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 과연 저 타자는 내 공을 칠 수 있을까?
대구 대운 드래곤스 파크는 대한민국 최고의 팔각 구장으로 타이탄스 구장과는 형태가 다르다.
보통 중견수 뒤쪽에 있는 전광판도 우중간 뒤편에 있고, KBO 1군 구장 중 유이(唯二)하게 홈팀 더그아웃이 3루에 있다.
오늘 이 특이한 경기장에서 신영 타이탄스와 대운 드래곤스의 클래식 더비 1차전이 펼쳐진다.
한수는 테이블이 있는 관중석에 앉아 돼지 후라이드 자이언트 3종 세트를 맛보며 중얼거렸다.
“맛있네. 갈매기 순살 치킨은 왜 이런 맛이 안 나오지? 김 영양사를 갈매기 치킨 메뉴개발팀으로 보내야 하나···.”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강덕수가 말했다.
“전 갈매기 치킨이 더 맛있는데···.”
“그건 네가 돼지보다 닭을 좋아해서잖아.”
“그건 그렇죠.”
한수는 혀를 차며 포수 마스크를 썼다.
-띠링!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6,000 Point입니다.】
【임무 25를 진행 중입니다.】
‘자, 그럼···. 어제 산 스킬을 사용해볼까?’
한수는 ‘오! 나의 구단주님!’ 스킬을 사용했다.
경기장에 있는 호감도 50%가 넘는 인재 중 3명을 무작위로 선택해서 능력치를 강화해주는 스킬이다.
-띠링!
【현재 경기장에 있는 타이탄스 소속 ‘인재’ 중에서 호감도가 50%가 넘는 인원은 16명입니다.】
‘16명이라고? 그럴 리가!’
1군 선수 중에 호감도 50이 넘는 인원은 몇 명 안 된다.
‘대체···.’
그때 호감도 50%가 넘는 타이탄스 인재 목록이 나타났다.
-띠링!
【최혜선(프런트)】
【염철수(선수)】
【홍진철(선수)】
【김유빈(선수)】
【장문원(선수)】
【나대교(프런트)】
【하민철(선수)】
【손재현(선수)】
【박동준(코치진)】
【페르난도 킴(코치진)】
【장은수(선수)】
.
.
.
한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선수 전용이 아니고···. 타이탄스 소속 인재한테 전부 적용되는 거구나.’
이제야 스킬 설명창에 ‘인재’라고 적혔는지 깨달았다.
실수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가 바랐던 선수가 축복을 받을 확률이 조금 낮아졌을 뿐이다.
‘운에 기대는 건 여전하단 말이지.’
그러니까···.
【무작위 축복을 부여하시겠습니까?】
‘오케이!’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세 개의 알림창이 나타났고,
【최혜선 치어리더가 축복을 받아 ‘가무’ 능력이 1단계 상승합니다.】
【오재근 선수가 축복을 받아 ‘장타력’이 2단계 상승합니다.】
【장은수 선수가 축복을 받아 ‘너클볼’이 1단계 상승합니다.】
한수는 속으로 ‘나이스’를 외쳤다.
오늘 주전으로 출전하는 선수가 1명이라도 포함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두 명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심지어 선발 투수 장은수가 축복을 받다니!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군.”
그러자 강덕수가 돼지 후라이드를 우물거리며,
“구단주님, 뭐라고요?”
“아냐. 아무것도.”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고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였다.
경기가 시작됐다.
= = = = = = =
1회 초.
대운 드래곤스의 선발 투수는 김승민이다.
프로 데뷔 4년 차에 접어든 좌완투수다.
그는 최대 구속 130km/h 중반대의 느린 공을 던지지만, 다양한 변화구와 뛰어난 제구력으로 상대 타자를 제압한다.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는 큰 활약하지 못했지만, 점차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4 선발로 자리매김했다.
그때 타석에 1번 타자 김유빈이 들어섰다.
김승민 투수는 김유빈이 우타석에 서는 걸 보며 생각했다.
‘역시 코치님 말씀대로 우타석에 서네. 스위치히터···. 성가시게 됐어.’
하지만 전력분석팀을 통해서 타이탄스 선수들을 분석한 최신 스카우팅 리포트를 받았고, 김승민은 전부 숙지한 상태였다.
그는 구속은 느리지만, 머리 회전을 무척 빠른 선수였으니까 말이다.
‘김유빈 절대 출루시키면 안 되는 선수. 선구안은 무척 좋지만, 87.9% 확률로 초구는 지켜본댔지? 그러면···.’
심판이 플레이볼을 외쳤다.
김승민은 와인드업하며 생각했다.
‘스트라이크 하나 잡고 가자!’
133km/h의 포심 패스트볼이 바깥쪽 낮은 코스를 노리고 날아갔다.
그리고 김유빈은 배트를 휘둘렀고···.
-따아아악!
···안타를 쳤다.
김승민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젠장, 초구를 노리다니···. 겨우 12.1% 확률인데···.’
1루에 있는 김유빈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스페이스와의 3연전에서 그가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봤기 때문이다.
김승민은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리자.’
그는 홈플레이트를 쳐다봤다.
2번 타자 오재근이 타석에 섰다.
김승민은 최신 스카우팅 리포트를 다시 떠올렸다.
‘오재근···. 이번 시즌 손목 컨디션 난조로 타격력이 좋지 못하다고 했어. 장타가 나올 확률은 10% 미만. 아마 커트로 내 투구 수를 잡아먹으려고 할 거야. 그러니까 투심으로 범타 처리를 하는 거야.’
드래곤스 벤치의 사인에 외야수들은 수비 위치를 내야 쪽으로 당겼다.
이어지는 김승민의 와인드업···.
투심 패스트볼은 몸쪽 코스를 노리고 날아갔다.
이때 오재근은 생각했다.
‘이건 범타를 노리는 거야. 스트라이크라도 그냥 거르는 게 나아. 하지만···.’
왠지 모르게 거르고 싶지 않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까부터 묘하게 컨디션이 좋았다.
그래서···.
‘그래! 어차피 아웃밖에 더 당하겠어!?’
그는 배트를 강하게 쥐며 휘둘렀고.
-따아아아아악!
또 왠지 모르게 경쾌한 타격음이 들렸다.
오재근은 생각했다.
‘이건···.’
[아~ 오재근 선수! 큽니다! 커요!]
[제대로 맞았어요! 중견수 달립니다! 달립··· 아! 넘어갔습니다!]
[홈~ 런~! 오재근 선수! 2점 홈런입니다!]
[배트 스윙이 아주 깔끔했어요!]
[오재근 선수, 국가대표 2번 타자의 클래스를 보여줍니다!]
[오늘 이 선수, 뭔가 사고를 칠 거 같네요.]
오재근의 예상치 못한 홈런으로 경기는 1회 초부터 신영 타이탄스가 앞서 나갔다.
【신영 타이탄스 2 : 0 대운 드래곤스】
덕분에 응원석 열기는 무척 뜨거워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치어리더 최혜선도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욱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재근이 형이 한 건 했네!
└타이탄스 9연승 가즈아아!
└최혜선 오늘 춤 장난 아니다.
└다른 치어리더들 전부 병풍으로 만들어버리네.
└병풍까진 아니고, 최혜선과 아이들쯤···.
└이야~ 요즘 타이탄스 경기 진짜 재밌네.
└오늘도 무난하게 승리하나요?
└아직 모름. 오늘 선발 투수가 장은수임.
└아···. 너클볼···.
└타이탄스 코치진도 생각이 있겠지.
└난 갓단주를 믿음···!
1회 초 경기는 계속됐다.
3번 타자 손재현은 2루타를 치며 출루했고, 4번 타자 이소호는 플라이 아웃.
손재현은 3루 베이스를 밟았다.
5번 타자 윤진호는 2루타를 쳤고, 손재현은 홈을 들어왔다.
【신영 타이탄스 3 : 0 대운 드래곤스】
그리고 6번 타자 하민철은···.
-따아아아아악!
···이번 시즌 첫 홈런을 쳤다.
【신영 타이탄스 5 : 0 대운 드래곤스】
그 순간, 김승민은 전력분석팀이 준 최신 스카우팅 리포트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XX! 뭐 하나 맞는 게 없어!? 전력분석팀 미친 거 아냐!?’
이제부터 그냥 평소 그가 하던 대로 던지기로 했다.
그러자 이어서 타이탄스 7, 8. 9번 타자를 모두 범타로 잡았다.
김승민은 벤치로 향하며 생각했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할걸···. 스카우팅 리포트 공부 괜히 했잖아···!’
하지만 후회해도 늦었다.
이미 그는 5실점이나 했으니까.
그리고 그때···.
장은수가 긴 머릿결을 휘날리며 마운드로 올라갔다.
그렇게 1회 말이 시작됐다.
= = = = = = =
타이탄스 치어리더 응원 무대 근처, 응원석.
응원복을 입고 화려하게 치장한 타이탄스 팬들 틈에 정장 차림의 두 남자가 보였다.
바로, 장은수의 아버지와 형인 장태주와 장현수였다.
장태주는 팬들의 환호성과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응원가가 시끄러워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옆에 앉은 장현수에게 말했다.
“현수야, 좀 조용한 자리는 없는 거냐?”
“···외야 쪽이 좀 더 낫긴 한데···.”
“그럼 그쪽으로 가자. 여긴 너무 시끄러워서···.”
그때 공수 교대가 됐다.
이어서 전광판에 마운드로 장은수의 모습이 보였다.
장현수가 말했다.
“아버지, 은수입니다. 이제 은수가 던지려는 거 같습니다.”
“그럼 빨리 다른 자리로···.”
“1회 말이 끝나면 자리를 바꾸죠. 이동하다가 은수가 던지는 모습을 놓치면···.”
“······.”
장태주는 한숨을 푹 내쉬며 생각했다.
‘괜히 따라왔군. 집사람처럼 그냥 TV로 본다고 할걸···.’
시끄러워서 정신이 사나웠고, 의자도 너무 딱딱하고 불편해서 허리가 아팠다.
그는 좋다고 환호하는 관중들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
‘대체 야구가 뭐가 좋다고 저렇게···.’
그때 치어리더들이 응원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들은 타이탄스 응원가에 맞춰 화려한 댄스를 선보였다.
팬들은 모두 환호했지만, 장태주는 치어리더들의 짧은 바지와 배가 드러나는 티셔츠를 보며 혀를 찼다.
‘뉘 집 딸들인지···. 저런 민망한 옷을 입고···. 쯧.’
그때 타이거 마스크를 쓴 치어리더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모르게 낯이 익었기 때문이다.
‘저 여자는···.’
그때 큰아들 장현수가 말했다.
“아버지, 시작하려는 거 같습니다.”
“어? 어, 그래···.”
장태주는 타이거 마스크를 쓴 치어리더를 한 번 더 살펴보더니 ‘에이, 설마···.’라고 생각하며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심판이 플레이볼을 외쳤다.
= = = = = = =
마운드에 오른 장은수는 생각했다.
‘드디어 데뷔전···.’
청백전과 연습 경기에 출전하긴 했지만, 정규시즌이 아니니 오늘이 첫 데뷔가 맞았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숨을 깊게 들여 마셨다.
심장은 더욱 강하게 두근거린다.
떨려서가 아니다.
너무나도···.
‘기대 돼···! 타자들과 승부를 겨루는 게···!’
필 할아버지 말이 맞았다.
[너는 천생 투수야. 마운드에 올라보면 알게 될 거야.]
송진 가루를 손에 바르고 공을 손에 쥐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공이 평소보다 손에 딱! 달라붙는 느낌이다.
그때 1번 타자 김재찬이 타석에 섰다.
장은수는 박동준 코치가 가르쳐준 김재찬의 정보를 떠올렸다.
‘분명히 데뷔 4년 차고···.’
김재찬은 김승민 투수와 마찬가지로 데뷔 4년 차다.
그는 장타력은 떨어지지만, 뛰어난 컨택과 작전 수행 능력, 준수한 주력을 보유한 리드오프다.
방심할 수 없는 타자.
하지만 장은수는 신경 안 썼다.
왜냐면 그의 공은···.
【투수는 제구할 수가 없고, 타자는 칠 수가 없고, 포수는 잡을 수가 없으며, 대다수의 투수들은 배울 수 없는 3대 마구(魔球) 중 하나···.】
너클볼(Knuckleball)이니까!
그래서 박동준 코치가 가르쳐준 데이터는 싹 다 머릿속에서 지웠다.
장은수에게 지금 필요한 건 하나뿐이다.
너클볼을 홈플레이트를 향해 망설임 없이 던질 용기!
장은수는 김재찬을 보고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저 타자는 내 공을 칠 수 있을까?”
그 순간, 심판이 플레이볼을 외쳤다.
장은수는 와인드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