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 좋아. 여기까지!
한수는 청백전 4차전을 구경하기 위해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그때 비밀 친구 권순민 시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시장님,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이 구단주, 미안하네.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네. 그런데 무슨 일인가?]
“하하~ 그냥 안부 차 연락드렸습니다.”
[나야 늘 똑같이···. 자네는 좀 어떤가? 슬슬 스프링캠프 막바지지?]
“네~ 부산에 가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 그리고 이번에 죽이는 투수가 들어왔다고 했죠?”
[응? 아~ 응. 우리 시청 서기보인데···. 아주 여우처럼 공을 잘 던져. 머리도 좋아서 작전 코치도 맡고 있어.]
한수는 예리한 눈빛을 했다.
‘역시···.’
그는 며칠 전 사용했던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의 내용을 떠올렸다.
【제갈량에 비유되는 인재는 현재 부산 사회인야구단 ‘자이언츠’에서 투수 겸 코치로 활약 중인 9급 공무원 공명량입니다.】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우리 권 시장님께서 그렇게 칭찬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면 한번 보고 싶네요.”
[으하하~ 부산 오면 놀러 오게. 추위도 꽤 풀려서 슬슬 다른 팀이랑 매칭을 할 거거든!]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자네야 이미 우리 명예 회원이나 다름없는데, 감사는 무슨~!]
“아~ 시장님, 재밌는 생각이 났습니다.”
[재밌는 생각?]
“상동 구장에서 우리 타이탄스 2군 연습 경기해보는 거 어떠세요?”
[···우리가 타이탄스 2군이랑? 정말인가?]
“네~ 시장님만 괜찮으시다면···.”
[하겠네! 꼭 하고 싶네! 아~ 혹시 기 선수도 던지나?]
“기용찬 선수는 1군입니다.”
[아이고~ 그랬지? 우리 기 선수 실력에 2군이라니 말이 안 되지~! 그럼 2군 투수 중에···.]
“김태규, 장은수 선수가 현재 2군입니다. 그리고 곧 시작하는 4차 청백전에서 백팀 선발 투수인 한민석 선수도 2군입니다.”
[아~ 아~ 너클볼! 그 친구도 2군인가? 그럼···.]
“2군 감독한테 얘기해서 출전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으하하~ 역시 이 구단주야. 아주 시원시원하다니까? 좋았어! 오늘부터 자이언츠 전원 특훈에 들어가야겠군!]
한수는 부산 시청 공무원들의 명복을 빌어주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이번에 그 죽여주는 투수도 볼 수 있겠군요?”
[공 서기보 말인가?]
“제가 이름은 몰라서···.”
[공명량일세. 그 친구도 내가 꼭 데려가지!]
한수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치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 뒤 통화를 끝냈다.
그는 경기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제갈량이···. 투수였단 말이지. 이거 흥미롭네.”
그때 마운드로 청팀의 선발 투수 장재우가 올라왔다.
한수는 팔짱을 끼며 경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 = = =
타이탄스 팬들은 4차 청백전도 무척 기대했다.
왜냐면 백팀 타자 라인업에 여은포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여은포 투수 아님?
└투수였다가 타자로 전향함. 그리고 망했지.
└망한 건 아니지. 첫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때리고 반짝였는데, 그 이후로는 타석에 서서 스윙도 안 하더라.
└쓰레기 짓거리했지.
└그런데 다시 타석에 서는 걸 보면···. 마음을 고쳐먹은 듯?
└개과천선한 거면 투타겸업 하는 건가?
└타이탄스에 이도류? 와우!
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청팀 선발 투수 장재우가 1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백팀 1번 타자 최민준은 1, 2, 3차 청백전의 부진을 씻어버리듯 장재우를 괴롭혔고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타를 치며 출루했다.
2번 타자 로빈 애플은 초구에 안타를 쳤고, 3번 타자 손재현도 유인구 두 개를 걸러내고 세 번째 공에 안타를 쳤다.
순식간에 주자 만루가 됐다.
그리고 4번 타자 윤진호는···.
-따아아아악!
만루홈런을 쳤다.
장재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또, 욕먹게 생겼군···.’
그의 예상대로 ‘타이탄스 TV’를 시청하던 팬들은 난리가 났다.
장재우를 2군으로 보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5번 타자 공형찬을 플라이아웃을 잡고, 6번 타자 하민철에게 안타를 맞고, 7번 타자 김효철을 삼진아웃 시킨 그는 8번 타자 여은포와 승부를 겨루게 됐다.
그리고···.
-따아아아악!
···홈런을 또 맞았다.
1회에만 홈런 두 번.
점수는···.
[청팀 0 : 6 백팀]
장재우의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고개를 떨궜다.
그때 청팀 포수 강민수가 마운드로 다가오더니,
“선배님, 홈런은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 공 좋습니다. 침착하게 아웃 한 개만 더 잡죠.”
“어? 응···.”
강민수는 미트로 입을 가리며,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 좀 불확실한 것 같습니다. 최대한 바깥으로 던져보세요. 제가 스트라이크로 만들어볼게요.”
“뭐···?”
“요즘 프레이밍 연습 중이거든요. 흐흐.”
“음···.”
“이제 1회입니다. 힘내세요!”
장재우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민수는 마무리 캠프 때까지만 해도 자신감도 부족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언제부터 이렇게···.
‘···성장하고 있는 건가···.’
반면에 그는 점점 꺾이고 있었다.
지금은 야구계를 떠난 그가 존경했던 선배들처럼···.
‘나도···.’
그때 존경하던 선배가 떠올랐다.
100승 투수를 코앞에 두고 팀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방출당한···.
‘···정식 선배···.’
그리고···.
그와 했던 약속도···.
[재우야. 왜 우나? 누가 보면 니가 방출당한 줄 알긋다.]
[···선배···.]
[니는 꼭 100승 투수되그라. 알긋나?]
[네···. 알겠습니다···!]
타이탄스에서 100승을 이루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마운드를 떠난 선배를 존경했고, 그가 이루지 못한 100승을 대신 이뤄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세월에 몸을 맡겨 정신없이 살아오다 보니 젊은 시절 가슴에 새겼던 다짐은 흐릿해졌고···.
나태하고, 한심한 꼴만 보였다.
그 선배처럼 후배들의 이끌 생각보다 시기하고 견제하기 바빴다.
‘장재우···. 이 XX 같은 놈···. 한심한 놈···.’
그때 강민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장재우를 재차 불렀다.
“선배님···?”
“···아, 미안···. 잠시 생각 좀 하느라.”
“괜찮습니다.”
“민수야, 고맙다.”
“네?”
그는 씨익 웃으며,
“마지막까지 힘내보자. 잘 부탁한다.”
“···네!”
강민수가 홈플레이트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장재우는 생각했다.
‘지금 내가 몇 승이었더라···. 60승 됐나? 50승인가?’
어쨌든 100승까지 한참 남았다.
공을 쥔 손에 힘이 들었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아.’
뒤늦게 떠오른 젊은 날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 기회를 잡아야 한다.
장재우는 강민수의 사인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와인드업했다.
그날···.
장재우는 강민수 덕분에 다른 때처럼 도망치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체력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던졌고···.
경기는 결국 10대 8로 청팀의 승리가 됐다.
장재우는 승리했다.
그렇게 4차 청백전은 끝났다.
= = = = = = =
4차 청백전이 끝났지만, 한수는 관중석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는 순간, 앞에 나타난 새로운 알림창 때문이었다.
-띠링!
【장재우(Bronze)가 장재우(Gold)로 진화합니다.】
【2단계를 건너뛰는 놀라운 진화를 축하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장재우(Gold)의 새로운 정보를 확인해주세요.】
【영웅 도감을 1개 완성했습니다.】
‘Gold 등급으로 진화했구나.’
영웅 도감도 완성했다.
그런데···.
‘2단계 진화를 했는데, 그냥 박수로 끝인가? 특별 보상 없나?’
【······.】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수는 혀를 차며 장재우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어디 얼마나 바뀌었나 볼까?’
【장재우】【Gol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85%)
(타이탄스 코치진:70%)
(타이탄스 프런트: 50%)
결론: 경기장의 단두장군(斷頭將軍) 엄안(嚴顔)입니다. 자꾸만 떨어지는 성적 때문에 뛰어난 후배의 재능을 질투했었지만, ‘소중한 약속’을 떠올리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노익장(老益壯)의 카리스마를 발휘하며 팀을 잘 이끄는 선배로 각성했습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투타】
우투우타
【특기】
1. 100승의 약속 [100승 달성까지 정신력 대폭 상승]
2. 노익장의 통솔력
···(중략)···
【호감도: 5%】
‘100승까지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건가? 재밌네.’
이어서 잠재 레벨도 확인했다.
【이름: 장재우】
【레벨: 62 / 69 (현재 레벨 / 잠재 레벨)】
【특성: 뜨거운 전력투구 A】
└선발 이후 3회까지 구속, 제구 +2
장재우는 잠재 레벨에 많이 도달했다.
레벨 상승은 본인의 한계 레벨에 가까워질수록 성장 속도가 무척 느리다.
그래서 장재우는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1레벨도 오르지 않았다.
‘기왕이면 잠재 레벨도 상승했으면 좋은데···. 호감도 작업을 해서 ‘최고 장로 스킬’로 한계를 높여줘야겠네.’
완성된 영웅 도감은 ‘장비야, 내 머리를 자르려면 잘라 보아라!’라는 괴상한 이름을 지녔다.
효과는 엄안이 선발일 때 장비가 중계로 나오면 장비의 데드볼 확률이 감소하고, 장비가 선발일 때 엄안이 중계로 나오면 엄안에게 ‘투지’ 효과가 적용된다.
나쁘지 않은 효과였다.
특히, 너클볼을 던지는 장은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보상은 70포인트를 받았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2,615 Point입니다.】
한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좋아. 여기까지!”
그는 포수 마스크를 벗고 일어나서 마무리 훈련하는 선수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참관단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타이탄스 1군은 스프링캠프 훈련을 이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타이탄스 1군도 스프링캠프를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한수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누가 2차 스프링캠프 1등을 했나 볼까?”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2,615 Point입니다.】
【현재 Lv 13 상점으로 업그레이드가 진행 중입니다.】
그는 곧바로 ‘구단주가 캠프 훈련을 보우하사···.’ 스킬을 사용해서 실시간 노력 등수 창을 오픈했다.
-띠링!
【2차 스프링캠프 실시간 노력 등수 최종 결과】
1등: 염철수(Diamond 등급)(투수)
└찰스 선배님께 배운 컷 패스트볼을 시험해보고 싶은데···. 시범 경기 때 출전할 수 있을까?
2등: 김유빈(Platinum 등급)(타자)
└2군이랑 사회인 야구단이랑 연습 경기라니···. 지면 정말 큰일 나는데···. 연습하자. 은수도 수비 훈련을 함께하도록···.
3등: 안종렬(Gold 등급)(타자)
└부산 가면 박민희 치어리더 팬 미팅만 갔다가 근력 훈련 들어가자. 은포도 좋아하면 좋겠는데···.
4등: 기용찬(Platinum 등급)(투수)
└시범 경기에서 영점을 완벽히 잡아야 해. 장 코치님도 멀지 않았다고 했으니···.
5등: 손재현(Platinum 등급)(타자)
└기용찬한테만은 안 져.
6등: 홍진철(Platinum 등급)(투수)
└노히트노런 투수보다 다승 투수가 되자. 팬들이 기대해주는 만큼···. 승리로 보답하는···.
6등: 여은포(Diamond 등급)(타자 겸 투수)
└종렬 형이 박민희 치어리더 팬 미팅에 혜선씨가 올 수도 있다고 했지. 좋아. 이번엔 제대로 인사해야지. 기다려 이한수! 혜선씨는 절대 안 뺏겨!
···(중략)···
40등: 한민석(Silver 등급)(투수)
└젠장···. 홍진철이랑 나랑 얼마 전까지 동급이었다고···. 타자 XX들···. 홍진철 선발 때는 XX 물방망이였으면서···. 4차전에서는 왜 XX인데! XX 홍진철 그 XX보다 내가···.
41등: 박철(Silver 등급)(타자)
└이제 금주령도 끝이군. 흐흐. 술아~ 술아~ 기다려라~!
1차 스프링캠프 때는 김유빈이 1등, 염철수가 2등이었는데, 이번에는 염철수가 1등을 했다.
한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염 선수는 정말 마음에 든단 말이지. 흐흐.’
안종렬은 아쉽게 3위를 했다.
나중에 아이템이라도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 눈여겨볼 인물은 여은포였다.
‘6위라···. 작전이 잘 먹힌 거 같은데···. 박민희 팬 미팅은 또 뭐야?’
한수는 여은포가 참 종잡을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했다.
최하위 두 명은 한민석과 박철이다.
한민석은 원래도 하위권이었는데 4차 청백전에서 백팀 선발 투수로 나왔다가 청팀 타자들의 불빠따에 아주 신나게 두들겨 맞았고, 팬들한테도 잔뜩 욕을 먹어서 멘탈이 나가버렸다.
그리고 박철은···.
‘···결국 끝까지 술타령이네. 페르난도 킴 감독이 어떻게 조치할지 지켜봐야겠군.’
“자, 이제 1등, 2등한테 선물을 줄 시간이군.”
【‘구단주가 캠프 훈련 보우하사···. (Platinum 등급)’ 스킬의 ② 효과가 발동합니다.】
【1등 염철수(Diamond 등급, 투수)의 변화구 구속이 1 상승합니다.】
【2등 김유빈(Platinum 등급, 타자)의 장타력이 2 상승합니다.】
한수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두 사람이 필요한 능력치를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염 선수의 슬라이더가 한층 더 날카로워지겠어!’
그렇게 한수와 타이탄스 1군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고,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타이탄스 2군과 사회인 야구단 자이언츠의 연습 경기가 있는 날이다!
타이탄스 2군의 선발 투수는 장은수, 자이언츠 선발 투수는 권순민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