났다.
계약과 관련된 부분을 양승진 사장한테 일임했는데, 아무래도 이제야 정식으로 채용이 된 거 같았다.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볼게요. 식사 맛있게 해요.”
레스토랑에서 벗어나 숙소로 향하려는 순간, 뒤따라 나온 최혜선이 그를 불렀다.
“저기···. 구단주님···.”
한수는 속으로 살짝 한숨이 나왔지만, 내색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혜선 씨, 식사 더 하시지···. 왜 나왔어요?”
“아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가 언제 혜선 씨를 도왔다는 겁니까?”
“그게···. 그 무섭게 생긴 분이 따라오려는 걸 막아주셔서···.”
“혹시 여은포 선수를 말하는 겁니까?”
“네···.”
한수는 여은포가 왠지 안쓰러웠다.
최혜선이 한수를 좋아하든 말든 간에 여은포는 그녀의 마음을 얻을 가망이 없어 보였다.
‘내가 그거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한수한테는 그녀의 존재가 여은포가 야구에 최선을 다할 계기가 되어주는 걸로 충분했다.
그때 최혜선이 말했다.
“신영 패션 일도 그렇고···. 술집에서 도와주신 거랑···. 이번에도···. 번번이 신세만 져서요···. 괜찮다면 보답을 하고 싶어서···.”
“그렇죠~. 받은 게 있으면 보답을 해야죠. 혜선씨, 사리가 밝아서 마음에 드네요!”
최혜선은 한수가 마음에 든다는 말에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
“저···. 한국에 돌아가면 함께 식사라도···.”
한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겠네요. 제가 일정이 워~ 낙 바쁜지라.”
“아···.”
“대신 다른 걸로 보답하세요.”
“다른 거요···?”
한수는 씨익 웃으며,
“우리 타이탄스를 위한 최고의 응원 무대를 선보여주세요.”
“······.”
“오케이?”
최혜선은 조금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일이나 열심히 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표정을 바로 하고 눈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구단주님을 위한 최고의 응원 무대를 준비할게요.”
“내가 아니라···.”
“아뇨. 저는 구단주님을 위해서 무대에 설 거예요.”
한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최혜선이 해바라기 특기를 개발했었지? 활성화 대상은 나였으니까···.’
해바라기는 활성화된 대상을 위해서라면 아주아주 낮은 확률로 기적과도 같은 능력을 펼치게 해주는 특기다.
‘나를 위해 기적과도 같은 응원 무대라도 펼치려나? 뭐~ 손해 볼 건 없겠는데?’
한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혜선씨, 보기보다 고집이 있네요.”
“······.”
“오케이~ 오케이~ 나를 위해서 무대에 서는 걸로 해요. 기대 하겠습니다.”
최혜선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수를 보며 대답했다.
“네!”
한수는 피식 웃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돌아온 한수는 곧바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2.485 Point입니다.】
【현재 Lv 13 상점으로 업그레이드가 진행 중입니다.】
【영웅 도감이 1개 완성된 상태입니다. 확인해주세요.】
삼국지에서 주유는 굉장히 유명한 명장이라 영웅 도감이 더 많이 완성됐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완성된 건 한 개뿐이었다.
【영웅 도감 ‘또 한 명의 형님!’이 완성됐습니다.】
‘또 한 명의 형님!’은 정보창에 손권으로 비유되는 문희동과 주유로 비유되는 주현우를 영입한 덕분에 완성된 영웅 도감이다.
팀의 부상 인원이 생겼을 때, 정신력을 1 올려주는 효과가 있으며, 보상으로는 60 Point를 받았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2.545 Point입니다.】
‘주유라는 이름이 들어간 영웅 도감은 많은데···.’
최상급도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아직 인재가 부족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제갈량에 비유되는 인재···.’
한수는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를 보며 중얼거렸다.
“쓸까? 하지만 제갈량은 왠지 프런트 직원일 거 같지만···.”
‘이런 건 아끼다 똥 되는 법이지.’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를 사용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망설임 없이 예를 선택했다.
【위치를 확인할 대상을 말씀해주세요.】
“제갈량 같은 인재야~! 어딨니?”
그 순간, 한수의 앞에 창이 나타났다.
-띠링!
【제갈량은 현재···.】
한수는 그걸 보고 흥미로운 눈빛을 했다.
예상과 전혀 다른 정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여기 있다고?’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참관단이 온 지 삼 일째가 됐다.
오늘은···.
타이탄스 1군 4차 청백전이 있는 날이다.
청팀 선발은 장재우, 백팀 선발은 한민석.
그리고 백팀 타자 라인업에···.
여은포가 포함됐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