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 고생했다.
대운 드래곤스 타자들은 장은수가 선발투수로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머리가 아팠다.
왜냐면 ST 위닝스의 너클볼러 라이언 킴 투수한테 처참하게 당한 악몽이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너클볼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너클볼러인 팀 웨이크필드가 자신의 너클볼을 친 상대 팀 타자에게 어떻게 내 공을 친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타자는 모른다고 했다.
‘그냥 보고 휘둘렀어.’
한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이 너클볼 공략법에 대해 논한 적이 있었다.
‘타석에 서서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자신이게 스윙하며 너클볼이 잘 맞아주길 기도한다.’
즉, 명확한 공략법이 없다.
타자의 감각과 운.
투수의 실투.
포수의 포구 실패.
대충 이 정도가 공략법일 거다.
그나마 ST 위닝스의 라이언 킴은 한 경기에 너클볼을 던지는 비율이 40%에서 50% 정도여서 다른 구종을 던질 때를 노려보는 방법도 있지만···.
타이탄스의 장은수 투수는 너클볼 비율이 100%다.
여우 같은 타이탄스 감독의 지시로 장은수가 다른 구종을 숨겨놨을 수도 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대운 드래곤스 감독은 그 소문을 믿지 않았다.
그는 타자들한테 장은수는 너클볼만 던진다고 생각하라고 지시했다.
1번 타자 김재찬은 장은수 와인드업하는 걸 보며 배트를 꽉 쥐었다.
‘끝까지 보고 휘두르는 거야. 아무리 공이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도 어떻게든 닿기만 하면 1루로 갈 수 있어.’
김재찬은 본인 눈과 두 다리를 믿었다.
그 순간, 장은수의 손에서 벗어난 공이 그를 향해 날아왔다.
김재찬은 눈에 힘을 주며 공에 집중했고, 당황했다.
‘이게 뭐야···?’
1회도 회전하지 않는 무회전에 가까운 공이 카르만 효과를 제대로 받으며···.
마치 나비가 날갯짓하듯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여러 개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김재찬은 공을 보고 치겠다고 했던 생각이 얼마나 객기였는지 깨달았다.
‘미친, 이걸···.’
그 순간, 포수의 미트에 공이 꽂혔다.
김재찬은 중얼거렸다.
“···어떻게 치라는 거야.”
중계석에선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장은수 선수의 너클볼···. 예사롭지 않네요.]
[맞습니다. 화면을 통해서 봐도 공의 불규칙한 움직임이 엄청난데, 타자한테는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이 안 되네요.]
[그런데 심판의 판정이 늦습니다.]
[심판도 장은수 선수가 던진 마구(魔球)에 많이 놀란 거 같습니다.]
중계진의 예상은 정확했다.
심판도 장은수의 너클볼에 몹시 당황했다.
‘무슨 공이···. 도깨비 슛도 아니고···.’
그때 하민철 포수가 말했다.
“심판님, 판정은···.”
“아···. 미안.”
그는 사과한 뒤 뒤늦게 판정을 내렸다.
“스트라이크!”
장은수는 하민철이 던져준 공을 받으며 생각했다.
‘평소보다 공에 힘이 더 잘 실린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뭐, 어쨌든···.’
그는 고개를 들어 노을 진 저녁 하늘을 보며,
‘필 할아버지, 잘 지켜보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너클볼로 첫 승을 올릴게요!’
장은수는 고개를 내려 타석의 김재찬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내 공을 칠 수 있으려나?”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와인드업했다.
= = = = = = =
대운 드래곤스 더그아웃.
드래곤스 감독 박진천은 지난 10월에 부임한 KBO 최연소 1군 감독이다.
지난 10월에 두성 그리즐리스로 부임한 이성현 감독과 동갑이기는 하지만, 박진철의 생일이 두 달 정도 느려서 최연소 1군 감독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는 선수 시절 유격수 최초로 150홈런을 달성했을 정도로 뛰어난 타격 능력을 보유했었고, 너클볼도 몇 번 상대해본 적 있었다.
하지만 장은수의 너클볼은 차원이 달랐다.
박진천은 1번 타자 김재찬에서 이어서 지난 시즌 0.488이라는 리그 최고 출루율을 기록한 2번 타자 티넬라까지 배트조차 휘두르지 못하고 삼진 아웃을 당하는 걸 보며 생각했다.
‘청백전 때보다 너클볼이 더 능숙해졌어. 저 정도 너클볼이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거 같은데···.’
박진천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마운드에 서 있는 장은수를 쳐다봤다.
‘저 선수도 이한수 구단주가 스카우트해왔댔지?’
“도대체 어디서 저런 보물들을 찾아내는 건지···.”
그때 3번 타자 노재일이 타석에 섰고···.
초구, 볼.
2구, 스트라이크.
3구, 스트라이크.
4구···.
“스윙! 아웃!”
···삼진아웃 당했다.
박진천은 공수 교대를 준비하는 선수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오늘 경기···. 쉽지 않겠군.”
= = = = = = =
1회 말이 끝나고, 타이탄스 응원석에 앉은 팬들은 응원단장의 구호에 맞춰 장은수의 이름을 부르며 난리였다.
그에 장태주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장은수가 타이탄스로 입단할 때쯤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는 장은수가 집을 떠나고 나서 조금 충격을 받았지만, 큰아들 장현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조금 마음을 열었다.
특히, 막내아들이 구단주가 직접 스카우트하러 올 정도로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하니 조금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야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1군에 바로 데뷔시킨다고 하는 거 보면 은수가 정말 대단하긴 한가 보네.’
또, 장은수가 스프링캠프 청백전과 2군 연습 경기에서 활약하는 걸 보고 조금 기대됐다.
그리고···.
‘야구 선수로 성공하면 나중에 체육 관련 학부 교수가 돼서 가업을 이을 수도 있지. 그러기 위해선 은수가 성공해야 하는데···.’
그러나 시범경기에 한 번도 출전하지 않자 의아했다.
‘대단한 재능을 가졌다고 데려가 놓고 왜 출전을 안 시키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 동료 교수에게 물었다.
“김 교수, 물어볼 게 있는데···. 지인 아들이 프로야구 1군인데···. 시범경기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는데···.”
“그래~? 어느 팀인데?”
“어? 그, 그건 못 들었는데···. 그보다 왜 출전하지 못하는 건가?”
“뭐···. 출전이야 감독 재량이니까. 감독에게 밉보였거나, 실력이 없는 거겠지.”
“······.”
한수가 분명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했으니, 감독에게 밉보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은수 그 녀석이 워낙 오냐오냐 자랐고, 사회생활도 별로 하지 못했으니···.’
걱정도 되고, 지금이라도 야구를 그만두게 해야 하나 고민도 되고···.
여러모로 심란했다.
그렇게 정규시즌이 시작되고···.
퍼펙트게임을 한 천재 투수, 100마일 던진 투수, 귀환한 괴물 투수, 5회에 사이클링히트를 한 타자 등···.
타이탄스가 승승장구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소식은···.
【장은수, 벤치클리어링에서 선수 일곱을 끌고 다니는 괴력을 발휘!】
【타이탄스 장은수! 벤치클리어링의 폭주 기관차!】
···이런 기사가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 장현수가 말했다.
“지금 타이탄스 선발 투수들이 워낙 잘해줘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은수는 후반기에나 출전할 겁니다.”
“중계 투수로 출전할 수도 있잖아?”
“너클볼러는 중계 투수로 어울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후반기 들어서 체력에 한계를 보이는 선발 투수를 대신해서 마운드에 오를 겁니다.”
“후반기면 7월인가?”
“네, 7월 말쯤입니다.”
결국 그때까지 답답하게 지내야 한다는 건데···.
땅이 꺼질 정도로 한숨만 나왔다.
그런데 희소식이 전해져왔다.
“아버지, 어머니, 은수가 내일 경기에 선발 투수로 출전한다고 합니다.”
아내는 일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지만, 장태주는 약속까지 취소하고 큰아들과 함께 대구로 왔다.
그러나 야구장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시끄럽고, 불편해서 여러모로 짜증이 났다.
괜히 왔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장은수! 1승 가즈아아아!
-폭주 기관차! 최고다!
-드래곤스 선풍기 시원하네!
-장은수 멋지다!
-은수! 마! 쏴라있네!
···아들이 사람들에게 이런 환호와 찬사를 받으니 불편함이 싹 가셨다.
‘나쁘지 않군.’
사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아들을 응원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사탕처럼 달콤하게 들렸다.
그때 장현수가 말했다.
“아버지, 공수 교대 타이밍입니다. 지금 외야 쪽으로 자리를···.”
“아니, 그냥 여기서 보자.”
“네? 아깐 시끄럽다고···.”
“괜찮으니까 여기서 봐.”
“네···.”
그때 전광판을 통해 장은수가 더그아웃에 앉아 동료들과 얘기하면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장태주는 생각했다.
‘은수가 저렇게도 웃을 수 있었나···?’
그가 봐왔던 아들은 조용하고 잘 웃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
문득, 한수가 집에 찾아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적으로 매달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젊을 때 도전과 실패는 거목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라고요. 그런데 장 선수한테는 왜 이러십니까? 강연에서 떠들던 건 다 가식이었나요?]
왠지 모르게 입맛이 썼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 자식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부모 마음을 얼마나 잘 안다고···. 쯧.’
하지만 장은수의 웃는 모습을 보니···.
“······.”
장태주는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잠시 후, 2회 초 경기가 시작됐고 타이탄스는 1점을 올렸다.
【신영 타이탄스 6 : 0 대운 드래곤스】
그리고 2회 말이 시작됐다.
= = = = = = =
페르난도 킴 감독은 장은수가 홈런을 세 개 이상 맞거나, 하민철이 포구를 다섯 번 이상 실패하면 투수를 교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2회 말, 3회 말, 4회 말, 5회 말까지···.
홈런은커녕 포구 실패조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페르난도 킴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생각했다.
‘장은수 선수의 너클볼은 워낙 뛰어났으니 그렇다고 치는데···. 하민철 포수가 포구 실패를 한 번도 안 하는 건 의외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때 박동준 코치가 말했다.
“오늘 하민철 포수 컨디션이 좋네요. 장은수도 연습 때보다 볼을 많이 던지긴 하지만, 구위는 더 뛰어난 거 같고요. 6회까지는 충분히 던질 거 같습니다.”
“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체력만 괜찮으면 9회까지 던지게 해도 됩니다. 점수 차도 이미···.”
【신영 타이탄스 8 : 0 대운 드래곤스】
페르난도 킴은 고개를 끄덕였다.
“체력만 된다면···. 한번 던져보게 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그날, 장은수는 8회에 대운 드래곤스 3번 타자 노재일에게 아쉽게 안타를 1개 맞았지만, 9회까지 1점도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Only 너클볼! 폭주 기관차 장은수! 완봉승!]
[MLB 급 너클볼! 타이탄스 비밀병기 장은수, 첫 승!]
[타이탄스 9연승! 파죽지세! 비결은 막강한 투수진!]
[클래식 더비 1차전 MVP, 폭주 기관차 장은수!]
···타이탄스는 정규시즌 9연승을 달성했다.
= = = = = = =
경기가 끝나고, 장태주와 장현수는 한수의 초대를 받아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식사했다.
한수는 전에 집에 찾아왔을 때와 달리 무척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다.
식사가 다 끝날 무렵, 장태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구단주, 그때 내기 말입니다.”
“내기요? 아~!”
한수는 장은수의 집에 갔을 때 장태주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아드님이 야구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십니까?]
[당연한 것 아니요?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는데, 은수는 운동을 시작할 때가 이미 한참 전에 지났소! 재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저랑 내기하실까요?]
[내기···?]
[저는 장 선수가 KBO를 씹어 먹을 괴물 투수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내기가 이뤄지진 않았다.
한수와 장은수의 다른 가족들과의 대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장태주는 재차 입을 열었다.
“아직도 우리 은수가···. 한국 리그를 씹어 먹을 괴물 투수가 될 거라고 봅니까?”
“아뇨.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장 선수는 세계를 씹어 먹을 괴물 투수가 될 겁니다. 흐흐.”
장태주는 아버지인 자신보다 장은수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수가 부러웠다.
하지만 그도 오늘 경기를 보고 조금···.
“···앞으로도 우리 은수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장 선수는 우리 타이탄스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영구 결번이 될 선수니까요.”
장태주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은수에게 격려 문자를 보낼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 집에 도착했을 때 간신히···.
└장태주: 고생했다.
···한 문장을 보냈다.
그렇게 다음날, 클래식 더비 2차전이 시작됐다.
선발 투수는 100마일의 사나이, 기용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