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 염 선수가 이길 겁니다.
염철수는 주변을 살폈다.
수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바라보며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청백전, 연습경기, 시범경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압박감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두근거리고 오싹한 느낌이 좋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보였다.
염철수는 생각했다.
‘아빠도 잘 보이실 거 같네···.’
그때 포수 강민수가 마운드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철수야, 괜찮아?”
염철수는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네.”
“시범경기 때처럼만 던지면 돼. 편하게 오케이?”
“···아뇨. 시범경기처럼 던지면 안 돼요.”
“응?”
그는 고개를 내리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이겨야죠!”
강민수는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그래, 빌런스 타자들 씹어 먹어버리자고!”
“네!”
강민수는 홈플레이트로 돌아가자, 염철수는 송진 가루를 손에 묻혔다.
타석에는 빌런스의 1번 타자 김현성이 섰다.
그때 심판이 플레이볼을 외쳤다.
염철수는 송진 가루가 묻은 손으로 신발 끈을 확인한 뒤, 이어서 겉 양말, 안경, 모자챙을 차례대로 터치했다.
그러자 타이탄스 팬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염철수가 했던 행동 때문이다.
└최종권 선수 루틴 따라 하네 ㅋㅋ
└시범경기 때는 투구폼만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저거까지 ㅋ
└심지어 금테 안경이다.
└마! 철수야! 종권 선수 반만큼만 던져라!
염철수는 팬들의 환호성에 피식 웃으며 타석에 선 김현성에 대한 데이터를 떠올렸다.
‘장타력은 뛰어나지만, 선구안은 나쁜 편···. 패스트볼에 강하고,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하며···. 발이 빠르니 출루하게 만들면 고생···.’
시범경기 때는 투심 패스트볼로 쉽게 공략했었다.
“좋아. 해보자···!”
강민수가 사인을 보냈다.
포심 패스트볼, 몸쪽 낮은 코스.
염철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역동적으로 와인드업했다.
실밥 하나하나가 손에 긁히는 느껴졌고···.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생각했다.
‘스트라이크···!’
그 순간, 포수의 미트에 공이 꽂혔고···.
“스트라이크!”
예상이 딱 들어맞았다.
염철수는 씨익 웃었다.
= = = = = = =
타자 김현성은 미트에 꽂힌 초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날카롭네···.”
구속을 확인하기 위해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145km/h]
‘150은 되는 줄 알았는데···. 역시 공에 실린 힘이 좋네···.’
하지만 염철수의 무서운 점은 포심 패스트볼이 아니다.
‘투심···.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
염철수의 투심 패스트볼은 무브먼트가 정말 더러워서 타자한테는 변화구나 다름없었는데, 선구안이 나쁜 김현성한테는 옛날 축구 만화에 나오는 도깨비 슛처럼 보였다.
덕분에 시범경기 때는 연타석 삼진을 당했다.
‘일단 치기만 하면···.’
염철수의 투심 패스트볼의 구위는 어마어마해서 타자들이 대부분 힘에 밀려서 맥없이 아웃을 당했다.
하지만 김현성은 빌런스 타자 중에서 힘이라면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때 염철수가 와인드업했다.
김현성은 눈을 부릅뜨며 배트를 꽉 쥐었다.
-휘이이익!
바깥쪽을 노리고 날아오는 투심 패스트볼.
찰나의 순간, 그는 고민했다.
‘유인구? 쳐야 하나?’
그리고 배트를 휘두르자고 생각한 순간,
-퍼어어억!
미트에 공이 꽂혔다.
“스트라이크 투!”
김현성은 이를 갈았다.
잠깐의 고민으로 타이밍을 놓쳤다.
이게 전부 혼란스러운 무브먼트 때문에 배트를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젠장···.”
두 번째 공의 구속은 143km/h이었지만, 느껴지는 건 훨씬 빨랐다.
김현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에는 무조건 휘둘러야 해···. 아마 투심을 던지겠지? 코스는···. 아마도 바깥쪽으로 낮은 코스를···. 아냐, 몸쪽 승부를 걸 수도 있어.’
포수 강민수는 힐끔 김현성을 살피며 생각했다.
‘생각이 많네. 이럴 땐···.’
세 번째 와인드업.
바깥쪽 낮은 곳을 노린 148km/h의 포심 패스트볼.
김현성은 배트를 휘둘렀지만 헛스윙했다.
삼진아웃.
타이탄스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들렸고, 김현성은 이를 갈며 타석에서 물러났다.
이어서 2번 타자 에디 라셀이 타석에 섰다.
강민수는 염철수에게 송구를 하며 생각했다.
‘이놈은 조심해야 하는데···.’
에디 라셀은 시범경기 때 염철수를 상대로 안타와 2루타를 친 선수다.
선구안이 뛰어나고 힘도 좋은 편이라 제대로 맞으면 위험했다.
‘하지만 오늘 철수 구위가 좋아. 굳이 승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사인을 보냈고, 염철수가 와인드업했다.
144km/h의 투심 패스트볼이 몸쪽 코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에디 라셀은 움찔했지만, 배트를 뻗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선언에 에디 라셀은 뒤로 살짝 물러나 배트를 만지며 스트라이크 존을 가늠했다.
‘볼 같았는데···. 존이 넓은 건가? 아니면, 프레이밍 때문에 스트라이크가 됐나?’
어찌 됐든 타자한테 좋은 상황은 아니다.
에디 라셀은 다시 타석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포심으로 바깥쪽을 노리려나?’
두 번째 와인드업.
149km/h의 포심 패스트볼이 초구와 똑같은 코스로 날아와 미트에 꽂혔다.
에디 라셀은 뒤늦게 헛스윙을 했다.
‘젠장···. 또 같은 코스로 던질 줄이야···.’
투 스트라이크.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에디 라셀은 배트를 꽉 쥐며 염철수를 노려봤다.
‘이번에는 친다···!’
그리고 세 번째 와인드업.
코스는 이번에도 몸쪽 빠른 공···.
‘세 번은 안 당해···!’
배트를 휘두르려는 순간, 공이 횡으로 크게 휘었다.
에디 라셀은 눈을 크게 뜨며,
‘이건···!’
미트에 공이 꽂혔다.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에디 라셀은 마운드에 선 염철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Oh Shit···.”
타이탄스 팬들도 난리가 났다.
└와! 슬라이더 휘는 거 봐라. 장난 아니네.
└구속 150km/h다. 와···. 초고속 슬라이더냐?
└염철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50인데, 슬라이더가 150이라고? 미쳤네.
└와···. 이거 어떻게 치냐?
└에디 라셀 고개 흔드는 거 봐라.
└슬라이더를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네. 이야~ 이래서 1선발이었구나!
└기저귀 차고 보길 잘했네···.
└난 아예 변기에 앉아서 보고 있음.
└마! 철수야! 긴장 풀지 마라!
└빌런스 끝판왕까지 잡자!
그 순간, 타석에 3번 타자···.
타격 5관왕 유정호가 섰다.
= = = = = = =
VIP 관중석.
한수는 맥주를 홀짝이다가 타석에 선 유정호를 보고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러자 은색 빛과 함께 Silver 등급 정보창이 나타났다.
-띠링!
【유정호】【Silver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79%)
(타이탄스 코치진: 50%)
(타이탄스 프런트: 39%)
결론: 타이탄스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지만, 타자로서 재능만 따지면 KBO에서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교타자입니다. 150km/h 이상의 공에 약하다고 하지만, 팀 동료 박은우의 도움으로 많이 극복했습니다. 벌크업을 통해 장타력도 갖게 됐습니다.
【포지션】
1순위: 외야수
2순위: 내야수
【투타】
우투좌타
【특기】
1. 초특급 배드볼히터
···(중략)···
【호감도: + 0%】
아쉽게도 유정호는 타이탄스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다.
조금 욕심은 났다.
왜냐면 그의 잠재 레벨은 무려 96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기했다.
데려올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다.
‘그리고 유정호는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빅리그로 진출할 가능성이 크니까.’
하여튼 지금 중요한 건 염철수와 유정호의 승부였다.
시범경기 때는 유정호의 컨디션이 나빠서 출전하지 못했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명숙이 물었다.
“저 타자···. 뛰어난 선수죠? 포스트시즌에서도···.”
“네, 대단한 선수죠.”
김명숙은 불안한 표정으로 액자를 꽉 쥐었다.
한수는 그걸 보고 피식 웃으며,
“걱정하지 마세요. 염 선수가 이길 겁니다.”
“···네···.”
그 순간 염철수가 와인드업했다.
= = = = = = = =
염철수는 바깥 코스를 정확히 노리고 151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칼날 같은 제구 덕분에 유정호의 배트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염철수는 생각했다.
‘조금만 높았어도 장타가 나왔을 거야.’
박동준 QC 코치의 경고가 맞았다.
유정호는 150km/h 이상의 패스트볼을 극복한 게 분명했다.
위험한 상대이고, 긴장도 됐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염철수는 생각했다.
‘유정호를 이길 거야···!’
그때 강민수가 사인을 보냈다.
슬라이더.
염철수는 그립을 바꾸며 눈에 힘을 줬다.
두 번째 와인드업.
150km/h의 슬라이더가 유정호의 몸쪽 낮은 코스로 날아갔다.
유정호는 제대로 헛스윙을 하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스트라이크 투!”
염철수는 생각했다.
‘이제 하나!’
세 번째 와인드업.
가운데 낮은 코스.
염철수는 152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고···.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타격 5관왕 유정호를 잡아냈다.
그렇게 염철수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1회 말을 끝냈다.
타이탄스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공수 교대가 이어지고 2회 초.
5번 타자 윤진호가 에릭 키스를 상대로 3루타를 쳤다.
6번 타자 강민수는 삼진아웃.
7번 타자 김효철은 희생 플라이로 윤진호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자람 빌런스 0 : 2 신영 타이탄스】
8번 타자 박종구는 삼진아웃 당했다.
그리고 2회 말.
염철수는 빌런스의 타자 세 명을 모두 삼진으로 잡아냈다.
3회 초.
안종렬이 안타를 쳤다.
하지만 1번, 2번 타자가 삼진을 당했고, 3번 타자 손재현이 풀카운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공을 쳤지만, 플라이 아웃을 당했다.
3회 말.
염철수는 7번 타자를 초구 플라이 아웃.
8, 9번 타자를 삼진아웃으로 잡아냈다.
타이탄스 팬들은 환호했다.
└이야! 철수 죽이네!
└철수야! 가즈아아아아!
└안경 쓴 우완투스는 진리지!
└마! 쏴라있네!
└와! 슬라이더 미쳤네! 용정식 보는 거 같다!
└용정식보다 잘 던지는 거 같은데?
└초고속 슬라이더···. 지리네···. 와···.
└속도도 속도인데 휘는 각도가 와···. 타자들은 욕 나오겠다.
4회 초.
4번 타자 이소호가 홈런을 쳤다.
【자람 빌런스 0 : 3 신영 타이탄스】
이어서 5번 타자 윤진호도 홈런을 쳤다.
백투백홈런···!
점수 차는 더 벌어졌다.
【자람 빌런스 0 : 4 신영 타이탄스】
이어서 올라온 6번, 7번, 8번은 아웃을 당했지만, 에릭 키스의 투구 수를 잔뜩 늘렸다.
4회 말.
염철수는 타자들의 활약으로 염철수의 마음은 편했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1번 타자 김현성을 삼진 아웃.
2번 타자 에디 라셀을 플라이 아웃.
그리고 3번 타자 유정호도···.
“삼진 아웃!”
깔끔하게 잡아냈다.
4회 말까지 무실점에 탈삼진은 9개.
완벽한 투구였다.
└이야~ 무난하게 승리하는 그림인데?
└타자들도 잘하고, 투수도 잘 던지고 좋다! 좋아!
└투심 패스트볼 구위가 시범경기보다 오른 듯. 에디 라셀이 힘에서 밀리네.
└철수 아직 쌩쌩하네! 개막전 승리 가즈아!
└초고속 슬라이더 건드리지도 못하네. 대박이다.
팬들의 바람처럼 경기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너무나도 순조롭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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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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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초.
에릭 키스는 5회 초부터 정신을 차리고 철저하게 타이탄스 타자를 막아냈지만, 결국 1사 주자 만루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급하게 소방수로 김재홍이 올라왔고, 1실점을 하고 간신히 공수 교대를 했다.
【자람 빌런스 0 : 5 신영 타이탄스】
7회 말.
염철수는 마운드에 올라 김현성과 에디 라셀을 삼진 아웃시키고, 유정호를 플라이 아웃으로 잡아냈다.
탈삼진은 11개.
출루한 주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타이탄스 팬들은 큰 환호성을 내뱉었고, 염철수는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타이탄스 더그아웃은 조용했다.
늘 방정맞게 떠들던 손재현도 물만 마시고 있었다.
모두 염철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오늘 막내가 사고 한 번 칠 거 같은데···.’
‘눈빛 죽이네···!’
‘수비 실수하면 역적 된다. 정신 차리자.’
‘공이 오면 무조건 잡아야 해. 잘못하면 팬들한테 십 년 동안 까인다···.’
빌런스 벤치 분위기는 초상집이나 다름없었다.
타격 코치는 빌런스 감독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타를 써서 기습 번트라도 대라고 할까요? 어떻게든 출루라도 해야···.”
감독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타이탄스 팬들한테 살해 위협당할 일 있냐?”
“네? 하지만···.”
“장난이야. 장난. 번트는 아니야. 저 투수 주력도 굉장히 빠르고 수비 실력도 좋아서 별 효과 없을 거야.”
“으음···.”
“···애들을 믿어보자고.”
“알겠습니다.”
8회 초.
김재홍이 무실점으로 타이탄스 타자를 막아냈다.
그리고 8회 말···.
염철수는 빌런스 4, 5, 6번 타자를 전부 삼진으로 잡아냈다.
탈삼진 14개를 기록한 염철수가 벤치로 향했다.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들리지 않고 조용했고, 벤치 분위기는 더욱 고요했다.
인터넷으로 시청 중인 팬들은 난리였다.
└이거 설마···.
└에이 설마···.
└아냐 혹시···.
└아···. 숨 막혀···.
└제발 빨리 9회 말···.
└기저귀 갈고 와야겠다.
└진짜···. 설마···.
모두 확실히 언급은 안 했지만···.
‘그걸’ 기대하고 있었다.
바로···.
‘퍼펙트게임···!’
9회 초.
빌런스 마무리 투수 조상훈이 올라와서 깔끔하게 9회 초를 막아냈다.
그리고 9회 말···.
【자람 빌런스 0 : 5 신영 타이탄스】
염철수가 마운드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