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 여은포 선수로 하죠.
신영 타이탄스는 엔젤 트리플스와의 3연전에서 모두 승리했다.
【타이탄스! 23연승 달성! 또 신기록!】
【불꽃 투수 독고준! 윤진호에게 연타석 홈런을···.】
【타이탄스! 트리플스를 9 : 0으로 완벽 제압!】
【역시! ‘홍진철’ 7회까지 무실점! 완벽한 피칭!】
【문희동 투수, 완벽한 투구로 8, 9회를 깔끔하게···.】
【MVP 윤진호! “전 아직도 배고픕니다.”】
타이탄스 팬들은 사직 구장, 광안리, 해운대 등에 모여서 환호했다.
커뮤니티도 난리였다.
└타이탄스! 쏴라있네!
└이대로 통합 우승 가즈아아!
└통합이 뭐냐? 전승 우승 가즈아아!
└타이탄스가 23연승? 미쳤다. 미쳤어.
└XX! 타이탄스 최고다!
└마! 다 덤벼! 타이탄스 가즈아아!
모두가 타이탄스의 행보를 주목했다.
타이탄스 구단의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신기록을 달성했으니, 부담감이 어느 정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타이탄스는 대명 티라노스와 주말 3연전을 치르기 위해 창원으로 향했다.
낙동강 더비로 유명한 라이벌전이었지만, 대부분 타이탄스의 승리를 점쳤다.
그때 타이탄스 팬 중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3승만 더 쌓으면 세계 신기록 아님?
└ㄹㅇ? 세계 신기록?
└1916년 뉴욕 자이언츠가 26연승함.
└정확히는 26승하고 1무지.
└아는 척 ㄴㄴ
└어쨌든 타이탄스가 세계 신기록 세우는 거?
└낙동강 더비 이기면 가능.
└미친···. 살다 보니 타이탄스가 세계 신기록을···.
└우리 타이탄스가 달라졌어요!
└금쪽같은 내 타이탄스!
└세계 신기록 가즈아아아!
26연승.
백여 년 동안 깨지지 않은···.
현대 프로야구에서는 나오기 힘든 전설적인 기록.
타이탄스는 그 전설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 = = = = = =
타이탄스 단장실.
한수는 소파에 앉아 폰으로 뉴스 기사들을 훑어보며 생각했다.
‘26연승이라···. 이것까지 달성하면···.’
한수는 임무 27 내용을 떠올렸다.
『임무 27』
【구단주님, 14연승 중이시네요. 그거 아시나요? KBO 팀 최다 연승 기록은 NK 드레이크스 세운 22연승이래요. 자~ 그럼 우리 타이탄스는 몇 연승까지 할 수 있을까요?】
└??승 성공 시: ???
└신기록 달성 시: ???
‘아마 연승 기록은 포인트를 줄 거고, 신기록을 달성하면 특별한 아이템을 줄 것 같은데···. 흐흐, 좋아. 좋아. 뭐가 됐든 땡큐지!’
한수는 오늘 선발 투수를 확인했다.
‘장은수구나.’
너클볼러 장은수는 다른 구단들이 염철수 만큼이나 상대하기 싫어하는 투수다.
완성도 높은 너클볼은 도무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수는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가볍게 1승 얻겠네.”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강덕수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구단주님, 심연주 차장이 찾아왔습니다.”
심연주는 운영팀 차장으로 들어왔다.
사실 LT 그룹 본사 기획조정실장을 하던 그녀가 운영팀 팀장도 아니고 차장으로 들어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심연주는 구단 운영에 대해 배우고자 오는 거였기에 직급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한수는 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그러자 문이 열리고 심연주가 들어왔다.
깔끔한 정장으로 차려입은 그녀는 한수를 보며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구단주님.”
호칭은 한수씨에서 구단주님으로 변해 있었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공과 사는 구분하겠다는 건가?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면 나야 좋지.’
“그래요. 반가워요. 앉아요. 앉아.”
“네~ 고맙습니다.”
“차는 뭐로 마실래요?”
“괜찮아요. 마시고 왔거든요.”
“오케이. 그럼···. 무슨 일로 온 거죠?”
“첫 출근이라 인사드리러 온 거죠.”
한수는 심연주를 빤히 쳐다봤다.
정확히는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빛을···.
‘할 말이 있어서 온 거 같은데···.’
“첫 출근인데 어때요?”
“아주 좋아요. 사무실 분위기도 마음에 들고···. 아! 이소희 팀장 덕분에 업무 파악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거 다행이네요.”
“타이탄스 구단은 선수뿐만 아니라, 프런트 직원들도 참 뛰어난 거 같아요. 이소희 팀장도 그렇고, 주현우 팀장, 심상호 팀장도요. 전~ 부 구단주님께서 스카우트한 분들이죠?”
“그런데요.”
“저는 인재를 보는 눈엔 조금 자신이 있답니다. 그런데 구단주님처럼 스카우트하자마자 곧.바.로 적재적소 활용하는 분은 처음 봤어요.”
“심연주 차장.”
“네?”
“내가 잡설이 긴 걸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녀는 빙긋 웃더니,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모두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 덕분이지만, 말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한수는 피식 웃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
“노하우랄 것도 없습니다. 그냥 내 안목이 좋아서 그런 겁니다. 타고난 거예요. 타고난 거.”
“······.”
대답을 들은 심연주는 그를 빤히 쳐다봤다.
한수의 속내를 파악이라도 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한수는 그녀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더 질문 있나요?”
“아뇨.”
“그럼, 가보세요.”
“네, 구단주님.”
그렇게 심연주는 단장실에서 나갔다.
한수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노하우가 궁금하면 계~ 속 궁금해하면서 타이탄스에 붙어있으라고. 99% 인재니까 쓸모는 있겠지. 흐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올려둔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9,000 Point입니다.】
【현재 임무 27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수는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닫으며 생각했다.
‘오랜만에 쇼핑이나 해볼까?’
= = = = = = =
타이탄스 프런트 오피스 복도.
사무실로 향하던 심연주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봤다.
한수 앞에서 보였던 해맑은 모습과 달리 차분한 표정과 깊은 눈빛···.
그녀는 시선이 닿은 곳은 단장실이었다.
심연주는 생각했다.
‘안목이라는 말로 넘기고 있지만···. 분명 뭔가 있어. 하지만 말해줄 리가 없겠지. 결국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건데···.’
“쉽진 않겠네. 그렇지만 할아버님 소원을 위해서라도···.”
LT 그룹 심 회장은 신성 그룹 차재덕 회장에게 묘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신성 스페이스가 창단하자마자 단 한 번도 1등에서 내려오지 않고 통합 우승한 걸 보고 몹시 배 아파했다.
그래서 구단을 사서 신성 스페이스에 엿을 먹이겠다고 타이탄스에 눈독을 들였다.
하지만 타이탄스가 스토브리그부터 시작해서 어마어마한 돌풍을 일으키며 KBO 리그를 씹어먹기 시작하자 구단 매입이 흐지부지됐고···.
심 회장은 작전을 바꿨다.
[우리 LT 그룹도 구단을 창설한다.]
그는 열한 번째 구단 창설을 KBO 협회 인사들을 만나며 작업을 시작했다.
심 회장을 바랐다.
[우리도 신성 스페이스처럼 창단 통합 우승을 한다.]
그래서 열 개 구단에 스파이를 잠입시켜서 구단 운영을 어떻게 하는지 완벽하게 파악해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타이탄스 도무지 틈이 나지 않았다.
채용 면접에 지원하는 스파이마다 전부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연주가 직접 나선 거다.
[연주야, 할아버지가 한심하다고 생각하지?]
[아녜요. 이해해요.]
[···고맙다. 할아버지는···. 야구에서라도 좋으니, 차재덕을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구나. 그러니까···.]
[······.]
[타이탄스가 어떻게 꼴찌에서 최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그 방법을 알아내. 반드시!]
[네.]
심연주는 할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노하우를 파악해주겠어. 반드시!’
그때 이소희가 결재 서류철을 들고 심연주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심 차장, 여기서 뭐 하세요?”
“아~ 팀장님!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
“······.”
이소희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재차 물었다.
“구단주님께 인사는 드렸나요?”
“네.”
“그럼, 가희 씨랑 같이 인형탈 챙겨서 창원으로 출발하세요.”
“인형탈이요? 그건 왜요?”
“홈경기와 더비 매치 때는 운영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인형탈 의상을 입고 관중석을 돌면서 응원합니다. 팬들과 사진도 찍어주고요.”
“···저도 하는 건가요?”
“운영팀 직원이니 해야죠.”
“······.”
“질문 더 있나요? 없으면 저는 구단주님께 보고드릴 게 있어서···.”
이소희가 단장실로 향하자, 심연주는 중얼거렸다.
“인형탈···. 이거 참···. 색다른 경험을 하겠네요···.”
심연주는 한숨을 푹 내쉬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 내리네···.’
그녀는 보슬보슬 내리는 빗방울을 보며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짓다가 재차 한숨을 내쉬더니 사무실로 향했다.
= = = = = = =
티라노스 홈구장, 원정팀 회의실.
페르난도 킴 감독과 코치진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고 박동준 QC 코치가 들어오며 말했다.
“다행히 지금은 비가 그쳤는데···. 일기예보에 7시쯤에 40% 확률로 비 소식이 또 있습니다. 그리고 습도도 높아서···.”
페르난도 킴 감독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발 투수는 교체해야겠군요.”
“···네.”
어쩔 수 없었다.
오늘처럼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에는 장은수를 선발로 올리는 건 위험도가 높다.
너클볼은 컨트롤이 무척 어려운 구종이기 때문이다.
만약 비나 습도의 영향으로 공이 미끄러져서 너클볼의 회전수가 3회 이상이 되면 배팅볼로 전락해버린다.
코치들은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은수가 빨리 다른 구종을 장착해야 하는데···.”
“너클볼에 특화된 투구폼에 적응한 놈이야. 괜히 다른 구종 익히다가 밸런스가 무너지면···.”
“그렇다고 이대로 둡니까? 4선발은 어쩔 건데요?.”
“애초에 장은수는 식스맨이잖아요. 문제는 카를로스 그놈이죠. 어휴···.”
“프런트는 언제쯤 외인 투수 데려온답니까? 이럴 거면 2군에 있는 민석이라도···.”
페르난도 킴 감독은 가볍게 박수를 쳐서 모두를 조용히 시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오늘 선발 투수입니다. 누가 좋을 거 같나요?”
그러자 장보형 투수 코치가 말했다.
“용찬이를 오늘 올리고 은수를 내일 선발로 하는 게 어떤가요?”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다.
선발 투수들 간에 출전 날짜 조정은 종종 있는 일이니까.
그러자 박동준 코치가 말했다.
“주말까지 비 소식이 있어서 오늘 기 선수가 올라가면 내일은 염 선수가 올라가야 할 겁니다. 그러면 일요일은 찰스 선수인데···.”
코치진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티라노스와의 3연전은 더비 매치일 뿐만 아니라, 전부 승리해야 세계 신기록을 세울 수 있는 중요한 경기다.
하지만 찰스 스팅은 요즘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그런 그가 가장 중요한 세 번째 경기를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때 윤형식 작전 코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러면 오늘은 용찬이, 내일은 철수, 3차전엔 진철이가 던지는 건 어떻습니까?”
그러자 장보형 코치가 고개를 저으며,
“그러면 찰스의 자존심이 무척 상할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본인 실력에 의구심을 품고 있어서 자신감을 잃고 있는데···.”
“그렇지만 찰스가 3차전 선발로 올라갔다가 26승을 놓치기라도 하며 더 큰 일 아닙니까?”
“그건···.”
“구단주님도 세계 신기록을 세우는 걸 무척 기대하시고···.”
“······.”
박동준도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 코치님, 선수 개인의 자존심보다 팀의 승리가 중요합니다.”
“···그렇죠.”
장보형이 살짝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떡이자, 박동준은 페르난도 킴을 쳐다봤다.
결정을 내리라는 눈빛이었다.
페르난도 킴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팀의 승리죠.”
“그러면 오늘 선발은···.”
페르난도 킴은 빙긋 웃으며,
“여은포 선수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