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 아들들의 마음을 참 모르는 거 같네.
1회 말.
3번 타자 김유빈은 긴장한 얼굴을 한 채 타석으로 걸어가며 관중석을 조심스레 살폈다.
그는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디서 보고 계신 거지? 구단주님께서 모셔갔으니 VIP 좌석 쪽인가?’
그러다가 전광판의 점수가 눈에 들어왔다.
【신영 타이탄스 0 : 1 신성 스페이스】
1회부터 팀이 지고 있다.
김유빈은 고개를 흔든 뒤 눈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정신 차려. 아버지께서 보러 오셨잖아.’
투 아웃 주자 없음.
마운드에는 좌완투수 김상현.
작년도 KBO의 사이영상이라고 불리는 ‘최종권 상’을 받은 정상급의 투수.
타석 앞에 멈추고 숨을 골랐다.
김상현과는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투수 시절 동경했던 선수다.
하지만 지금은···.
‘물리쳐야 할 적···!’
그는 천천히 타석으로 들어섰다.
우타석으로···!
그 순간, 관중석이 술렁였다.
중계석에서도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김유빈 선수···. 실수인가요? 우타석에 섰습니다.]
[실수가 아니고, 좌완투수인 김상현 선수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자 우타석에 선 거 같습니다.]
[어제 좌타자로 홈런을 치며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오늘은 우타자로 스위치라···. 흠···.]
[김유빈 선수는 원래 오른손잡이거든요? 그러니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사실 어제가 운이 좋았던 거죠.]
[듣고 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김상현 선수 와인드업합니다!]
김상현은 전성기 시절에 다이나믹한 투구폼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 뇌경색 등의 부상을 겪으면서 투구폼을 교정했다.
그렇지만 보통 투수와 비교하면 여전히 역동적인 와인드업이었다.
-휘이이익!
초구, 몸쪽으로 낮게 꽂힌 150km/h 포심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김유빈은 공을 봤지만,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아직 1회.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정확히 파악하고, 김상현의 투구 수를 늘릴 필요가 있었다.
‘체력 완급조절을 안 하는 투수니까. 내가 오래 버틸수록 다음 타자들한테 유리할 거야.’
관중석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구단주님은 아버지를 찾아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어.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야.’
한수가 바라는 건 단 하나.
타이탄스 통합우승.
그러니까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팀의 승리가 우선이야!’
2구, 바깥쪽으로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
‘이건 볼···.’
“볼!”
3구, 2구보다 좀 더 안쪽에 꽂히는 투심.
‘이번 건 애매한데···.’
“볼!”
볼 판정을 받은 김상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포커페이스를 안 하는 투수답게 심판의 판정이 불만이라는 게 훤히 드러났다.
김유빈은 생각했다.
‘스트라이크 존이 꽤 좁네. 우리한테 이득이지.’
어쨌든 스트라이크 존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
‘이제···.’
4구, 바깥쪽 낮게 꽂히는 포심.
‘이건 커트!’
-따아악!
“파울!”
5구, 몸쪽으로 낮은 코스, 투심.
‘이번에도 커트!’
-따아악!
“파울!”
6구, 김상현의 결정구인 140km/h 고속 슬라이더!
김유빈은 움찔했지만,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참으며 생각했다.
‘빠졌어. 볼이야!’
그리고···.
“볼!”
‘좋아!’
2스트라이크 3볼, 풀카운트 상황이 됐다.
그러자 김상현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확실히 파악했네. 눈도 좋고, 영리해. 유정호랑 비슷한 타입인가?’
포수가 사인을 보냈다.
더블플레이로 둘 다 잡자는 신호였다.
김상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스페이스의 외야수도 라인을 당겼다.
벤치에서 김유빈은 발이 무척 빠르니까 절대 주자로 내보내지 말라고 했지만···.
‘빨라 봤자···!’
김상현은 다이나믹하게 와인드업했다.
투심 패스트볼.
동시에 타자 김유빈은···.
‘이건 쳐야···!’
-따아악!
땅볼 타구는 김상현 투수를 빠르게 지나쳐 2루수가 대기하고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김유빈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쳤습니다! 땅볼 타구! 2루수를 향해 날아갑니다!]
[김유빈 선수! 엄청 빠릅니다! 이 친구 육상 선수를 해도 될 거 같습니다!]
[그때 2루수가 땅볼을 간신히 잡고, 1루를 향해 송구···! 김유빈! 빠릅니다! 빨라요!]
[김유빈! 김유빈! 김유비이인!]
“세이프!!!”
···김유빈은 간발의 차로 살아남았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장비를 벗으며 중얼거렸다.
“···죽을 뻔했어.”
그때 1루 작전 코치 윤형식이 다가왔다.
투아웃 상황이지만 김상현을 최대한 흔들고 기회가 되면 무조건 달리라고 했다.
김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석에는 4번 타자 손재현.
그는 김유빈을 힐끗 보더니 히죽 웃으며 소리쳤다.
“초구에 무조건 친다! 유빈아! 달려!!!”
그 순간 김상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타이탄스 벤치에서 타격 코치 이종규가 소리쳤다.
“야! 인마! 주둥이 닫아!”
김유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김상현 선수가 제대로 열받은 것 같네. 도발한 거라면 대성공인데···.’
하지만···.
‘재현이가 장난은 심하지만, 빈말하는 애는 아니지.’
투아웃 상황이든, 초구에 어떤 공이 날아오든···.
‘재현이는 친다!’
김유빈은 슬금슬금 1루에서 발을 떼며 달릴 준비를 했다.
김상현의 와인드업.
초구는 바깥으로 빠진 공!
김유빈은 달렸다!
그리고 손재현은···!
“선빵! 필승! 가즈아아아!!!”
스트라이크 존, 구종, 타격 폼···. 그 어떤 것도 신경 안 쓰고, 공만 보고 강하게 배트를 휘둘렀고···.
-따아아악!
···공을 쳤다!
[우익수 추인수! 황급히 내려옵니다! 손재현 선수의 장타를 의식하고 너무 멀리 빠져 있었어요!]
[아~ 공이 떨어진 위치가 너무 절묘합니다! 손재현 선수! 럭키 안타에요!]
[오! 김유빈 선수! 빠릅니다! 벌써 2루를 지났습니다! 이 선수 야구장에서 육상 경기를 하는 건가요!?]
[김유빈 선수 출발 타이밍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건 손재현 선수에 대한 믿음 덕분이죠! 이대로면 3루까지 여유롭게 가겠습니다!]
[추인수 간신히 공을 잡고 1루로 송구···. 어? 어? 김유빈 선수! 어디까지 가나요? 3루를 지나 계속 달립니다! 와! 빠릅니다! 정말 빨라요!]
[이런! 추인수 선수 송구를 망설입니다! 추 선수답지 않네요!]
[손재현 선수 1루 세이프!]
[추인수 뒤늦게 홈으로 송구···!]
스페이스 벤치는 난리였다.
강원식 감독은 김유빈이 3루를 지나 홈으로 달리자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우익수! 바로 홈으로 던져야지! 젠장! 막아! 점수를 내주지 마!”
포수는 앞으로 나오며 김유빈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김유빈은 우익수가 송구하는 걸 보자마자 몸을 날렸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부상의 위험이 크지만, 김유빈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겨야 해. 반드시···!’
그리고 포수를 지나쳐···.
홈플레이트를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스페이스 포수는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젠장! 더럽게 빠르네!”
포수는 포구하자마자 김유빈에게 손을 뻗었지만···.
“세이프!”
이미 김유빈은 터치한 뒤였다.
그 순간, 타이탄스 팬들이 경기장이 흔들릴 정도로 환호했다.
-우와아아아!
중계석도 난리였다.
[김유빈 선수···! 두 다리로 1점을 만들어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저도 선수 시절에 빠르단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김유빈 선수한테는 명함도 못 내밀 거 같습니다.]
[이번 시즌 타이탄스 선수들···. 무섭습니다. 이 기세가 후반기까지 이어진다면···. 정말 사고 한 번 크게 칠 거 같습니다.]
[자, 1회 말···. 투아웃 상황 타이탄스가 1점을 따내면 스페이스와 승부를 원점으로 만듭니다. 타이탄스 다음 5번 타자 윤진호···.]
【신영 타이탄스 1 : 1 신성 스페이스】
천금 같은 1점.
마운드의 김상현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김유빈은 홈플레이트에서 일어나 어디선가 보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 = = = = = = =
VIP 관중석.
김준재는 김유빈이 달리는 모습을 긴장된 모습으로 지켜보다가 3루를 지나서도 멈추지 않자 “어어···!” 소리를 냈고, 슬라이딩한 순간 몸을 들썩이며 소리쳤다.
“위, 위험···!”
그는 김유빈이 무사히 홈플레이트를 터치하고 일어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저 녀석, 다치면 어쩌려고···.’
그런 생각도 잠시, 김준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이런 걱정할 자격이 있나 싶어서였다.
그때 한수가 말했다.
“김 선수가 파이팅이 넘치네요. 아버님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더 열심히 뛰는 거 같습니다.”
“······.”
김준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한수는 그런 김준재를 쳐다보며 그에 대한 조사 자료를 떠올렸다.
.
.
.
김준재.
직업은 트럭 운전기사.
MBS 청룡 시절부터 트리플스를 응원한 골수팬.
그는 어느 날 야구장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첫눈에 반해 적극적인 구애를 한 끝에 결혼했다.
김준재는 이 여자와 함께라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결혼 후 아내와는 사사건건 충돌했다.
내가 사랑한 여자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이대로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아이가 생겼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트럭을 운전했다.
‘돈을 벌어서 집도 좋은 데로 이사 가고, 우리 식구들한테 선물도···.’
얼마 후, 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김유빈으로 지었다.
김준재는 무척 기뻤고, 더 열심히 일했다.
집에 며칠씩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그는 아내가 이해해줄 거라고 믿었다.
모든 건 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였으니까.
그러나 그건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집을 나갔다.
어린 김유빈을 이웃집에 맡긴 채···.
[찾지 마세요.]
···라는 쪽지만 남기고.
충격에 빠져 미친 듯이 아내를 찾아다녔다.
어디서 아내와 닮은 사람을 봤단 연락을 받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갔다.
하지만 늘 허탕이었다.
절망에 빠져 말없이 지냈고, 어린 아들은 그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아들은 일곱 살이 됐고, 김준재는 여전히 아내에게 버려졌단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들 덕분에 조금씩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몹시 많이 오던 겨울···.
아는 동생에게 연락을 받았다.
[아따, 형님! 형수가 분명하다니까요! 시방, 내 시력이 2.0입니다. 2.0이요!]
별로 믿음직스러운 동생은 아니어서 반신반의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유빈을 이웃집에 맡기고 동생이 불러준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유빈이가 기다리겠어. 빨리 가야지.’
그러다가 커브 길에서 미끄러지며 차가 절벽으로 떨어졌다.
죽는다고 생각했다.
자신과 집 나간 아내 말곤 가족이 없는 아들이 걱정됐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한 달 가까이 흘러있었다.
그리고···.
‘내, 내 다리···! 내 다리···!’
의사는 하늘이 도왔다고 했지만···.
김준재는 하늘이 그를 버렸다고 생각했다.
몇 날 며칠을 울며 정말 속에서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보고 김유빈이 떠올랐다.
‘멍청한 놈! 유빈이를 까먹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웃집에 연락했지만, 받지 않았다.
수소문해서 이사를 떠난 이웃집 사람들을 간신히 찾았는데···.
‘미, 미안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연락이 안 돼서 김 씨도 유빈 엄마처럼 집을 나갔다고 생각해서···. 우리도 사정이 여의치 않고···. 계속 데리고 있을 순 없으니···.’
아들을 보육원에 맡겼다는 말에 화가 났지만, 화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길가에 버리진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길로 보육원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인자하게 생긴 보육원 원장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아들을 모습을 봤다.
“······.”
그 순간,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고, 평생 다른 사람을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나랑 있으면 저렇게 웃지 못할 거야.’
아들의 인생에 짐이 될 게 분명했다.
아버지로서 그럴 순 없었다.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그리고···.
어쩌면 아내처럼···.
‘유빈이도 나를 떠날지 몰라.’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그래서 아들을 찾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아들이 있는 동산 보육원에 후원금을 보냈지만, 보육원 근처로 얼굴도 비추지 않았다.
그저···.
보육원 원장이 후원자들에게 보내주는 아이들 손편지와 사진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그리고 김유빈이 성인이 돼서 보육원을 떠났고, 연락이 끊어졌다.
찾고 싶었지만, 찾지 않았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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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는 김준재에게서 시선을 떼며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테이블에 올려둔 포수 마스크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아버지들은···. 아들들의 마음을 참 모르는 거 같네.’
그는 경기장을 쳐다봤다.
점수는 여전히 1 대 1.
3회 말, 타이탄스의 공격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