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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망나니가 구단주를 잘함-145화 (145/187)

145화 : 잘 지내셨어야죠.

부산 타이탄스 홈구장에서 펼쳐진 신영 타이탄스와 신성 스페이스의 1차전은 치열한 투수전으로 전개됐다.

타이탄스 선발 염철수는 무브먼트가 뛰어난 투심으로 범타를 노리다가 결정적일 때 150km/h 초고속 슬라이더를 던져서 스페이스 타자들을 제압했다.

스페이스 선발 윌슨 폰스는 최대 구속 158km/h의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파이어볼러다.

그는 다양한 변화구를 리그 평균 급으로 던지는데, 그중에서 커브는 공략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패스트볼과 구속이 30km/h 이상이나 나고, 낙차도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양 팀 모두 6회까지 안타는커녕, 출루도 못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난리였다.

└철수 진짜 잘 던지는데, 폰스도 만만치 않네.

└폰스 커브가 진짜 대박이네.

└철수 슬라이더가 최강임.

└오늘 둘 다 9이닝 퍼펙트 가는 건가?

└피 말리는 투수전···. 미쳤다.

└이건 타자들이 못하는 게 아니고 투수들이 너무 잘 던지는 거.

└철수야! 연속 퍼펙트게임 가즈아아!

7회 초.

타석에는 스페이스의 4번 타자 최적이 섰다.

그는 마그넷 적, 청년 장사 등으로 불리는 400홈런을 쳐낸 프랜차이즈 스타다.

2회 때는 풀카운트 끝에 삼진, 3회 풀카운트 끝에 범타로 물러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치열한 승부가 펼쳐졌다.

1구 파울!

2구 스트라이크!

3구 파울!

4구 볼!

5구 파울!

6구 볼!

7구 파울!

8구 파울!

9구 볼!

그리고 10구.

결정구로 던진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존에 애매하게 걸쳤고, 심판은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판정을 내렸다.

“볼!”

강민수는 스트라이크 존에 걸쳤다며 심판에게 말했지만, 판정 번복은 없었다.

결국 최적은 볼넷으로 출루했다.

두 번째 퍼펙트게임을 노릴 기회가 깨져서 팬들은 물론 팀원들은 모두 아쉬워했다.

특히 강민수는 양 손목에 시계를 찰 거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애매한 판정 때문에 날아가자 실망감이 더 컸다.

그러나 염철수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1루로 향하는 최적을 보더니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정말 뛰어난 타자네. 또 겨뤄보고 싶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중계석에 있던 해설 위원은 감탄하며 말했다.

[염철수 선수 퍼펙트게임이 무산됐는데도 타격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승부를 즐기는 것 같은데요]

[정말 크게 될 선수입니다.]

[그런 말이 있죠. 즐기는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염 선수를 두고 하는 말 같군요.]

이때 타이탄스 감독 페르난도 킴은 박동준 QC 코치에게 물었다.

“염철수 선수, 투구 수가 어떻게 되죠?”

“60구입니다.”

“흠···. 최적 선수 때문에 걱정했는데, 괜찮군요.”

박동준은 피식 웃으며,

“스페이스는 투 스트라이크 되기 전에 승부를 보면 염 선수를 공략할 수 있을 줄 알았나 봅니다. 염 선수의 투심 패스트볼은 리그 최정상급인데 말입니다.”

“스페이스가 자충수를 둔 셈이죠.”

“우리한테 고마운 일이죠. 가뜩이나 일정이 빡빡한데 염 선수가 오래 던져주면 나이스니까요.”

둘의 대화를 들은 안종렬은 옆에 앉은 김유빈에게 말했다.

“형 들었어? 철수 저 자식, 방금 최적 선배한테 10구를 던졌으면서 아직도 60구래요. 저게 사람이에요?”

“······.”

“형? 형!”

“어? 어! 왜 그래?”

“형 어디 아파? 아침부터 왜 넋을 놓고 있어?”

“아냐, 아픈 데 없어.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럼 다행인데···.”

김유빈은 걱정스레 쳐다보는 안종렬에게 살짝 웃어준 뒤에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경기 내용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아침에 한수와 나눴던 전화 내용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 선수의 아버님을 찾았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럼 정말이죠. 강 비서가 모시러 갔으니 곧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거래를 지킨 거뿐입니다. 그런데···.]

[······?]

[···뭐, 아닙니다. 어쨌든 아버님은 내일 뵐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한수와 통화를 끝내고 처음에는 무척 들떴다.

하지만 점점 기분이 묘해지더니, 이내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의 머릿속에 남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몇 가지 안 됐다.

아버지는 무척 무뚝뚝하고 엄격한 성격이었는데, 종종 며칠씩 집을 비워서 김유빈은 이웃집에 신세를 지곤 했다.

그리고 야구를 무척 좋아했는데 경기장에서 응원하는 팀이 점수를 내면 김유빈을 안아주며 기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집을 나갔고, 돌아오지 않았다.

이웃집 가족들은 김유빈을 동산 보육원에 맡겼다.

‘곧 너희 아버지가 데리러 올 거야.’

···라는 말만 남긴 채 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고···.

일곱 살 소년은 스물일곱 어른이 됐다.

김유빈은 양손을 꽉 쥐며 생각했다.

‘아버지···.’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어째서···.

‘···데리러 오지 않으셨어요?’

대체 왜···.

‘···저를 버린 건가요?’

김유빈은 결국 고개를 떨궜다.

그때 페르난도 킴 감독이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혹시···.

‘출전하지 못해서 의기소침해진 건가?’

“흠···.”

페르난도 킴 감독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민했다.

김유빈을 그동안 출전시키지 않은 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4월 28일부터 시작되는 ‘투수 왕국’ 신아 재규어스와의 경기에서 출전시킬 생각이었다.

물론 예정일 뿐이어서 상황 따라 바뀔 수는 있었다.

‘아무리 날카로운 검도 검집에만 넣어두면 녹이 슬 수도 있지.’

그때 1루 수비를 보던 이소호가 허벅지를 주무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페르난도 킴은 입을 가리고 박동준에게 속삭였다.

“이소호 선수, 허벅지 괜찮은 건가요?”

“의사 소견으론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안민혁의 공을 맞고 나서 조금 신경 쓰는 거 같습니다.”

“음···. 윌슨 투구 수가 어떻게 되죠?”

“지금 95구입니다. 구위도 많이 떨어져서 7회 말에 올라온다고 해도 교체될 확률이 높습니다.”

“셋업맨으로는 누가 올라올 거 같나요?”

“아마도···. 윤승원일 거 같습니다.”

스페이스 윤승원 투수는 최대 구속 150km/h의 패스트볼을 앞세워 승부를 즐기는 우완투수인데, 작년 전반기까지는 5선발로 활약했지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셋업맨을 맡았다.

페르난도 킴 감독은 이종규 타격 코치를 불렀다.

“윌슨이 내려가면 이소호 선수를 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형찬이를 준비시킬까요?”

현재 백업 선수 중에서 이소호만큼 장타력이 있는 선수는 백마고 4번 타자 출신인 공형찬이나, 마무리 투수인 여은포 정도다.

그래서 이종규는 공형찬을 준비시키려고 했지만, 페르난도 킴은 고개를 저었다.

“김유빈 선수를 준비시키세요.”

“네? 유빈이요?”

페르난도 킴은 빙긋 웃으며,

“좌타자로 출전시키죠.”

= = = = = = =

7회 초.

스페이스 4번 타자 최적이 볼넷으로 출루했지만, 그 이후 타자들은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7회 말.

윌슨 폰스 선수가 올라왔지만, 그의 유일한 약점인 투구 수 관리가 발목을 잡았다.

그의 공에 적응한 타자들은 점점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안종렬이 풀카운트를 넘어서 승부를 이어가다 아웃.

로빈 애플이 초구를 안타로 만들며 출루하더니, 투수한테 도루하겠단 압박을 주며 집중력을 깨뜨렸다.

이어서 2번 타자 오재근은 끈질기게 커트하며 윌슨 폰스 투구 수를 늘렸다.

결국, 윌슨 폰스는 고개를 저었고, 스페이스 강원식 감독은 결국 투수를 교체했다.

마운드로 올라온 중계 투수는 윤승원이었다.

페르난도 킴 감독은 곧장 지시했다.

“이소호 선수랑 김유빈 선수를 교체하세요.”

“알겠습니다.”

윤승원은 노련한 투수답게 오재근을 아웃시키고, 이어서 3번 타자 손재현을 범타로 잡아냈다.

【신영 타이탄스 0 : 0 신성 스페이스】

8회 초.

타이탄스는 투수 교체 없이 염철수가 올라왔고, 3타자를 전부 범타로 잡아냈다.

8회 말.

타이탄스 팬들은 이소호가 윤승원을 상대로 홈런을 쳐주길 바랐다.

그런데 타석으로 향하는 타자는 이소호가 아니었다.

바로, 김유빈이었다.

└쟤 누구임?

└김유빈임. 갈매기 치킨 광고 찍은 선수.

└이소호는?

└허벅지 불편해 보이던데 교체한 듯.

└어제 안민혁이 던진 공 때문임. 개XX.

└김유빈 잘침?

└청백전 이후로 첫 출전임.

└잘 뜀. 원래 투수였음.

└감독 미쳤나? 차라리 박종구를 올려라.

└ㅋㅋㅋ 종구도 투수였음.

└그럼 여은포를 올려!

└걔도 투수임.

└뭔 전부 투수냐?

└김유빈 타격력 별로던데···. 좀 나아졌나?

중계진도 의아해했다.

[8회 말···. 타이탄스 타자 교체를 합니다. 이소호 선수가 빠지고 김유빈 선수가 타석에 서는데요. 이 선수 공식전엔 첫 출전이죠?]

[맞습니다. 어라? 그런데 이상하군요. 김유빈 선수···. 좌타석에 섰습니다. 분명 우타자로 알고 있는데요.]

[우완투수였고, 타자로 전향하고 나서도 우타자의 모습만 보여줬는데···. 이거 참 이상하군요.]

[좌타석에 섰다고 무조건 우완투수에게 유리한 건 아니거든요?]

[맞습니다. 그랬다면 선수들이 전부 스위치를 했겠죠. 물론 경기를 봐야 알겠지만···.]

[말씀드리는 순간, 윤성원 투수 와인드업합니다!]

윤성원은 야구판에서 오래 구른 만큼 김유빈과도 친분이 있었고, 그가 야구에 얼마나 진심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좌타석에 선 그를 안타깝게 봤다.

왜냐면 그가 알기로 김유비는 분명 오른손잡이였으니까.

윤성원은 생각했다.

‘포지션까지 바꿔가면서 뭐든 해보려고 애쓰는 건 기특하다만···. 유빈이 너라고 봐줄 순 없어.’

“너나 나나 프로니까···!”

윤성원는 다르빗슈를 떠올리게 하는 폼으로 와인드업했다.

이때 김유빈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왜 자신을 버렸는지···.

어떻게 지내셨는지···.

이런 건 지금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은 근심을 털어놓고···.

‘경기에 이길 생각만 하는 거야!’

그런 다음에···!

‘아버지를 만나는 거야!!!’

강하게 쥔 배트를 날아오는 공을 향해 휘둘렀다.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힘이 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따아아아아악!

[아~ 아~ 정확히 맞혔습니다!]

[쭉쭉 뻗는 타구! 어디까지 가나요?]

[중견수 달립니다! 달립니다!]

[아~ 넘어갔습니다! 홈~ 런~! 김유빈 선수! 중요한 순간에 홈런을 쳤습니다!]

[타이탄스 구장이 홈런이 정말 안 나오는 곳인데···. 이야~ 정말 깔끔한 스윙이었습니다!]

[윤성원 선수의 공이 가벼운 편이긴 하지만, 오늘 구위 나쁘지 않았는데···.]

[타이탄스의 페르난도 감독···. 이걸 노리고 김유빈 선수로 교체한 거면 정말 무서운 용병술을···.]

김유빈이 만들어낸 점수는 결승점이 되었다.

【신영 타이탄스 1 : 0 신성 스페이스】

염철수는 9회까지 완투했고,

【퍼펙트 투수 염철수! 스페이스 상대로 첫 완봉승!】

첫 완봉승을 거뒀다.

그렇게 타이탄스는 정규시즌 6연승을 기록하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 = = = = = =

다음 날 아침, 사직동의 어느 한식당의 룸.

김유빈은 정장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프로 선수가 되고 처음 마운드에 섰을 때도 이 정도로 떨리지 않았는데···.

그는 주머니에 넣어둔 청심환을 꺼내서 먹을까 고민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고, 김유빈은 움찔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오신 건가?’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처음 만나면 뭐라고 하지?

잘 지냈냐고 여쭤봐야 하나?

아니면, 왜 저를 버렸냐고···.

‘아냐! 왜 버렸냐는 질문을 하면 곤란해하실 거야. 그럼···. 뭐라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엔···.

휠체어에 탄 노년에 접어든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김유빈을 빤히 보다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김유빈은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아버지를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단번에 알아봤다.

손을 꼭 잡고 야구장에 데려가 주던 아버지···.

그런데···.

“아버지···.”

“······.”

“왜 이래요···.”

“유빈아···.”

김유빈은 아버지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다리가 왜 이래요···. 잘 지내셨어야죠. 왜 이래요···. 왜···.”

그는 양 무릎 아래가 허전한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 아들을 보며 아버지도 눈물을 글썽이며,

“···미안하다···. 내가···. 정말···.”

“아버지···.”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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