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 지금 수준이면 큰 문제 없겠네.
타이탄스와 트리플스의 2차전 경기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양 팀 선발 투수들이 타자들에게 1회부터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1회가 끝났을 때 점수 차는···.
【신영 타이탄스 3 : 2 엔젤 트리플스】
다만, 두 팀의 다른 점은 타이탄스가 타자들이 잘해줘서 점수는 올리고 있다면, 트리플스는 찰스 스팅 투수의 실투 덕분에 득점하고 있었다.
그런 경기는 계속 이어졌고, 2회 말이 끝났을 때 점수 차는···.
【신영 타이탄스 5 : 5 엔젤 트리플스】
오늘 경기는 22연승이 걸린 중요한 경기이다.
그래서 타이탄스 팬들은 난리가 났다.
└마! 찰스! 정신 몬 차리나!?
└찰스 형 왜 이래? 작년까지 우리 좋았잖아!?
└2선발이면 2선발 다운 모습을 보여라!
└글렀어! 찰스 내리고 다른 투수 올려!
└올해 외인 투수 다 망했네.
└이러다가 지는 거 아냐?
└8점 따고 진다고? 장난치냐?
└투수 교체해라!
사실 찰스 스팅이 실투를 하긴 했지만, 크게 잘못한 건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아슬아슬한 경기력을 보여주긴 했지만, 지금까지 패배하지 않고 계속 승리해왔으니까.
다만, 오늘 경기는 22연승이 걸린 경기이고, 찰스 스팅 말고 다른 선발 투수들이 워낙 잘해줘서 그의 실력이 불안해 보이는 거다.
3회 초를 준비하는 타이탄스 더그아웃.
페르난도 킴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마운드로 향하는 찰스 스팅 지켜보다가 임형민 불펜 코치에게 물었다.
“곧 교체해야 할 수도 있을 거 같군요. 투수 준비는 됐나요?”
“네. 2회부터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전예준 선수 컨디션은 어때요?”
“예준이는 몸살 기운이 있어서 힘들 거 같습니다.”
“그럼, 양기주 선수나 김태규 선수는요?”
“둘 다 괜찮습니다.”
페르난도 킴 감독은 잠시 고민하더니,
“김태규 선수가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준비해두라고 하겠습니다.”
임형민 코치가 물러나자 박동준 QC 코치가 말했다.
“찰스의 커터가 트리플스 상위 타선을 상대로 선전할 거라고 판단했는데···. 생각보다 구위가 살아나지 않네요.”
트리플스는 1번부터 6번까지 좌타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완 투수이자 위력적인 컷 패스트볼을 던지는 찰스 스팅이 우위를 점할 거라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박동준은 찰스 스팅의 데이터를 확인하며 말을 이어갔다.
“작년 성적과 비교하면 무난하게 활약해주고 있습니다만···. 이대로면 10승도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찰스 스팅은 작년에 14승을 한 투수다.
컷 패스트볼을 새로 장착하며 더 뛰어난 활약을 펼칠 거라고 예상했는데, 10승도 못한다니···.
페르난도 킴은 조금 복잡한 눈빛을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은 오늘 경기에 이기는 데 집중하죠.”
오늘 경기에서 지면 신기록 실패뿐만 아니라, 팀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동준도 그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
그때 마운드에 선 찰스 스팅이 와인드업했다.
= = = = = = = =
VIP 관중석.
한수는 찰스 스팅이 던진 공을 트리플스 타자가 커트하는 걸 보고 혀를 차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불펜을 빨리 돌려야 할 거 같은데···. 누가 먼저 올라오려나?’
그때 양승진 사장이 한수가 앉은 자리로 다가오더니 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아~ 괜찮아요. 수고했어요. 맥주 마실래요?”
“네.”
양승진이 옆자리에 앉자, 한수는 맥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특별히 보고할 거 있어요?”
“음···. 우선 고 팀장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카를로스 선수의 에이전트와 만났다고 합니다.”
“그래서요?”
“아무래도 카를로스 선수 외조모의 건강이···.”
“본론만요. 본론만.”
“···한국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거 같답니다. 카를로스가 외조모 곁을 떠나려고 하지 않아서···.”
“카를로스 외할머니를 신영 의료원으로 모시겠다는 제안은 해봤어요?”
“외조모께서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
그때 원정팀 관중석에서 ‘와아아아!’하고 함성이 울려 퍼졌다.
찰스 스팅이 던진 공이 홈런을 맞은 거다.
【신영 타이탄스 5 : 6 엔젤 트리플스】
한수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외인 투수가 둘 다 문제네.”
“하하···. 찰스 선수는 아직 시즌 초반이니 조금 더 지켜보시죠. 그래도 꾸준히 10승 이상을 해주던 선수니까요.”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줬으면 좋겠군요.”
“코치진들은 믿어보시죠. 그럼, 카를로스 디아즈 선수는···.”
“엔트리 말소하고, 고 팀장한테 새로운 외인 투수 알아보라고 해요.”
“계약금은···.”
“신경 쓰지 말고, 최고로 좋은 선수로. 오케이?”
양승진은 ‘역시 구단주님!’이라는 눈빛을 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 고 팀장한테 새로운 외인 투수 스카우트할 때 공명량 사원의 의견을 최대한 참고하라고 하세요.”
사실 스카우트 팀장한테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른 팀 사원의 의견을 참고하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지시이지만···.
‘공명량씨는 구단주님이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었지? 뭔가 생각이 있으셔서 이런 지시를 하시는 거겠지.’
양승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한수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마운드 위로 새로운 투수가 올라갔다.
바로, 우언 투수인 김태규였다.
김태규는 작년에 15연패를 하며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지만, 올해 스프링캠프부터 급상승세를 보이더니 시범 경기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선보였다.
한수는 생각했다.
‘괜찮은 선택이네. 타자들은 걱정할 필요 없고···. 김태규가 7회까지만 안전하게 마운드를 지켜주고, 문희동과 여은포가 마무리해주면 되겠어.’
그때 양승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심연주씨 채용 말씀인데요···.”
“원하는 팀 있던가요?”
“다들 껄끄러워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요? 그 여자, 능력은 있는데···.”
“그야 그렇겠지만···.”
심연주는 LT 그룹 심 회장이 무척 아끼는 손녀다.
평범한 직장인이 감당하긴 어려웠다.
한수는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며 말했다.
“양 사장 비서 아직 없죠? 이참에···.”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우리 싸움꾼 양 사장도 부담스러워요?”
“하하, 그게 조금···.”
양승진이 운영팀 시절에 사장이나 단장한테 미친놈처럼 덤볐던 건 맞지만, 아무리 그래도 심연주는 부담스러웠다.
그때 김태규가 타자 세 명을 연속해서 삼진으로 잡아내며 3회 초를 마무리했다.
한수는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천천히 말했다.
“심연주는 운영팀으로 보내세요. 직책은 대충···. 이 팀장을 보좌하는 역할로 하고요.”
“···이소희 팀장이 감당할 수 있을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심연주는 깽판 치러 오는 게 아니고, 구단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파악하러 오는 거니까.”
“네···.”
“그리고···.”
이소희는 한수가 타이탄스에 처음 부임했을 때도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쳤던 인물이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 팀장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겁니다.”
“······.”
“더 보고할 거 있나요?”
“···없습니다.”
“오케이. 그럼, 경기에 집중하죠.”
“네.”
두 사람은 경기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3회 말 경기가 시작됐고, 타석에는 2번 타자 오재근이 섰다.
그리고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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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6으로 타이탄스 완승(完勝)!】
【타이탄스 정규 시즌 22연승 달성!】
【타이탄스! 신기록까지 1승 남았다!】
【불안한 찰스 스팅을 커버해준 완벽한 불펜!】
【타이탄스 타자들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12점 작렬!】
···타이탄스는 승리했고 정규시즌 22연승을 달성했다.
= = = = = = =
경기 종료 후, 타이탄스 프런트 사무실.
이소희는 사무실에 혼자 남아 외인 투수 자료를 검토하고 있었다.
고민수 팀장과 공명량이 미국에서 새로운 용병을 찾고 있지만, 그녀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었다.
시즌 도중 멋대로 이탈한 카를로스 디아즈 투수를 스카우트해온 건 바로 이소희였다.
물론 카를로스 디아즈가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은 걸로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렇게 야근까지 하는 이유는 책임감과 자존심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연락인 되는 건 이 투수 뿐인가?’
【찰리 숀 (29)】
국적: 미국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평균 구속: 96마일(154km/h)
평가: 마이너리그 AAA팀에서 4선발로 활약하다가 재작년 NPB로 감. 자이언츠에서 1선발을 ···(중략)···.
ERA: 2.58(지난 시즌 NPB)
예상 계약금: 95만 달러
찰리 숀은 스토브리그 당시 고민수 팀장이 찾아낸 외인 투수다.
NPB에서 ERA 2.58을 기록했지만, 체력이 약점이고 엄살이 무척 심해서 조금만 컨디션이 나빠도 경기를 빠지는 제멋대로인 투수다.
그는 NPB 구단과 재계약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미국에서도 데려가려는 구단이 없어서 곤란한 상황이다.
이소희는 생각했다.
‘스토브리그 때 내가 카를로스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찰리 숀과 계약할 확률이 높았어. 음···. 일단 찰리 숀으로 급한 불을 꺼야 하나?’
그러나 곧 고개를 저었다.
이번 시즌 타이탄스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은 허슬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에 찰리 숀은 너무 몸을 사리는 선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선수에게 몸은 귀중한 재산이니까.
다만···.
‘우리 팀하고는 잘 맞지 않아.’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외국을 돌며 선수들을 찾아볼 텐데, 시즌 중에 자리를 비울 순 없었다.
이소희는 생각했다.
‘고 팀장님이랑 명량이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하던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 준비를 시작했다.
‘내일은 심연주씨 오리엔테이션 준비도 해야 하니···. 바쁘네. 바뻐.’
그러다가 내일 경기 라인업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탄스 VS 트리플스 3차전, 타이탄스 라인업】
선발 투수 : 홍진철(Platinum 등급)
1번 타자 : 김유빈(Platinum 등급, 좌익수)
2번 타자 : 오재근(Platinum 등급, 중견수)
3번 타자 : 손재현(Platinum 등급, 3루수)
4번 타자 : 이소호(Diamond 등급, 지명타자)
5번 타자 : 윤진호(Diamond 등급, 2루수)
6번 타자 : 장문원(Platinum 등급, 우익수)
7번 타자 : 강민수(Platinum 등급, 포수)
8번 타자 : 김효철(Gold 등급, 유격수)
9번 타자 : 안종렬(Gold 등급, 1루수)
선발 투수를 제외하고는 1차전, 2차전과 똑같은 베스트 라인업이다.
‘그만큼 중요한 경기니까.’
내일 경기에서 이기면 정규시즌 팀 연승 신기록인 23연승을 달성한다.
‘트리플스는 내일 3선발이니까.’
“···독고준이네.”
타이탄스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불꽃 투수 독고준.
공교롭게도 그가 신기록을 세우기 위한 마지막 제물이 되었다.
이소희는 독고준의 이번 시즌 데이터를 확인했다.
1승 2패. 경기력은 물론, ERA도 좋지 않았다.
독고준이 라이벌로 여기는 윤진호만 해도 독고준을 상대로 타율이 무척 높았다.
“십 년 전 독고준이면 모르겠는데···. 지금 수준이면 큰 문제 없겠네.”
이소희는 독고준의 데이터가 적힌 서류를 휙 던져버리고 퇴근했다.
다음 날, 타이탄스는 이소희의 예상대로 승리했고···.
팀 연승 신기록인 23연승을 기록했다.
그리고···.
팬들은 난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