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 타이탄스는 내 거야.
프로야구 개막 연승 기록은 2003년 대운 드래곤스와 작년 신성 스페이스가 세운 10연승이다.
하지만 타이탄스는 이미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20연승.
천운이 따랐다고 해도 이루기 힘든 대기록.
하지만 이건 현재 진행형이고···.
타이탄스는 개막 연승 기록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규시즌 최다 연승 기록을 노리고 있다.
KBO 프로야구팀의 정규시즌 최다 연승 기록은 2009년부터 2010년 사이에 신성 스페이스의 전신(前身) NK 드레이크스가 기록한 22연승···.
타이탄스는 이제 딱 3승만 거두면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신기록을 위한 마지막 제물은···.
신바람 야구로 대한민국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3개 구단 중 하나인···.
엔젤 트리플스다.
타이탄스와 트리플스.
두 팀은 대결은 엔 꼴라시코라고 불리는데, 명경기가 자주 나오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더비 매치인 엘 클라시코에서 따왔다.
두 구단은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국가 수도를 연고지로 하고, 팀에서 죽 쓰다가 다른 팀으로 가기만 하면 성공하는 선수들을 보유한 레알 마드리드와 엔젤 트리플스.
항구 도시를 연고지로 하고, 돈을 미친 듯이 뿌려대서 제값을 하지 못하는 선수들만 영입하는 바를셀로나와 타이탄스.
물론 두 팀은 명경기가 아니고 동네 야구라고 불릴 정도로 끔찍한 막장 경기를 펼쳤지만···.
타이탄스 팬들은 이번 시즌은 다를 거라고 예상했다.
└마! 트리플스 따위 밟아버려!
└올해 타이탄스는 다른 팀이랑 수준이 다름.
└스페이스 말곤 타이탄스 상대로 비벼보지도 못함.
└타이탄스! 23연승 가즈아아!
└트리플스도 씹어 먹자!
└9개 구단 정복하자!
└정! 벅! 자! 타이탄스!
타이탄스 팬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현재 리그 성적은 타이탄스가 압도적이었다.
1위 : 신영 타이탄스(20경기) / 20승 0무 0패
2위 : 신성 스페이스(20경기) / 17승 0무 3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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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 엔젤 트리플스(20경기) / 10승 0무 10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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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위 : 한영 벌처스(20경기) / 5승 0무 15패
1위와 6위의 대결.
심지어 트리플스는 최근 5연패를 기록하고 있다.
스토브리그에서 제갈공명이라고 불리는 감독을 영입하고, 불펜진을 강화하겠다면 돈을 왕창 뿌렸는데···.
큰 성과가 없었다.
물론 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떨어진 작년과 비교하면 선방은 하고 있었지만, 팬들한테는 무지막지하게 까이고 있었다.
성적 때문이 아니고, 트리플스에 있다가 타이탄스로 트레이드된 세 선수 때문이다.
【타이탄스 수호신, 여은포! 압도적인 세이브 1위! 비결은 탈G 효과!?】
【트리플스 입단 후 몰락했던 괴물 투수 여은포를 부활시킨 타이탄스!】
【트리플스가 공수 모두 완벽한 장문원을 2군 후보로 썩힌 이유는 바로···?!】
【트리플스가 놓친 무결점의 타자, 장문원! 타이탄스에서 잠재력 폭! 발!】
【장문원 같은 팀 손재현, 윤진호와 홈런왕 경쟁!】
【누가 오재근의 타격력이 죽었다고 했나? 시즌 4호 홈런 폭! 발! 탈G 효과는 과학인가!?】
【국가대표 2번 타자 오재근! 탈G 효과 덕분에 야구 인생 2막을 시작···!】
여은포, 장문원, 오재근.
이 셋이 활약하는 걸 지켜보는 트리플스 팬들의 마음을 찢어졌다.
└진짜 트리플스 프런트 미친 XX들···!
└S급 헐값에 팔고, B급 XX 비싸게 사는 호구 XX!
└오재근이랑 트레이드한 독고준이 1승 3패인가?
└진짜 눈깔들이 다 어떻게 된 건가? 장문원을 대체 왜 보낸 거임?
└프런트 이 XX! 여은포 데리고 와서 마운드로 올리지도 못하고! 그냥 나가 XX라!
└XX 언제까지 탈G 효과라고 조롱을 들어야 하냐?
└프런트 개XXX! 정신 안 차려!?
속이 쓰린 건 프런트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했으면 트리플스 단장 이기혁은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겠는가?
하여튼!
결론적으로 트리플스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1차전 선발은···.
퍼펙트게임의 주인공이자, 지금까지 출전한 4경기 모두 완투하고, 총 실점이 겨우 1점인···.
타이탄스 에이스.
샛별 염철수다.
= = = = = = = =
엔 꼴라시코 1차전 당일 오전, 타이탄스 단장실.
한수는 이소희 팀장에게 업무 보고를 받고 있었다.
“···해서 장문원 선수의 어머니인 김은혜 씨는 다음 주부터 마케팅팀으로 출근할 겁니다. 구단주님께서 신경 써주라고 해서 부팀장으로 임명···.”
“아~ 김은혜 씨에 대한 건 그 정도로 하고, 카를로스는 연락됐습니까?”
카를로스 디아즈는 타이탄스의 4선발로 이번 시즌부터 합류한 외인 투수다.
이소희가 직접 스카우트해온 Gold 등급의 선수.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2승을 하며 선발 투수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4월 중순에 있었던 대운 드래곤스 3연전 때, 할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초조해했다.
결국, 페르난도 킴 감독이 한수에게 부탁해서 그를 미국으로 가게 해줬고, 장은수 투수가 임시로 4선발을 맡았다.
그때만 해도 카를로스가 며칠이면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열흘 가까이 지났지만, 돌아올 생각도 없고,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타이탄스 입장에서는 참 X 같은 경우였다.
한수는 카를로스 디아즈의 사정을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결국 한계에 도달했고···.
그는 이소희에게 지시했다.
[카를로스한테 계약금 다 토해내고, 위약금까지 물고 싶지 않으면 당장 한국으로 오라고 전하세요. 연락을 안 받으면 아파서 쓰러졌단 카를로스 할머니한테 연락하고, 거기도 연결이 안 되면···. 미국으로 직원 보내서 해결하고 오게 하세요.]
이소희는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카를로스 선수는 여전히 연락이 안 받고, 카를로스 선수의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연락을 피하는 거 같습니다.”
“전세기까지 빌려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이군요. 그래서 누가 미국으로 갔습니까?”
“···스카우트팀 고민수 팀장과 운영팀 공명량 사원이 오늘 아침 비행기로 출국했습니다.”
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 팀장과 공명량이면 믿을 수 있겠지.’
이소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만약에 카를로스가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이면···. 새로운 외인 투수를 찾아보라고도 지시했습니다.”
“잘했어요. 더 보고할 거 있나요?”
그녀는 서류철을 하나 내밀며,
“23연승 달성했을 때 선수, 코치진, 프런트 직원들한테 보낼 선물 목록입니다.”
“아~ 이건 양승진 사장한테 보고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오케이. 수고해요.”
“감사합니다.”
이소희가 단장실에서 나가자, 한수는 생각에 잠겼다.
‘새로운 외인 투수라···.’
한수는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를 사용해볼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인재 위치 확인 주문서’는 외국인, 내국인 설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나중에 필요할 때 써야지.’
“공명량과 고 팀장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나?”
고민수는 인재를 보는 안목이 타자와 신인왕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재에 특화되어 있지만, 공명량이 있으니까 괜찮았다.
【공명량】【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81%)
(타이탄스 코치진: 97%)
(타이탄스 프런트: 100%)
결론: 프런트의 제갈공명입니다. 다재다능한 만능형 천재입니다. 체력 조건만 더 좋았어도 선수로서 재능도 Platinum 등급이 될 수 있었을 겁니다.
코치보다 프런트 역량이 훨씬 뛰어납니다. 그가 잘하는 건 기모(奇謀)가 아니고, 선수단을 다스리고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타이탄스 프런트 운영팀 일에 완벽히 적응했지만, 적당히 시키는 일만 하며 평범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적성】
1순위: 프런트
2순위: 코치진
3순위: 내야수, 외야수
4순위: 투수
【특기】
1. 하늘이 내린 다재다능 천재 [활성화]
2. 슈퍼컴퓨터급 데이터 야구 [활성화]
3. 가시밭길을 이겨내며 노력하는···. [비활성화]
4. 내가 키운 S급 구단 [활성화]
5. 안목은 칠종칠금(七縱七擒)처럼 [특화 진화]
6. 금(琴)을 치듯 방출, 트레이드도 잘함 [특화 진화]
7. 일을 서화(書畫)처럼 잘함 [특화 진화]
8. 추풍오장원(秋風五丈原) - 가을에 컨디션 ‘최악’
【호감도: 1%】
‘추풍오장원(秋風五丈原)’ 말고는 전부 비활성화 상태였던 특기들이 ‘가시밭길을 이겨내며 노력하는···.’을 제외하고 전부 활성화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수 전용 특기들이 프런트 전용 특기들로 ‘특화 진화’를 했다.
그가 운영팀 일에 완벽하게 적응한 덕분이다.
‘정보창 설명대로 천재는 천재네.’
그리고 특화 진화한 ‘안목은 칠종칠금(七縱七擒)처럼’은 포지션에 가리지 않고 뛰어난 선수를 파악하는 특기다.
한수는 생각했다.
‘만약에 카를로스를 1군 엔트리에서 말소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공명량이 괜찮은 외인 투수를 찾아왔으면 좋겠는데···.’
물론 아직까진 카를로스 디아즈가 복귀하는 게 좋은 그림이긴 하다.
팀원들과 사이도 괜찮고, 스토브리그부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손발을 맞춰왔으니까 말이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강덕수가 들어왔다.
“구단주님, 큰일 났습니다.”
“뭔데 호들갑이야?”
“그게···. 이연호 사장님이 오고 계신답니다!”
“고모가?”
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모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부산까지 행차하나 싶었다.
강덕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LT 그룹 심연주 실장이랑 함께 오고 있답니다.”
“심연주? 심 회장 손녀? 설마···.”
LT 그룹 심 회장은 타이탄스를 매입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인물이다.
한수는 타이탄스의 지분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어서 실질적인 오너가 맞았지만, 이창호 부회장과 이연호 사장 또한 일정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심 회장이 만약 그 지분을 얻는다면 타이탄스 운영에 끼어들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구단 매각을 생각하고 있다고? 고모 미친 거 아니야?’
타이탄스는 20연승 중이다.
팬들의 한이었던 세 번째 한국 시리즈 우승을 향해 쾌속 순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팀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퍼지면 선수들 사기에 악영향을 끼는 건 물론, 팬들의 동요도 심할 거다.
“심연주 실장은 분명 심 회장의 심복이었지?”
“네, 가장 아끼는 손녀이자, 그룹 내에서도 아들들보다 신임하는 인재입니다.”
“그렇다면 타이탄스를 노리고 오는 거겠지?”
“아마도 그럴 겁니다.”
한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심 회장 X 파일 준비됐지?”
“네.”
“오케이. 갖고 와!”
“알겠습니다.”
강덕수가 나가자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타이탄스는 내 거야. 어딜 넘봐. 흐흐.”
= = = = = = =
그 시각,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고급 세단 안.
뒷좌석에 신영 백화점 이연호 총괄 사장과 LT 그룹 기획조정실 심연주 실장이 타고 있다.
이연호는 심연주한테 조심스레 물었다.
“심 실장, 내가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이렇게 말없이 찾아가면 한수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할 줄 몰라요. 무척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
심연주는 담담히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이연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걔가 보통 애가 아닌데···. 그리고 말했다시피 타이탄스 구단 매입 건을 도와드릴 수 없어요. 이창호 부회장의 견제도 있고, 현재 타이탄스가 워낙 성적이 좋아서···.”
“알고 있습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이 사장님께서는 그저 이 구단주와 자리를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이연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다.
‘심 회장, 대체 뭔 생각이지? 타이탄스는 포기한 것 같았는데···. 왜 심연주를 보낸 거야?’
그녀는 힐끗 심연주를 살폈다.
표정에 작은 변화도 없는 인형 같은 외모.
LT 그룹 내에서 얼음 공주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범상치 않은 인물인 건 알고 있지만···.
한수는 고(故) 이태백 회장조차 두 손, 두 발 다 든 망나니였다.
머리 나쁜 망나니가 아니고, 아주 심계가 깊고 용의주도한 무시무시한 망나니.
‘한수를 얕보다간 호되게 당할 텐데···. 뭐, 내가 거기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겠지.’
그렇게 두 사람이 탄 차는 부산 시내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