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 꼭 이겨주세요.
창원시의 어느 도로, 차 안.
한수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에 보슬보슬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생각했다.
‘쏟아질 거면 확! 쏟아지던가···. 애매하게 내리네. 이러면 장은수가 마운드에 오르긴 어렵겠는데···.’
그때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박동준 QC 코치한테 온 새로운 낙동강 더비 1차전 라인업이었다.
【타이탄스 VS 티라노스 1차전, 타이탄스 라인업】
선발 투수 : 여은포(Diamond 등급)
1번 타자 : 김유빈(Platinum 등급, 중견수)
2번 타자 : 로빈 애플(Gold 등급, 좌익수)
3번 타자 : 손재현(Platinum 등급, 3루수)
4번 타자 : 장문원(Platinum 등급, 우익수)
5번 타자 : 윤진호(Diamond 등급, 2루수)
6번 타자 : 공형찬(Gold 등급, 지명타자)
7번 타자 : 하민철(Platinum 등급, 포수)
8번 타자 : 김효철(Gold 등급, 유격수)
9번 타자 : 안종렬(Gold 등급, 1루수)
투수는 장은수에서 여은포로 바뀌었고, 이소호의 허벅지와 오재근의 손목 컨디션을 고려해서 공형찬과 로빈 애플이 출전했다.
덕분에 김유빈이 중견수를 맡게 됐다.
한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여은포라···. 한동안 마무리로 올라오지 않았으니 컨디션은 양호할 거고···.’
대명 티라노스는 스토브리그 때 윤진호와 양투지를 잃고 화력이 대폭 줄었다.
시범경기는 물론, 정규시즌에서도 제대로 된 클린업트리오를 갖추지 못해서 골머리 썩고 있었다.
반면에 여은포는 완벽했다.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단 한 번의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한수는 중얼거렸다.
“장은수보다 수월하게 이길 거 같은데···.”
다만, 오늘 선발 투수로 출전했으니, 이틀 이상은 마무리로 활약할 수 없다.
‘내일 선발인 기용찬이 문제네.’
기용찬은 ‘양날의 에이스’ 특성을 보유했다.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6회까지만 던지게 해야 한다.
그러면 셋업맨과 마무리투수가 뒤를 받쳐줘야 한다.
‘그렇다고 염 선수랑 순서를 바꾸는 건 안 돼.’
오늘, 내일 경기에서 승리하면 26승이 걸린 3차전이 가장 중요하고 부담스러운 경기다.
그래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에이스, 염철수가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
한수는 고민하다가 박동준 코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구단주님.]
“박 코치, 경기 준비로 바쁠 텐데 미안해요.”
[아닙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고 오늘 여은포가 선발로 나서면, 내일 셋업맨과 마무리투수는 누구로 활용할 겁니까?”
[음···. 셋업맨은 내일 상황을 지켜봐야 할 거 같습니다만···. 마무리투수는 양창진 선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네, 양창진 선수가 티라노스 타자들을 잘 파악하고 있고, 최근 컨디션도 좋아서요.]
“오케이.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해요.”
[감사합니다.]
한수는 통화를 끝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양창진이라면 괜찮겠네. 티라노스 놈들 멘탈도 흔들 수 있을 테고···.’
양창진 투수는 티라노스 창단 멤버이자 통합 우승의 숨은 주역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있고, 수술 후유증으로 점차 구위가 떨어져서 ERA가 처참한 수준에 이르러서 은퇴 얘기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타이탄스로 와서 부활에 성공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덕분에 티라노스 팬들은 양창진이 활약하는 경기만 보면 배를 아파했다.
한수는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대로면 세계 신기록···. 가능하겠어.”
그러자 운전을 하던 강덕수가 말했다.
“26연승 달성하면 23연승 때처럼 선수들, 프런트, 코치진 전원 금일봉 지급할까요?”
“응. 두 배로 지급해.”
“알겠습니다. 아! 27승 하면 단독 1위인데···.”
“그땐 금일봉 플러스 선물. 선물은···. 네가 알아서 골라. 최고급으로 오케이?”
“네!”
한수는 옆자리에 있던 포수 마스크를 착용했다.
-띠링!
【최고의 구단주 가이드에 접속했습니다.】
【최고의 구단주가 되는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9,000 Point입니다.】
【현재 임무 27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은포의 정보창을 확인해보자.’
【여은포】【Diamond 등급】
【재능】
(타이탄스 선수: 100%)
(타이탄스 코치진: 13%)
(타이탄스 프런트: 10%)
결론: 경기장의 천하무쌍 여포(呂布)입니다. 선수로서 재능 하나만큼은 KBO 최고입니다. 투수로서 재능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재능도 뛰어나서 투타 겸업할 수 있습니다.
【포지션】
1순위: 투수, 지명타자
2순위: 내야수
3순위: 외야수
【투타】
우투좌타
【특기】
1. 해바라기 [활성화]
2. 방천화극 타법 [타격력, 장타력]
3. 내 공에 적토마 있다. [구속]
4. 내 발에 적토마 있다. [주력]
5. 괴력(怪力)
6. 철인(鐵人)
7. 황금만능주의
8. 봉선화(鳳仙花) 스크루 볼(Screw Ball)
9. 경기장의 비장(飛將) [호타준족]
10.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 같은 성격
11. 자존심보다 보신(保身)
12. 마운드의 수호신 【NEW!】
13. 질투의 화신 【NEW!】
【호감도: + 15%】
재능 100%와 잠재 레벨 100 그리고 성장도 S 특성을 보유한 선수답게 새로운 특기가 2개나 생겼다.
마운드의 수호신은 마무리 투수 능력치를 보정해주는 특기였고, 질투의 화신은···.
‘질투의 대상을 상대로 투지가 상승한다고? 음···. 이놈 성격에 다른 선수들은 다 자기 밑으로 볼 거고···.’
“아무래도 최혜선과 관련된 특기인가 보네.”
한수는 혀를 찼다.
‘최혜선의 영향을 받는 특기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관리하기 귀찮네···. 역시 염 선수가 최고야. 얼마나 좋아? 말 잘 듣고, 잘 던지고, 잘 성장하고···.’
그렇지만···.
“이기기 위해서라면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해야지.”
한수는 포수 마스크를 벗고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다가, 최혜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휴대폰을 통해 옥구슬이 쟁반 위를 구르듯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구, 구단주님, 무슨 일로···.]
무척이나 긴장한 듯 최혜선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한수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아주 살짝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승리를 놓칠 순 없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네, 네···. 구, 구단주님께서 여러 가지로 배려해주셔서···. 그, 오피스텔이랑 가드들도 감사드려요···.]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는 겁니까? 별 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아요.”
[그, 그래도···.]
최혜선이 스타로 급부상하자 파리들이 많이 달라붙어서 그녀는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그녀를 ATM기 취급하던 친오빠들이 단물을 빨아먹기 위해 달라붙었다.
한수는 그 문제를 아주 깔끔하게 해결해주고 그녀에게 가족에게서 독립하라고 제안하며 최고급 오피스텔과 개인 가드를 제공해줬다.
물론 한수로서는 강덕수에게 최혜선을 신경 써주라고 지시 내린 게 전부였지만, 최혜선은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구, 구단주님은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늘 잘 지내죠.”
[다행이에요···. 아~ 식사는 잘하세요? 제가 바, 반찬을 조금 했는데 다음에 가져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부탁이 있습니다.”
[마, 말씀하세요.]
“미리 말씀드리면···. 제 부탁, 혜선 씨한테 무척 불쾌하고, 서운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
“그러니까 거절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한수는 생각했다.
‘물론 거절하지 않겠지만···.’
그의 예상은 정확했다.
최혜선은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세요. 구단주님 부탁이면 뭐든 들어드릴 수 있어요.]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아니에요.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말입니다···.”
휴대폰 너머로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한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은포 선수를 만나줄 수 있나요?”
[···네? 여, 여은포 선수요···?]
= = = = = = =
티라노스 홈구장, 원정팀 라커룸.
여은포는 휴대폰으로 최혜선 댄스 모음 영상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그러자 안종렬이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너 오늘 선발인데 긴장도 안 되냐?”
“긴장을 왜 해요? 어차피 내 공을 칠 수 있는 놈들도 없을 텐데.”
“인마,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댔어. 그러다가···.”
“전 원숭이 아니고 천재입니다. 천재.”
“오늘 중요한 경기야. 그래도 신경 써.”
“알겠으니까 혜선씨 보는 데 방해하지 말고 놔두세요.”
안종렬은 뭐라고 한마디 더 할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은포는 그동안 무척 잘했다.
마무리 투수로 올라가서 단 한 번도 실점한 적이 없으니까.
다만, 하민철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려서 몇 마디 했던 거다.
[여은포, 그 녀석···. 지금 설렁설렁 던지고 있어요. 스프링캠프에서 철수랑 승부를 겨뤘을 때 던졌던 공은 더 위력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리고 숨기는 것도 있는 거 같고···. 형이 걔랑 친하니까 한번···.]
그러나 안종렬이 말해도 별 성과는 없었다.
안종렬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알아서 하겠지. 뭐, 홈런 한두 개 맞다 보면 정신 차리고 최선 다하겠지.’
그보다···.
‘내 코가 석 자다, 석 자.’
그는 어제 있었던 트리플스와 3차전에서 무안타였다.
코치들은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1경기쯤은 그럴 수도 있다고 위로했지만, 안종렬은 초조했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순 없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최선을 다하는 거야. 오늘은 무조건 전 타석 출루한다. 무조건!’
그때 안종렬의 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유빈의 전 여친 손미나 치어리더였다.
‘미나 누님이 왜···.’
└미나 누님: 야, 여은포 좀 라커룸 밖으로 불러봐.
└안종렬: 왜요?
└미나 누님: 부르라면 부를 것이지, 확!
└안종렬: 누님, 유빈 형 두고 이러면 안 돼요.
└미나 누님: 그런 거 아니라고!
└미나 누님: 그리고 유빈 오빠 얘기가 왜 나와! 오빠랑 끝났다고!
└미나 누님: 입 다물고 여은포나 불러!
안종렬은 혀를 차며,
‘성질머리는 여전하네. 그런데 은포는 왜 부르라는 거야?’
“은포야. 라커룸 좀 나가봐라.”
“왜요?”
“누가 너 좀 보잖다.”
“누구요?”
안종렬은 김유빈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 여은포에게 버럭 소리쳤다.
“선배가 나가라면 그냥 네! 하고 좀 나가!”
“거참···. 선발 날에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마!!!”
“알겠어요! 알겠어!”
여은포는 투덜거리며 라커룸 밖으로 나갔다.
‘대체 누가 찾는다는 거야?’
그는 두리번거리다가 복도 옆에 있는 벤치를 보고 움찔했다.
거기에는 최혜선이 앉아 있었다.
여은포는 입을 쩍 벌렸다.
‘혜, 혜선 씨가 왜 여, 여기에···?’
설마···.
‘혜선 씨가 나를 찾은 건가?’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혜선 씨가 나를 찾을 이유가 없잖아!’
여은포는 다시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정말 혜선 씨가···?’
그때 최혜선이 여은포를 발견했다.
그녀는 “아···.”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여은포에게 다가와 비타민 500 음료수병을 내밀며 말했다.
“···오늘 선발이라고 들었어요.”
“네···.”
“이거 마시고···. 힘내세요.”
“아, 네···.”
얼떨결에 받은 음료수병에는 그녀의 온기가 느껴져서 여은포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
최혜선은 말했다.
“꼭 이겨주세요.”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복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여은포는 뭐라고 말이라도 붙이고 싶었지만, 너무도 꿈 같은 상황이라 차마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손에 들린 비타민 500 음료수를 보며 최혜선이 남긴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꼭 이겨주세요.]
여은포는 음료수병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당연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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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해바라기’ 발동합니다.】